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먼저 가시는 하나님

Author
kgmcc
Date
2021-06-05 21:46
Views
11
본문 : 신명기 1장 29-33절

날짜 : 2021년 6월 6일

 

<신명기 1장 29절-33절>

29.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30.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31.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32.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33.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여러 가지 핸디캡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외모에 대한 핸디캡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학벌에 대한 핸디캡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건강이나 물질에 대한 핸디캡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핸디캡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두려움이고 하는 핸디캡이라 하겠습니다. 루마니아가 공산국가이었을때 15년동안 감옥생활을 했던 리차드 범브란트 목사님이 이런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나를 괴롭혀온 것은 감옥이 아니라 날마다 마음속에 일어나는 두려움이었다‘ 이러한 인간이심을 너무나도 잘알고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속에서 가장 많아 나오는 말씀중의 하나가 바로 ’두려워 하지 말라‘ 라는 내용 인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중에서도 ’두려워 하지 말라‘ 라는 이 말씀이 오늘 본문이 있는 신명기에 가장 많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은 29절에서 이렇게 시작합니다. 29.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서워하고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본문앞의 내용을 살펴보면 40일 동안 가나안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정탐꾼들중에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열명의 정탐꾼들은 이렇게 보고를 했습니다. ‘우리가 들어가서 보게 된 그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처럼 너무나 좋은 땅입니다. 하지만 그땅의 백성들은 우리들보다 크고 장대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 나오는 28절 보시겠습니다. 28.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들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우리가 또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노라 하는도다 하기로’ 그런데 민수기 13장을 보면 보다 구체적인 보고 내용을 알수 있습니다. 민수기 13장 33절입니다. ‘33.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우리는 그들에 비해서 메뚜기와 같이 작다는 식으로 보고를 했습니다. 사람들이 크고 성도 커서 우리가 전쟁해서 도저히 이길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보고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신명기 1장 27절입니다. 27.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넘겨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우리를 멸하기 위해서 애굽땅에서 우리를 인도하여 내셨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정탐꾼들을 가나안땅에 보내셨습니까? 그것은 보다 효율적으로 가나안을 정복해나갈 것을 알게 하기 위함에 있었습니다. 그땅에 들어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하게 하기위해서 정탐하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또 정탐꾼들로 하여금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견고한 성을 보게 하시고 장대하고 거대한 아낙자손들을 보게 하신 것은 그것을 보고 무서워하고 두려워하게 하기 위함도 결코 아닌 것입니다. 그것보다는 더욱 더 하나님을 의지하기 위함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서워하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왜 무서워하고 두려워했습니까? 그것은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보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서워하고 두려워 떠는 것은 문제가 커서가 아닙니다. 문제가 커서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보이는 현상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모근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먼저 가시는 하나님이시다 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본문 30절입니다. 30.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너희보다 먼저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나님은 말만 하시는 분이 아니시고 행동을 하시는 분이신데 너희들보다 먼저 행동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 군데에서 먼저가시는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68편 7절입니다. ‘7.하나님이여 주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사 광야에서 행진하셨을 때에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사‘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행진할때에 하나님은 그들앞에서 앞서 먼저 나가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하나님은 선한 목자이시기 때문에 양떼인 우리를 뒤에서 몰아가시는 분이 아니라 양떼인 우리보다 앞장서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반면에 사탄은 우리 뒤에서서 저와 여러분을 몰아부칩니다. 그래서 사단이 역사하는 현장에 가보면 사람들이 조급함과 두려움속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앞서 가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먼저 가신다라고 할 때 이 동사를 성경 원문으로 보시면 미완료 형으로 사용되어졌습니다. 무슨 의미인가 하면 과거에 한번만 먼저 가신 것이 아니라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우리보다 먼저 가시고 먼저 행하시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 계속해서 먼저 가시고 먼저 행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보다도 먼저가십니까?

1.  대신 싸우시기 위해서입니다.

