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대여섯 번을 칠 것이니이다

Author
kgmcc
Date
2021-02-13 22:29
Views
22
본문 : 열왕기하 13장 14-19절

날짜 : 2021년 2월 14일

 

<열왕기하 1314-19>

14.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그에게로 내려와 자기의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15.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활과 화살들을 가져오소서 하는지라 활과 화살들을 그에게 가져오매

16.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 하매 그가 손으로 잡으니 엘리사가 자기 손을 왕의 손 위에 얹고

14.이르되 동쪽 창을 여소서 하여 곧 열매 엘리사가 이르되 쏘소서 하는지라 곧 쏘매 엘리사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멸절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 하니라

18.또 이르되 화살들을 집으소서 곧 집으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하는지라 이에 세 번 치고 그친지라

19.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이르되 왕이 대여섯 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

 

오늘 본문 14절을 보면 이렇게 시작합니다. “14.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다고 본문은 말씀합니다. 엘리사가 어떠한 사람입니까? 엘리야의 후계자로서 엘리야 보다 갑절의 영감을 가진 선지자 입니다. 스승인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을 타고 하늘나라로 승천할 때 두고 간 그 엘리야의 겉옷을 가지고 요단 강물을 쳐서 요단강을 건넜던 사람입니다. 여리고 지역에서는 물에 있는 독을 제거해서 땅의 토양까지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을 고쳐주었고 물에 빠진 도끼를 떠오르게 했습니다. 죽었던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려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이 병이 들어서 죽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아무리 능력이 많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언젠가는 병이 들어 죽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이 없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만이 병이 들어 죽는 것이 아니라 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도 병이 들어 죽을수 있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을 때 그당시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요아스가 방문 합니다. 14절입니다. “14.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그에게로 내려와 자기의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내아버지여 내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이렇게 요아스 왕은 죽어가는 엘리사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여기서 병거와 마병은 전쟁 마차와 군사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병거와 마병은 나라를 지키는 힘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내 아버지여 내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라는 이표현은 과거에 엘리사가 자신의 스승인 엘리야가 승천하기전에 엘리야에게 했던 말과 같습니다. 열왕기하 2장 12절입니다. 12.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여기서 엘리사가 ‘내아버지여 내아버지여’ 라고 한말은 육신의 아버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아버지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8년 동안 따라다니면서 믿음의 아버지로 섬겨왔습니다. 그래서 엘리사에게는 엘리야가 영적인 스승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영적인 아버지와 같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요아스 왕이 이전에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했던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그렇다면 요아스왕은 왜 죽어가는 엘리사를 바라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 요아스왕이 정말 엘리사를 사랑하고 존경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11절을 보시게 되면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한자라고 말씀합니다. “11.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요아스는 악을 행한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우상을 버리고 멀리하라고 말했던 엘리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거절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요아스이었기에 평상시에 자기에게 바른말을 하던 엘리사를 부담스러워하고 멀리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왜 눈물을 흘리면서 애절하게 울부짖고 있습니까? 그것은 엘리사의 죽음 이후에 일어나게 될 현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우상을 섬기며 악을 행하였던 왕이었지만 엘리사가 죽고 나면 이스라엘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엘리사의 도움으로 주변국가로부터 오는 모든 공격을 물리칠수 있었습니다. 열왕기하 3장을 보면 이스라엘의 연합군이 모압과 전쟁을 치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물이 없어서 전쟁다운 전쟁을 치루어 보지도 못하고 죽을 지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엘리사는 성령의 감동함을 입어서 승리하게 될것을 예언합니다.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게 될 것이고 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될 것을 예언합니다. 그리고 그 예언대로 에돔 골짜기로부터 물이 흘러와서 군인들과 가축들이 그 물을 마시고 힘을 내어서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열왕기하 3장 20절입니다. 20. 아침이 되어 소제 드릴 때에 물이 에돔 쪽에서부터 흘러와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그러니까 물이 없었다면 전쟁에서 승리할수 없었을텐데 물이 가득하게 되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열왕기하 6장을 보게 되면 아람나라가 종종 이스라엘을 공격해 왔는데 그때마다 엘리사 선지자가 언제 어디로 침략해오고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그때마다 대비할수 있었고 전쟁에서 항상 승리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엘리사는 여러 차례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내었습니다. 그러니까 요아스 왕의 입장에서 본다면 엘리사는 이스라엘 나라를 지켜준 은인이었고 병거와 마병이었습니다. 그동안 이렇게 나라를 지켜준 수호신과 같은 엘리사가 이제 병들어서 죽게 되었으니 요아스 왕의 마음이 얼마나 불안하고 염려가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요아스왕은 엘리사를 사랑해서 라기 보다는 앞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내아버지여 내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라고 울부짖었던 것입니다.

