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행복의 출발점

Author
kgmcc
Date
2021-10-17 00:01
Views
31
본문 : 베드로 전서 3장 1-7절

날짜 : 2021년 10월 17일

 

<베드로 전서 3장 1-7절>

1.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2.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3.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5.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7.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며칠전 우리나라 부산에 있는 어느 한 아파트 화단에 세 명의 사람이 쓰러져 있는 것을 아파트 주민들이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쓰러져 있는 그 세 사람을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모두 숨을 거두었습니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이 세 사람들은 60대인 할아버지와 3살 그리고 1살이 된 손자 들이었습니다. 그후에 그 아파트에 설치되어있는 CCTV 로 확인 해보니까 사건이 일어난 당일 할아버지가 두명의 손자들을 데리고 옥상으로 올라가는 장면이 찍혔습니다. 그리고 옥상에는 CCTV가 없어서 정확한 상황을 알수 없었지만 경찰은 할아버지가 손자들을 데리고 옥상에서 같이 투신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당시 이 할아버지의 아들은 며느리가 되는 부인과 이혼절차를 진행하는 상태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들과 며느리는 이혼 숙려기간중에 있었습니다. 이혼 숙려기간이란 이혼을 하기전에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기간입니다. 90일 간의 이혼 숙려기간이 주어졌는데 그중 절반인 45일은 남편이 아이들을 보고 그리고 나머지 45일은 아내가 아이들을 돌보기로 되어있었습니다. 그런ㄴ데 남편이 아이를 돌보게 된 그 45일 기간 중에 할아버지가 손자들을 데리고 옥상에 올라가서 같이 아파트 아래로 투신자살을 한 것입니다.

이 기사를 보면서 저는 여러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는 부부들 사이에 일어나고 있었던 불화와 갈등이었고 또 하나는 자기 아들과 며느리가 이혼 절차를 밟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 아버지의 마음이었습니다. 아무 죄없는 어린 손자를 데리고 같이 죽는 것은 정말 잘못된 행동이고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될 일입니다. 그런데 당사자인 아들과 며느리도 이혼을 진행하면서 마음이 괴로웠겠지만 그 자식을 보고 있는 아버지도 무척 힘들어 하셨구나 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어버이의 날 이 있고 이곳 미국에서는 어머니 날 과 아버지 날이 따로 제정되어 있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가장 기뻐하고 행복해 하는 일 중의 하나는 바로 자녀들이 행복하게 잘 살아가는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식된 도리로서 행하여야 할 아름답고 귀중한 일중의 하나는 바로 자기 부모에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있습니다.

그럼으로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고, 가장 큰 일은 바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가는 것에 있습니다. 이세상의 모든 행복은 바로 가정의 행복에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사실 행복한 결혼생활을 해나가는 것이 말처럼 결코 쉬운일은 아닙니다.

러시아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바다로 갈 때에는 한번 기도해라. 전쟁터로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해라. 그러나 결혼식장에 나갈 때는 세 번 기도해라’ 그러니까 결혼이라고 하는 것은 바다에서 항해하는 것 보다 더 힘들고, 포탄과 총알이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싸우는 것보다 더 치열하고 더 위험하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행복하고 평안한 결혼 생활을 해나가는 것이 쉽지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행복의 출발은 반드시 가정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왜나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사랑하셔서 가정을 만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이 행복하게 인생을 살아갈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행복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스위스의 교육학자인 페스탈로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기독교의 위대한 업적은 나라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변화시키는 것에 있다’ 우리 인류의 역사는 에덴 동산의 한 가정에서 출발했습니다. 이 우주 만물과 이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제일 먼저 가정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가장 먼저 이적을 행하신 곳이 바로 이제 막 가정이 탄생하게 되는 결혼 연회장 이었습니다. 그럼으로 이러한 사실만 보아도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 가정에서 우리인간의 행복이 출발하기를 원하시는 것을 우리는 알수있습니다.

그럼으로 행복할수 있는 결혼생활의 비결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젊은 남녀가 결혼을 하고 부부가 되어 아내의 신분에서 그리고 남편의 신분에서 가져야 할 행동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에 결혼을 할 성도님이 계셔서 오늘 분문을 택하였지만 결혼을 하신 모든 성도님들도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겨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내게 처한 신분에 맞게 행동해나가심으로 말미암아 행복한 가정생활을 이루어 나갈수 있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1절부터 6절까지는 아내에게 주는 권면이 나오고 7절은 남편에 대한 권면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남편에 대한 권면보다는 아내에 대한 권면 내용이 더 많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 이지만 초대교회 당시에도 여자 성도들이 남자 성도들보다도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먼저 믿게 된 여자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아야 가정으로 돌아가서 남편에게 올바르게 행동할수 있기 때문에 아마도 아내에게 하는 권면이 더 많았던 것으로 봅니다.

