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일을 맡은 자들이 지녀야 할 자세

Author
kgmcc
Date
2021-02-06 21:50
Views
16
본문 : 누가복음 13장 6-9절

날짜 : 2021년 2월 7일

 

<누가복음 136-9>

6.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7.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8.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9.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오늘 이 본문은 포도원 무화과나무의 비유라고 불립니다. 먼저 이 포도원 무화과나무의 비유에 나타난 내용을 보면 어느 한 사람이 자기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이 주인은 자기가 그 포도원을 관리하고 경영하는 것이 아니라 포도원지기에게 맡겼습니다.

이렇게 포도원 주인이 자기 포도원을 포도원지기에게 맡긴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자녀일수가 있고, 남편이나 아내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내 주변에 사는 전도 대상자일수도 있고 교회에서 내가 맡은 직분일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내가 맡은 이런 것들이 그렇게 대단하지 않을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믿는 성도들이 하는 일은 믿지 않는 사람들도 평상시에 하는 일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가족을 돌보고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책임의식을 가지고 열심을 내는 것은 믿는 성도들이나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상관없이 하고 있는 평범한 일입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크게 다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본문 8절입니다. “8.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주인이여’ 그러니까 내게 맡겨진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자녀의 주인이 하나님이십니다. 내 남편, 내 아내의 주인이 하나님이십니다. 내 교회, 내게 주어진 직분 이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내 것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의 것이니까 대단히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입고 있는 이 양복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입고 있는 양복 중에서 어느것이 더 가치가 있겠습니까? 물론 제 이 양복보다는 바이든 대통령이 입은 양복인 훨씬 더 비싸고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것이라고 한다면 그 가치는 굉장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게 맡겨진 자녀 내 남편 내 아내 내 교회 내게 주어진 직분 이 모든 것들은 그래서 가치가 있고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굉장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포도원지기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무화과나무이지만 주인의 것이기에 아주 귀하고 가치 있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시간에는 본문에 나오는 포도원지기가 지닌 마음이 어떠한가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우리가 주임의 일꾼으로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포도원 지기가 지닌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이 포도원지기는 왜 라는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6절입니다. “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포도원에 무화과 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이 내용을 보면 이런 의문이 생길수 있습니다. 주인이 포도원에 포도나무를 심지 않고 왜 무화과나무를 심었을까? 물론 포도원 토질 관리를 위해서 포도나무만 심는 것 보다는 다른 종류의 나무를 심으면 더 많은 수확을 얻을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해하겠는데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은 주인이 왜 무화과나무에 관심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인이 포도원에 왔으면 포도나무에 실과가 얼마나 맺혀졌느냐를 관심있게 보아야지 왜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맺혀져 있는가에 관심이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의 관심은 포도나무 열매가 아니라 무화과 나무열매에 있습니다. 이것이 이해가 안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가 이해가 안되는 일을 하실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해할수 없는 일들이 내게 맡겨진 포도원안에서 일어날때가 있습니다. 내가 이해할수 없는 일이 내 자녀에게, 내 아내와 내 남편에게 내 교회에게 그리고 내가 직분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동안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내 주변에 살고 있는 이웃사람들에게도 일어날수 있습니다. 그럴때 우리는 '왜그렇습니까?' 라고 하면서 그 이유를 캐낼려고 하는것에 시간을 너무 낭비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즘 수요일에 온라인으로 요나 강해를 하고 있습니다만 불순종한 요나에게 다시한번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요나에게 바라시는 것은 이해가 아니라 순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요나가 이해하게 될 것을 포지하셨습니다. 