주일설교

믿음의 본질

Author
kgmcc
Date
2021-01-30 21:43
Views
48
본문 : 누가복음 17장 3-6절

날짜 : 2021년 1월 31일

 

<누가복음 17장 3-6절>

3.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5.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저와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는 중에 힘들고 어려운일을 만날게 될 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처럼 기도할때가 있습니다. 5절입니다. ‘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제자들은 자기들이 가진 믿음이 너무 연약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지킬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말씀을 하셨기에 제자들이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까? 본문 앞의 2절입니다. “2.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 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보기에 초라하고 하찮게 보이는 사람을 실족시키는 죄가 그만큼 크고 심각하다는 의미로 예수님께서 이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배경을 좀 더 잘이해 하기 위해서 우리는 마가복음 9장을 볼 필요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을 보시면 제자들 중에 누가 더 크냐 라고 하는 문제로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마가복음 9장 33절과 34절 입니다. “33.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34.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제자들은 ‘내가 너보다는 더 낫다’ 하는 문제로 다투는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를 하나 세우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9장 37절입니다. 37.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실족하게 하는 행동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마가복음 9장 42절입니다. “42.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오늘 본문 앞 2절에 나오는 말씀과 같은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해동을 보면 누가 큰 자입니까?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고 겸손한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리고 어린아이와 같이 별 볼일이 없어 보이는 존재라 할지라도 예수님처럼 귀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또 어린아이와 같이 믿음이 연약한 자가 실족하게 될까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가장 큰 자입니다. 그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기가 높아지기 위해서 서로 목소리를 높이고 살았습니다. 제자들 자기들끼리도 그렇게 행동했는데 일반 사람들을 대할때는 더욱 기고만장하면서 무시하고 함부로 대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모습을 보았던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세워놓으시고는 이런 아이와 같은 연약한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 자는 큰 화를 입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저와 같은 목회자나 신앙의 경륜이 있는 직분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씀이라 할수 있습니다. 이렇게 남을 실족시키는 일이 이만큼 심각하고 큰 죄임을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책망과 더불어 용서하심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본문 4절입니다. 4.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그 누가 회개를 한다면 그때마다 용서를 해야 한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이렇게 요청한 것입니다. “예수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여기서 제자들이 “더하소서” 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자기에게 있기는 하지만 더 추가해달라고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은 지금 자기들에게 믿음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자기들이 가진 믿음만으로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기가 힘드니까 우리에게 믿음을 더 해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6절입니다. “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지금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어떻게 보면 동문서답 하신 것 같아 보입니다. 제자들은 지금 자기들이 가진 믿음이 작아서 믿음을 더하게 해달라고 요청을 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렇게 말씀을 시작한 것입니다. 씨중에 가장 작은 씨가 겨자씨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작다고 할 때 ’좁쌀만하다 참깨만하다‘ 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유대사람들은 ’겨자씨’ 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이 좁쌀이나 참깨보다도 훨씬 더 작은 것이 겨자씨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아주 작은 믿음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어떤 목사님은 ‘제자들에게 겨자씨만한 믿음도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 해석하기도 하고, 또 어떤 목사님은 ‘제자들에게 자씨만한 믿음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동기는 제자들이 믿음을 가지고 있다 없다라고 하는 것을 말씀하기 보다는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으로 해낼수 있는 일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것인지 말씀하고자 함에 있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믿음은 아무리 작다 할지라도 결국 해낸다’ 라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 께서는 왜 이렇게 동문서답 같아 보이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제자들이 믿음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에 대해서 제자들이 가진 오해가 무엇입니까? 제자들은 믿음을 하나의 양적인 개념으로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크다 작다 많다 적다 이렇게 양적인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을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어떤 기술을 배우고 습득하는 양과 같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믿음은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적인 문제라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다시 말하면 많은 믿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올바르고 진실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 믿음이 아무리 작아보여도 하나님께서는 크고 놀라운 일을 이루어 내신다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장 작은 것의 상징인 겨자씨를 사용해서 믿음의 본질을 설명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어떤 것인지 생각을 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겨자씨 한알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신앙생활을 해나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란

