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가?

Author
kgmcc
Date
2021-07-24 22:10
Views
39
본문 : 마태복음 5장 1-12절

날짜 : 2021년 7월 25일

 

<마태복음 5장 1-12절>

1.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마찬가지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도 복을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는 새해가 되면 만나는 사람들마다 하는 인사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입니다. 오래전에 우리나라에서 유행했던 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부자가 되세요’ 입니다. 그때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서로 ‘부자 되세요’ 라는 말을 덕담삼아 이야기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는 ‘부자가 되는 것이 곧 복을 받는 길이다’ 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축복과 보통 우리 인간들이 생각하고 있는 축복은 그 내용이 다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믿는 성도로서 원하고 바라는 축복과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축복은 그 내용이 다른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축복의 본질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말씀 하시고 계시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여기서 축복과 행복은 다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메세지를 전하는 동안 축복 과 행복의 단어를 혼합하여 사용할지라도 같은 의미로 생각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축복과 행복의 본질을 우리가 알고 신앙 생활해나가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축복의 본질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내가 어떠한 상황에 있다할지라도 나는 복된 존재로 살아갈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축복의 본질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같이 은혜의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이것을 쉬운 말로 표현하면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로 바꾸어 생각해볼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행복의 본질은

첫째로 마음의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3절과 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 심령이 가난하다 마음이 애통하다 이것은 마음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 5절 이하에 나오는 단어도 다 마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5절에 나오는 ‘온유한자는 복이 있나니’ 에서 ‘온유함’ 도 마음의 상태이고 ‘의에 주리고 목마름도’ 마음의 상태이고 ‘긍휼히 여김’ 도 마음의 상태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도’ 외부의 환경이 아니라 내부에 있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축복과 행복은 외부의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알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내가 내 마음을 다스림에 따라서 축복을 받을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사람들은 내가 조금만 더 돈을 벌면 내가 조금만 더 큰 집을 가지게 되면 내가 조금만 더 출세를 하게 되면 행복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를 하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행복은 내 마음에 있는 것이지 외적인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를 들어보십시다. 저와 여러분의 자녀가 갑자기 아프게 되어서 병원에 데리고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의사가 아픈 자녀를 진찰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평상시에 내자식이 아프지 않고 하루 하루 지냈던 그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축복된 하루이었는지 깨닫게 되어집니다. 아파서 힘들어 하는 자식의 모습을 보면서 평상시에는 아무런 느낌을 가지지 못하고 지냈던 그 하루 하루가 얼마나 축복의 하루이었는지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행복은 마음의 상태에 있습니다. 얼마전에 세계적인 투자자인 짐 로저스(Jim Rogers) 가 인터뷰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짐 로저스는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와 함께 세계 3대 투자자로 불리는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짐 로저스가 강조했던 말은 'Be boring' 이었습니다. 몇 번 강조해서 그 말이 제 기억에 남았습니다만 그 의미는 주식을 샀는데 한달 두달 일년 이년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 할지라도 계속 기다리면 주식가치가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한번 투자하면 10년은 기다리는데 그 10년 동안 지루함과 따분한 시간의 연속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지루함과 따분함을 인내하고 극복해나가면 축복의 길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짐 로저스가 말하는 내용을 들으면서 저는 ' 그가 말하는 축복의 내용은 성경과 다르지만 축복을 누라게 되는 그 원리는 같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금전에 제가 예를 들었던 것처럼 자녀가 아프지 않고 지내던 그 평범하고 따분해 보일수도 잇는 그 하루 하루가 내 마음 먹기에 따라 행복한 하루하루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진리를 우리 마음이 깨닫지 못하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이 가난하고 애통한 마음이 있고 온유한 마음이 있고 청결한 마음이 있게 되면 이 진리를 깨닫을수가 있게 됩니다. 슬프면 슬픈대로, 지루하면 지루한대로 평범하면 평범한대로 이 하루하루가 우리의 마음먹기에 따라서 축복되고 행복한 하루가 되어질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 불행한 사건이 생깁니까? 왜 일이 자꾸만 꼬이는 것입니까? 그것은 지금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가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해지기 위해서 내가 욕심을 부리는 것입니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자식도 남편도 아내도 부모님도 희생시키기 때문에 우리는 축복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 늙게 되어 집에 와 보니까 그제서야 그동안 자기가 찾던 행복이 집에있더라 라고 뒤늦게 후회를 하고 고백을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습니다. 행복과 축복의 본질은 내 마음의 상태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7장 21절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1.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있다 저기있다 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외부적인 환경에서 행복을 찾지 말고 내 마음에서 행복을 찾으면 내 가정이 천국이요, 내 사업터가 천국이요 그리고 내 교회가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지금 저와 여러분이 어떠한 환경에 있다 할지라도 내마음에서 먼저 천국을 이룰수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축복의 본질은 행복의 본질은

