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열린 문
<요한 계시록 4장 1-2절>
1.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2.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열려야 할 문이 열리지 않고 닫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몇 년전에 이 교회 안에 있다가 바깥에 있는 우체통의 메일을 확인하러 잠시 나갔다가 돌아와보니 교회 문이 잠겨 있는 것입니다. 안에서 잠겨놓았던 상태인 것을 제가 깜박 잊어버리고 문을 닫고 그냥 나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문 키이 와 차 키이 는 물론 핸드폰도 교회안에 두고 나왔으니까 문을 열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수 없이 교회 건너편에 있는 자동차 부품을 파는 가게에 가서 제가 처한 상황을 이야기 하고 그 가게에 있는 전화로 집으로 전화했습니다. 그래서 제 아내가 집에 있는 예비 용 교회 키이 를 가지고 와서 교회 문을 열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열려야 할 문이 열리지 않으면 우리의 인생은 힘들어 지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이런 저런 종류의 닫혀있는 문들을 경험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부부가 한집에 살아가고 있지만 서로가 서로를 향한 그 마음의 문이 닫혀있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렇게 가정생활 뿐만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서로 서로 간에 마음 문을 닫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쉽게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과 우리 인간의 마음에만 문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 하늘에도 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하늘의 문에 관해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하늘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을 거닐면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살았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언제든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담은 짐승들의 이름을 지어주면서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러니까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기 전까지는 하늘의 문이 열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사탄인 뱀의 유혹에 넘어가면서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추방 당하게 되었고 그때 이후로 열려 있었던 하늘의 문은 닫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늘의 문이 닫히게 되자 당연히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었고 그이후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열려 있던 하늘의 문이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닫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 특별한 때 하늘 문이 열린다.
그런데 구약 성경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특별한 때에 특별한 사명과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닫혀있던 하늘의 문을 가끔씩 열어 주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하여 하란으로 도망을 가는 도중에 벧엘 이라는 들판에서 돌을 베게삼아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늘문이 열리면서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장면을 야곱이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창 28장 12-14절입니다. 12.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늘 문이 열리면서 야곱은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축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이후에 야곱은 기쁨과 소망을 가지고 약 400마일( 600 킬로미터) 이 되는 거리인 외삼촌 라반의 집까지 단숨에 가게 됩니다. 이렇게 하늘 문이 열렸을 때 야곱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수 있게 되었고 그이후 소망을 가지고 외롭고 두려움의 여행을 기쁨과 소망의 마음으로 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만나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시 78:23~24절입니다. 23.그러나 그가 위의 궁창을 명령하시며 하늘 문을 여시고 24.그들에게 만나를 비 같이 내려 먹이시며 하늘 양식을 그들에게 주셨나니 ‘하늘문을 여시고 .... 하늘양식을 그들에게 주셨나니’ 그러니까 하늘 문이 열렸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를 먹을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도 하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하늘문을 여시고 3년 6개월간 내리지 않았던 비를 내리시는 장면이 구약 성경에 나옵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는 그 날에도 하늘 문이 열렸습니다. 에스겔 1장 1절입니다. 1.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이렇게 에스겔이 선지자로 사명을 받을 때 하늘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에게 하늘의 아름다운 보물 창고 문을 열어 축복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신명기 28장 12절입니다, 12.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여기서 ‘보고’ 는 창고 안에 있는 보물을 의미합니다. 하늘의 아름다운 보물창고가 열렸기 때문에 모든 일에 복을 받을수 있게 된 것입니다. 누구에게 하늘의 보물 창고 문이 열린다고 약속합니까? 그앞에 있는 2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인 것을 알수 있습니다. 신명기 28장 2절입니다. 2.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의 문이 열어주시겠다고 성경은 약속하고 있습니다.