첫째로 작지만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6절 앞부분입니다. “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겨자씨는 씨 중에 가장 작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크고 많은 것을 가치있게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작은 것을 귀하게 여깁니다. 마가복음 12장을 보시면 어느 한 과부가 성전 헌금함에 바쳤던 것은 동전의 두렙돈 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과부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의 마음을 보시고 칭찬을 하십니다. 좀전에 살펴보신 것처럼 작고 보잘 것 없는 어린아이 하나를 내세우고 이런 어린아이 같이 작은 자 하나를 영접하는 것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 예수님은 말씀 하십니다. 마태복음 25장을 보시면 세상 마지막 날에 수많은 사람들이 좌편과 우편으로 나뉘어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갈라지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지극히 작은자를 어떻게 대했는가에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나 작은 것을 중요시합니다. 작은 것을 보면 큰 것을 알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작은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다는 사실을 아시고 계십니다. 작은 것에 충성하는 자는 큰 것에도 충성한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생각입니다.

그런데 겨자씨는 작지만 생명이 있습니다. 작다고 귀한 것이 아니라 생명이 있기 때문에 귀한것입니다. 생명이 있기 때문에 겨자씨를 땅에 심으면 성장하고 자랍니다. 겨자씨는 성장속도가 아주 빠른 식물입니다. 일년만에 3-5미터까지 자라서 나무가 된다고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생명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영접한 성도들마다 생명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생명을 가졌기 때문에 성장하고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믿음이 크냐 작으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내 구세주로 영접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그 사람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자라게 되어있습니다.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이 정말로 예수님을 믿고 있다면 내가 변화되고 성장하는 모습이 다른 사람들 눈에 보여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가 자라는 모습을 볼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예배를 드리고 기도와 찬양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볼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내가 꾸미고 체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모습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믿음에 관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크다 작다 라고 하는 양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질적인 문제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생명이 있는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나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란

둘째로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제자들은 지금 자기들이 가진 믿음 이외에 새로운 것을 더 요구했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더 해주신 것이 아니라 지금 너희들이 가진 믿음이 겨자씨 한알의 믿음인가를 점검하게 하신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너희들이 지금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믿음을 가지고 해결하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역으로 생각하면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고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겨자씨 한알의 믿음은 가지고 있다는 것 됩니다. 6절 말씀을 다시한번 보시겠습니다. “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이 뽕나무더러’ 여기서 어떤 장면이 떠오르십니까? ‘이 뽕나무’ 이 단어에서 우리는 예수님 주변에 뽕나무가 있다는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손가락으로 뽕나무를 가리키면서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뽕나무는 뿌리가 유난히 깊어서 여간해서는 뽑혀지지 않는 나무라고 합니다. 뿌리가 깊어서 웬만한 태풍이 불어닥쳐도 뽕나무는 견고하게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오늘 본문에서 이 뽕나무는 내 앞에 놓여있는 불가능한 그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 이라는 단어와 이 ‘뽕나무’ 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으로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불가능한 일들이 해결되어질수 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이 문제들이 언제 해결되어집니까? 담대하게 명령하고 선포할 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뽕나무 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이 말씀을 원어로 보면 ‘뽕나무야 뽑혀져라, 바다에 심기어져라“ 이렇게 명령어로 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앞에 놓여 있는 힘들고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 그 문제를 보면서 명령하고 선포하기를 원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조금 더 힘을 기르고 경험을 쌓고 해서 문제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으로 담대히 나아가 외치시기를 원하십니다. 현실을 보면 불가능합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뽕나무가 뽑혀질수가 없습니다. 포크레인을 가져와서 뽕나무를 뽑아야 합니다. 지금 내 남편 내 자식 내 사업 내 건강 내 처지 현실적으로 보면 결코 움직여지지 않는 뽕나무나 태산과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포크레인을 가져와서 뽑아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포크레인 작동하는 방법을 충분하게 배워라 라고 말씀 하지도 않습니다. 그대신 ‘너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이라고 확인 시켜주십니다. 생명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한 사람은 누구나가 다 이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원하시는 것입니까? 네가 가진 그 있는 믿음가지고 담대하게 외치며 살아가라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이 믿음으로 네 앞에 놓인 도저히 불가능한 문제를 보면서 담대히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지금 가진 문제에 대해서 담대히 선포하고 명령하시길 원하십니다.