이러헤 우리 인간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이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설명을 해주신다해도 우리는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요나의 경우처럼 오히려 더 질문이 생기고 반박심만 더 생기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인간과의 차이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내가 다 알수가 있다면 우리는 신이지 인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대부분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붙잡고 의지하면서 나아갈수있는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지혜로운 성도입니다. 4년전 이 미국에 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는지 그리고 지금은 왜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었는지? 대한민국에 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이 되고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었는지 우리는 다 이해할수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주인이 포도원에 와서 포도나무 실과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화과나무 실과에 관심이 있는 것처럼 이해할수 없는 것입니다. 포도원지기는 주인이 지니고 있는 마음을 이해할수는 없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이일을 하기를 원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왜 다른일을 맡기시는지 이유를 알지 못할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포도원을 맡기실때는 분명히 포도의 열매를 위해서인 것 같은데 왜 엉뚱한 무화과 나무 열매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지 이해가 안될때가 있습니다. 그럴때는 “왜그렇습니까? 하나님“ 이라고 묻는 것 보다는 차라리 묵묵하게 하던 일을 해나가는 것이 지혜로운 마음의 자세입니다.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십시다. 애굽에서 430년동안 종살이를 하고 있는 그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현재 저와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을 설명해준다고 가정해보십시다. ”지금 애굽 나라의 바로왕은 마귀를 상징하고 있고 애굽은 마귀의 세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있으면 하나님께서 모세라는 지도자를 보내서 당신들의 후손들을 이 애굽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세는 먼훗날 하나님이 이세상에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가 됩니다. 그리고 모세의 인도하에 당신의 후손들이 들어가게 될 그 가나안땅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들어가게 되는 천국을 의미합니다. 이해하겠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그사람들에게 설명하면 그들이 무엇이라 대답하겠습니까? ”전혀 모르겠는데요“ 그럴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설명해주어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우리는 천국 생활을 잘 알고 있습니까? 천년왕국이 있고 또 천년왕국이 지나는 동안에 천국시민들 중에서도 또 배반하는 일이 있고 백보좌 심판이 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그저 희미하게 보는 것 뿐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겨우 알고 있는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상태에서 내가 가진 질문에 하나님께서 대답을 해주신다면 내가 이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에게 또 다른 혼돈과 질문만 더 생기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14장을 보시면 수많은 군중들이 빈들에서 하루종일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다가 해가 저물어 버린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마 14:16) 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 빌립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예수님 저 많은 군중들을 먹일려면 적어도 이백데나니온 이나 필요합니다. 그리고 설사 이백데나니온 이 있다고 할지라도 지금 이시간에 어디에서 그 많은 떡을 사올수 있겟습니까? 차라리 저 사람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서 집에서 먹게 하고 다음날 다시 모이게 하십시다.” 빌립은 자기가 질문을 하고 자기가 다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빌립에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종류의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제자 안드레는 군중속으로 들어가서 먹을 것을 구했습니다. 안드레가 그렇게 행동을 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해가 안되었지만 주님이 말씀하셨으니까 그냥 행동한 것입니다. 그래서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수많은 사람들이 먹을수 있게 된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오병이어 기적은 빌립과 같이 질문을 하고 그 이유를 알고자 하는 제자 때문이 아니라 이해가 안되어도 순종을 한 안드레와 같은 제자 때문에 기적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적은 우리 인간이 이해를 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해는 되지 않지만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 포도원 지기는 '왜그렇습니까?' 라는 이유를 묻지 않았습니다. 질문은 당연히 있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포도원 지기는 그 질문에 매달려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보다는 묵묵히 일을 해나갔습니다.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이 내게 맡겨진 포도원에 내가 이해할수 없는 일들이 일어날 때 이유를 묻기보다는 그냥 묵묵하게 일을 해나가는 지혜로운 포도원지기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이 포도원지기는 성실하게 일을 하였습니다.

