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엘벧엘 이라

Author
kgmcc
Date
2021-08-14 22:22
Views
27
본문 : 창세기 35장 1-7절

날짜 : 2021년 8월 15일

 

<창세기 35장 1-7절>

1.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2.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3.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4.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5.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6.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7.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백신 주사를 맞고 어느정도 경제활동을 할고 있는 요즘에는 형편이 조금 달라졌지만 예전에 백신 주사를 맞을수가 없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급적 외출을 하지 않고 집에 머물면서 지냈습니다. 그때는 가게나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문을 열면 여는 만큼 손해가 된다는 말을 했습니다. 가게나 공장 문을 닫으면 노동자 임금이라도 아낄수 있는데 문을 열면 노동자 임금과 생산비용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더 손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당시에 마스크를 만드는 공장은 바쁘게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며칠전에는 이곳 미국에 마스크 재고가 많이 남아 있어서 공장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공장 대표되시는 분이 말하기를 이제 곧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철이 되면 다시 마스크 성수기가 오겠지만 지금까지 만들어놓은 마스크 재고가 많아서 공장 직원들을 쉬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마스크 성수기가 되어 그때 공장 직원들을 부르면 그들이 다시 올것인가 하는 것도 의문이지만 공장을 돌리게 되면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가 않아 걱정이 된다 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마스크를 만드시는 그 대표 되시는 분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저는 믿는 성도들의 신앙생활과 비슷하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저희는 3주에 걸쳐서 야곱이 하란을 떠나 고향인 가나안땅으로 귀향해서 정착하고 있는 과정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가 그 마지막 시간입니다. 미리 결론적인 말씀을 드리면 야곱이 벧엘에서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숙곳이나 세겜에 머물러 있으면 머물러 있을수록 자신의 신앙에 있어서는 손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공장이나 가게를 열면 열수록 손해가 되는 것처럼 숙곳이나 세겜의 생활은 하면 할수록 신앙인에게는 손해가 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머물러야 하는 곳은 벧엘 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야곱은 벧엘이 아닌 숙곳과 세겜에서 너무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습니다. 어린아이 이었던 딸 디나가 이제 10대 소녀로 성숙 했으니까 약 10년 정도 야곱과 그 가족은 숙곳과 세겜에 머물렀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숙곳을 떠나 세겜에 머물고 있는 동안에 정말 비극적인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세가지 좋지 않은일이 생겼는데 그 첫번째는 딸 디나가 성폭행을 당했던 것입니다.

숙곳에서 세겜으로 오자 야곱의 딸 디나는 이 세겜성에 살고 있는 여자들은 어떻게 화장을 하고 어떤 옷을 입고 다니는가? 이런저런 호기심을 가지고 이곳 저곳으로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그 세겜땅에 살고 있는 추장에 의해서 성폭행을 당하게 됩니다. 창세기 34장 1, 2절입니다. ‘1.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더니 2.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그 땅의 추장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 가나안땅 이방인의 문화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호기심 때문에 야곱의 딸 디나는 평생 지울수 없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안 세상의 타락한 문화에 대해서 너무 깊이 관여를 하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라고 하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물론 관심과 호기심을 가질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고 있는데 마치 세상에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믿는 성도가 이세상의 타락한 문화에 너무 관심을 가지게 되면 그 문화에 빠지게 되고 결국에는 하나님과 멀어질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과 벗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 4절입니다. 4.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호기심과 관심이 생길수는 있겠지만 세상 재미에 너무 빠지는 생활까지는 나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어쨌든 야곱은 딸 디나에게 일어난 일로 인해 엄청난 고통과 아픔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세겜에 있을 때 일어난 좋지 않은 일 두번째는 야곱의 집안이 주변의 족속들의 분노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당한 사건을 알게 된 야곱의 아들들은 피의 보복을 단행했습니다. 어떻게 복수했습니까? 야곱의 아들들이 자기 여동생 디나와 결혼하고 싶어하는 세겜의 추장에게 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우리 여동생 디나와 결혼을 할려면 세겜의 남자들은 모두 할례를 받아야 된다’. 그래서 세겜 추장이 자기 족속들을 설득해서 할례를 받도록 합니다. 그래서 세겜의 남자들이 자기 몸에 할례를 받고 고통중에 있을때 디나의 오라비 시몬과 레위가 칼을 가지고 그들을 무참히 죽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재산을 약탈합니다. 이렇게 처절하게 복수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피의 복수로 인해서 야곱의 가족들은 주변에 있는 다른 족속들에게 분노의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야곱은 아들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기 34장 30절 후반부입니다. 30.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자기 아들들의 피의 보복으로 인해서 야곱의 가족은 주변에 있는 부족들의 분노의 대상이 되었고 그래서 하루하루 두려움 가운데 살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세 번째로 좋지 않은 일은 영적으로 어두워졌습니다.

