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신앙의 4단계

Author
kgmcc
Date
2021-06-26 23:03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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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창세기 39장 1-5절

날짜 : 2021년 6월 27일

 

<창세기 39장 1-5절>

1.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2.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4.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5.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잘 아시다시피 요셉은 애굽나라에 종으로 팔려가서 힘들게 살아가다가 마침내 애굽의 총리 자리에까지 올라갔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요셉이 종의 신분에 있을 때 주인의 사랑을 받아서 가정 총무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내용은 요셉이 종의 신분에서 애굽의 총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축소판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고 있는 요셉이 겪었던 인생의 단계를 살펴보게 되면 요셉이 애굽총리가 되기까지 겪었던 단계를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겪었던 단계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겪게 되는 단계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본문에 나타난 요셉이 겪었던 인생의 단계를 살펴보면서 나는 과연 어떠한 신앙의 단계에 와있는가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요셉이 겪었던 인생의 단계

1. 이끌리는 단계

본문 1절 말씀입니다.

1.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누구의 손에 이끌려 갔습니까? 1절 후반부를 보시면 ‘그(요셉)를 그리로 데려간(누구입니까?)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러니까 요셉은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 이끌려서 애굽에 간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인 보디발에게 팔린 것입니다, 이스마엘이 누구입니까? 아브라함과 사라의 여종 하갈에서 난 아들이 이스마엘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37장을 보시면 미디안 상인들의 이야기도 나오고 이스마엘 사람들도 나옵니다. 창세기 37장 28절입니다. 28.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그래서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내어서 은 이십에 팔았는데 미디안 사람 상인이 아니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았습니다. 여기서 조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미디안 사람 상인들은 지나가 버리고 그후에 이스마엘 사람들이 와서 그들에게 요셉을 팔았구나 생각해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에 나오는  37장 36절에 있습니다. 36.그 미디안 사람들은 그를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더라 이번에는 미디안 사람들입니다. 미디안 사람들이 요셉을 보디발 장군에게 팔았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절은 이스마엘 사람들이 요셉을 보디발 장군에게 팔았다고 말씀합니다. 도대체 요셉의 형들은 누구에게 팔았습니까? 그리고 미디안 사람은 아브라함의 후처인 그두라를 통해 낳은 여섯아들중 네 번째 아들 미디안의 후손입니다. 그러니까 하갈이 낳은 아들인 이스마엘 후손과 그두라가 낳은 아들인 미디안은 똑같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몇가지 해석이 있는데 가장 보편적인 해석은 미디안 사람과 이스마엘 사람들로 구성된 상인들로 봅니다. 여기서 미디안 사람들은 상인들로서 무역이나 상거래를 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책임지고 이스마엘 사람들은 중간 브로커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마엘 사람들이 미디안 사람의 돈으로 요셉의 형들과 거래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았다고 설명할수 있습니다. 그당시 이스마엘 사람들과 미디안 사람 상인들은 아주 가까이 지내온 탓에 서로 구별하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당시 이 미디안 후손들과 이스마엘 후손들은 북쪽 앗수르와 남쪽 애굽 사이를 오고가면서 장사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앗수르에서 애굽으로 내려오는 길에 요셉의 형들을 만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요셉의 형들에게 은 20개를 몸값으로 주고 요셉을 사가지고 애굽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러니까 요셉은 자기가 원해서 간 애굽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던 요셉을 시기하고 질투를 한 형들이 요셉을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몸값을 지불한 이스마엘 사람들 손에 이끌려 요셉은 애굽에 가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꿈과 비젼이 있어서 간 것이 아니라 이끌려서 가게 되었던 애굽입니다. 아마도 그당시 요셉은 자기가 애굽에 가는 동안 ‘이제 나는 내 꿈을 한번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내인생이 끝나는구나’ 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겪었던 이러한 과정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겪는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원하는 것도 아니고 계획한 일도 아닌데 주변사람들이나 환경에 이끌려서 가게 되기도 하고, 또 해야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기 미국에 어떻게 오시게 되었습니까? 남편의 손에 이끌려서 오게 되었거나 아니면 반대로 아내의 손에 이끌려서 오신 성도님이 계실 것입니다. 아니면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서 여기 미국에 오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제 아내는 남편인 제 손에 이끌려서 여기 미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떻게 보면 가족들의 손에 이끌려서 여기 미국에 오게 되었다 할수 있습니다. 그래요. 이렇게 어떤 사람이나 어떤 환경에 의해서 이끌리게 되는 과정은 믿는자나 안 믿는 자나 관계없이 모두가 다 똑같이 겪게 된다고 할수 있습니다. 다만 한가지 차이가 있다면 믿는 성도들은 그 이끌림이 하나님의 섭리임을 믿는다는 것에 있습니다. 성경은 요셉이 이스마엘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애굽에 갔던 이사건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시편 105편 17절입니다. ‘17.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가(하나님이) 한사람을(요셉이죠) 앞서 보내셨음이여....’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요셉이 비참한 종의 신분으로 팔리게 되었고 그리고 장사꾼의 손에 이끌려 애굽에 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요셉을 앞서 애굽에 보내셨다’ 라고 말씀합니다.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팔려간지 13년 후인 서른 살의 나이에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그리고 그후 12년이 더 지나서 그러니까 요셉이 애굽에 간지 25년이 되었습니다. 그당시에 흉년이 들어서 애굽에 곡식을 사러온 요셉의 형들을 25년만에 요셉은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애굽총리가 동생 요셉임을 알게 된 형들이 옛날 자기들이 한 행동으로 때문에 두려워 합니다. 그때 요셉이 형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창 45장 5절입니다. 5.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얼마나 위대한 신앙 고백입니까? 요셉의 위대한 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러한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비록 내가 원하지 않았고 주변환경에 의해서 어쩔수 없이 이끌려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요셉과 같은 고백을 할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 요셉에게 이렇게 한번 물어보았다고 가정해보십시다. ‘요셉 당신은 왜 조국을 떠나서 이방나라인 애굽에 오게 되었습니까? 그러면 요셉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형들이 저를 이스마엘 사람들 손에 팔아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 이끌려서 할수 없이 이곳 애굽나라에 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대답하겠습니까? 여기서 한가지 더 물어본다고 가정해보십시다. ‘요셉, 애굽에 온 당신은 어떻게 해서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일하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물론 이스마엘 사람들이 나를 보디발 장군에게 팔아넘기는 바람에 제가 그집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이 이렇게 대답을 하겠습니까? 그것은 사람들 눈에 보이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차원에서의 대답입니다. 우리가 믿는자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보내셨다 라고 고백하며 살아야 할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이곳에 보내셨다면 이곳에 보내신 분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보내셨다 그럼으로 나는 이곳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한다‘ 이런 마음가짐만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용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곳이 어디인지 간에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을 깨닫게 해주시고 할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사람의 눈에는 어떻게 비치든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보내셨다‘ 라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셉이 겪었던 인생의 단계