7절입니다. “7.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내가 삼년을 와서 이 무화과 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포도원지기는 삼년동안 성실하게 일을 했습니다. 왜 삼년입니까? 무화과 나무를 심고 열매를 기다리는 기간이 삼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에서 한번 열매를 맺게 되면 그 다음해부터는 계속해서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이 어떤일을 맡았을때는 열매가 맺힐때까지 성실하게 일을 해야 하겠다고 하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내게 맡겨진 포도원의 무화과 나무중의 하나가 내 자녀일수 있습니다. 자녀가 열매를 맺기 시작할 때가 언제입니까? 어떤 부모들은 자기 자녀가 고등학교 졸업을 하게 되면 자기 할 일을 다한 것으로 생각하고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 자녀가 대학교 졸업할때까지만 책임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어떤 부모는 자녀가 회사에 다니고 결혼을 해서 집을 살때까지 책임을 지기도 합니다. 어째든 내 자녀가 열매를 맺을때까지는 부모가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내 자녀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포도원의 무화과 나무이기 때문에 귀하고 가치있게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내 가족과 내 교회와 내게 주어진 직분이기 때문에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오늘본문에 나오는 포도원지기는 열매를 맺힐때까지 성실하게 일을 해나갔습니다. 어떻게 이 포도원지기가 성실하게 일을 해온것을 알수 있습니까? 주인이 이 포도원지기에 대해서는 화를 내지를 않았기 때문입니다. ‘야 이 불성실한 포도원지기야 내가 너를 얼마나 참을수가 있겠느냐? 이렇게 주인은 포도원지기를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이 책망한 것은 무화과나무이었지 포도원지기가 아니었습니다. 이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한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수 있습니다. 땅의 토질이 무화과 나무가 열매를 맺는데 안 맞을수도 있겠고 기후가 안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화과 나무의 종자가 안좋을 수도 있습니다. 저희집 뒷 마당에 토마토 나무 두세 그루를 심어보면 많은 토마토를 맺는 나무가 있고 그렇지 못한 나무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오이를 맺는 것이 있고 그렇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같은 씨를 똑같은 날에 똑같은 땅에 심고 그후로 똑같이 정성을 쏟았는데도 불구하고 어떤것은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고 또 다른 것을 열매는 없고 잎사귀만 무성하게 자라는 것이 있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종자가 안좋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 무화과 나무가 삼년이 되어도 열매를 맺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포도원지기는 성실하게 일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무화과나무의 열매가 맺어지지 않게 된 것이 포도원지기의 게으름 때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동안 내게 맡겨진 일에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고 하는 사실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보다 큰 문제는 저와 여러분에게 맡겨주신 일에 내가 성실하냐 아니면 불성실하냐에 달려있습니다. 성실히 일해도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이유를 아시기 때문에 우리를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문제는 저와 여러분이 불성실하게 신앙생활 함으로 말미암아 내가 맡은 무화과나무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포도원지기처럼 저와 여러분이 내게 주어진 일에 열매를 보지못한다 할지라도 성실하게 맡겨진 일을 해나가실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이 포도원지기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한 교훈입니다.

이 포도원은 자기가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게으르게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내것이 아닌데 뭐”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지 않을수 있습니다. 주인의식이 없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포도원 지기는 3년동안 성실하게 일을 했습니다. 무화과 나무에 아무런 열매가 맺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이 포도원지기가 일을 게을리 했기때문에 무화과 나무에 열매를 맺지못한 것이 아닌것은 확실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때로는 우리가 이 포도원지기처럼 내게 맡겨진 일에 열심히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열매를 맺는 것을 보지 못할때가 있습니다. 내 가족들이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자꾸만 어긋난 길을 갈때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맡아서 열심히 봉사를 했지만 열매가 맺어지기는 커녕 계속해서 속이 상하게 되는 일이 생길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 이해를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포도원주인이 포도원지기를 책망하지 않으신것처럼 우리에게도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열매를 맺지 못한 이유를 알지 못해도 하나님은 그 이유를 다 알고 계십니다.