자,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말씀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처음에는 하늘의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서 하늘의 문이 닫히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경우에 하늘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늘의 문이 열렸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의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보였고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비가 내리지 않는 가뭄 때에는 비가 내렸고, 먹을 것이 없는 광야에 있을때는 먹을 양식이 내렸습니다. 그리고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이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모든 은혜와 복은 하늘의 문이 열릴 때 주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하늘의 문이 열릴 때에만 하늘의 은사와 축복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에게 하늘의 문이 열린다는 것은 그 어떤 일보다도 가장 큰 축복의 사건 이라 할수 있습니다,
□ 하늘의 문이 열리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에 그 오랜 시간동안 닫혀 있었던 하늘의 문이 열리게 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특별한 경우에 잠시 하늘의 문이 열리게 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하늘의 문이 열려있는 아주 특별한 사건이 생겼습니다. 2천 년 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활동을 시작하시기 전에 요단강에서 먼저 침례를 받으십니다.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하늘의 문이 활짝 열리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마태복음 3장 16절입니다. 16.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십니다. 그와 동시에 하늘로 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라고 하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것을 볼때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이유가 바로 닫힌 하늘의 문을 여시기 위해 오셨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닫혀있었던 하늘의 문을 활짝 여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 인간이 지은 죄를 대신하여 친히 화목 제물이 되십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바치심으로서 우리의 죄값을 지불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하늘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인간이 진 죄값을 지불하시고 돌아가실때 성전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27장 50, 51절입니다. 50.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51.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놀라운 사건입니다, 원래 지성소와 성소사이에는 아주 두꺼운 휘장이 막고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지성소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죄를 지은 인간은 거룩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이 지성소에 들어갈수 없습니다. 들어가면 죽습니다. 일 년에 단 한번 대 제사장만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이 들어갈 때는 먼저 정결하게 하는 의식을 치루고 난후에 들어가야 합니다. 정결하지 않으면 대제사장이라 할지라도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죄가 있는 인간은 그 누구라도 이 지성소에 들어갈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때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 있던 성전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이 진 죄값을 대신 생명으로 다 지불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 예수님의 보혈의 피에 힘입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아담이 범죄한 이후로 우리 인간에게는 하나님께로 갈수 있는 문이 닫혀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어주심으로서 닫혔던 하늘의 문을 열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의 우리 인간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 하늘의 열린 문 안으로 들어오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요한이 밧모섬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하늘의 열린 문 안으로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본문 1절입니다. 1.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이 일후에’ 이 일이 어떤 일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본문 앞장에 있는 내용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앞장을 보시면 주님께서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대하여 말씀 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 일후에‘ 라는 것은 ‘그 일곱 교회에 관한 말씀을 하시고 난 이후‘ 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이후 사도 요한은 하늘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리로 올라오라.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을 내가 너에게 보여주겠다‘ 라고 하는 음성을 듣습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열린 하늘문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랬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본문 2절입니다. "2.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사도요한이 성령의 감동을 받고 열린 하늘 문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때 제일 먼저 본 것은 무엇입니까?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하나님의 보좌입니다. 그리고 그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후에 하늘 문이 열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열린 하늘 문안에 들어가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볼수 있게 됩니다.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순교할 때에도 하늘의 문이 열리고 예수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사도 행전 7장 56절입니다. 56.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예수님)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늘은 우리가 보고 있는 일반적인 하늘이 아닙니다. 우리는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새가 날아다니는 저 하늘을 하늘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하늘이 열렸다고 말할 때 하늘은 그런 하늘이 아닙니다. 그당시 유대인들은 하늘에는 3층 하늘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첫째 하늘은 우리가 보고 있는 저 하늘입니다. 그리고 둘째 하늘은 사탄 마귀 공중 권세를 잡은 자가 지배하고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 셋째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 하나님의 거하시는 곳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요한은 3층 하늘, 셋째 하늘, 즉 천국을 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간 곳도 바로 이 삼층 하늘, 셋째 하늘인 천국입니다. 고후 12장 2절입니다. 2.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셋째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사도바울은 자기 자신이 천국에 들어가게 된 경험을 이야기 하는데 마치 남이 한 것처럼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육신이 이땅에 있는 동안에 자신의 영은 성령에 이끌려 천국에 가게 된 경험이 너무나 생소하고 놀라웠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은 이땅을 살면서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공중권세 잡은 사탄 마귀가 우리가 하늘의 보좌앞에 가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 사탄 마귀는 우리를 끊임없이 참소하고 고발해서 하나님 앞에 가지 못하도록 방해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려고 할 때 사탄 마귀는 이전에 우리가 지은 죄를 생각나게 해서 우리에게 죄책감과 죄의식을 심어줍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앞에 당당하게 서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염려와 근심과 여러 가지 잡다한 생각을 가지게 해서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예배를 드릴 때 이런 저런 생각이 나게 하고 몸이 근질근질하게 해서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내가 얼마나 오래 기도하는 가, 내가 얼마나 자주 예배를 드리는 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하늘의 닫힌 문 아래서가 아니라 하늘의 열린문 안에서 기도와 예배를 드리는 가 하는 것에 있습니다. 내가 하늘의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가 기도하며 예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왜 우리는 하늘의 문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까?