본문 2절입니다. 2.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야곱이 벧엘로 가기 전에 자기 집안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방신상들을 버리라, 그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야곱이 자기 식구들에게 하는 말을 살펴보면 그동안 그들은 이방의 신상을 섬기고 살았던 것을 알수 있습니다. 다시말해 그들은 하나님도 섬기고 이방신도 섬기는 혼합주의에 빠져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벧엘에 가지 않고 숙곳과 세겜에 머물고 있었을 때 일어난 좋지 않았던 일은 첫째로 딸 디나가 성폭행을 당했던 것이고 둘째는 야곱의 가정이 주변 마을 사람들의 분노의 대상이 되었고 셋째는 영적으로 어두운 상태로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가 바로 야곱이 벧엘에 가지 않고 숙곳과 세겜에 머물며 살아갈 때 일어났습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 머무르지 않고 숙곳과 세겜에 머물게 되면 머무는 것 만큼 손해가 되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야곱은 자기 인생 가운데 10년 이라는 시간을 그냥 보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좋고 화려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람은 숙곳이나 세겜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곳에 너무 오래 머물고 있다가 보니까 야곱은 영적으로 너무 어두워 진 상태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가정에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때까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야곱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본문 1절입니다. 1.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거기서 거주하라 그리고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얍복강 나루터 사건이후 10년만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야곱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영적인 어두움을 밝혀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야곱의 어두운 눈을 뜨게 하십니다. 어떻게요?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왜 벧엘로 올라가라 말씀하신 것입니까? 첫째로 거기 거주하며 살도록 하기 위함에 있습니다.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지 않고 왜 세겜에 머물러 살고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벧엘보다는 세겜이 살기에 훨씬 좋아서 그랬던 것입니다. 그래서 안 올라간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굳이 벧엘에 올라가라고 말씀 하십니다. 왜요? 고생시키기 위해서입니까? 아니죠. 이 벧엘은 야곱이 하나님을 처음 인격적으로 만난 장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야곱이 외롭고 두려움의 광야에 있을 때 처음으로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던 장소입니다. 야곱 자신이 서원을 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처음으로 경험한 장소인 동시에 감격하면서 서원했던 장소가 벧엘 입니다. 그래요.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죄악된 세상에서 편하고 편리하게 살아가는 것 보다는 하나님을 만난 그 첫사랑의 감격을 잊지않고 그 은혜에 젖어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곳에서 오래오래 살아가는 것보다는 짧은 인생을 산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에서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벧엘은 어디입니까? 장소보다는 그때 그 마음이 더욱 중요합니다. 야곱이 형에서를 피해 혼자 도망나와서 광야에서 돌을 베게삼아 잠을 자고 있었을 때 야곱이 가졌던 그당시의 심정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외삼촌 라반이 살고 있는 하란까지의 거리는 약 400마일입니다. 킬로미터로 환산하면 약 600km입니다. 서울과 부산을 왕복해야 하는 거리입니다. 그러니까 도망쳐나온 야곱이 하란에 도착하기까지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외롭고 두려움 속에서 지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무사히 외삼촌 라반의 집에 도착했다 해도 외삼촌 가족이 맨몸 밖에 없는 자기를 어떻게 대해줄지 알수도 없는 일입니다. 한치앞도 내다 볼수 없는 외롭고 두려운 환경속에 있을 때 하나님이 찾아와 주신 것입니다. 그때 야곱이 얼마나 감격을 하면서 하나님을 붙잡았겠습니까? 야곱이 너무 감사하고 감격해서 서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저를 다시 돌아오게 해주시면 이곳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 돌기둥을 세웠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시련과 역경을 만났을 때 몸부림을 치고 발버둥치면서 주님을 붙잡고 ‘주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저를 긍휼히 여겨주시옵소서’ 울며 간구했던 그 자리가 바로 벧엘 입니다. 그 마음이 바로 벧엘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체험했던 그때 그 자리가 바로 벧엘인 것입니다. 그때 그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그 자리가 바로 벧엘 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성도들에게는 이런 의미를 가진 벧엘로 올라가라 말씀하십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벧엘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거기서 제단을 쌓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본문 1절 중간에 보시면 ‘거기 거주하며’ 그리고 내려가서 마지막에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거기 거주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제단을 쌓기 위함에 있습니다. 그래요. 하나님의 사람이 이땅에 거주하며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함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예배는 우리 인생의 삶의 수단이나 도구가 아니라 삶의 목적인 것입니다. 예배는 우리의 삶의 이유입니다. 그럼으로 우리의 삶에서 예배가 사라진다면 살아갈 이유는 없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2절을 보게 되면 벧엘에 올라가기 전에 야곱은 자기 식구들에게 정결하게 하라고 말합니다. 2절 말씀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2.