자, 포도원에 심겨진 무화과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한 이유를 포도원 주인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포도원 주인은 그 무화과 나무에 열매를 맺는 것을 보기를 포기했습니다. 7절입니다. 7.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그때 이 포도원지기가 이렇게 주인에게 말합니다. 8절입니다. “8.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내가 두루파고 거름을 주리니’ 여러분 하나님이 다 이해한다고 말씀 하셔도 저와 여러분이 해야할 일은 포기하지 않는 일입니다. 아니 오히려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 나는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포기하라고 말씀하셔도 저는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이해한다고 말씀을 하셔도 저는 제가 포기해야만 할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라고 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여기에 이 포도원 무화과 나무 비유가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그래요. 내게 맡겨진 포도원에 있는 무화과나무에 열매를 맺게 할수 있는 길은 포기하지 않는 내 마음의 자세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준 내 자녀가, 내 남편이, 내 아내가, 내 이웃 사람이, 내 교회가 열매를 맺을수 있는 길은 하나님께서 다 이해를 한다고 말씀하시고 포기를 해도 괜찮다라고 말씀을 하셔도 내가 포기하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감동을 하십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내가 맡은 일에 열매가 맺어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하신일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삼년동안 열심히 섬겨 왔습니다. 때로는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아다니는 선한 목자가 되기도 하시고 때로는 한 개의 잃어버린 동전을 찾아 등불을 켜고 비자루로 온 집안 구석 구석을 쓸면서 찾아다니는 여인이 되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포도나무 가지에 많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포도나무가 되시기도 하셨고 때로는 병이 들고 지친 환자들을 치유하시고 낫게 하시는 의사가 되시기도 하셨습니다. 이러한 모든 일을 예수님께서 하신 이유는 바로 단 한가지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보시기 원하셨던 것 때문이었습니다. 삼년동안 예수님께서 그렇게 충성을 다해서 섬기고 사역을 하셨지만 성부 하나님께서 보시기를 원하시는 열매는 맺혀지지 않았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 맡겨주신 그제자들과 사람들에게서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 이유를 아셨습니다. 우리 인간이 지닌 그 강퍅하고 메마르고 악한 심령으로 인해 생명의 열매가 맺어지지 않는 이유를 아시고 계셨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무화과나무에 열매를 맺혀지지 않는 그이유를 알았던 것처럼 하나님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를 아셨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포기하시지 아니하셨습니다.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아다니시는 목자의 신분에서 이젠 한걸음 더 나아가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시는 선한 목자가 되신 것입니다. 기억나십니까? 십자가 사건을 앞우시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1)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갈보리 언덕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렸을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희롱하고 비웃었습니다. 비웃고 조롱만 한 것이 아니라 욕을 퍼부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도적이고 고의적으로 우리 인간들은 예수님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고 감정을 상하게 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아무런 힘이 없이 고통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상대에게 욕설을 하고 조롱을 할수 있는 우리 인간들이야 말로 얼마나 비열하고 사악합니까?

같이 십자가에 매달린 강도중의 하나조차도 죽어가는 예수님에게 상처를 주고 비웃었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아무런 힘이 없고 지쳐 있을때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 고의적으로 나를 조롱하고 비웃는 것만큼 나에게 상처가 되는 것은 없습니다. 나를 조롱하고 비웃는 그 말이 내 귀에 들리는 그순간부터 그말들은 내마음 깊숙이 파고들어 상처는 깊어지고 아픔은 계속되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에게 아픔을 주고 비웃는 그들에게 보복하지 않았습니다. 사과를 요구하시지도 않았습니다. 그 크신 능력으로 십자가에서 내려 오실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대신에 우리 인간의 행동을 변호해주셨습니다. “34. ...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 23:34)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우리 인간을 변호해주시는 기도를 하십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열매가 맺히게 될 것을 기대하고 포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던 예수님 때문에 저와 여러분은 이렇게나마 열매를 맺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를 포기 하지 않으신 그 예수님 때문에 우리도 내게 맡겨진 무화과 나무를 포기 하지 않을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라옵기는 내게 맡은 내 가족 내가 맡은 교회의 직분 그리고 내가 맡은 직장일과 사업과 이웃사람들 모두가 다 열매를 맺을수 있을 때까지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시는 참 포도원지기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