둘째로 참된 축복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성경을 보시면 '심령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런 순서로 되어있지만 원래 희랍 원어 성경을 보시면 makarios (복이 있도다)라고 하는 단어가 먼저 나옵니다. 그래서 성경 원어대로 번역을 한다면 복이 있도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아. 복이 있도다 애통한 사람들아. 복이 있도다 온유한 사람들아... 이런식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영어 성경에서도 마찬가지로 Bless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나옵니다. 본문 3절 4절 영어성경을 보시면 “3.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 4. Blessed are those who mourn” 이렇게 Blessed라는 단어가 먼저 나옵니다. 이곳 미국에서 크리스챤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질때 그사람들이 주로 하는 인사는 주로 ‘God bless you!’ 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말씀하는 행복은요 happy가 아니라 bless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행복은 happy 혹은 happiness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세상에서의 행복이지 성경에서 말하는 행복은 아닙니다. 이 happy 라고 하는 단어는 happen 혹은 happening 에서 나왔습니다. happening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우연히 어떤 일이 생겼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내가 계획하고 생각한것이 아닌데 예상하지 못했던 어떤 일이 생길때 우리는 happening 이 생겼다 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씀하는 행복은 우연히 얻어지게 된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행복과 축복은 "blessing" 에 있습니다. 이 Blessing 혹은 Bless 는 bleed 혹은 bleeding에서 나왔습니다. 동사로는 피를 흘리다 출혈하다이고 명사로서는 피흘림, 출혈을 의미하고 있죠. 이것은 구약에서 제사장들이 양이나 염소를 잡아서 그 피를 제단에 뿌리고 제사를 드린 모습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당시 제사장들이 제단위에 피를 뿌린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죄를 짓게 될 때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함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죄를 용서함 받게 위해서 양이나 염소를 데리고 와서 그 짐승에게 안수를 하는 것입니다. 죄가 이전이 되는 것이죠. 그리고는 그 짐승을 죽이고 그 피를 제단에 뿌리는 것입니다. 사람대신에 짐승이 피를 흘려 죽은 것이죠. 그래서 인간이 지은 죄가 용서함을 받게 되고 그래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신약에 와서 어린 양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매달려서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축복인 Bless는 예수님께서 내지은 죄를 위해서 피를 흘리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히브리서 9장 22절에 “22.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blessed는 우리말로는 복이 있도다 라는 뜻인데 원래의 의미는 피흘림을 받았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피흘리심을 믿고 용서하심을 받은자는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설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잘알고 있는 시편 1편을 보시면 복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복이 있습니까? 1절에서 3절까지 보시겠습니다. “1.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어떤 사람이 복이 있는 것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복이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복된 나무는 시냇물 가에 심어져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하나님과 올바로 관계하는 자리에 있기만 하면 행복한 존재로 살아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흘리신 그 보혈의 피가 저와 여러분의 죄를 사해주심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질수가 있고 축복의 존재가 된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의 피를 믿고 살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올 한해 축복되고 행복한 인생을 살수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축복의 본질은, 행복의 본질은

