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먼저 된 자 먼저, 나중된 자도 먼저

Author
kgmcc
Date
2021-06-12 22:38
Views
35
본문 : 마태복음 19장 27-30절

날짜 : 2021년 6월 13일


 

<마태복음 19장 27절-30절>

27.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28.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30.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저희들이 어렸을 때 가장 많이 팔리고 맛이 있었던 라면은 삼양 라면이었습니다. 당시에 여러 종류의 라면들이 있었지만 삼양 라면이 가장 맛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삼양라면이 농심 라면에게 추월 당하더니만 이제는 농심라면이 제일 잘 팔리는 식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삼양에서 불닭 볶음면 17종류를 시리즈별로 출품해서 바싹 뒤를 따라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또 옛날에 음식맛을 내는 조미료로서 가장 많이 팔린 것은 미원이었습니다. 그당시에 미풍도 있었지만 미원이 훨씬 더 인기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가게에 가서 미원대신에 미풍을 사온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저보고 이렇게 말씀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아니 얘가 미원과 미풍도 구별하지 못하느냐’ 하시면서 당장 미원으로 바꿔와라 고 하시더군요. 그때 저는 '미원과 미풍은 서로 다른 것이구나' 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당시 미풍은 삼성 회사의 계열인 제일제당이 만들어낸 조미료입니다만 미원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오죽 하면 그당시 삼성 그룹의 이병철 회장이 이런말을 했겠습니까? ‘세상에 내마음대로 안되는게 세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식과 골프와 미원이다’ 그런데 1975년 제일제당에서 소고기로 만든 조미료 ‘다시다’ 를 만들어 내면서 미원의 아성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미원은 뒤늦게 감치미로 반격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역전이 된 것입니다. 코카콜라와 펩시도 마찬가지입니다. 2004년 이전 까지는 펩시는 코카콜라를 따라 잡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코카콜라 회장은 우리는 펩시에 대해서 더 이상 신경쓸 필요가 없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2004년 이후부터 펩시 회사는 코카콜라의 매출을 앞서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코가 콜라와 펩시만 따지면 여전히 코카 콜라의 매출이 더 많지만 전체 수익은 종합 식품 회사로 거듭난 펩시 회사가 코카 콜라에 비해 세배이상 순이익을 내고 있습니다. 코카콜라 회사가 탄산음료만 고집할때에 펩시회사는 먼저 상품의 다양화를 계획하고 건강 음료수쪽 으로 진출을 했습니다. 한마디로 변화를 추구한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브랜드만을 믿고 변화를 추구하지 않았던 코카콜라회사는 뒤처지고 만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국의 처칠은 사관학교를 졸업했는데 그 사관학교 졸업식은 성적순으로 입장하게 되어있었습니다. 그 졸업식장에서 처칠은 가장 마지막에 입장을 했습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학교 성적이 꼴찌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영국의 수상이 되었고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를 안긴 영웅이 되었습니다. 졸업하고 장교로 진출할때는 자기 동기들보다 뒤쳐져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 전쟁터와 사회생활에서는 가장 앞선자가 된 것입니다. 미국의 강철회사 사장인 카네기는 촬스 쉬브 라는 사람을 자기 후계자로 삼았습니다. 그당시 자기 회사에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들이 정말 많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네기는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한 이 촬스 쉬브 를 자기 후계자로 삼았습니다. 쉬브는 원래 정원 청소부로 입사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정원 청소만 한 것이 아니라 공장 안까지도 말끔히 청소를 했습니다. 이렇게 그의 성실성으로 인해서 그는 직공으로 채용되었습니다. 직공에서 사무원으로, 그리고 카네기의 비서로까지 자리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카네기의 비서가 된 촬스 쉬브는 아무리 늦어도 카네기가 퇴근할 때까지는 자리를 뜨지 않고 그를 보좌했습니다. 어느날 카네기가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나오는데 쉬브가 그때까지 퇴근하지 않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카네기가 왜 퇴근을 하지 않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쉬브가 이렇게 말합니다. ‘사장님께서 언제 저를 부를지 모르는데 제가 어떻게 자리를 비울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쉬브는 카네기가 가장 신임하는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카네기는 언제나 변함없고 성실하고 충실한 사람 한번도 실망시키지 않았던 그 사람을 자기의 후계자로 삼았던 것입니다.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서 정원 청소부로 시작했지만 그 회사의 쟁쟁한 사람들을 다 물리치고 카네기의 후계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이런 내용을 말씀드린 것은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이렇게 순위가 뒤바뀌는 역전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를 믿고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도 역전이 있습니다. ‘먼저 된자가 나중되고 나중된자가 먼저’ 될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신앙생활을 경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 후반부입니다. ‘1.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우리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경주를 하며 신앙생활은 경주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경주는 단거리가 아니라 마라톤과 같은 장거리 경주를 의미합니다. 마라톤 경주를 보게 되면 출발과 동시에 아주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나중에는 지쳐서 뒤처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어떤 선수는 초반 페이스는 정말 빠르지 않았는데 계속 해서 자기의 페이스를 유지하다가 나중에는 마지막 남은 힘을 내어서 남보다 결승점을 가장 먼저 통과하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먼저 앞서갔는데 나중에 보면 뒤에 처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면에 뒤늦게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이 더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해나감으로서 먼저된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 30절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30.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먼저된 자로서 나중된 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나중된 자로서 먼저된 자가 누구인지 생각해보믄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나중된 자라고 한다면 먼저된자가 될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또 먼저된 자라면 끝까지 먼저될 자로 살아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먼저된 자로서 나중된자는 누구입니까?

