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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점 인생

Author
kgmcc
Date
2021-05-01 22:14
Views
17
본문 : 누가복음 16장 19-31절

날짜 : 2021년 5월 2일

 

<누가복음 16장 19-31절>

19.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20.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25.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26.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27.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오늘 제가 봉독해드린 이 본문의 말씀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입니다. 그리고 이 비유의 말씀속에는 천국과 지옥의 모습이 나옵니다. 사실 교회 목사님들마다 그동안 천국과 지옥에 대한 메시지를 잘 전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작년부터는 코로나 펜데믹의 영향으로 인해서인지 천국과 지옥에 관한 메시지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사실 천국은 누구나가 다 관심이 있고 좋아하는 주제이지만, 지옥이라는 주제는 원래부터 인기가 없는 메시지 내용입니다. 하지만 인기가 있고 없고를 떠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훨씬 더 가치가 있고 중요하기 때문에 오늘은 이 천국과 지옥에 관한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떠나서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천국과 지옥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본문 19절에서 이렇게 비유를 시작하십니다. “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한부자가 있어’ 이 부자는 대단한 부자이었습니다. 그당시에 자색옷과 고운 베옷은 굉장한 부자가 아니면 입을수 없는 옷이었습니다. 얼마나 돈이 많은 부자이었는지 잔치를 일년에 한 두번만 한 것이 아니라 날마다 호화롭게 잔치를 벌리고 즐기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본체 만체 하면서 세상을 즐기며 살았습니다. 지옥은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있어야 한다고 제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부자의 문 앞에는 거지 나사로가 헌데를 앓고 누워있는데 이 헌데는 부스럼과 같은 피부병입니다. 그리고 개가 와서 그 헌데를 핥는 비참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천국은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있어야 합니다. 유명한 철학자인 임마누엘 칸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이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조리를 볼때마다, 불공평한 일을 볼때마다, 다시말해서 잘되어야 할 사람이 잘못되고 잘못되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잘되는 이 부조리 때문에라도 천국과 지옥은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그래요 예수님께서는 오늘 비유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천국과 지옥은 반드시 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우리인간에게 알려주시기 위해 지옥이라는 단어를 오늘 본문이 있는 마태복음에서만도 12군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복음서에 언급된 것을 따지면 이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마 5:22 / 5:29,30 / 7:19 / 7:23 / 8:12 / 10:28 / 13:49,50 / 18:6 / 22:13 / 23:15 / 25:30 / 25:41)

마태복음에서 마지막으로 언급하신 내용을 보시겠습니다. 마태복음 25장 41절입니다. "41.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25:41) ‘나를 떠나 마귀와 그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불신자의 영이 지옥으로 떨어져 영영한 불로 마귀에게 고통을 당한다고 하는 심판의 개념은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직접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을 특별히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믿는 성도라고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천국과 지옥에 대한 내용을 본문을 살펴보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천국과 지옥은 어떠한 곳입니까?

첫째로 천국과 지옥은 죽은후에 즉시 가는 곳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우리가 죽은 후 한참있다가 가는 곳이 아닙니다. 22절과 23절입니다.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부자도 죽고 거지 나사로도 죽었습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집니다. 죽는 순간만큼은 부자도 거지도 없습니다. 건강한 사람도 약한 사람도 없고 노인도 젊은 사람도 없습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차별하지 않고 공평하게 대합니다. 문제는 죽음 이후에 또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 것에 있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죽는 순간에 그의 영혼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천국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천사에 관해서 성경은 히브리서 1장 14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4.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그러니까 천사들은 믿는 성도들인 저와 여러분을 섬기기 위해서 이세상에 보냄을 받았습니다. 거지 나사로가 죽자 천사들이 그의 영혼을 모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오래전에 제가 전도사 시절 때 어떤 성도님의 남편의 임종을 제가 주관한 적이 있습니다. 그날 마침 담임목사님께서 다른 주로 출타중이시라 제가 연락을 받고 급히 그 성도님의 집으로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연락을 받고 가니까 교회 성도님들이 이미 열 댓분 모여 있었습니다. 환자는 의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겨우 숨만 내쉬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서 제가 찬송과 기도를 인도 하였습니다, 다같이 찬송과 기도를 하고 또 찬송을 하고 기도하고 그렇게 한시간 가까이 반복하다가 '찬송가 492장 (통합 544장)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제목의 찬송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항상 찬송 부르다가 날이 저물어 오라하시면 영광중에 나아가리 열린 천국 문 내가 들어가 세상짐을 내려놓고...' 그렇게 찬송을 부르고 있는데 그 분이 잠시 미소를 짓더니만 곧 이어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정말 평화로운 모습으로 떠나었는데 그 순간의 장면은 저는 아직도 잊을수 없습니다. 그순간은 그 분의 영혼이 천사들에게 받들려 천국에 들어가는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거지 나사로는 죽는 순간에 천사의 인도함을 받아 천국에 갔고 그리고 부자는 죽는 순간에 지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믿지 않는 영혼은 죽은 후에 귀신이 되어 떠돌아 다닌다고 말을 하는데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죽은 후에 즉시로 가는 곳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천국과 지옥은 의식이 살아있는 곳입니다.

