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Author
kgmcc
Date
2019-12-30 01:35
Views
183
본문 : 사 43장 22-25절

날짜 : 2019년 12월 29일

<4322-25>

22.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롭게 여겼으며

23.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제물로 말미암아 너를 수고롭게 하지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말미암아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하였거늘

24.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하게 하지 아니하고 네 죄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오늘은 2019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새해 첫날 주일예배를 드린지가 얼마되지 않은것 같은데 벌써 올해 마지막 주일이 되었습니다. 제가 어렸을때는 시간이 정말 빨리 가지 않았습니다. 특히 추석이나 설날이 왜 그렇게 빨리 오지 않는지? 한달 전부터 손꼽아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추석을 기다리고, 설날을 기다리고, 여름방학과 겨울 방학을 기다리고..., 그러다가 보니까 하루하루가 얼마나 느리게 지나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릴때는 언제 내가 어른이 되나? 이렇게 생각한적이 종종 있었는데 이젠 그렇게 생각한 것을 후회합니다. 지금은 시간이 굉장히 빨리 지나갑니다.

이제 이 한해가 지나가는 길목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본문 22절입니다. “22.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롭게 여겼으며"  '너는 나를 괴롭게 여겼으며'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이스라엘 때문에 괴로웠다고 말씀합니다. ‘야곱아..., 이스라엘아’ 여기서 ‘야곱과 이스라엘‘ 은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의 자녀를 부를 때 사용하시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는 나를 괴롭게 여겼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4절을 보시면 ’수고롭게 하였다‘ 라는 말이 나옵니다. “24. ...네 죄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네 죄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한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나를 수고롭게 했고 네가 나를 괴롭게 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하나님의 마음을 괴롭게 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죄 때문입니다. ‘네 죄짐으로..., 네 죄악으로 ...,’ 죄가 하나님의 마음을 수고스럽게 했고 괴롭게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슨 죄가 하나님의 마음을 괴롭게 했습니까? 그래서 오늘 저와 여러분은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괴롭게 한 죄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새해는 하나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는 인생을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1.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함                                                                                                                                                                                                        22.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롭게 여겼으며

‘야곱아..., 이스라엘아’ 여기서 야곱과 이스라엘은 바로 하나님이 백성을 부를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그리스도인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보십니다.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 하였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괴롭게 여겼으며’ 하나님을 부르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괴롭게 했던 것입니다. 자, 그런데 사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기도 지켰고 제사도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않았다’. 무슨 뜻인가 하면 예배를 드렸지만 정말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를 했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죄악의 도시인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겠다는 말을 했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실수가 있겠습니까 라고 하면서 여섯 번이나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어 기도를 했습니다.