1. 열린 하늘문 안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기 때문입니다.(계4:2)
2.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사도 요한이 하늘의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갔더니 하늘의 보좌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 했을지라도 하늘의 문이 닫히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말씀을 듣지 못하니까 믿음도 없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인해서 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열린 하늘의 문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열린 하늘 문안으로 들어가야 우리는 하나님 보좌로부터 흘러 나오는 생수를 마실 수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 22장 1,2절입니다. 1.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이 생명수의 강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생명수는 성령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늘의 열린 문으로 들어가 예배를 드릴 때 성령이 우리의 심령을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나면 성령의 능력으로 인해 힘 과 소망이 생기게 됩니다. 요한복음 4장을 보시면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이 우물가에서 만나 대화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사마리아 여인은 정욕과 사랑에 목이 마른 여인이었습니다. 남편을 다섯 번이나 바꾸었고 지금도 한 남자와 살고 있지만 여전히 사랑과 정욕에 메말라 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여인을 향하여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요 4장 14절입니다. 14.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러자 이 여인이 귀가 솔깃해서 예수님에게 말합니다. ‘선생님 그런 물이 있다면 나에게 주십시오. 그래서 내가 목마르지도 않고 여기 우물가에 물을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요청합니다. 이 여인의 요청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요 4장 24절입니다.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예수님께서는 내게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물을 달라고 요청하는 여인에게 예배에 관한 말씀을 하십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영과 진리로 예배하면 생수를 마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보좌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생수를 마시는 것이 예배 입니다. 그렇다면 ‘생수’는 또 무엇입니까? 이것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7장 38절, 39절입니다. 38.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이는(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것) 그를(예수)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그러니까 생수는 성령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받게 되는 성령이 생수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늘의 열린 문안에 들어가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들에게 성령을 물 부듯이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 때 성령 충만함으로 권능과 능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왜 하늘의 열린 문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까?
2. 하늘 보물 창고에 쌓여있는 것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신명기 28장 12절 전반부를 다시 보시겠습니다. "12.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보물 창고)를 여시사" 하나님께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위하여 하늘의 보고 즉 창고 안에 보물을 쌓아두셨습니다. 그런데 그 보물이 언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까? 하늘의 문이 열릴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약 1장 17절입니다. 17.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하늘의 문이 열릴 때 모든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데 나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럼으로 하늘의 문이 반드시 열려야 합니다. 하늘의 문이 열릴 때 우리 인생가운데 큰 부흥과 큰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늘의 문이 열리면 우리 가정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막히고 닫혔던 관계의 회복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하늘의 문이 닫혀있다면 우리가 수고해도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관계는 계속 악화되고 파괴 되어지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반드시 열린 하늘 문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가장 중요한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은 다 잊어버린다 할지라도 이 내용은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반드시 저와 여러분이 기억하면서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합니다.
자, 그렇다면 누가 열린 하늘의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까? 이 질문에 올바른 대답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하늘문이 열리게 되면 하나님 보좌를 보고 하늘로부터 모든 신령한 은사와 값진 보물을 얻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것보다 더 중요한 축복 열린 하늘문안에 들어가야 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럼으로 누가 열린 하늘 문안으로 들어갈수 있는가 하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다행히도 그 정답은 여러개가 아니라 단하나입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의 피를 힘입는 사람입니다. 히 10장 19,20절입니다. "19.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예수의 피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간에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기만 하면 하늘의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넘어지고 실패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하늘의 열린 문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늘의 열린문 이라는 것에 대해 너무 거창하고 신비로운 장면만을 상상할때가 있습니다. 너무 추상적이고 막연한 사건만을 생각합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 어떤 상황에 있든지 간에 내 느낌과 내 감정과는 상관이 없이 내가 오직 예수 보혈의 피만 믿고 의지하면 우리는 언제라도 하나님 보좌 앞에 설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도바울이 감옥안에서도 주님의 십자가 보혈을 찬양하고 예배하니까 하늘의 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감옥 문이 열리고 자유함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환경에 있든지 간에 십자가 보혈의 피를 의지하기만 하면 우리는 하늘의 보좌 앞에 서있게 되는 것 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에게는 감옥의 문이 열리게 되었지만, 스데반 집사에게는 그냥 그대로 돌맹이에 맞고 순교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 과 스테반 집사 두사람에게는 둘다 똑같이 하늘의 문이 열렸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눈에 보여진 것은 이렇게 대조적인 결과로 나타날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믿는 성도인 우리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축복인가를 알고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세상의 모든 문이 다 열렸다 할지라도 하늘의 문이 닫혀있다면 그사람 에게는 그일이 저주이요 불행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의 모든 문들이 닫혀있다 할지라도 하늘의 문이 열려 있으면 우리는 가장 축복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을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생수를 마실수 있게 됩니다. 그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혼은 새로운 힘과 소망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나 우리가 구하는 것 이상의 놀라운 일들이 우리의 인생가운데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하늘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늘의 열린 문안으로 들어갈수가 있습니까? 예수님의 보혈의 피를 의지하고 찬양하고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이 어떠한 환경속에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보혈의 피를 의지하여 신앙생활을 해나가십시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남은 평생 예수님의 보혈의 피를 의지하며 나아갈 때 열려지는 하늘의 문안으로 들어가 신령한 축복을 누릴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