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내 약점이 강점으로

Author
kgmcc
Date
2021-10-09 23:31
Views
271
본문 : 사사기 3장 12-22절

날짜 : 2021년 10월 10일

 

<사사기 3장 12-22절>

12.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하게 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

13.에글론이 암몬과 아말렉 자손들을 모아 가지고 와서 이스라엘을 쳐서 종려나무 성읍을 점령한지라

14.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열여덟 해 동안 섬기니라

15.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통하여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칠 때에

16.에훗이 길이가 한 규빗 되는 좌우에 날선 칼을 만들어 그의 오른쪽 허벅지 옷 속에 차고

17.공물을 모압 왕 에글론에게 바쳤는데 에글론은 매우 비둔한 자였더라

18.에훗이 공물 바치기를 마친 후에 공물을 메고 온 자들을 보내고

19.자기는 길갈 근처 돌 뜨는 곳에서부터 돌아와서 이르되 왕이여 내가 은밀한 일을 왕에게 아뢰려 하나이다 하니 왕이 명령하여 조용히 하라 하매 모셔 선 자들이 다 물러간지라

20.에훗이 그에게로 들어가니 왕은 서늘한 다락방에 홀로 앉아 있는 중이라 에훗이 이르되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왕에게 아뢸 일이 있나이다 하매 왕이 그의 좌석에서 일어나니

21.에훗이 왼손을 뻗쳐 그의 오른쪽 허벅지 위에서 칼을 빼어 왕의 몸을 찌르매

22.칼자루도 날을 따라 들어가서 그 끝이 등 뒤까지 나갔고 그가 칼을 그의 몸에서 빼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기름이 칼날에 엉겼더라

 

사람에게는 누구나 약점과 장점이 있습니다. 약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장점보다는 약점이 더 많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남보다 많이 가지고 있는 장점 때문에 실패를 하고 하나님 앞에서 버림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약점 때문에 도리어 승리를 하고 하나님 앞에서 쓰임을 받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에훗은 자신의 약점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쓰임을 받아 나라와 민족을 구하였던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2절입니다. 12.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하게 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악을 행하며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징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원수의 나라인 모압의 에글론 왕을 강성하게 하십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를 할 때 그들을 징계하기 위하여 주변에 있는 원수의 나라를 강성하게 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저와 여러분 주변에 있는 원수들의 강성함이 내가 짓고 있는 범죄와 어떤 관련이 있음을 생각 해볼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원수들이 강성해 진다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그들을 불평할 것이 아니라 먼저 우리 자신을 살펴 보아야 합니다. 내가 영적인 침체에 빠져 있지는 않는지, 회개할 것은 없는지를 살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13입니다. 13.에글론이 암몬과 아말렉 자손들을 모아 가지고 와서 이스라엘을 쳐서 종려나무 성읍을 점령한지라 ‘종려나무 성읍을 점령한지라’ 여기서 종려나무 성읍은 바로 여리고 성을 의미합니다. 아시겠지만 여호수아가 가나안땅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점복한 지역이 바로 여리고 성 입니다. 그후로 아이성을 정복하고 이어서 가나안땅 남부 지역과 북쪽 지역을 정복해 나갔습니다. 이렇게 가나안땅을 정복하고 난 이후에 열두지파에게 땅을 배분해줄 때 이 여리고 성읍은 베냐민 지파에게 할당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에훗이 베냐민 지파 출신이었던 것입니다. 어쨌든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먼저 정복을 하고 그리고 가장 먼저 정복을 당한 지역은 바로 여리고 성읍입니다. 그만큼 이 여리고 성읍은 지리적으로 요단강을 건너오면 반드시 가장 먼저 정복을 해야 할 군사 요충지 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여리고 성읍은 종려나무 뿐만 아니라 무화과, 오렌지 같은 과일이 풍성하게 산출되는 비옥한 땅이었기 때문에 외부의 침입이 빈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보다도 여리고 성읍을 빼앗기게 된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면에 있습니다.

여리고성을 점령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이후 좀 더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을 버리고 풍요로움의 신인 바알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풍요로운 땅에 살면서 더 많은 풍요로움을 위해서 바알 신을 섬기며 살았는데 그 결과는 풍요와 안전을 상징하는 여리고를 잃어버리게 된것입니다.