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너희중에 있는 이방신상들을 버리고’ 이 표현을 사용한 것을 보면 이방신상들도 가지고 섬겼던 것을 알수 있습니다. 또 야곱의 아내 라헬은 하란에서 떠나올 때 자기 아버지의 부적인 종류의 드라빔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의 가족들은 이 야곱의 말에 순종합니다. 4절입니다. 4.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야곱의 식구들이 이방신상들과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었습니다. 이 귀고리들은 단순한 귀고리가 아니라 우상의 모양이 새겨진 부적의 역할을 하는 귀고리 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모아서 야곱은 세겜 근처 상수리 나무아래에 묻었습니다. 완전히 버렸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의복도 바꾸어 입었습니다. 그당시 히브리인들에게 의복을 바꾸어 입는다고 하는 표현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과거의 죄악된 행동을 벗어나서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결단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벧엘로 올라가기 전에, 제단을 쌓기 전에 옷을 바꾸어 입으라고 하는 것은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온 그 옛 습관들을 끊어버리라 라고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이 살아가는 그 습관들을 끊어버리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 옛 습관을 끊어버릴수 있는 것입니까? 궁극적으로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도우심을 받기전에 해야할 일이 하나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죄의 유혹이 밀려올 때 마다 사탄이 유혹할때마다 우리는 나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탄이나 마귀의 유혹에 넘어갈 신분에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요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입니다. 사탄이나 마귀의 유혹을 넘어서야하는 신분에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유혹과 죄악에 빠져 살아가서는 안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내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옷은 신분을 상징합니다. 양복을 입고 있는 사람과 다 닿아빠진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행동은 다른 것입니다. 사탄과 세상이 요구하는 차원은 닿아버린 옷을 입고 다니는 노숙자 같은 사람들에게 통할 유혹이요 명령인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만일 양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에게 돈 1불을 주면서 이것으로 맥도날드에가서 후렌치 후라이 사먹으라고 주면 고맙다 고 말하면서 받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에게 사탄이 유혹하는 것은 이러한 차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옛사람의 습성을 끊어버리고 사탄의 유혹을 이길려면 내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하는 것 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이땅을 살아가지만 이 땅에 속하지 않고 하늘에 속한 신분이다. 나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이런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침내 야곱과 그의 가족들은 모든 이방 신상들과 우상을 버리고 정결하게 하고 난후에 벧엘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기게 됩니다. 5절입니다. 5.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해서 야곱의 가족들을 추격하는 사람들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이전과는 역전이 된 상황입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야곱의 아들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의해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서 한사람도 바깥에 마음놓고 출입할수 없었던 분위기 이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정 반대 되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야곱의 가족이 출발하는데 오히려 주변 마을사람들이 두려워 떨었던 것입니다. 왜 이렇게 갑자기 변했습니까?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두려워 떨게 만드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지금까지 두려워 떨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마을사람들 때문입니까? 이질문에 올바른 대답을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야곱의 가족들이 두려워 떨었던 이유는 마을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야곱의 불신앙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두려움도 따지고 보면 문제가 크고 환경이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불신앙 때문에 내가 두려워 떠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떨고 있다면 내 신앙을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신명기 31장 6절입니다. 6.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말라’ 여기서 그들은 누구입니까? 사람들이나 어떤 문제들 앞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이나 문제앞에서 떨지 말라 는 것입니다. 왜 떨지 말아야 합니까? ‘내가 너희들과 함께 갈 것이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이 약속을 하나님이 믿는 우리에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우리에게 두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문제가 크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불신앙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과 문제 앞에서 두려워 떠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옛습관을 끊어버리고 정결케 해서 주님앞에 나아가면 세상이 우리를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마침내 야곱은 벧엘에 도착하고 제단을 살고 엘벧엘이라 불렀습니다. 본문 6, 7절입니다.