모세를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범죄를 해서 하나님이 진노하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망 시키실려거든 생명책에서 내이름도 지워버려달라고 생명을 걸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렇게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당신 자신을 부르짖고 찾기를 원하십니다. 시편 50편 15절입니다.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환난날에는’ 어떻게 하라고요? ‘나를 부르라’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내가 너를 건지리니’ 내가 너를 건져주겠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평탄할때도 하나님을 찾았지만 환난중에는 더욱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다윗 인생의 절반은 환난중에 있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럴때마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 18편 6절입니다. ‘6.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다윗은 괴롭고 힘들때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럴때마다 하나님께서 들어주셔서 다윗의 마음에 평강이 왔던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이렇게 하나님앞에 부르짖을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예레미아 33장 3절입니다.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부르짖고 찾기를 원하십니다. 그럴 때마다 응답하시고 크고 은밀한 비밀까지 보일 것을 약속 하십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배를 드리면서도 하나님을 간절히 찾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렇게까지 찾지 않아도 될만큼 형편이 되었으니까요. 사람은 배부르고 편안한 집에 누워 등이 따스하면 대부분이 다 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전에 이렇게 경고하셨던 것입니다. 신명기 8장12-14절입니다. “12.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13.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소양 양이 번성하며 금과 은이 많고 소유가 풍부할 때에’ 어떻게 된다고요? ‘네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너희들의 배가 부르고 소유가 많아지면 네 마음이 교만해져서 나를 잊어버릴까 염려스럽다. 이것이 하나님의 염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염려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교만해집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들이 교만해지기 원해서 교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저는 교만해지고 싶습니다” 이래서 교만한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예전에 힘들고 어려울때는 기도하는 시간이 길었고 간절했습니다. 남이 뭐라고 하든 상관이 없이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내 소유가 많아지고 내 마음이 족하다라고 하는 생각이 들면 나도 모르게 기도하는 시간이 짧아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기도하지 않는 것을 죄라고 말합니다. 왜 기도하지 않는 것이 죄가 됩니까? 그것은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고 하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부모에겐 자기 자식이 자기를 신뢰하지 않는 만큼 마음 아픈 일도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기 자식이 결혼 하게 되었는데 부모인 자기한테 이야기 하지 않고 옆집 아저씨나 아줌마한데 먼저 이야기한다면 그 부모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아저씨, 제게 결혼할 사람이 생겼습니다. 제 결혼식에 오셔서 축하해주세요.’ 그래서 그 이웃 사람이 와서 아들 결혼 소식을 전해줘서 자기자식이 결혼하게 된다는 소식을 알게 된다면 그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 부모의 마음은 찢어지는 아픔과 고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앞에가서 내 마음을 쏟아놓고 ‘하나님 어찌하면 좋아요’ 이렇게 하나님 앞에 묻지않고 사람을 찾아가고 돈이나 환경을 의지하니까 하나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쉬는 것은 죄‘ 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말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나한테는 고통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앞에 기도하고 묻지 않기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치는 어긋난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당신 자신에게 묻지 않는 것이 죄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8장을 보시면 과부가 재판관을 계속 찾아가서 자기 원한을 갚아달라고 간구하는 비유의 말씀을 예수님께서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과부가 재판관에게 가서 호소를 할때마다 거절을 당합니다. 그래도 과부는 낙심하지 않고 계속 끈질기게 찾아가서 간구했습니다. 하도 찾아가서 간구하니까 나중에는 재판관이 귀찮아서라도 그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었다라는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그 비유 마지막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눅 18장 8절입니다.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인자가 올때에’ 주님이 다시 재림하실 때를 의미하죠. 그때 믿음을 보겠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기도 하고 응답이 없어도 낙망하지 않고 계속 기도하는 믿음입니다. 누가 나를 손가락질 하고 비웃어도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다시오실 때 가징 귀하게 여기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어떤 믿음요? 과부처럼 거절을 당해도 낙망하지 아니하고 실망하지 않고 기도하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그럼으로 예수님이 오실 때 우리가 얼마나 신앙생활을 오래했는가는 그렇게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직분을 가지고 봉사해왔는지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은 헌금을 내었는가도 별 중요하지 않습니다. 교회안에서 직분도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실 때 ‘너 목사로 있다가 왔니 너 장로로 있다가 왔니?’ 이렇게 물어보시고 그래서 더 인정받고 더 큰 상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어려운 환경일수록 내가 무릎을 꿇고 하나님앞에 기도하는 믿음이 있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인정해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하나님앞에 간절히 기도하지 않은 것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나의 이 행동이 하나님에게 괴로움을 드리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간음하고 도둑질하고 불법을 행하는 것만을 죄라고 생각을 하고 내가 하나님 앞에서 간절히 기도하지 않는 것을 죄라고 생각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그것이 하나님에게 괴로움을 준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이 근본적인 죄라고 말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긋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쉬지 않고 기도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음

23절입니다. “23.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언핏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를 드릴 때 제물을 가져 오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곧 이어지는 후반부 내용을 보면 그들은 제물을 가져온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가치가 있는 제물을 가져와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들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23절 하반부입니다 “23. ...나는 제물로 말미암아 너를 수고롭게 하지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말미암아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하였거늘” 무슨말인가 하면 ‘내가 언제 제물을 가지고 오라고 해서 너를 수고롭게 한적이 있었는가? 유향을 가지고 오라고 해서 너를 괴롭게 한적이 있었는가?’ 는 뜻이죠. 여기서 유향이 무엇인가 하면 향나무 껍질속을 채취해서 나오는 아주 값비싼 향입니다. ‘내가 언제 이렇게 값이 비싼 제물을 가져와야 한다고 말해서 너희들을 괴롭힌 적이 있었는가‘ 라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제사를 너희들에게 요구한적이 있었느냐’ 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제물을 요구하실 때 소득 수준에 따라 제물을 요구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비둘기를 잡아서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한번도 제물을 가지고 부담을 준적이 없는데 너희들은 부담이 가는 제물을 가지고 와서 제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야 이거 부담스럽구나‘ 이런 마음을 가지고 제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4절 후반부입니다. 24. ... 네 죄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이러한 행동이 바로 하나님을 괴롭게 하신 죄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귀하고 많은 제물을 드리면 더 좋아할줄 알고 부담이 되면서도 더 많은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너희들이 바친 제물로 말미암아 내가 너무 괴롭다. 너희들이 예물 때문에 부담을 느끼면서 예배드리는 일 때문에 나는 괴롭다‘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공경한 마음이 없는 재물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이 괴로운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 하신 분이신데 어떻게 그 마음이 괴로울수가 있는 것입니까? 우리처럼 연약한 사람이야 괴로울수 있지만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괴로워하실수가 있겠습니까?’ 이런 의문이 생길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은 인격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감정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들처럼 슬픔과 기쁨과 분노함과 시기심까지도 있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굉장한 로봇이나 능력자체가 아닙니다. 인격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에 괴로워하시기도 하고 기뻐하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경고하고 있는 죄는 바로 두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부르짖지 않은것과 공경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절기에 맞춰 제사를 드리고 아주 귀한 제물을 바쳤지만 하나님은 교제를 원하시고 공경하는 마음을 원하십니다. 그렇게 하지 못함이 우리의 죄가 됨을 명심하십시다.