세째로 이웃과 바른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7절과 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 이 말씀은 내가 만나는 이웃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고 화평하게 할때 내게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웃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갈 때 복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2장 30절과 31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고 또 내가 이웃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갈 때 내가 행복하고 축복된 삶을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내 행복을 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내 행복을 위한 존재로 생각을 하고 그 사람들을 대합니다. 그런데 상대방도 마찬가지로 나를 자기의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을 하면서 나를 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서로 행복하게 인생을 살아가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인은 주인대로, 종업원은 종업원대로 상대방을 자기의 행복을 위한 존재로 생각을 하고 일을 하기 때문에 서로 행복한 직장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남편을 내 아내를 내 자식을 내 부모를 나의 행복을 위한 수단과 도구로 생각할 때 내 가정에 행복과 축복은 없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인격적으로 올바로 대하고 배려할때 내게 참된 행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영국의 속담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하루가 행복하기를 원하는가? 이발을 하라.(이발이나 미장을 하고나면 하루정도는 기분이 좋죠). 한 주가 행복하기를 원하는가? 여행을 하라. 한 달을 행복하기를 원하는가? 새 집으로 이사를 하라.(새집에 가서 한달동안은 행복하게 지낼수가 있습니다. 한달이 지나고 집값 모게지 페이먼트를 내라고 하는 bill을 받게 되면 행복은 그 순간부터 파랑새가 되어 날아가 버리는 것이죠. 한 해가 행복하기를 원하는가? 결혼을 하라. (그래도 영국사람들은 신사라서 그런지 결혼을 하게되면 일년 동안은 싸우지 않고 행복하게 지내는가 봅니다.). 한평생 행복하기를 원하는가? (한평생 행복하게 살수가 잇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한평생 행복하기를 원하는가? 그러면 이웃사람을 섬기라”. 아주 성경적입니다. 그래요 내가 이웃사람을 섬기는 생활을 할때 우리는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수 있습니다. 행복은요. 내가 남을 섬기는 생활을 할때 느낄수가 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시간을 주고 물질을 주고 나의 귀한 것을 줄때 나는 행복을 느낄수 있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받을때 보다 줄 때 훨씬 더 강한 것입니다. 나의 희생으로 인하여 상대방이 행복함을 느낄때 그 사람이 행복한 것보다 내가 훨씬 더 행복합니다.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내가 만들어 온 음식을 다른 사람들이 먹고 행복해할 때 나는 너무너무 행복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먹는 사람이 행복하겠어요? 먹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 만들어온 사람이 더 행복하겠습니까? 경험을 해보신 성도님들은 잘 아실것입니다.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할 때 나는 그 사람들보다 훨씬 더 행복한 것입니다. 내가 돕고 후원해준 사람이 기뻐하고 감사하게 여길 때 나는 감격하고 감동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봉사를 해서 다른 사람들이 편안하게 예배를 드릴수가 있고 행복하게 교회생활을 할 수가 있다면 나는 훨씬 더 행복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 많은 가정들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가정이 무너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헌신이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을 합니다. 섬기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새는 결혼식 때 연주되는 결혼 행진곡이 결혼의 행진곡이 아니라 이혼의 행진곡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혼하는 사람들을 보면 사람은 돈도 있고 지식도 있고 얼굴도 미남이고 미인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기에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행복할수 있는 조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이혼을 합니다. 왜요? 행복은 소유나 외부적인 환경에 있지 않고 상대방에 대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고 섬길때 행복을 누릴수가 있습니다. 가정에서 헌신이 없으면 행복한 가정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직장에서 헌신생활을 하지 않으면 행복한 직장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헌신이 없다면 행복한 교회생활은 없는 것입니다. 헌신을하고 섬기는 생활을 해야 사람도 얻고 행복과 축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적당히 생활할려고하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불행입니다. 그럼으로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웬지 모르게 내가 공허한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헌신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싸인(sign)인 것으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나에게서 부터 나가는 것이 없으면 내 안에 들어오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꽉 차는 느낌이 없는 것입니다. 내안에 들어오기 시작할 때 우리는 무엇인가 차는 느낌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남에게 주심으로서 평생을 행복하게 사신 분이십니다. 모든 것을 주시고 마침내 자신의 생명까지도 주심으로서 행복하신 분이 되셨습니다. 주고 주시다가 후회가 없는 삶을 사시고 십자가에서 ‘다이루었다’ 큰소리로 외치시고는 하늘나라로 돌아가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심령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예수님처럼 심령이 가난하게 사신분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습니까? 머리하나 둘곳이 없이 가난하게 사신 예수님이십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예수님만큼 우리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해서 애통해 하셨던 분이 어디에 있습니까?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침뱉음을 당하고 옆구리에 창이 찔려도 화를 내시지 않으신 예수님이십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자는 복이 있나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위에서 하신 말씀이 기억나십니까? “내가 목이 마르다” 의에 목이 마르고 사랑에 목이 마르고 사람들의 배신에 목이 말랐던 예수님이십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자' 이 모든 것에 대해서 예수님만큼 경험하신 분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분은 축복의 존재가 되셨습니다.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가장 귀한 생명을 내어 주심으로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존재가 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생명을 받아서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것 보다 훨씬 더 기뻐하고 행복한 존재가 되신 것입니다. 왜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으니까요. 섬기는 것이 섬김을 받는 것 보다 축복이니까요. 하나님은 가장 귀한 아들 예수를 세상에 주심으로 기뻐하시고 행복해 하셨습니다. 성자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우리 인간에게 주심으로서 후회가 없는 축복된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이땅위에 사는 동안 헌신하고 섬기면서 행복을 느끼며 살았던 사람들이 모여 있는 나라입니다. 천국이 천국다운 것은 섬기고 헌신하면서 그 기쁨을 아는 사람들만이 모이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국에 가게 되면 서로 서로가 왕으로 섬길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는 왕 같은 대접을 받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주시고 행복해하셨던 하나님이 천국의 왕이십니다. 가장 귀한 생명을 주시고 축복을 받으셨던 예수님이 그나라 왕의 아들이십니다. 그리고 그 천국의 백성은 그나라 왕과 아들을 본받아 믿음으로 섬기며 믿음으로 헌신 생활을 하면서 행복한 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인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이 남은 생애헌신생활을 해나가심으로서 이땅에서 행복을 누리고 그리고 이 축복을 저 천국가서도 영원토록 누릴수가 있는 복된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