2. 보여주는 단계

본문 2절 3절입니다. 2.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보며..., 보았더라’ 주인 보디발은 요셉에게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주인 보디발은 요셉을 보면서 하나님을 본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주변사람들이 믿는 성도인 저와 여러분을 보면서 하나님을 볼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보일수 있습니까?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을 직접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영이신 하나님을 육을 가진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볼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우리가 직접 보여 줄수 잇겠습니까? 그리고 죄를 짓고 살아가는 우리 인생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직접 볼수 없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또 다른 한가지 방법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신실하심과 온유하심과 겸손하심을 믿는 자녀인 우리가 보여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기 샬롯 지역에서 저를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 아버지의 모습을 보지 못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를 보면 제 아버지의 모습을 알수 있습니다. 제가 아버지의 모습을 많이 닮았습니다. 모습뿐만 아니라 생각이나 행동까지도 닮았다고 하는 얘기를 어릴때부터 많이 들어왔습니다. 왜요? 아버지와 아들이니까요. 그래요. 우리가 이렇게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예배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보고 의지하는 생활을 하다보면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가게 됩니다. 하루는 제자 빌립이 예수님에게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옵소서’(요14:8) 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9절입니다. 9.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 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게 되면 자연히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인내하고 예수님처럼 겸손하고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예수님처럼 섬기고 예수님처럼 온유하고 예수님처럼 절제를 하며 살아간다면 주변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되는 칭찬중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칭찬의 내용은 바로 ‘아들아 네가 나를 꼭 닮았구나’ 것입니다. 그러믕로 바라옵기는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저와 여러분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볼수 있으시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셉이 겪었던 인생의 단계