그래요. 세상의 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버리면 세상의 것을 얻을 것 같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위해 세상을 버리면 오히려 모든 것을 얻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눈 앞에 보이는 풍요로움 때문에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아가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가롯 유다를 보십시오. 은 30 냥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배반했지만 가롯 유다는 은 30냥 뿐만 아니라 자기의 생명까지도 잃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사는 것이고 하나님이 나를 떠나시면 우리는 죽는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범죄하며 살았던 결과로 모압 나라를 18년 동안 섬기게 되었습니다. 14절입니다. 14.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열여덟 해 동안 섬기니라

‘열여덟 해동안 섬기니라’ 18년이면 짧은 기간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주인으로 살지 못하고 오히려 종의 신분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우상을 숭배한 결과는 이렇게 비참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상숭배는 탐심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입니다. 5.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너무 가질려고 욕심을부리면 그 욕심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게 된다고 하는 영적인 교훈을 우리는 본문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모압나라에 공물을 바치고 살아가는 일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게 되자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15절 전반부입니다. 15.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들은 18년 만에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리셨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은 18년 동안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 무슨 자존심이 상하는 일입니까? 자기 자신과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힘든 일입니까?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일이 힘든 일입니까? 그런데 우리 주변을 보면 자기 나라는 접어두고서라도 자기 가정과 자신을 기도를 하지 않는 성도님들이 많이 있음을 볼수 있습니다. 어떤 성도님은 자기 자녀가 선교지에 갔는데도 자녀가 돌아올때까지 한번도 자녀를 위해 기도 하지 못했다고 하는 고백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믿음이 너무 좋으신 건지 아니면 믿음이 없으신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녀가 선교지에 갔는데 그때도 기도하지 않으면 언제 기도합니까? 식사할 때 기도합니까? 제 막내딸이 국제 평화 봉사단에 자원해서 2년 계약으로 네팔에 간적이 있습니다. 딸이 네팔로 떠난 그날부터 저와 아내와 매일 아침 저녁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딸이 네팔로 떠난지 약 3개월 만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당시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어서 전세계에 파송된 국제 평화 봉사단원들을 모두 자국으로 송환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 막내딸이 돌아와서 엄마에게 하는 첫 말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엄마가 딸이 빨리 돌아오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해서 자기가 이렇게 돌아오게 되었다’ 는 것입니다. 엄마가 믿음이 좋은것인지 딸이 믿음이 더 좋은 것인지 그것이 알고 싶다 입니다. 그래도 자신과 가정을 위해서는 기도하며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아무튼 18년이 지난 후에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들이 부르짖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은 구원자로 에훗을 세우십니다.

이제 15절 전체를 보시겠습니다. 15.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에훗이라’

이 에훗은 누구입니까?

첫째로 베냐민 사람입니다.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그당시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 가운데서 세력이 가장 약한 지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울을 왕으로 세울려고 할 때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렇게 대답한 것입니다. 삼상 9장 21절입니다. 21.사울이 대답하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 사사기 당시에 열두지파중에 가장 작고 약한 지파가 베냐민 지파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이 베냐민 지파가 자랑스런 지파가 됩니다만 그당시는 가장 약한 지파이었습니다.

둘째로 이 에훗은 누구입니까?

왼손잡이 입니다. ‘왼손잡이 에훗이라’ 히브리 단어 원문대로 해석하면 ‘오른손이 제한된 사람, 오른 손이 닫혀있는 사람’ 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러니까 ‘오른 손이 제구실을 못하는 사람’ 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을 보면 그당시에 베냐민 지파가운데 왼손잡이 용사가 무려 700명이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왼손잡이들은 왼손을 오른손보다 더 많이 사용하는 보통 왼손잡이들 입니다. 하지만 에훗은 왼손을 주로 사용하는 보통 왼손잡이가 아니라 오른 손을 쓰지 못하는 장애인 이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에훗이 오른 손을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라고 하는 근거는 원문 이외에도 본문에 일어난 사건에서 찾아볼수 있습니다.

첫 번째 증거는 에훗이 모압왕 에글론과 개인적으로 만날 때 검열을 당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을 보면 에훗이 공물을 바치러 모압 에글론 왕에게 갈때 오른 쪽 다리 옷 속에 한 규빗 길이 즉 약 45cm나 되는 칼을 숨기고 들어갑니다. 그런데 모암 나라가 아닌 적대국의 나라 지도자가 왕을 만나러 가는데도 아무런 검열도 받지 않았습니다. 왜요? 에훗은 누가 보아도 오른 손을 사용하지 못하는 장애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검열도 하지 않고 안으로 들여보냈던 것입니다.

