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그랄에서 받은 하나님의 은혜

Author
kgmcc
Date
2021-04-10 23:10
Views
509
본문 : 창세기 20장 1-7절

날짜 : 2021년 4월 11일

 

<창세기 20장 1-7절>

1.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2.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3.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4.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5.그가 나에게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6.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

7.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대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는 자녀를 가진 어느 한 부모가 학교 담임 선생님을 만나 대학 진학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상담을 하던 도중에 그 학생 아버지가 선생님에게 이렇게 물어봅니다. ‘선생님 제 아들 학교 성적이 어떻습니까?’ 그 질문에 담임 선생님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이렇게 되물어봅니다. ‘혹시 아버님께서 옛날에 학교에 다니실 때 성적은 어떠했습니까?’ 그러자 그 학생 아버지가 자기 머리를 긁적이며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야 뭐 성적이 좋지 않았지요’ 그 대답을 듣고 듣고 담임 선생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님, 역사는 되풀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역사는 되풀이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건을 보면 같은 사건이 계속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옛날 노아의 홍수때를 보십시오. 그당시 사람들은 홍수가 내리기 직전까지 그냥 먹고 마시고 즐기는 생활을 했습니다. 내리고 있는 비를 보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인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이후 소돔과 고모라 시대 때를 보십시오. 마찬가지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내리기 전까지 그들은 그냥 먹고 마시고 즐기는 생활을 했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불과 유황을 보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인줄 몰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도 마찬가지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눈앞에 와도 이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심판의 비가 내리고 심판의 불이 내려도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먹고 마시고 즐기다가 죽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제 곧 코로나 펜데믹이 끝나고 나면 사람들은 다시 먹고 마시고 즐기는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이전에 하지 못했던 보상심리로 인해서 이전보다 훨씬 더 먹고 마시고 여행을 하면서 즐기는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생활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인생은 아름답고 멋지게 살아가야 합니다. 문제는 하나님께 예배와 찬양과 기도를 하는 영적인 생활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는 육적인 생활에만 치중하며 살아가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되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나온 역사를 보면서도 배우지 못하고 고치지 못하니까 역사는 계속 반복되어 일어 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역사가 되풀이 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아브라함이 그랄이라고 하는 지역에 거주할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본문 1절입니다. 1.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그랄에 거류하며’

이 그랄지역은 네게브 사막에 있는 가데스와 술 사이에 있는 지역입니다. 그리고 그당시에 이지역은 아비멜렉 왕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이고 살아가다가 지역에 살고 있는 아비멜렉 왕에게 보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40년후에 이와 똑같은 사건이 아브라함의 자식에게도 반복되고 있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창세기 26장 6절, 7절입니다.

“6.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 7.그 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 이삭이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의 외아들입니다. 이 외아들 이삭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랄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 나타난 아버지 아브라함이 죄를 지었던 장소와 똑같은 장소입니다.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그 범죄의 내용도 같지만 그 이유도 같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 함이었더라’. 이삭은 사람들이 자기를 죽일까 두려워해서 아내를 누이라 속이고 살아왔습니다. 오늘 본문 뒤에 나오는 11절을 보시면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를 누이라 속였던 이유에 대해서 아비멜렉왕에게 이렇게 해명합니다. “11.아브라함이 이르되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이렇게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들 이삭은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역사만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범죄도 반복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볼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이렇게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 아브라함에게 여전히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세가지 질문을 가지고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아브라함이 지었던 죄의 성격이 어떤 것이냐 하는 것이고 둘째는 아브라함이 받았던 은혜는 어떤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질문은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수 있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지은 죄가 무엇인가? 그가 받았던 은혜는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해서 은혜를 받고 살아갈수가 있게 되었는가? 이 세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오늘 이시간에 저와 여러분이 같이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아브라함이 저질렀던 죄의 특성은 어떤 것입니까?

1. 반복적으로 되풀이 됨

아브라함은 25년 전에도 똑같은 죄를 저질렀습니다. 창세기 12장 12, 13절입니다. “12.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그당시 아브라함이 살고 있던 가나안땅에 기근이 생기게 되자 아브라함은 나일강이 있는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예쁜 자기 아내 사라 때문에 자기가 죽임을 당하게 될까뵈 아내에게 이렇게 다짐 시킵니다. ‘여보 당신과 나 사이는 남편과 아내가 아니고 오누이야. 알겠지?’ 같은 남자로서 참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장면입니다. 이런 아브라함을 우리는 지금 믿음의 조상이라고 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이런 아브라함을 천하에 몹쓸 나쁜 놈이라고 욕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조금전에 잠시 살펴보았지만 이와 똑같은 범죄를 아들인 이삭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죄성은 반복성이 있고 새대를 초월해서 계속 되풀이 되는 특성이 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2.계획적이고 의도적인 범죄임

