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하라고 주신 일
<요한복음 17장 2-4절>
2.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4.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인생은 해석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이 주는 의미는 어떻게 해석되느냐에 따라서 행복이 될수도 있고 불행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무가지 에 앉아 지저귀는 새를 보고, “새가 노래한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새가 운다” 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새가 노래한다고 보는 사람이 새가 운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더욱 밝고 긍정적인 인생을 살아간다고 할수 있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이 자기 형들이 자기를 시기하고 미워했기 때문에 자기를 팔아버렸다고 해석하지 않았습니다. 돈 때문에 자기를 은 20세겔에 팔았다고도 해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대신에 하나님이 자기를 애굽에 보내셨다고 해석 했습니다. 훗날에 자기 형들과 그 후손들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자기를 가장 먼저 애굽으로 보냈다고 해석했습니다. 요셉은 이렇게 자신이 당한 고난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며 살았기 때문에 형들의 잘못을 진심으로 용서해 줄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관점에서 모든 일들을 해석하며 살아갈 때 우리도 요셉처럼 참된 자유와 회복을 얻으며 살아갈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예전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활기차게 살아갈 수도 있고, 반대로 염려와 걱정 속에서 힘들게 살아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용규 선교사님을 아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이분은 서울 대학과 서울 대학원을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딴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굉장히 밝은 미래가 보장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몽골에 가서 8년 동안 사역을 하고 그후에 지금은 인도네시아에 가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몽골에 가서 사역을 할 때 세상 사람들중에는 이 선교사를 보고 잘못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용규 선교사는 인간의 영혼을 살리는 일에 헌신하며 살아가는 자신의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라고 언제 어디에서나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볼때는 예수님은 실패한 인생입니다. 예수님이 3년 반 동안 사역을 하셨지만 그 결과가 초라하였기 때문입니다. 열두명의 제자들과 자신을 따르는 몇몇 여인들 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그중에 한 제자는 예수님을 팔아넘겼고 수제자라는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저주를 하면서 모른다고 부인을 했습니다. 그 나머지 제자들도 예수님이 잡히실 때 모두다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혼자 남아 잡히시고 그후에 사람들의 비웃음과 조롱을 받으며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을 맞이 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마지막을 보면서 ‘야, 저분은 참 성공하신 분이시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처럼 실패한 인생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게 되면 예수님은 실패한 인생이 아니라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공을 이루신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권세가 깨트려 졌고 그래서 우리 인생이 영원한 생명을 가질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성공입니까? 몇 천만원이나 되는 옷을 입고 다니고, 몇억 하는 차를 타고 살아가는 인생이 성공입니까? 남보다 훨씬 더 좋은 집에서 살아가는 것이 성공입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이 성공입니까?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삶이 성공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 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0장을 보시면 주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면 누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수 있을까 에 관심을 가지고 제자들끼리 서로 다투고 있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좀 더 커지고, 좀 더 많아지고, 좀 더 유명해지고, 좀 더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을 인생의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을 인생의 성공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요한복음 6장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당시 남자 장정만 오천명이니까 여자들과 아이를 다 포함시키면 약 2만명은 될 것입니다. 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그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은 사건이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그때 이 오병이어 기적으로 인해 배가 불렀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속히 그 자리를 떠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15절 입니다.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왜 혼자떠나신 것입니까? 열 두명의 제자들과 예수님의 생각이 서로 달랐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야 드디어 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려고 하는 구나. 이제 앞으로 우리도 성공의 길을 가게 되겠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혼자 산으로 떠나 기도하신 것입니다. 내년에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선거가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뉴스 기사를 보면 여당과 야당 할 것 없이 대통령 출마 선언하는 정치인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정치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더 많은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하는 행동을 앞으로 자주 볼수 있게 될 것입니다. 왜냐 하면 자기주변에 사람들이 많아야 대통령이 되는길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중 집회도 자주 열어 많은 사람들을 모으게 하는 일에 열중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정반대의 행동을 하십니다.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자기를 왕으로 추대할려는 사람들을 피하신 것입니다. 왜요?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성공입니까? 우리는 무엇이 성공인가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누구입니까? 여러분, 믿는 성도인 우리는 세상에 속한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동의하십니까? 그리고 내가 하나님께 속한 자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성공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성공이라고 말하면 성공이고, 하나님이 실패라고 말씀하시면 우리 인생은 실패입니다. 본문 4절 말씀을 다시한번 보시겠습니다.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예수님은 짧은 33년의 인생을 사시면서 마지막 3년 반 동안 공생애 활동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이땅에 오셨을때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사셨습니다.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땅에 계시는 동안 마침내 이루신 것이 무엇입니까? 본문 2절 3절을 보시겠습니다.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2절, 3절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영생’ 입니다. 2절을 보시면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그리고 3절을 보시면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이렇게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하라고 주신 일은 바로 영생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으시기 직전에 ‘다 이루었다’ 라고 외치십니다. 무엇을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까? 아버지께서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이루었다는 원래의 의미는 값을 지불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으로 우리 인간이 진 죄 값을 지불하심으로서 다 이루신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하라고 주신일을 아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하라고 주신 그일을 마침내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는것과 이루는 것에는 굉장한 차이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하나님의 뜻을 압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기도 도 합니다. 그런데 기도하고 아는 것으로 끝나버릴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루지 못할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아신 것을 기도하시고 또 그것을 이루어내신 것입니다. 무엇이 성공입니까? 내가 소원하는 일,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이루는 것이 성공입니까? 물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일을 보면 내가 소원하고 좋아하는 일도 많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내가 소원하고 내가 좋아하고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 아닌 것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하라고 주신일이 무엇이었습니까? 고난의 잔을 마시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몸을 입고 계셨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시는 것은 너무나 큰 고통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여 할수만 있으면 이 십자가를 지는 일을 피하게 해달라’ 고 기도를 한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를 지십니다. 내가 좋아하고, 내가 하고 싶고, 내가 이루고 싶은 것만을 하는 것이 성공은 아닙니다.