엘리사는 기도와 성령의 감동으로 이스라엘을 지켜낸 병거와 마병이었습니다. 엘리사가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주변 국가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기도와 성령의 감동을 통해 교회와 가정과 사업체와 직장을 지키는 병거와 마병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고 있는 요아스 왕에게 엘리사는 활과 화살을 가져오도록 합니다. 15절입니다. “15.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활과 화살들을 가져오소서 하는지라 활과 화살들을 그에게 가져오매” ‘활과 화살들을 가져오소서’ 엘리사가 왜 갑자기 활과 화살을 가져오도록 합니까? 활과 화살은 그당시 전쟁에 사용되는 무기입니다. 그러니까 활과 화살을 가져오라는 표현은 이제 아람과 전쟁을 하기 위해서 무장을 하라는 의미입니다. 요아스가 활과 화살을 가져왔을 때 엘리사는 자기의 있는 힘을 다하여 요아스의 손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습니다. 16절입니다. “16.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 하매 그가 손으로 잡으니 엘리사가 자기 손을 왕의 손 위에 얹고” ‘엘리사가 자기 손을 왕의 손위에 얹고’ 옛날 성경인 개역한글을 보시면 ‘자기 손으로 왕의 손을 안찰하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엘리사는 지금 죽어가고 있는 순간입니다. 죽어가는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엘리사는 있는 힘을 다하여 자기의 손을 요아스 왕의 손위에 얹고 안찰하였던 것입니다. 왜요? 그것은 전쟁을 앞두고 있는 요아스 왕에게 자신안에 있는 성령의 능력이 흘러가기를 바랬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보게 되면 엘리사는 정말 나라를 사랑했던 사람인 것을 우리는 알수있습니다. 요아스 왕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하고 합당한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엘리사가 이렇게 행동을 했던 것은 자기가 죽고 난 다음에도 이 요아스 왕을 통해 이스라엘 나라가 이방 나라로 부터 계속 구원을 받을수 있기를 소망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엘리사는 하나님으로부터 굉장한 능력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다음을 보시면 엘리사가 죽은뒤에 장사지내고 그다음해가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죽어서 장사를 지내고 있는데 그때 마침 모압의 도적떼가 쳐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장사지내던 사람들이 놀래서 장사를 지내던 죽은 시체를 엘리사가 묻혀있는 묘실에 내던지고 도망을 갔습니다. 그런데 그때 죽은 시체가 살아난 것입니다. 20절과 21절입니다. “20.엘리사가 죽으니 그를 장사하였고 해가 바뀌매 모압 도적 떼들이 그 땅에 온지라 21.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도적 떼를 보고 그의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들이던지매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섰더라” 이렇게 엘리사가 지녔던 능력은 굉장하였습니다. 이러한 능력의 엘리사가 요아스 왕 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고 안찰하였다는 것은 굉장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요아스왕은 엘리사에게 있는 굉장한 능력을 전수 받게 된 것입니다.

활을 잡은 요아스왕의 손위에 자기손을 얹은 엘리사는 동쪽의 창문을 열고 그곳을 향하여 화살을 쏘아라고 명령합니다. 17절 상반부입니다. “17. 이르되 동쪽 창을 여소서 하여 곧 열매 엘리사가 이르되 쏘소서 하는지라” 동쪽은 요아스가 싸워야 할 아람나라가 있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그곳을 향하여 활을 쏘라고 하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제 곧 아람나라와의 전쟁이 있을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엘리사는 요아스에게 싸워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싸워야 할 대상은 바로 이방인 국가인 아람나라라는 것입니다. 남쪽에 있는 유다가 아니라 아람나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영적인 전쟁을 할 때 우리와 싸우는 대상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주된 원수는 누구입니까? 우리가 싸워야 할 원수는 사탄 마귀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구원의 대상이지, 싸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어둠의 세력, 하늘의 공중 권세 잡은자, 사탄 마귀가 우리가 싸워야 할 원수입니다.

이어서 엘리사는 그 화살을 쏜 상징적인 의미에 대해서 설명해줍니다. 17절 후반부입니다. “17. 엘리사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멸절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 하니라” ‘이는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니’ 요아스가 가지고 있는 화살은 어떤 화살입니까?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 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말은 아람과의 전쟁은 군사력이나 경제력에 의해서 승부가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서 그 승부가 결정되어 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람과의 전쟁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실 것이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아람과의 전쟁은 승리가 보장된 전쟁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것입니다.