오늘 본문 뒤에 나오는 13절 말씀을 보시면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왕에게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13.하나님이 나를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 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이후로 우리의 가는곳 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하였었노라‘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거짓말은 순간적으로 어쩔수 없이 하게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예 거짓말을 하기로 계획을 하고 아브라함은 사라와 함께 여행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범죄는 순간적으로 일어난 범죄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의도되어졌고 계획되어진 범죄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순간적이고 우발적인 범죄보다도 그 성격이 훨씬 더 나쁘고 심각한 범죄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범죄는 우리 인간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저지를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베풀어주시는 이러한 은혜가 범죄하기 쉬운 우리들에게 희망이 되고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입니다.

이러한 죄를 지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는 어떠한 것입니까?

1.힘없고 연약한 사라를 보호해주심

사실 사라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남편을 잘못 만난 죄밖에 없습니다. 치사한 남편 말대로 순종한 것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사실을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무 힘이 없고 연약한 사라를 보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랄 지방의 왕인 아비멜렉에게 밤중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3절입니다. “3.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하나님께서는 아무 힘이 없고 연약한 여인을 보호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라뿐만 아니라 아브라함도 같이 더불어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된 것입니다.

2.아브라함에 대하여 여전히 기대를 하고 계심.

아브라함이 저질렀던 범죄가 반복성이 있고 그리고 의도적이고 계획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아브라함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것은 은혜입니다. 본문 7절입니다. “7.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이제 그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무엇이라고요?) 선지자라‘ 그는 선지자다. 그런데 저 같으면 아브라함보고 이렇게 말을 했을 것 같습니다. “네가 선지자냐?” 하지만 하나님은 이 아브라함을 여전히 선지자라고 부르십니다. 선지자이기 때문에 그가 기도하는 것은 응답하고 들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은혜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반복적이고 의도적이고 그리고 계획적으로 죄를 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 아브라함이 언젠가는 마침내 선지자로서의 역할을 해낼 것이다 라고 하는 기대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여전히 기대를 하고 계신다면 저와 여러분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기대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사실 우리도 얼마나 자주 하나님앞에 실수를 합니까? 얼마나 자주 넘어집니까? 하지만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나를 향한 기대를 거두시지 않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에게 다가 오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아직도 너에게 대한 기대가 있다. 너는 내가 기대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야, 너는 그일을 해나갈수 있어”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기대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비록 그 사람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나에게 상처를 준다 할지라도 그사람을 향한 기대를 포기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변하게 될 것이다 라고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저게 뭐 목사야. 먹사지 저게 뭐 집사야 잡사지, 저게 뭐 장로나 장사꾼이지‘ 라고 손가락질을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기대를 하신다는 그 사실 하나로 인해 우리도 그 사람에 대한 기대를 내버리면 안되는 것입니다. 끝까지 저와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기대하시는 이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살아갈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아브라함이 회개하도록 도와주심

여러분, 회개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회개는 내 마음대로 되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회개를 하자, 내가 눈물을 흘리자, 라고 해서 되어지지 않는 것이 회개입니다. 제가 지나온 신앙의 경험으로 볼때 회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임을 고백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회개하지 못합니다. 세계적인 기독교 베스트 작가인 필립 얀시가 쓴 책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라는 책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오스트레일리아 나라에 속한 바다의 어느 한 섬에 감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섬에 있는 감옥은 경비가 아주 철저해서 죄수가 한번 그 감옥에 들어가면 절대로 나올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하루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감옥생활을 하던 죄수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동료 죄수를 죽이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 감옥 책임자가 그 살인자를 본토에 시드니에 보내서 법정에 서게 합니다. 그리고 그 법정에서 이 살인자는 자기가 섬에 있는 감옥생활이 너무 진저리가 나서 사람을 죽였다고 말합니다. 그때 법관이 묻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그 감옥생활이 죽고싶을 정도로 진저리가 났으면 당신 혼자 죽지 왜 살인을 했습니까?’ 그때 이 살인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기독교인입니다. 그러므로 자살을 하면 바로 지옥행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마 살인을 하면 제가 오고 싶어했던 이곳 본토 시드니에 올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회개를 하면 하나님이 저를 용서해주실 것입니다.’ 이 얼마나 무섭고 끔직한 고배입니까? 하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범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회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 자신의 성경지식과 교리를 가지고는 회개가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5장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탕자의 비유의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탕자가 언제 집에 돌아옵니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다 탕진하고 정말 먹고 살아갈 길이 없게 되자 돌아 옵니다. ‘내가 아버지 집에 가서 나를 종이라고 여기고 받아달라고 애원하면 들어주실지도 모른다. 그러면 내가 최소한 굶어 죽지는 않게 될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날마다 집 바깥 언덕위에 올라가셔서 자기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 거리가 먼데도 불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자기를 알아보고 달려와서 목을 안고 입을 맞춥니다. 그리고 새옷과 새신을 신기우고 새 가락지를 손에 끼워주면서 크게 기뻐하며 이렇게 외칩니다. “이 내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여기서 새옷과 새신은 종의 신분과 아들의 신분을 구별하는 것이고 가락지는 영원한 약속, 영원한 보장을 상징 합니다. “아들로서의 신분을 내가 영원토록 보장하겠다” 라고 하는 아버지의 굳은 의지를 우리는 볼수 있습니다. 이렇게 크게 기뻐하시면서 살진 송아지를 잡고 동네사람들을 불러 신나게 잔치를 벌리십니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이 둘째 아들이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이 비유의 말씀 속에는 둘째아들이 회개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이러한 모습은 둘째 아들로 하여금 그동안 자신이 행한 죄를 뉘우치고 회개할수 있는 마음이 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내가 그동안 너무 괴롭히고 아프게 해드렸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회개하도록 이끄시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아브라함이 회개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아브라함을 회개할수 있을만큼 충분 한 것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역약한 자기 아내 사라를 보호해주시는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죄를 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기에게 대한 기대를 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그 넉넉하신 사랑으로 인해 회개하게 되고 변하게 되었던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세 번째 질문으로 어떻게 하면 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수 있는 것입니까?