6.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7.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7절을 보시면 ‘거기서 제단을 쌓고’ 이말은 예배를 드렸다는 의미입니다. 30년 만에 야곱은 벧엘로 돌아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엘벨엘이라 불렀습니다. 엘은 하나님이란 뜻이니까 벧엘의 하나님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벧엘에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야곱이 벧엘에 다시 왔을 때 30년 전에 야곱이 이곳 벧엘에서 하나님을 처음 만나고 난후 감격해서 쌓았던 돌기둥들은 아마 다 무너져 내리고 나딩굴어져 있었을 것입니다. 무너지고 나딩굴어진 돌 무더기들은 어쩌면 야곱의 영적인 모습을 의미할수도 있습니다. 야곱은 나뒹굴어져 있는 그 돌들을 주어서 다시 쌓고 돌기둥도 다시 세웠습니다. 그럴 때 야곱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30년전 그날 외롭고 두려웠던 그날밤에, 한치앞도 내다볼수 없었던 그때 가졌던 그 감정이 되살아났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자기에게 약속해 주신 말씀이 기억났을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내가 너를 지켜줄 것이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야곱은 너무 감사하고 감격해서 “하나님 제가 돌아오면 이자리에서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라고 서원을 했던 그때 그당시 심정이 되살아났을 것입니다. 30년만에 다시 돌아와서 보니 그때 감격해서 쌓았던 돌무더기들은 다 흩어져 버렸지만 그당시 돌기둥들을 하나 하나 다시 세웠을때 그날 가졌던 마음은 다시 살아났던 것입니다. 30년 만에 그장소에 돌아와 예배를 드릴 때 야곱이 가졌던 감격스러움을 우리도 경험해야 합니다. 야곱은 정말 감격과 감동속에서 예배를 드렸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벧엘의 예배를 원하십니다. 그래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세겜에 머물고 있으면 있을수록 손해입니다. 머뭇거리면 머뭇거릴수록 손해입니다. 야곱이 세곔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스니다. ‘엘엘로헤 이스라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 라고 신앙고백하면서 예배들 드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타나시지도 않으셨고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가정에 어려운일이 생기게 되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거기서 제단을 쌓고 예배하라’