계속해서 엘리사는 요아스 왕에게 화살을 가지고 땅을 치라고 말합니다. 18절입니다. “18. 또 이르되 화살들을 집으소서 곧 집으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하는지라 이에 세 번 치고 그친지라” 자, 엘리사는 화살의 의미를 설명해준 다음에 그 화살을 들고서 땅을 치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요아스는 몇 번 쳤나요? 세 번을 쳤습니다. 그런데 그때 엘리사가 대단히 분노합니다. 19절입니다. “19.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이르되 왕이 대여섯 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 엘리사는 요아스왕을 향하여 아니 적어도 대여섯번을 칠것이지 왜 세 번밖에 치지 않습니까 라고 분노했습니다. “왕이 세 번밖에 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세 번밖에 아람을 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엘리사의 예언대로 요아스는 아람을 세 번밖에 이기지 못하게 됩니다. 25절 하반부입니다. “25. ...요아스가 벤하닷을(아람왕의 이름) 세 번 쳐서 무찌르고 이스라엘 성읍들을 회복하였더라” ‘벤하닷을 세번 쳐서 무찌르고’ 하지만 요하스는 더 이상 아람 군대를 이기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당시 이스라엘 성읍들은 회복하였지만 아람군대를 완전히 진멸시키지는 못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엘리사와의 마지막 만남에서 요아스 왕이 보여주는 행동은 엘리야와 마지막 만남에서 보여주는 엘리사의 행동과 서로 비교해서 살펴보면 공통된 점과 차이점이 있는 것을 알수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이 두 사건에서 볼수 있는 공통된 점과 차이점을 간단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요아스 왕의 모습이 아니라 엘리사와 같은 믿음으로 신앙생활할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먼저 이 두 사건들 사이에서 공통된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헤어짐에 대해 슬퍼하는 모습과 말하는 내용이 같음을 알수 있습니다.

회오리 바람을 타고 승천하고 있는 엘리야를 보면서 엘리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열왕기하 2장 12절입니다. 12.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 지라 자,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죽어가고 있는 엘리사를 보면서 요아스 왕이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 14절입니다. 14.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그에게로 내려와 자기의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내아버지여 내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엘리야를 보내는 엘리사나, 엘리사를 보내는 요아스왕이 슬퍼하는 모습과 그 말하는 내용이 같습니다.

 

두 번째로 이 두사건들 사이에서 공통된 점은 ‘친다’ 라고 하는 단어가 나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엘리야가 하늘로 승천한 이후에 엘리사는 엘리야가 두고 간 겉옷을 가지고 요단강물을 칩니다. 열왕기하 2장 14절입니다. 14.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물을 치며 이르되’ 중간 부분을 보시면 ‘물을 치매’ 이렇게 ‘친다’ 라고 하는 단어가 나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8절입니다. 18.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하는지라 이에 세 번 치고 그친지라 ‘이에 세 번 치고’ 엘리사가 엘리야의 겉옷을 가지고 요단강물을 치는 것과 요아스왕이 화살을 가지고 땅을 칠 때 ‘친다’라고 하는 단어는 똑같습니다. 영어 성경에도 'struck' 이라는 같은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요단강을 가르고 원수의 나라를 패배시키고 구원하게 하는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이 두 사건들 사이에서 공통된 점은 ‘하나님의 능력은 전수된다는 것’ 임을 알수 있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겉옷을 주워서 엘리야처럼 요단강물을 이리 저리 쳤습니다. 그러니까 요단강물이 갈라져서 건널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아스는 엘리사로부터 안찰 받은 손으로 화살을 쥐고 땅을 쳤고 그 숫자만큼 아람 군대를 격파할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믿음의 사람들에 의해서 내려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의 선배들에게 내려오고 그리고 그 믿음의 선배들로부터 하나님의 능력이 전수되어지는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볼수 있습니다. 디모데 후서 1장 5절입니다. ‘5.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줄을 확신하노라‘ 디모데는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의 믿음을 물러 받았습니다. 이렇게 믿음과 능력은 신앙의 선배로부터 전수되어지는 면이 많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내 주변에 믿음이 성숙한 사람들과 믿음의 교제를 끊임없이 해나가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번에는 두 사건들 사이에서 일어난 차이점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시간이 많이 지나간 탓에 가장 중요한 차이 하나만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이 두사건 들 사이에서 가장 큰 차이는 최선을 다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에 있습니다.