1. 역사적으로 보게 되면 이스라엘 민족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 죽음의 권세아래 놓여있는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구원자 메시야를 보낼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여러 민족가운데 어느 한 민족을 선택하셨는데 그 민족이 바로 이스라엘 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당시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하시고 그 땅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탄생시켰던 것입니다. 그후에 하나님은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그 선지자들로 하여금 오실 메시야를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메시야가 오실 것인데 그 메시야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것이고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것이다. 유대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이고 세상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서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다라고 구체적으로 예언 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대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메시야의 출생과 사역을 위해서 특별하게 선택을 받은 민족입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선택을 받은 민족입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천하 만민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창22장 18절 전반부 보시겠습니다. “18.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여기서 네 씨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입니다. 하지만 신약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가 복을 받습니까?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아브라함을 부를때부터 처음부터 천하 만민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하 만민을 구원하기 위해서 메시야를 보내야 했고 그 메시야를 보내기 위해서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한 민족을 선택하여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농사로 따진다면 이 이스라엘은 못자리와 같은 것입니다. 못자리가 무엇인지 아시죠? 모를 만드는 자리입니다. 모가 무엇입니까? 벼 씨를 못자리에 뿌려서 이삭을 내게 하는데 이것이 모입니다. 그런데 이 모를 가지고 가서 논에 심었던 것입니다. 벼농사는 곧바로 논에 씨를 뿌리지 않고 못자리에 씨를 뿌려서 어느정도 이삭이 난 모를 논에 옮겨 심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한 못자리와 같은 나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민족은 다른 민족보다 먼저된 자들 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선지자들이 그렇게 예언을 했던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로 오셨지만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게 된다는 이 영광스러운 복음이 십자가를 통해서 이방인들에게 흘러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나라를 잃고 오랜 세월동안 방황을 하며 살아가야 했던 것입니다.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은 먼저된 자이었지만 나중된자가 되었던 것을 알수 있습니다.

 

먼저 된자로서 나중된자는 누구입니까?

2. 본문앞에 나오는 부자 청년입니다.