24절입니다 “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여호와 증인을 비롯한 많은 이단종교들과 그리고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아주 없어진다는 영혼 멸망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천국과 지옥은 의식이 살아있는 장소라는 사실을 우리는 예수님이 하신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해서 알수 있습니다. 한사람은 하나님의 축복가운데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있고 또 다른 한사람은 끝이 없는 고통의 의식속에서 괴로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천국과 지옥은 서로 대조적인 장소입니다.

25절입니다. “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두 개의 대조되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그것은 위로와 괴로움입니다.

천국은 위로의 장소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을 보시면 천국에 대한 묘사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계시록 21장 4절을 보시면 특별히 위로를 받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천국은 성도들이 흘리는 모든 눈물을 닦아주는 곳입니다. 다시는 애통하는 일이나 곡하는 일이나 아픈것이 없는 나라가 천국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믿는 성도들을 위로해주시는 나라가 바로 천국입니다.

하지만 지옥은 괴로움의 장소입니다. 고통의 장소입니다. 요한 계시록 14장 10절에 지옥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10. 그도 (여기서 그는 앞절을 보시면 마귀에게 속한 사람을 의미하고 있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성경은 불과 유황으로 불타고 있는 장소가 지옥이라고 말씀합니다. 부자가 불꽃 가운데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거지 나사로의 손가락에 물을 찍어서 자기 입술에 대게 해달라고 호소를 했겠습니까? 하지만 그의 요구는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이미 너무 늦은 요구이었기 때문입니다. 고통과 괴로움이 있어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나라가 바로 지옥입니다.

 

넷째로 천국과 지옥은 서로 왕래할 수가 없는 곳입니다.