성경을 보시면 하나님의 사람들은 선포하고 명령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여호수아를 보십시오. 여호수아는 아모리 사람들과 전쟁중에 이렇게 명령 하였습니다. 여호수아 10장 12절입니다. “12.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수10:12) 명령을 했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명령을 받은 태양과 달이 멈추었습니다. 이것은 물론 하나님이 허락하신 말씀을 믿고 여호수아가 순종하고 명령하니까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성전미문에 앉아 태어나면서부터 일어서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며 구걸하며 살아가던 사람을 향해 이렇게 명령했습니다. “금과 은은 내게 없지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러자 그 사람이 일어나고 걸어 성전 안에 들어가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지금 내가 가진 믿음으로 문제를 향해 담대히 선포하고 명령하시길 원하십니다.

어떤 나라에 늘 걱정만 하고 있는 한 왕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왕자가 가지고 있는 걱정꺼리는 내가 어떻게 하면 왕의 자녀의 신분이 될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왕자는 얼마나 어리석은 왕자입니까. 왕자이면 이미 왕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하나도 걱정하고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이면 우리는 이미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겨자씨만한 믿음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믿음을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말하고 행동하며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믿음을 가지고 문제를 향하여 담대히 선포하며 나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겨자씨 한 알의 믿음은

셋째 분명히 구별된 믿음을 의미합니다.

6절 앞 부분입니다. “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겨자씨 한알 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겨자씨 한일 만한 믿음’ 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은 한알 한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개개인의 것입니다. 나에게 분명하고 구별된 믿음이 있어야 내 앞에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비록 한 알이라 할지라도 겨자는 분명한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맛입니까? 매운 맛이죠. ‘울며 겨자 먹기’ 라고 하는 우리나라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겨자씨가 그만큼 눈물이 날 정도로 매운 것입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한사람 한사람의 분명하고 뜨거운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인해서 오늘날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퍼지게 된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래전 크리스천 리서치라는 기독교 기관에서 기독교인 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 설문 조사 중에 이런 질문이 있었습니다. "당신의 믿음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이 질문에 대답한 사람중 60.9%가 "보통이다" 라는 대답했습니다. 뜨겁다 라고 대답한 사람은 8.6퍼센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8.6퍼센트를 뺀 나머지 '91.4 퍼센트는 겨자씨 한알의 믿음으로 살아가지 못한다' 는 의미입니다. 겨자씨 한알 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에 맞게 합당하게 행동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같이 모여있으면 조금 뜨겁게 행동할지 모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볼 때 90퍼센트 이상이 아무런 맛도 없고 분명한 믿음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겨자씨는 한 알이라 할지라도 맵고 구별된 맛이 있습니다. 분명하고 확실한 믿음을 가진 한사람의 중요성을 알수 있는 성경구절은 로마서 5장 19절이라 할수 있습니다. ‘19.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아담을 의미)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예수를 의미)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볼때는 작고 미약하지만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믿음은 분명한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이 분명한 것은 이 믿음은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둔 밤중 한가운데서도 빛을 발하게 되어 그 믿음의 존재를 알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신앙 생활을 하는 동안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처럼 내가 가진 믿음이 작다고 생각할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지금 가지고 있는 믿음으로 충분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담대하게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앞에 놓여있는 문제와 장애물에 비해서 내가 가진 너무 연약하고 초라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담대 하십시다. 우리가 가진 믿음은 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세상을 이길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세상의 어둠을 밝히고 세상의 부패함을 방지하는 믿음입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지금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앞날이 잘 보이지 않는 어려운 환경에 있다 할지라도 이 믿음을 가지고 담대 하게 앞으로 나아가십시다. 그래서 내 가정이 바뀌고 내 환경이 바뀌고 내 건강이 회복되며 내 처지 내 신분의 문제가 해결되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