벤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그림을 잘 그리고 시도 잘 쓰고 노래도 잘했습니다. 아주 다양한 달란트를 가지고 있었던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앙이 깊으신 부모님의 권유 때문에 벤은 신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벤이 신학교를 졸업하고 시골의 조그마한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동안에 자기 친구들은 유명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함께 그림을 그리던 친구는 유명한 화가가 되었고, 함께 시를 쓰던 친구는 이름이 있는 시인이 되었고, 같이 노래를 했던 친구들은 유명한 성악가가 되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은 시골의 조그마한 교회에서 몇 명되지 않은 성도들을 돌보며 목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하루 이 벤 목사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모습을 보니 웬지 자신이 초라하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라도 이 목회를 그만두고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가지고 그길로 나가면 성공을 하지 않겠는가? 라는 고민을 하며 갈등속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 벤 목사가 성경을 읽다가 오늘 이 본문 4절 말씀에서 큰 감동을 받게 됩니다. 4절 말씀을 다시한번 보시겠습니다.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이 말씀을 통해서 벤 목사는 인생의 진정한 성공이란 무엇인가 라고 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벤 목사님이 기독교 신앙 잡지에 자신이 겪어왔던 갈등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글을 올립니다. 그리고는 진정한 성공은 하나님이 내게 하라고 하신 일을 내가 이루어 나가는 것에 있다 라고 말하면서 ‘나는 내 친구보다 더 성공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음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한다‘ 라는 고백하면서 이 벤 목사님은 글을 마칩니다.
여러분 성공은 내가 얼마나 돈을 많이 벌었느냐가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유명한 사람이 되었느냐도 아닙니다. 진정한 성공은 하나님이 내게 하라고 하신 일을 이루어 나가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면 왜 주님이 내게 하라고 하신일을 내가 이루는 것이 성공입니까?
그것이 곧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4절 후반부를 보시겠습니다.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그다음에는요?)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를 이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오늘 본문 앞 1절에서 5절까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보시면 ‘영화’ 라고 하는 단어가 5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주신 일을 하심으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했다고 예수님은 거듭 강조해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를 드러내는 사역을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그런데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의 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지체입니다. 예수님의 몸입니다. 예수님은 머리가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몸 입니다. 그러니까 머리되신 예수님의 목적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면 몸인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머리되신 예수님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살기를 원하시는데 몸인 우리들은 나 자신을 위한 일에만 빠져 정신없이 살아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머리 따로 몸 따로 살아간다면 이것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 전서 10장 31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무엇을 하든지' 입니다. 내가 집안에서 음식을 하든지 세탁소에서 일을 하든지 가게에서 사업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사람은 돈이 없어서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좀전에 살펴본 이용규 선교사가 돈은 없었지만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외롭고 고독하기 때문에 불행한 것도 아닙니다. 예례미야 선지자나 침례 요한은 얼마나 외롭고 고독하게 살아왔습니까? 문제가 너무 많고, 받은 상처가 너무 많기 때문에 불행한 것도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수많은 문제의 풍랑 속에서 지내왔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한번도 ’나는 불행하다‘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불행한 것은 목적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목적, 하나님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그일을 하며 살아갈때 우리의 인생은 행복한 것입니다. 왜요?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하나님이 그냥 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행복은 내가 행복을 추구한다고 해서 찾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땅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행복하길 원합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공부도 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결혼도 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고 사업도 합니다. 하지만 행복해지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도 행복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왜요? 행복은 노력만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행복을 붙잡을려고 할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올바른 목적대로 살아갈때에 얻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일을 내가 하고, 하나님의 목적대로 살아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내게 하라고 주신일이 무엇입니까? 성경에 기록된 은사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은사를 주신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주신 일의 종류도 다양한 것임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나 하고자 하는 그일이 영혼을 죽이는 일이 아니라 살리는 일이라고 한다면 그일이 하나님께서 하라고 주신 일 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가르치고 내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환자를 돌보고 내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청소를 하고 가게에서 일을 한다면 바로 그일이 바로 하나님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입니다. 그런데 내가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만 그 일을 해나간다면 그 일은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은 아닙니다. 