26절입니다. “26.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큰 구렁텅이가 있어서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큰 구렁텅이가 있어서 아주 깊고 넓게 파인 곳을 구렁텅이라고 말합니다. 이 큰 구렁텅이가 있어서 천국에서 지옥으로 갈수도 없고 올수도 없는 것입니다. 천주교에서는 사람이 죽게 되면 연옥이라고 하는 천국 대기실에 들어가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그 연옥에 있는 동안 이땅에 있는 교우들의 기도와 가족들이 드리는 기도의 힘으로 마침내 천국에 갈수 있다고 하는 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 고등학교 친구중에 카톨릭 성당 신부가 된 친구가 있습니다. 고등학교때 저와 가장 친한 친구이었는데 신부가 된이후 너무 열심히 사역을 해서 과로사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지금은 천국에 가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살아생전에 그 친구와 대화를 하면 이 연옥에 대한 문제 때문에 종종 논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천국에 갈수 있는 기회는 지금 현재 살아있을때 뿐이다. 사람은 죽는 즉시 천국과 지옥이 결정이 나는 것이다” 라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친구가 제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야 너에게 한번 물어보자. 네가 죽고 난후에 천국 아니면 지옥 이렇게 단 한번에 결정이 나는 것이 좋겠니? 아니면 천국에 들어가기에는 아직 부족하지만 그래도 지옥에는 떨어지지 않고 중간 대기실에 있다가 성도들과 가족들이 도와주는 기도의 힘으로 천국에 갈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좋겠니?”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솔직하게 말을 했습니다. “그야 뭐 기회가 한번 더 주어지는 것이 없는것보다야 좋겠지“ 그러니까 이렇게 말을 하더라고요. ”야, 사랑의 하나님이 한번 더 기회를 주시지 않겠냐? 그러니까 연옥이 필요한 거야“ 하지만 이것은 우리 인간의 바램입니다. 우리 인간의 바램과 다르게 천국 갈수 있는 기회는 살아있을때 뿐입니다. 죽으면 그즉시 천국과 지옥이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옥에 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비록 자기는 천국에 들어갈수 있는 기회를 놓쳤지만 자기가 사랑하는 가족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래서 고통을 당하는 이 지옥에 오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부자는 죽은 나사로를 자기 다섯 형제들에게 보내서 그들이 믿고 회개를 해서 이 지옥에 오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여기에 대한 대답이 무엇입니까?? 마지막 31절입니다. “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이것은 구약성경에 있는 말씀을 의미합니다. 성경을 보고 말씀을 듣어도 믿지 아니하는 사람은,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것을 보아도 믿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 12장을 보시면 이 거지 나사로가 아닌 또 다른 나사로가 죽어서 무덤속에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그러시면서 훗날에 모든 믿는 성도들에게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하는 모델 케이스가 되게 하기 위하여 친구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의해서 나사로가 걸어나옵니다. 그런데 이 나사로를 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이 기적의 사건으로 인해서 오히려 예수를 죽일려고 하는 음모를 본격적으로 시작 하게 됩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났어도 유대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마음이 더 강퍅해 졌습니다. 요즘 ‘내가 천국을 보았다’ 라고 하는 간증하는 모습을 유튜버 동영상을 보면 수없이 나옵니다. 예수님과 천사를 보고 천국과 지옥에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고 하는 영상이 수십개가 아니라 수백개가 넘는 듯 합니다. 그런데 그사람들이 하는 말이 진짜냐 가짜냐는 일단 접어두고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믿고 있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수 있어도 안믿는 사람이 그 말을 듣고 믿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적을 보지 못해서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는 것 아닙니다. 기적이 없어서 사람들이 믿지 못하는 것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죽은자가 다시 살아나서 복음을 증거하고 천국을 증거한다 할지라도 그 어떤 말도 믿지 않을 것이다. 성경의 말씀을 듣을 때 성령의 역사로 인해 그사람의 심령이 열리게 되고 천국과 지옥이 믿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이 성경 말씀을 거부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희망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은 누가복음 16장입니다. 바로 앞장은 몇장입니까? 15장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하신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본문 바로 앞장인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내용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5장 1절과 2절입니다.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그당시 세리와 죄인들은 유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세상에 살면서도 소망이 없고 저 하늘나라에 대해서도 소망이 없이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하늘나라에 갈수있다고 하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사랑하신다. 그래서 죄인이 회개하면 천국에서는 잔치가 벌어질 정도로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신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죄인 한명 한명이 돌아오기를 천국에서 기다리신다“ 그래서 세리와 죄인들은 날이면 날마다 예수님 곁에 모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세리와 죄인들이 천국에 간다고 하는 소망을 가지는 모습을 제대로 바라볼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빈정대면서 손가락질을 하게 되는데 이것을 본 예수님께서 비유의 말씀을 하십니다. 3절을 보시면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그러시면 누가복음 15장에 있는 그 유명한 세가지 비유의 말씀을 하십니다. 