30절 후반부입니다. 30.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해서 출애굽할수 있었습니까? 자기들의 힘과 능력으로 애굽에서 나왔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그렇게 할 생각도 없었고 그럴 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애굽땅에 열가지 재앙을 내리셔서 바로왕으로 하여금 항복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해서 홍해를 건널수 있었습니까? 헤엄쳐서 건넜나요? 배를 타고 건넜습니까? 하나님께서 홍해바다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마른땅을 걸어가듯이 건너가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뒤쫓아오던 애굽 군사들을 홍해바다에 수장 시켰던 것입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아말렉 군사들을 만났을 때 전쟁이라곤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그전쟁에서 이길수 있었습니까? 모세가 손을 들어 기도할때에 하나님이 여호수아 보다 앞서 나가서 싸워주셨기 때문에 이겼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앞서 나가서 싸워주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수 있었고 홍해를 건널수 있었고 그리고 아말렉 군사들을 이길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위해 싸워주시는 모습을 경험 했습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다’ 무슨 말입니까.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었던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제도 앞으로도 너희를 위하여 계속해서 싸울 것이다. 모세가 죽고 없다 할지라도 내가 계속해서 너희를 위해 싸워 줄 것이다‘ 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지키십니다. 성경을 보게 되면 모세가 죽고 난이후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어떤 한 사람이 가로 막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그냥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니라 칼을 빼서 손으로 칼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앞을 막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놀라서 누구냐고 물어보자 그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여호와의 군대대장이다’ 그리고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수아 5장 15절입니다. ‘15.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왜 여호수아 앞에 나타났습니까? 그것도 그냥 나타난 것이 아니라 칼을 빼서 손에 들고 나타났습니까? 칼을 빼서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은 싸울 때 필요한 행동입니다. 그러니까 ‘너희들보다 앞서나가 내가 싸워주겠다’ 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런데 싸워주기 전에 무엇을 요구하고 있습니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라고 말합니다. 신을 벗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신을 신고 있으면 우리는 가고 싶은곳으로 마음대로 갈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발을 벗으면 어때요? 내 마음대로 돌아다닐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을 벗는다 는 것은 내 생각, 내 주장을 모두 벗어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항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온전한 순종을 의미합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이 앞서서 싸우시는데 뒤에서 저와 여러분이 따라오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니까 앞서 가신 하나님만 의지하고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땅에 들어와서 만나게 된 첫번째 전쟁은 여리고성을 공격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이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이 앞서나가서 싸워주셨기 때문입니다.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여리고성은 2중 벽으로 되어있다고 합니다. 스크린을 보시면 외벽의 기초 성벽의 높이가 5미터 이고 기초성벽 위에서부터 시작되는 외벽의 높이가 7미터입니다. 그리고 외벽에서 성 내벽 까지 기울기가 35도로 가파른 경사길입니다. 그리고 내벽의 높이가 14미터 라고 합니다. 두께는 외벽이 2미터 내벽은 4-5미터 두께로 되어있어서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성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이 어떻게 무너지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싸워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왜 싸워주셨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에 순종헤서 매일 성을 한바퀴 돌고 마지막날 일곱째날에는 성 일곱바퀴를 돌고 함성을 크게 질렀던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신해서 싸워주셨기 때문에 여리고성이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종하며 살아갈 때 계속해서 앞서나가서 싸워주신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어둠의 권세아래 있었던 우리들을 하나님이 건져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순종하며 살아갈 때 우리 앞서나가셔서 영적인 전쟁에서 싸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힘과 내 능력으론 감당할수 없는 전쟁에서도 승리하며 살아갈수 있는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지금까지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싸워주시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믿음을 지키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보다 먼저 가십니까?

2.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33절입니다. 33.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장막칠곳을 찾으시고’ 수백명 수천명이 텐트를 치고 머물곳을 찾는곳도 쉽지 않은데 1, 2 만명도 아닌 이백만명이나 되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텐트를 치고 머물수 있는 곳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먼저가셔서 준비해주셔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미리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십니까?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우리의 갈길을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만 보고 가면 되는 것입니다. 사실 신앙생활은 단순합니다. 분석하고 계산할 필요가 없습니다. 구름만 보고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구름이 머물면 그곳에서 텐트를 치고 머물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름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보따리 싸고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목적지까지 무사히 갈수 있게 됩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단순해요.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고 가면 되는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성경 말씀이 주어지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와 함께 한다는 사실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지고 난 신약시대에는 눈으로 보이는 구름기둥과 불기둥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은 말씀을 따라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서 가기만하면 약속의 가나안땅에 도착할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하심의 경험이 없이 광야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는 것에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구름기둥이 움직이기 전에 자기가 먼저 움직이며 신안생활을 합니다. 때로는 구름기둥이 오랫동안 한자리에 머물수 있습니다. 1년, 2년, 5년이 걸릴수도 있습니다. 농사짓는 것도 아니고 텐트속에서 생활을 해야하니까 얼마나 따분하고 지겹겠습니까? 그래서 지루함과 답답함에 못이겨서 구름이 머물고 있는데도 자기가 길을 찾아 나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과 성령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 보다는 자신의 이성과 경험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쪽으로 조금가 보니까 평지가 보이고 조금 더가면 거기에 무엇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니까 그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죄의 본성이 무엇입니까?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지 않고 각기 제길로 가는 것이 죄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사야 53장 6절입니다. 6.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우리 모두의 죄악이 무엇입니까? 각기 제길로 간 것입니다. 죄와 타락의 본질은 각기 제길로 간 것에 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이 죄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는 양이고 주님은 목자이십니다. 양의 잘못은 목자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양 자신이 생각한대로 길을 가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 마음대로 하는 것, 내가 가고싶고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는 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조금은 답답하고 지루해도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조금은 부담스러움이 있어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안정한 방법입니다. 그렇게 살아가야만 영적인 가나안땅 천국에 들어갈수 있습니다. 바다에서 항해를 하고 있는 배안에 있는 새에게는 새장이 답답하고 갑갑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답답하고 갑갑하다고 해서 새장을 벗어나서 바다로 날아가면 새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를 원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이 우리들을 인도해주시길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보다 먼저 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앞에 가시지 않으셔도 우리를 얼마든지 인도하실수 있습니다. 네비게이션에 나오는 여자 목소리처럼 우리가 가야할길을 말로만 지시만 해도 되는 것입니다. 오른쪽으로 턴 하십시오. 계속해서 10미터 직진하십시오. 이렇게 하나님도 현장에 가시지 않고 말로 뒤에서 원격 조종을 할수 있습니다. 게임할 때 사용하는 조이스틱을 가지고 앞으로 전진하라 왼쪽으로 돌아라, 뒤로 물러서라, 스피드를 올려라, 천천히 가라 이렇게 뒤에서 조정하셔도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직접 먼저 현장에 가십니다. 그리고 따라오라, 따라오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각각 내 마음대로만 가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죽는 그날까지 우리를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시편 48편 14절입니다. 14.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하나님은 죽을때까지 우리를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보다 먼저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보다 먼저 가십니까? 우리를 위하여 싸워주시기 위함입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보다 먼저가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길을 인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보호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뒤에서 몰아가시는 분이 아니시고 앞서가시는 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먼저 앞서가시는 하나님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우리보다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시면서 그 하나님과 동행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 사실 하나님이 먼저가시고 우리는 단순히 뒤따라 가는 것 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안으시고 우리와 함께 가십니다. 본문 31절입니다.