이사야 59장 1, 2절입니다. “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죄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죄가 끼어들면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정말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기도의 응답이 아니라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랑과 신부처럼 그렇게 가까운 사랑을 나누시길 원하시는데 죄가 있어서 자꾸 멀어지니까 하나님의 마음이 안타까운 것이죠.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부부사이에 서로 숨기고 있는 죄가 있다면 그 부부는 하나가 되기 어렵습니다. 숨기고 있는 죄가 있다면 ’여보, 당신을 사랑해“ 라고 말은 하지만 그 죄 때문에 진정으로 가까이 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자, 그런데 놀라운 반전의 말씀이 본문 25절에 나옵니다. 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네죄를 기억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시면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네 허물을 도말 하겠다. 네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 여기서 ’도말 하겠다’ 는 뜻은 세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발라서 보이지 않게 한다 는 의미이고 둘째는 문질러서 완전히 지워버린다 는 의미가 있고 세째는 가루로 빻아서 날려버린다 이런 뜻이 있습니다. 이것은 완전히 보이지 않게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이 회개한 죄에 대하여 완전한 용서를 말할 때 도말 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냥 하나님은 죄를 용서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하고 자백해야 합니다. 요한 일서 1장 9절입니다.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회개 하고 자복한 심령에게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다시 기억치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히브리서 10장 17절입니다 “17.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는것에 있습니다. 이 천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한 하나님이시지만 지금 우리에게 더욱 전능하신 분으로 다가오는 것은 나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우주만물이 아무리 위대하고 아름다와도 내가 내 죄 때문에 죽어버리면 이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럼으로 우리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을수 있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우리에게는 가장 귀한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이것은 전능하지 않으면 불가능 합니다. 우리 인간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정반대입니다. 잊어버리기 위해서 한잔 술을 마시고 잊었다고 하지만 두잔술을 마시면 다시 생각이 나서 괴로워하는 것이 우리 인간인 것입니다. 그래서 잊어버려야 할 것을 잊어버리지 못해서 자살한 사람들이 참 많은 것입니다. 이렇게 잊어버려야 할 것을 잊어버리지 못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시 기억하지 않으실수 있으십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자백만하면 우리 죄를 잊어버리십니다. 그래서 내가 한번도 죄를 안지은 천사처럼 우리를 보실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기억하지 않으실까요? 25절입니다. 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왜 하나님은 우리죄를 기억하지 않는 것입니까?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다시는 우리죄를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왜 그래요? 하나님은 사랑이시니까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니까요. 하나님은 왜 우리를 창조하셨습니까? 잘먹고 잘살게 하기 위해서인가요? 아니죠.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친구관계로 사귀고 때로는 신랑신부처럼 사귀고 때로는 부모와 자식처럼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가장 친밀하고 깊은 사랑의 관계를 가지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관계를 가지기 위해 창조 하셨는데 그렇게 되지 못하니까 하나님은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으신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우리와 깊은 관계를 가지길 원하시는데 우리죄를 하나하나 다 기억하시고 계신다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실수 있겠습니까? 죄없는 천사도 거룩하신 하나님을 쳐다 보지는 못하고 얼굴을 가리는 거룩한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기억하신다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실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기억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사탄이 나를 아무리 정죄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를 한다면 하나님은 다시는 그죄를 기억하지 않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은혜의 보좌앞에 담대히 나아갈수가 있습니다. 그날에 우리는 내죄를 하나도 기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앞에 나는 이세상에 살아가면서 한번도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될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번도 죄를 짓지 않은 존재로 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나를 안아주시고 사랑해주실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해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잊어버리시는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기억하지 않겠다고 했으면 기억하지 않을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 이십니다. 그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인해서 우리는 넘어져도 일어설수 있습니다. 우리가 염려와 불안 속에서도 힘차게 걸어갈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죄를 기억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입니다. 여러분 이제 이틀이 지나면 새해를 맞이하게 됩니다. 지나간 일을 잊어버리시는 하나님을 생각하십시다. 하나님께서 잊어버리신다고 말씀하시면 잊어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우리에겐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잊어버리고, 우리의 허물을 잊어버리시는 것이 우리에게는 축복입니다.

이제 새해를 앞두고 이사야 43장 18절을 묵상하며 남은 이 한해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이제 이틀후면 2019년도는 이전일 입니다. 옛날일입니다. 작년의 일입니다. 이전일은 기억하지 마십시다. 옛날일은 생각하지 마십시다. 작년의 일은 기억하지 마십시다. 잊어버리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잊어버리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맡겨야 합니다. 우리는 잊지 못해도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는 순간 잊어버릴수 있으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지난 세월 누군가에게 받았던 아픔과 상처 그리고 누군가를 아프게 했던 일들 그리고 하나님앞에 저질렀던 부끄러운 죄악은 다 잊어버리시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