본문 앞을 보시면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해서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네가 영생을 가질려면 계명들을 지켜라’ 그러면서 십계명을 말해주십니다. 그러자 부자 청년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 계명들은 내가 다 지켰습니다. 아직도 부족한 것이 있습니까?’ 그때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그러자 이 부자 청년은 재물이 많았기 때문에 근심하면서 떠나갑니다. 떠나가는 부자의 뒷모습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 마지막 30절에 있습니다. 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먼저 된자는 바로 부자 청년인 것입니다. 사실 부자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볼 때 부자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먼저 된자라 할수 있습니다. 부자가 되면 다른 사람들보다도 무엇이든 먼저 할수 있습니다. 새로운 신 제품이 생기면 다른 사람들보다도 먼저 구입할수 있습니다. 전기차도 먼저 구입할수 있고 세계여행 뿐만아니라 우주 여행도 먼저 할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이세상을 살면서 부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큰 특권입니다. 사실 부자로 살면 많은 것을 누릴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난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게 되면 부자는 언제나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앞에 나오는 이 부자 청년은 부자이기 때문에 다른 것은 먼저 할수 있었지만 영생은 잃어버렸습니다. 부자이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울수가 있고 필요를 채워줄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자이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상급을 더 많이 쌓을수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부자 청년은 탐욕 때문에 그모든 기회를 놓치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된 자로서 나중된자가 되어 버린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종교적인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당시에 기득권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누구인가 하면 대제사장 서기관 율법사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이사람들은 모두 다 부자이었고 종교적으로도 높은 신분에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정치 경제 종교 문화적인 모든 면에서 앞서가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남보다 먼저 앞서서 더 많은 것을 누리고 가졌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된자라고 생각될 수밖에 없는 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가장 천하게 여기는 나중된자라고 여기고 있는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 충격적인 이야기 이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너희는 먼저된자이었지만 나중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중된자로서 먼저된자는 누구입니까?

1.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자

27절입니다. 27.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베드로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예수님 보십시오. 저 부자 청년은 재물 때문에 그냥 돌아갔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저 부자 청년은 버리지 못했지만 우리는 다 버렸습니다. 부자 청년은 내려놓지를 못했지만 우리는 다 내려 놓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얻을수 있겠습니까?’ 사실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르실때에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부르실 때 그들은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가족과 친척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자기가 가진 것을 버릴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내가 가진것보다 더 좋은 것을 얻을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 예수를 따라가면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받을수 있게 될것이야 라고 하는 보상심리를 가지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처럼 우리도 마찬가지의 보상심리가 있습니다. 내가 희생하고 내가 봉사를 하고 내가 땀흘려 헌신을 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가 우리에게는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주님의 날이 이르게 되면 주실 그 보상에 대해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28절입니다. 28.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심판하리라’ 온 세상을 심판할 권세가 제자들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29절입니다. 29.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이 말씀은 예수를 믿으면 집도 버리고 형제나 자매도 버리고 부모나 자식을 버려야 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잘못 해석하면 이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으면 우선순위와 가치관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 버리는 것은 버려지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축복의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 씨앗을 심는것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심는대로 거두는 것은 이세상의 자연계의 원리 일뿐만아니라 하늘나라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심는대로 거두는 법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를 믿는 성도들 중에서 심지 않고 거둘려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심는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지금 제가 저희 밭에 고추씨나 오이씨를 심어서 자라고 있습니다만 한 개의 씨를 통해서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참많은 수확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이 주님을 위해서 시간을 심고 물질을 심고 달란트를 심으면 그 씨앗이 자라서 큰 수확을 거두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후 결론적으로 3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0.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나중된자로서 먼저 된자가 누구입니까? 주님을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자기의 것을 버릴수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내것이지만 주님을 위해서 내려놓을수 있는 사람은 나중에 믿었다 할지라도 먼저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려놓음‘ 이라는 책을 쓴 이용규 선교사님은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후에 세상이 알아주고 존경을 받는 그런 교수의 길을 갈수 있었지만 그 길을 버리고 몽골 선교사로 갔습니다. 이분이 첫 번째 책인 내려놓음에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내려놓을때에 하나님으로 채우시게 된다’ 그후에 두 번째로 쓴 책 ‘더 내려놓음’ 이라는 책에서는 ‘내가 죽을때에 내안에 예수님이 살아 역사하신다’ 라고 자신의 경험을 고백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려놓을수록 하나님으로 채워지고 내가 죽을수록 예수님이 내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이고백은 아무나 할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려놓음의 경험을 한 자만이 할수 있는 고백이요 간증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되기를 원한다면 끊임없이 내 마음을 비우고 내 자신을 내려놓아야 됩니다. 주님을 위해 내것을 버리고 내려놓을수 있는 사람만이 먼저된자가 될수 있습니다.