1.자신의 죄를 솔직히 고백해야 함

아브라함은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서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13절입니다. “13.하나님이 나를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 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아브라함은 아주 구체적이고 솔직하게 아비멜렉왕에게 고백합니다. “원래는 제가 왕을 속일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두루뭉실하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와 결혼하기 전에 사라는 이복누이 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누이라고 한 말도 맞기는 합니다. 제가 뭐 100프로 완전히 거짓말을 한것은 아닙니다.“ 이런식으로 변명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아주 솔직하게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보시다 시피 제 아내가 예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가 남편이라고 하면 제 목숨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고향을 떠나게 되면서부터 이방 사람들을 만나면 누이 오라비 사이라고 말하기로 계획을 했습니다.“ 그래요. 누구나가 다 죄를 지고 살아갈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가 다 그죄에 대해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성경이 보여주는 것은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서 솔직히 인정하고 자백할 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때 회복이 되어지는 것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진정으로 누릴수가 있게 됩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다윗왕과 사울왕의 경우입니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왕에게 와서 다윗이 지은 죄를 책망했을 때 다윗왕은 통곡을 하면서 금식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그후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사울왕은 달랐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왕이 지은죄를 책망했을 때 이 사울왕은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 했습니다.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으로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아말렉 족속의 가축을 다 멸하지 않고 남겨두었다고 변명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사울왕은 어두운 인생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사람이 죄를 지을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내 지은죄에 대해 내가 솔직하게 고백을 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참다운 은혜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이 아브라함처럼 솔직한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나가십시다. 그래서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은혜가 참다운 은혜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수있게 된 것은

둘째로 진지하게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17절입니다. “17.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마침내 아브라함이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했을 때 기도를 했습니까? 걱정 근심은 했겠지만 기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브라함은 다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아브라함의 기도로 말미암아 아비멜렉의 아내와 그 여종이 임신을 하게 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다 실수를 할수도 있고 또 반복적인 죄를 범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보시는 것은 자기의 죄를 정직하게 고백을 하는 사람. 자기의 죄를 인정하는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은혜가 은혜가 되어집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가 되어지고 회복이 되어집니다. 그럴때 기도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아브라함은 달라지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더 이상 똑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습니다. 그럼으로 우리에게 죄가 있다면 은혜로 이겨내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가시가 있다면 은혜로 이겨내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자신을 찌르는 가시로 인해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에게 베푸는 나의 은혜가 너에게 족하다(고후 12장 9). 그럼으로 우리는 은혜로 죄를 이기고 은혜로 가시를 극복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신앙은 이론이 아닙니다.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직접 체험해야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다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범죄 때문에 사랑하던 아내를 잃어버릴뻔한 경험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도 하나님은 자신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했습니다. 은혜를 경험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자기 아내를 누이라 속이는 죄를 반복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믿음의 조상이 되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지금도 저와 여러분은 같은 죄를 반복적으로 저지르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죄는 우발적이고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죄입니까? 그렇다면 혹시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이 내가 지은 죄가 있다면 솔직하게 고백하고 진지한 기도 생활을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참된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