3. 섬기는 단계

4절입니다. 4.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섬기매(He served him). 종의 신분인 요셉은 주인 보디발의 집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면서 지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한국에서는 3D 라고 하죠. danger 하고 dirty하고 difficuity한 일이다 해서 3d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이러한 일들은 잘 할려고 하지 않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여기 미국을 비롯한 모든 나라에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일을 할려고 하지 않습니다. 위험하고 힘들고 더러운 일이었지만 요셉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불평을 하지 않고 묵묵하게 섬기면서 일을 해왔습니다. 요셉은 자기와 같이 일하는 종들이 불평을 하고 게으름을 피워도 최선을 다해 일을 했습니다. 어떻게 해서 요셉이 이렇게 묵묵하게 일을 할 수 있었습니까? 요셉이 다른 종들보다 좀 더 쉽고 좀더 편안한 일을 맡았기 때문입니까? 그랬다는 내용은 본문에 없습니다. 요셉이 이렇게 묵묵하고 성실하게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단 한가지 이유입니다. 무엇입니까? 주인 보디발로부터 받았던 은혜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요셉은 자기에게 입히고 먹이고 잠을 자게 해준 주인의 은혜를 생각했습니다. 요셉은 자기에게 맡겨진 더럽고 힘들고 어려운 일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에게 베풀어준 주인의 은혜를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힘들고 어려운 일거리를 맡기는 주인에 대해 얼마든지 불평하고 짜증내며 살아갈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인 앞에서는 불평을 할 수가 없다 할지라도 자기와 같은 동료들에게는 얼마든지 같이 맞장구치면서 주인 욕을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요셉은 그렇게도 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자기가 보디발 주인에게 받았던 은혜만을 생각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자기에게 잠자리를 제공하고 먹을 것을 제공하면서 살아가게 해준 그 은혜만을 생각하면서 섬기고 봉사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내게 주어진 환경에 불평하지 아니하고 묵묵하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나갈수 있는 길은 바로 내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에 대해서 감사할 때 우리는 내게 주어진 일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원망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 해나갈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우리는 모두가 다 구멍이 난 배를 탄 사람과 같습니다. 다행이도 내가 탄 배는 구멍이 한 두개 밖에 나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들이 탄 배는 수십개, 수백개의 구멍이 나 있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배가 바다에 가라앉게 되는 것은 시간의 문제일뿐 입니다. 결국 모두가 다 가라앉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세상법이 정하고 있는 수백 수천가지 죄를 다 짓었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라 그중에 한 두가지만 어겨도 죄인입니다. 많은 죄를 지었건, 적은 죄를 지었건 하나님이 보시기엔 모두가 다 똑같은 죄인입니다. 그리고 죄인이 가야 할 곳은 지옥입니다.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값을 지불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생명을 바치신 예수님을 믿는 것만이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기게 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입니다. 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그래요 우리가 천국에 가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예수님을 믿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예수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용서하시기 위해, 저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 저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세요. 저를 구원해 주십시요.” 이 사실을 진정으로 믿고 고백한다면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믿게 된 것은 이세상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축복중에 가장큰 축복이고 가장 큰 은혜입니다. 이렇게 주님이 나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일이 있다할지라도 묵묵하게 내게 주어진 자리를 섬기며 봉사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아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셉이 겪었던 인생의 단계

4. 복의 근원이 되는 단계

5절입니다. 5.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위하여 애굽사람의 집에 복을 내려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주인 보디발은 요셉 때문에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셉은 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복의 근원이 되는 이 과정은 믿는 성도들이 제일 마지막에 겪게 되는 과정이라 할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어떠한 환경속에 있든지 간에 묵묵하게 섬기고 봉사하고 희생하는 일을 해나갈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해나갈 때 우리는 복의 근원이 되는 존재로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보디발 장군이 예뻐서 그 집에 복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집에 있는 요셉 때문에 그집이 복을 누리며 살게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열두제자들을 훈련시키신 다음에 둘씩 짝을 지어 보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0장 12절, 13절입니다. 12.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13.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그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집이 평안을 받기에 합당하면 그 평안의 복이 임할 것이고 그집이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의 복이 제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그집에 평안의 복을 받을 사람이 있으면 그집이 복을 받고 그집에 복받을 사람이 없다면 그복은 그집에 머물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의 집에 복받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저와 여러분이 어떤 집에 가서 평안의 복을 빌어주었다고 하십시다. 그런데 그집의 아내는 믿음의 생활을 잘해나가는데 남편은 불신자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돈을 잘 벌어옵니다. 남편은 자기가 돈을 잘 벌어 오기 때문에 집이 평안하고 안전한줄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돈 때문에 집안이 평안하고 안전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복 받을 만한 사람이 있어야 그집이 평안의 복을 누릴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집안에 복받을 사람이 있다는 것이 가장 감사해야 할입니다. 우리의 형제, 자매중에서 복받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축복입니다. 그래요. 돈이 있고 능력이 있다고 해서 집안이 평안한 것은 아닙니다. 교인이 많다고 해서 교회가 평안한 것도 아닙니다. 진정한 복은 물질이나 사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복을 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에 있습니다. 그럼으로 먼저 내가 복을 받을만한 사람이냐 아니냐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으로 인해서 내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을수 있는 복된 존재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정리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동안에 요셉처럼 이끌리는 과정을 겪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때는 누구를 탓하지 말고 주님이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셨다고 고백하며 살아가도록 하십시다. 그리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동안에 저와 여러분을 보면 예수님을 볼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저와 여러분을 보면서 사탄 마귀를 보게 된다면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 것입니까? 자녀는 자기 아버지를 보여주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지 마귀의 자녀는 아닙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동안에 요셉처럼 섬기고 봉사할때가 있습니다. 섬김과 봉사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우리는 지금 내게 주어진 힘들고 어려운 섬김과 봉사를 이겨낼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땅에서 죽어 천국에 갈수 있게 된 것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은 것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이땅에 보내주시고 아들 예수님은 내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생명을 바치신 것을 내가 믿은 것 뿐 인데 이러한 나를 하나님은 자녀 삼아주시고 천국에서 영원히 살아갈수 있게 해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은혜로 된 것이지 내가 잘나고 많은 일을 해서 얻게 된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살아갈 때 지금 내게 주어진 일이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묵묵하게 해나갈수 있는 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 주인에게 받은 은혜만을 생각하며 섬긴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주님의 은혜만을 생각하며 내게 맡겨진 일을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복의 존재로 살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요셉과 같이 복의 근원이 되는 존재로서 살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섬기시는 가정과 섬기시는 교회와 섬기시는 직장과 사업터전이 형통하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