 

나중된자로서 먼저 된자는 누구입니까?

2.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않고 최선을 다하는 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중된자가 먼저된다고 말씀하시고 난이후에 그다음장을 보시면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과 포도원 품꾼의 비유가 연결이 되는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가 어떤 내용 입니까? 포도원 주인이 자기 농장에서 일할수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 새벽일찍 인력시장에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일꾼들을 만나 하루 한데나니온을 주기로 하고 자기 농장에서 일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아침을 먹고 아침 9시에 나가보니까 또 노는 일꾼이 있어서 그들에게도 한데나니온씩을 주기로 하고 자기 농장에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오후 12시 그리고 오후 세시에 나가보니까 놀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일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하루 일과를 마치기 한시간전인 오후 다섯시에 나가보니까 역시 노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포도원 주인이 아니 일을 하지 않고 왜 거기서 빈둥빈둥 노느냐 하니까 그사람이 말하기를 나에게 일을 시켜주는 사람이 없어서 이렇게 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사람을 데려다가 일을 시켰습니다. 그당시에 일꾼들은 하루 일을 해서 하루 먹고 사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주인이 일을 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사람들에게 주인은 똑같이 한데나니온씩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먼저와서 일을 한 사람들이 원망하고 불평을 했습니다. 이런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결론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0장 16절입니다. ‘16.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오늘 본문 30절에 나오는 내용과 같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다른점이 하나 있습니다.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먼저 된자로서 나중되고‘ 로 시작했지만 여기서는 ’나중 된자로서 먼저되고‘ 라고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나중된자를 강조해서 예수님이 말씀하고 있고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처음된 자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된자는 오후 다섯시에 포도원에 와서 일을 하게 된 일꾼입니다. 이 일꾼은 자기에게 일을 맡겨준 주인에 대하여 정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을 했습니다. 일당을 얼마받게 될 것인지 그것은 상관없었습니다. 오늘 일한 시간이 얼마되지 않아서 품삯을 받지 못하고 대신 내일 일을 시켜주겠다고 주인이 말해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한시간밖에 일을 할수 없는 그 일꾼은 일을 할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먼저된 자로서 나중된 자는 누구입니까? 물론 아침 일찍 주인과 계약을 하여 일을 한 일꾼입니다. 그러니까 고용된 일꾼입니다. 고용된 일꾼이니까 의무감 때문에 일을 한 것입니다. 그들은 언제 일이 다 끝나나 하고 일하는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일을 했습니다. 그럼으로 이 비유를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고자 하는 교훈은 바로 이렇게 나를 불러주시고 일을 시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면서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먼저 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15장 10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10. ...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내가 다른 사도들 보다 더 많이 수고했지만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다. 이렇게 내가 일을 할수 있고 신앙생활을 할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참 감사하다' 이런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나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시간이 날때마다 되새겨 보면서 살아갈수 있어야 합니다. 먼저된자 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먼저 될 자가 되는 것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이 나중된 자라고 할지라도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신앙생활을 해나가시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내가 부자 청년처럼, 또한 아침 일찍 와서 일을 하는 일꾼처럼 먼저 된자 라고 한다면 끝까지 먼저 된 자로 살아가십시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나중 된 자는 먼저된 자가 되시길 그리고 먼저된 자는 계속해서 먼저된 자로 살아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