에훗이 장애인 이라는 두 번째 이유는 에글론 왕을 죽일 때 오른 쪽 다리에 있는 칼을 왼손으로 빼내고 왼손으로 찔러 왕을 살해하였기 때문입니다. 21절입니다. 21.에훗이 왼손을 뻗쳐 그의 오른쪽 허벅지 위에서 칼을 빼어 왕의 몸을 찌르매

생각해 보십시오. 왕을 죽이는 그 순간은 아주 빠르고 신속하게 행동을 해야 합니다. 민일 에훗이 오른 손을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었다면 찌르는 것은 왼손으로 옮겨서 찌른다 할지라도 적어도 칼을 빼내는 것은 오른 손으로 빼내었을 것입니다. 칼이 오른쪽 허벅지 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칼을 빼내고 찌르는 것도 모두 왼손으로 했습니다. 그것은 에훗의 오른손이 뭉개져 있는 장애인이었기 때문에 그 위급한 순간이지만 오른손을 사용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세 번째는 성경 본문이 모압왕 에글론이 살해되는 장면이 너무 구체적으로 기록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에훗이 에글론을 죽이는 장면이 너무 자세하게 기록하게 되어있습니다. ‘에훗이 칼을 숨기고 들어가 그 칼로 에글론을 찔러 죽였더라‘ 라고 이렇게 기록하면 될 것인데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2절입니다. 22.칼자루도 날을 따라 들어가서 그 끝이 등 뒤까지 나갔고 그가 칼을 그의 몸에서 빼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기름이 칼날에 엉겼더라 ’칼이 에글론 왕의 가슴을 찌르고 그 칼날 끝이 등 뒤에까지 나왔고 그리고 에훗은 그 칼을 빼지 않고 그대로 놔두었다’ 고 아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리얼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는가 하면 그것은 바로 이 모압 에글론 왕이 정상인이 아닌 장애인에 의해서 살해 되었다는 것을 좀더 분명히 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신학자들은 주장합니다.

자 이렇게 모압왕 에글론을 살해한 에훗은 에브라임 산지로 올라가 나팔을 불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 모읍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군대가 요단강 나루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도망치는 모압 군사 약 만명을 죽입니다, 29절입니다.

29.그 때에 모압 사람 약 만명을 죽였으니 모두 장사요 용사라 한 사람도 도망하지 못하였더라

얍복강 나루에서 죽인 것입니다. 30절입니다. 30.그 날에 모압 사람이 이스라엘 수하에 굴복하매 그 땅이 팔십년 동안 평온하였더라 ‘팔십년동안 평온하였더라’ 에훗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사사시대에서 가장 긴 80년 동안의 평화를 누릴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일어난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는 강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 재능이 있는 사람만을 들어 사용하시는 분이 아니라 약점과 허물이 많고 부족한 사람도 들어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우리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롬 8징 26절을 보시겠습니다. 26.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이 말할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그래요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너무 잘 아십니다. 내가 내 자신을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은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한 행동을 한다고 해서 나를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으십니다. 왜요? 나를 너무 잘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연약하고 부족한 나를 미워하거나 싫어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도하심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성경을 보시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바 되어 쓰임을 받았던 사람들은 약점이 많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자기 아내 사라가 예뻤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고 아내를 빼앗을까봐 누이라 속이며 살았던 겁쟁이 이었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자기 혈기를 참지 못해서 애굽 사람을 맨손으로 쳐죽이고 도망 했던 살인자 이었습니다. 그당시 광야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실 물을 쏟아져 나오게 하기 위해 그냥 말로 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지팡이로 두 번 내리쳐서 반석을 깨트렸던 다혈질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잘난 점 보다는 부족한 면이 훨씬 더 많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들을 들어 사용하셔서 강하고 지혜롭다고 하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약하고 부족하다고 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모두 사용하십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에훗처럼 하나님께서 사용하십니까? 그래서 이시간에는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약점이 있는 에훗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기준이 어떤것인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도 에훗처럼 약점이 많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용하심을 받는 축복을 누릴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째로 에훗은 자신의 약함을 인정했습니다.

에훗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약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았습니다. 만일 에훗이 자신이 가진 약점 때문에 비관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사사로 불렀을 때에, 에훗은 거절했을 것입니다. ‘온전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도 수행하기 힘든 일을 나같은 장애인이 어떻게 감당해나갈수기 있겠습니까?’ 라고 말하면서 처음부터 거절했을 것이빈다. 하지만 에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실 때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약점이 많은 에훗 이였지만 그는 결코 자신의 약점 때문에 고민하고 비관하며 살지 않았던 것입니다. 에훗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약점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았습니다. 유명한 작가인 마크 트레인이 이런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없이는 결코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갈수 없다’ 이 말을 쉽게 말하면 ‘내가 나를 좋아하지 않고는 결코 축복된 인생을 살 수 없다’ 는 의미입니다. 최소한 내가 내자신을 좋아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미워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나폴레옹은 아주 작은 키와 허약한 몸을 가지고 있었지만 유럽을 정복했습니다. 헬렌 켈러는 장님에다가 귀머거리이였지만, 오히려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소망과 희망을 주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내가 내 자신의 약점을 보면서 기가 죽어서 살아가는 것 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약점을 있는 모습대로 내가 인정하며 살아간다면 그것은 더 이상 약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인간에게 약점과 강점의 차이가 어디에 있습니까? 왜 강점입니까? 그것은 내가 인정을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있는 그대로 인정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약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에훗은 자신이 외팔이임에도 불구하고 적군의 왕을 죽여야 하는 용사로 부름을 받았을때 변명하지 않고 즉시 순응했습니다. 이렇게 저와 여러분도 나에게 약점이 있다 할지라도 이 약점도 하나님께서 허용하셨다 라고 믿고 살아가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쓰임을 받을수 있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보합니다.