엘리사는 요아스 왕이 화살을 가지고 땅에 세 번 밖에 치지 못한 것에 대해서 크게 분노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아스 왕이 세 번을 쳤든지 삼십번을 쳤든지 백번을 쳤든지 숫자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엘리사가 이미 요아스에게 그 화살을 들고 땅을 치라고 말하기전에 싸워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를 가르쳐주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손에 들고 있는 화살의 의미도 설명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엘리사는 요아스왕에게 분명하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이스라엘나라가 싸워야 할 대상은 아람나라와의 전쟁입니다 그리고 이 화살은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아람과의 전쟁에서 싸워줄테니까 승리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하나님만 믿고 최선을 다하십시오’

이렇게 엘리사는 요아스왕에게 싸워야 할 대상과 화살의 의미를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요아스왕이 세 번밖에 땅을 치지 않았기 때문에 엘리사가 심히 분노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아스왕 은 엘리사가 그 모든 설명을 다 해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습니까?

아마 그것은 요아스 왕이 엘리사의 말을 그렇게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힘이 없고 이제 곧 죽어가고 있는 엘리사가 하는 말과 행동이 그당시 요아스 왕의 마음에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라고 할수 있습니다. 어째튼 요아스 왕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미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그사람을 사용할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싸워주니까 승리는 보장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대강대강 신앙생활 해나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싸워주시고 승리가 보장되어있는데 구태여 내가 힘들게 영적인 싸움을 할 필요가 있는가? 생각하는 성도님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승리가 보장되어있기 때문에 두렴이 없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열심히 죽도록 싸웠는데도 패하고 멸망하게 되는 전쟁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에 비하면 우리의 영적인 싸움은 승리가 보장된 싸움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것입니까? 최선을 다하면 다 할수록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과가 확실히 보장된 싸움을 하고 있다고 하는 것에서 오는 기쁨과 감동은 정말 크고 열광스러운 것입니다. 대강대강 하는 행동에서 가지게 되는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요아스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미지근한 열심을 가졌습니다.

그에 반해 엘리사는 어떻게 했습니까? 엘리사는 요단강을 건너갈 때 엘리야의 겉옷을 가지고 요단강물을 쳤습니다. 세 번만 쳤겠습니까? 요단강물이 갈라지고 자기가 요단강물을 완전히 건너갈때까지 수없이 쳤을 것입니다. 열왕기하 2장 14절입니다. 14.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엘리사가 건너니라‘ 그렇습니다, 엘리사는 강을 완전히 건널때까지 엘리야가 놔두고 간 그 겉옷을 가지고 계속해서 강물을 쳤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바되어서 살아갔던 사람들은 모두가 다 최선을 다해 살았던 것을 볼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얼마나 배웠는가를 예수님은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도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때 예수님은 부르신 것입니다. 한가하게 빈둥빈둥 놀다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고기를 잡다가, 그물을 깁고 있다가, 세관에 앉아서 일을 보고 있다가 부름을 받았습니다, 바울과 같은 사람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는 일에 앞장서다가 주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그 열심을 보고 주님은 부르시고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아스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대강 세 번 쳤던 것입니다. 미지근한 마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요아스 처럼 활과 화살을 주셨습니다. 요아스 처럼 저와 여러분들도 악을 행하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활과 구원의 화살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형제 자매가 아니라 사탄 마귀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예수님이 승리를 해놓으신 전쟁을 치루고 있습니다. 우리의 전쟁은 승리가 보장된 전쟁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최선을 다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승리가 보장되어있기에 기쁨과 확신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만이 있습니다.

육상경기에 출전한 육상 선수가 자기 능력이 부족해서 패했다면 누구나 다 그 선수를 이해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승할 능력이 충분히 있는데 선수 본인이 열심히 뛰지 않아서 졌다면 그 선수는 비난을 받아 마땅합니다.

어떤 마을에 홍수가 나서 마을 전체가 점점 침수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급히 자기집 지붕위로 대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시간에 정부에서 급히 헬기를 동원해서 침수된 그 마을에 보냈습니다. 그러면 구조원들은 그 헬기를 가지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헬기를 가지고 두 세사람만 구원하고 그만두는 구조원이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요아스왕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아스 왕은 자기 백성들을 아람의 군대로부터 구원시킬 능력이 있는 구원의 화살이 주어졌을 때 서너번이 아니라 죽을힘을 다하여 땅을 쳐야 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도 구원을 위한 활과 화살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진 활과 화살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요아스처럼 대강 세 번만 치고 그쳐서는 안됩니다. 미지근한 신앙으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내가 만나고 있는 그 사람의 구원을 이룰때까지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진하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하나님의 구원의 활과 화살을 가지고 최선을 다함으로서 늘 승리의 신앙생활을 해나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