야곱이 벧엘로 올라와 제단을 쌓고 예배를 하자 성경은 그제서야 야곱이 돌아왔다고 말씀합니다. 9절입니다. 9.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야곱이 밧단아람에서(하란 입니다) 돌아오매‘ 사실 야곱이 하란에서 돌아온 것은 10년 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야곱이 돌아와 숙곳과 세겜에 머물렀던 시간은 건너뛰고 벧엘로 오자 그제서야 성경은 ’밧단아람(하란)에서 돌아오매’ 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벧엘로 온 야곱에게 축복하십니다. 10절입니다. 10.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10절 중간에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이름이 되리라’

사실 야곱이 얍복강 나루터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듯이 처절하게 기도를 했을 때 그때 하나님은 그에게 야곱대신에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야곱은 그후 10년동안 이스라엘이 아니라 여전히 야곱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숙곳과 세겜을 떠나 벧엘로 올라오자 그때서야 하나님은 비로소 야곱을 이스라엘이라 불러주십니다.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그리고 축복하십니다. 11절에서 13절까지입니다. 11.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12.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13.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전능한 하나님‘ 은 히브리말로 ’엘 샤다이‘입니다. ’엘 샤다이’ 라는 단어가 성경에서 제일 먼저 나타난 곳은 바로 아브라함이 86세에 이스마엘을 낳고 13년이 지난 99세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처음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창세기 17장 1절입니다. ‘1.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나는 엘샤다이‘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못하고 자기의 계획대로 사라의 여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던 것에 대해서 질책을 한 것입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 나는 엘샤다이 이다. 그럼으로 너는 내앞에서 온전하게 행하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앞에 완전하지 못했습니다. 자기가 늙어가자 조급한 나머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 인간적인 방법으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13년 동안 침묵하십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아브라함 나이가 99세가 되셨을때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라고 말씀하시며 책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아 나는 엘 샤다이 전능자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전능한 하나님이다. 그런데 왜 너는 나를 신뢰하지 못하느냐? 나는 너를 큰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할려고 너를 불렀다, 그리고 하늘의 별들을 보여주면서 까지 너에게 약속을 했다. 그런데 너는 왜 나를 신뢰하지 못하느냐?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네가 할아버지가 되었고 아내 사라가 할머니가 되었다 할지라도 나는 네와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킬수 있는 ‘전능한 하나님 엘샤다이’ 이다. 나는 이세상을 만들고 이 우주 천지를 만든 하나님이다. 죽은자도 살리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그런데 너는 왜 나를 신뢰하지 못하느냐? 이제 너는 내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여기서 완전은 인격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에 있어서 완전하라는 의미입니다. 이후로 아브라함은 이 엘샤다이 하나님을 믿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을 13년 동안 참으시고 인내하신 하나님은 야곱에게도 10년을 더 참으시고 인내하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벧엘에 올라와 제단을 쌓고 예배하는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엘샤다이‘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한없는 축복을 주십니다. 11절 중간 이후 다시 보시겠습니다. 11.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12.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야곱은 이스라엘 열두지파의 조상이 됩니다. 아브라함과 야곱의 부족함에도 전능하신 하나님은 자신이 약속하신 축복의 말씀을 다 지키십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부족함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럼으로 믿는 성도인 우리에게 약속하신 축복을 신실하게 지켜나가실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벧엘로 올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던 그 자리에 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때 그자리에서 하나님께 내가 마음을 드렸던 그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벧엘의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벧엘에 올라가서 신앙생활을 하시길 원하십니다. 벧엘로 올라온 야곱에게 이스라엘 열두지파의 추복을 베풀어주신 그 하나님의 축복을 저와 여러분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바라옵기는 남은 평생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는 벧엘의 예배를 드림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에겐 축복이 되는 삶을 살아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