 

둘째로 에훗은 약한 만큼 주님을 의지하였습니다.

28절입니다. 28.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수들인 모압을 너희의 손에 넘겨주셨느니라 하매...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수들인 모압을 너희의 손에 넘겨주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에 넘겨주셨다’ 에훗은 ‘내가 모압왕을 죽였다’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압압을 우리의 손에 넘겨주셨다 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에훗이 매사에 하나님을 의지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에훗을 도우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셨던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이 도와 주시지 않으시면 어떻게 공물을 바치러 가는 사람이 왕과 개인적으로 만남을 가질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왕 앞에 나아갈 때 누가 몸수색이라도 했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리고 에훗이 칼을 빼내서 찌를려고 했을 때 모압왕이 큰소리를 질렀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에훗이 에글론 왕을 죽이고 도망가는 동안에 신하들은 왕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거나 잠을 자기 때문에 오랫동안 조용히 있는 줄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사이에 에훗은 멀리 도망 갈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요단강 나루터에서 용사들인 모압의 군사들을 만명이나 죽일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이 도와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에훗이 자신의 약함으로 인해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하나님이 책임져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에 대해 어떤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른 손을 쓰지 못했던 에훗은 자신의 단점 때문에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였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친히 에훗의 오른 손이 되어 주셨다.”

그래요. 내가 가진 이 약점 때문에 내가 더욱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될 때 나의 이 약점은 더 이상 약점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로 에훗은 최선을 다했기에 하나님이 도우신 것입니다.

에훗은 약한 만큼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하지만 그 하나님만을 믿고 그냥 있지는 않았습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길이가 45cm나 되는 칼을 만들어 우편 허벅지 옷 속에 차고 들어갔습니다. 아마도 모압왕을 경호하고 있는 군인들이 왕을 만나러 가는 에훗을 관찰할 때 주로 왼쪽 허벅지와 왼쪽 다리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을 것입니다. 왜요? 에훗이 왼손만을 사용하는 장애인 이었으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에훗은 오른쪽 다리에 칼을 숨겼습니다. 그리고 혼자 들어가서 왕에게 은밀한 일을 고하러 왔다고 말해서 왕 주위에 있던 사람들을 다 물러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왕과 단둘이 남게 되었을 때 왕을 살해했습니다. 그는 약점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최선을 다하여 준비하였고 최선을 다하여 행동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최선을 다하여 준비한 사람들을 도우시고 사용하십니다.

기억하십시다. 믿는 성도들은 내가 가진 약점 때문에 망하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약점 때문에 실패하는 것도 아닙니다.

삭개오를 보십시오. 키가 작은 약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뽕나무를 삭개오 주변에 준비 해놓셨습니다. 그럼으로 삭개오가 그냥 가만히 있으면 주변사람들보다 낮은 위치에 있지만 최선을 다해 올라갔기 때문에 가장 높은 자리에서 예수님을 볼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저와 여러분이 최선을 다해 주님을 바라볼 때 주님은 삭개오처럼 우리를 들어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모두가 다 약점이 있습니다. 약점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약점 때문에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사람이 있고 이 약점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을 멀리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신체적인 약점이 나를 슬프고 불행하게 만들수는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가진 부족함이 나의 신앙생활을 힘들게 하거나 어렵게 할 수는 없습니다. 경제적인 약점이 나를 불행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내 가정의 약점이 나를 고통스럽게 할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이 약점은 주님이 허용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허용하신 것이기 때문에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됩니다. 이 약점으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약점이 있어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도우십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십니다. 우리 인생은 바람이 불면 이리 저리 떠돌아다니게 되는 낙엽처럼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바람이 불어도 끄덕도 하지 않는 낙엽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부로아 로 불어도 날라가지 않는 낙엽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바위에 달라붙은 젖은 낙엽입니다. 이 젖은 낙엽은 바위가 굴러가지 않는 한 끄덕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으로 바위에 붙어있는 젖은 낙엽처럼 저와 여러분도 반석이 되시는 주님만을 의지하고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간단히 정리합니다. 내가 가진 이 약점을 그대로 인정하며 살아가십시다. 그리고 나의 이 약점을 허용하신 하나님이심을 믿고 더욱 의지하십시다. 내가 가진 이 약점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욱더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가십시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내가 가진 이 약점 때문에 오히려 재능이 있고 능력이 있는 사람들보다 더 많이 하나님의 쓰임을 받을수 있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