첫째로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아흔아흔 마리의 양을 들판에 놓아두고 길을 나서는 선한 목자의 이야기를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둘째로는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 한 은전을 찾기 위해서 등불을 켜고 빗자루로 쓸면서 집안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는 어떤 여인의 이야기를 비유로 말씀 하십니다. 그리고 또 세 번째로는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이야기인 그 유명한 탕자의 비유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16장에 넘어와서 계속해서 불의한 청지기 비유의 말씀을 예수님께서 하십니다. 이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 말씀을 마치고 난 이후에 예수님께서 이 비유에 대한 결론을 이렇게 내리십니다. 누가복음 16장 13절 후반부입니다. “13...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수 없느니라” 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난후에 바리새인들이 비웃고 조롱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다음 14절입니다. “14.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그당시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했습니다. 돈 싫어하는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당시에 그들은 돈과 신앙은 정비례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신앙이 좋은 사람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부자가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면 잘 살수가 있고 부자가 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은 돈을 사랑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처럼 섬겼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돈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다. 돈과 하나님을 같이 섬길수가 없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비웃었던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 비유의 말씀을 19절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렇다면 이 부자는 누구이겠습니까? 바리새인입니다. 거지 나사로는 또 누구입니까? 세리와 죄인들입니다. 30절을 보시면 부자가 이렇게 아브라함에게 말합니다. “30.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이 부자는 아브라함의 후손이었습니다. 유대인이었지만 천국에 가지 못했습니다. 왜요? “만일 죽은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자가 있으면 (그다음에?) 회개하리이다” 그래요 회개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비웃고 비난했습니다. 그래요. 저는 여러분중에 진실로 회개한 경험이 없다면 저는 그 사람의 믿음에 대해서 심히 의심하고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내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생명을 바치신 예수님의 행동이 믿어진다면 내죄에 대한 회개가 있을 것 아닙니까? 하는 일이라고는 이기심과 죄악뿐인 나를 버리기 보다는 차라리 사랑하는 외아들 예수를 버리셨던 그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면서도 내마음에 아무런 느낌이 없다면 믿는 것이 아닙니다.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고통속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향해 외치셨던 아들 예수님의 그모습이 진짜로 믿어지면 내 가슴에 뜨거운 회개가 솟아나와야 합니다. ‘예수님, 내죄 때문에 죽으셨군요. 하나님, 내 죄 때문에 아들을 죽게 하셨군요.’ 내죄에 대한 부끄러움과 회개가 나의 심령속에 흘러나온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회개함이 없었다면 여러분 믿는 것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자가 이 세상에서 잘먹고 잘살았기 때문에 천국에 못간것이 아닙니다. 거지 나사로가 이세상에 있을때 너무 고생을 해서 천국에 갈수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해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이세상에 태어났을때는 저마다 환경이 달랐습니다. 어떤 사람은 부자의 자식으로 어떤 사람은 가난한 집의 자식으로 또 어떤 사람은 배운 집안의 자식으로 또 어떤 사람은 못배운 무식한 집의 자식으로 태어났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저마다 차이가 있었고 그리고 저마다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돈이 있는 사람이나 돈이 없는 사람이나 결국에는 하루 세끼 먹고 살아가는 인생인것을 알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배운 사람이나 못배운 사람이나 가지고 있는 지식은 다 비슷해집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건강했던 사람도, 약했던 사람도 비슷 비슷하게 되어집니다. 우리 모두는 죽음을 향해 가면서 점점 차이가 없어지게 됩니다. 공평해져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습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만듭니다. 부자도 죽고 거지도 죽고 학자도 죽고 무식한 사람도 죽습니다. 장사도 죽고 약골도 죽습니다. 노인도 죽고 젊은 사람도 죽습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합니다, 죽음은 차별대우를 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죽음이후에 있다고 성경은 히브리서 9장 27절에 말씀합니다. “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후에는 (죽음이후에는) 심판이 있다.” 그래요 믿는자나 믿지 않는 자나 심판이 있습니다. 그런데 믿는 자에게는 상급에 대한 심판이 있습니다. 어떤 상을 받느냐 하는 시상입니다. 성경은 요한계시록 22장 12절입니다.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행한대로 갚아 주리라” 예수님께서 믿는 성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줄 상이 나에게 있다. 그래서 너희들이 행한대로 내가 갚아주리라“ 그래요. 이 상은 내가 믿는다고해서 받을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행한 행실에 따라 하나님이 주실 상입니다. 이상은 이땅에 하나를 행하면 삼십배 육십배 백배로 보태서 주시는 상입니다. 이땅에 그 어느것과도 비교할 수가 없는 신령하고 거룩한 상입니다. 이땅에는 그어느것도 내것이 없지만 그때 받는 것들은 모두가 다 내것입니다. 영원히 살면서 영원히 가지게 되니까 내것이 되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이 하나님이 주시는 상을 바라보며 살아가시는 축복스러운 지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