“31.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부모가 자기의 자식을 안는 것 같이 하나님은 우리를 안으시고 광야와 같은 이세상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먼저가십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과 먼저 싸워주시고 우리가 가야할 곳을 인도하여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 혼자 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안으시고 우리가 가야 할 곳을 함께 가십니다. 어떻게 그 일이 가능한 것입니까? 먼저가 계시면서도 그와 동시에 우리와 함께 가실수 있으십니까?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에게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라는 시간과 여기 저기와 같은 공간을 넘어서서 역사하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보다 먼저가 계시면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안아주심이 필요한 곳입니다. 하나님의 안아주심이 없이 우리 인간 혼자서는 걸을 수 없고 살아갈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안아주심이 필요합니다. 어린아이가 부모의 손을 붙잡고 가다가, 피곤하면 부모님의 품에 안겨서 길을 가는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이러한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언제까지 우리를 품에 안으십니까?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이곳까지‘ 이곳은 눈앞에 있는 요단강을 건너면 가나안땅이 보이는 모압평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품에 안으시고 오셨던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광야와 같은 이세상을 지내는 동안에 나를 품에 안으시고 인도하십니다. 언제까지 입니까? 영적인 가나안땅 천국문 앞에까지 인도하십니다.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사탄 마귀가 통치하던 영적인 애굽에서 벗어나게 하신 이후로 계속해서 품에 안으시고 영적인 가나안땅 천국 문앞까지 인도해주셨음을 믿고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32절입니다. “32.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은 분노하십니다. 35절에 보면 하나님을 믿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가 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35절입니다.

“35.이 악한 세대 사람들 중에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과 그리고 광야 생활을 하던 중에 태어난 나이가 이십세가 안된 사람들만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외는 모두가 다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을 바로 눈앞에 두고 광야에서 죽어야만 했습니까? 그것은 바로 자신들의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앞서 행하시면서 자신들을 위하여 싸워주신 하나님을 앞서 행하시며 자신들을 인도하신 그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을 품에 안으사 여기까지 이르게 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의 생활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닙니다. 많이 배우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연줄이 없기 때문도 아닙니다. 믿는 성도들이 신앙에 실패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이 신앙생활에 실패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앞서 행하시고, 우리를 위해 싸우시고, 앞서 행하사 장막칠 곳을 찾으시고, 우리를 안으사 여기까지 인도하셨다 할지라도 이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에 관하여 많이 지식적으로 알고 있다 할지라도 나보다 먼저 가시면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그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베스트 기독교 작가인 필립 얀시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이 하신 모든 말씀이 사실인 것처럼 믿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은 관념이 아닙니다. 구호가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 인것처럼 믿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사실인것처럼 믿고 행동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여러분 포드 자동차를 만든 헨리포드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신이 할수 있다고 믿든 할수 없다고 믿든, 당신이 옳다’ 이말이 주고자 하는 강조점은 바로 우리가 가진 믿음의 영항력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할수 있다고 믿든지, 또 반대로 내가 할수 없다고 믿든 그 믿음대로 이루어진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쪽이든 저쪽이든 믿고 있는 당신이 옳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이 신앙생활해나가는 동안 나보다 앞서서 행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천국에 들어가는 입구를 앞두고 저와 여러분이 믿는 믿음에 있습니다. 나보다 먼저 가계신 주님이 나를 인도해주실 것이다. 그리고 천국으로 들어갈 때 나를 품에 안고 천국에서 살아가게 해주실 것이다 라고 하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그런 믿음이 없다면 저와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믿음은 관념적으로나 이론적인 차원일수 있습니다. 지식적인 차원의 믿음일수 있습니다. 믿음은 사실이고 현실입니다. 죽음을 바로 눈앞에 앞두게 되었을때, 지나온 삶처럼 이제도 주님이 계속해서 나를 안으시고 천국으로 함께 동행해주심에 대해 감사할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나를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 나의 가는 길을 예비하시는 하나님, 나를 품에 안으시며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평생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