지금 제가 지금 한 이 말의 의미는 우리가 인생을 열심히 사는것도 중요하지만 방향은 훨씬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방향이 왜 중요합니까? 방향은 곧 목적과 연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3장을 보면 얍복강 나루터 근방에서 야곱과 형 에서가 20년 만에 만나서 서로 부둥켜안고 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러한 만남 이후에 형 에서가 야곱에게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을 같이 가자’ 고 말합니다. 하지만 야곱은 그동안 긴 여행을 해온탓에 몸이 피곤한데 천천히 뒤따라 갈테니까 형에게 먼저 가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형 에서는 자기가 살고 있던 세일로 먼저 갑니다. 하지만 야곱은 세일로 가지 않고 숙곳으로 갑니다. 창세가 33장 16, 17절입니다. 16.이 날에 에서는 세일로 돌아가고 17.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으므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야곱은 형이 살던 곳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이 가야할 목적지는 형 에서가 사는 곳인 세일이 아니라 다른 곳, 세겜으로 가야했기 때문입니다. 목적지가 달랐습니다. 그래서 다른 방향으로 간 것입니다. 목적지가 다르면 방향이 달라지게 됩니다. 여러분, 목적지가 다른 상황에서 같이 동행을 하게 되면 그것은 불행입니다. 좋았던 감정이 오히려 상하게 될수 있고, 심하면 옛날처럼 다시 원수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야곱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형 에서를 만나 진심으로 화해는 했지만 같이 동행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목적지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이삭이 죽었을때 장사를 지내기 위해 형 에서와 야곱이 만나는 기록은 있지만 서로 같이 살지는 않았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와 동행하기 보다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했습니다. 창세기 33장 18절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18.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평안히 가나안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사실 따져보면 야곱은 평안히 세겜에 온 것은 아닙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을 떠날 때 뒤에서 외삼촌 라반이 쫓아왔습니다. 그리고 앞에서는 형 에서가 복수의 칼을 갈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야곱의 여행길은 한치앞도 내다볼수 없었던 두렵고 불안한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평안히 왔다'고 말씀합니다. 왜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지를 향하여 갔기 때문입니다. 목적지가 바르니까 방향도 물론 올바른 방향이었습니다. 그래서 환경은 거칠고 힘들어도 하나님과 동행 할수 있었고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평강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영적인 가나안땅 천국입니다. 천국에서 하나님께 영원히 예배하며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목표가 흔들리면 삶이 흔들리게 됩니다. 이 목표를 잃어버리면, 내 자신이 살아갈 이유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목적과 목표를 혼동하며 살아가면 안됩니다.
사업가가 큰 회사의 ceo가 되고 정치가가 대통령이 되고 육군사관 생도가 육군 참모 총장이 되는 것은 목적이 아니라 목표입니다. 인생의 목표와 목적은 다릅니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이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이루어나가는 것에 있습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에 있습니다. 이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목표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 목적이 내 인생을 이끌어가야지 목표가 내 인생을 이끌어가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목표가 내인생을 이끌어가게 되면 내인생이 비참해지고 낙심 할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대학교에 들어갈려고 열심히 공부를 하던 학생이 시험에 떨어졌다고 가정 합시다. 그래서 다른 대학교에 들어갔다면 그것은 목표가 바뀐것이지 목적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목표는 달라질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는 것은 달라질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서울 대학교에 들어가고 내가 사업에 성공해야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서울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고 사업에 실패한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것입니까?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예를 들어 만일 내가 윗사람들에게 뇌물을 주지 않고 정상적인 방법으로 사업을 했기 때문에 사업이 망했다고 하십시다. 그 사업의 실패는 세상사람들의 눈에는 실패로 보이겠지만 하나님은 그 사업의 실패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으므로 그사람은 인생의 성공자입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말씀하는 성공의 기준은 세상과 다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인생의 목적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인생의 목적대로 살아가지 않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 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13장 36절 말씀입니다. “36.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다윗은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일을 이루며 살아가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가 이땅위에 살다가 이땅 위의 삶을 마치는 순간 우리의 묘비에 이러한 문장의 내용이 새겨져 있다면 우리는 인생에 성공한 것입니다. ‘누구누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다가 잠들다’ ‘임대문 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다’ 저와 여러분의 묘비에 이렇게 새겨질수가 있다면 우리는 진정한 인생의 성공자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 김 재벌은 평생동안 백만불을 모으고 잠들다’. ‘여기 박 갑부는 평생동안 집 열채를 사 모으고 이곳에 잠들다’ 이렇게만 평가를 받는다면 그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밖에 없는 생명, 한번뿐인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은 너무나 짧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많고 해야할 일이 많지만 그 누구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주님이 나에게 하라고 주신 일을 이루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일을 해나갈 때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는 일을 해나갈 때 우리의 인생은 성공인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하라고 주신 그일을 하며 살아가십시다. 그래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가심으로 말미암아 후회함이 없는 성공한 인생을 살아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