 

먼저 아내에게 주는 권면을 살펴보면

첫째로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말씀합니다.

본문 1절 전반부입니다. 1.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남편에게 순종하라’ 라고 한 이유는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가정의 질서를 위해서이고 또 다른 하나는 믿지 않는 남편의 구원을 위해서 라 할수 있습니다.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것은 여자가 남자보다 신분이 낮고 열등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부족한 존재이기 때문도 아닙니다. 가정의 질서를 위해서입니다. 가정은 마치 인생의 바다를 항해하는 배와 같습니다. 배안에는 선장이외에도 배를 움직이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관사도 있고 항해사도 있고 갑판장도 부선장도 있습니다. 그런데 배가 올바로 가기 위해서는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역활을 충실하게 지켜 나갈 때 가능합니다. 비행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비행기를 조종하는 기장 이외에도 부기장이 있고 사무장도 있고 승무원들이 있습니다. 모두 각자에게 주어진 일에 순종해 나갈 때 질서가 생기고 비행기가 정상적으로 비행 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가정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가정의 질서를 위해서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아내의 순종을 강조한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지 않는 남편의 구원을 위해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조금전에 잠시 언급했습니다만 초대교회 당시 교회 안에는 여자가 남자보다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남편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먼저 믿는 아내의 행실이 아주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아내들에게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여기서 ‘이와 같이’ 라는 의미는 앞장인 2장을 보시면 알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매를 맞고 온갖 멸시와 조롱을 당하시고 모진 고통을 받으셨지만 같이 맞대응을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죽기 까지 순종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러한 순종하심 때문에 믿지 않던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이와같이’ 아내인 너희들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서 믿지 않는 남편들을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1절 전체를 보시겠습니다. 1.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그 이유가 나옵니다)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믿지 않는 남편의 구원을 위해서는 행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남편의 구원을 위한 아내의 행실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1정결한 행실

그것은 바로 정결한 행실이라고 말씀합니다.

본문 2절입니다. 2.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여기서 ‘두려워한다고 하는 것’ 은 남편을 무서워하고 두려워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아내는 정결하고 깨끗한 삶을 살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결한 행실은 보이는 외모보다는 보이지 않은 이 내면을 더욱가꾸고 성숙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3절과 4절입니다. 3.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너희의 단장은 ....(3절 마지막에) 외모로 하지말고’ 너희 단장은 외모로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얼마전에 유투브 동영상에 어떤 젊은 여자가 나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쁜 것이 죄라고 한다면 나는 사형감이야’ 처음에는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자기는 예뻐도 너무 예쁘다 는 뜻이더군요. 사람들은 이렇게 외모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오늘날 뿐 만 아니라 초대교회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인들은 아름다운 옷과 값비싼 악세사리로 자신을 단장하고 꾸미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물론 이 본문은 화장도 하지 말고 좋은 옷을 입지 말라 는 의미는 아닙니다. 자신의 외모를 무시하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우리 믿는 성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육신과 외모를 소중하게 여기고 단장해야 합니다. 얼굴을 제대로 씻지 않고 옷도 지저분하게 입고 다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덕이 되지 않습니다. 그럼으로 우리 믿는 성도는 얼굴을 깨끗하게 씻고 적당하게 화장을 하고 옷도 단정하게 입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보이는 외모를 단장하고 신경을 쓰는것보다 보이지 않는 이 내면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속사람(마음) 을 아름답게 하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속사람을 어떻게 단장해야 합니까? 본문 4절 전반부를 다시 보시면 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사람눈에 보이지 않는 이 내면을 단장하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온유하고 ‘온유함'이고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안정한 심령’ 입니다. 온유함과 안정한 심령이 바로 아내가 가져야 할 정결한 행실입니다. 가정의 질서를 위해서 그리고 믿지 않는 남편의 구원을 위해서 아내가 평생동안 지니고 살아야 할 덕목입니다. 이 온유함은 헬라어 단어로 ‘프라위스’ 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온유하다라고 말하면 얌전하고 점잖은 선비같은 사람을 볼 때 온유하신 분이다 라고 생각합니다만 성경에서 말씀하는 온유함은 이와 다릅니다. 이 ‘프라위스’ 라는 말은 거치고 힘센 야생말이 잘 훈련이 되어서 사람들의 말을 따르는 것에서부터 유래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온유하다라고 하는 의미는 들 짐승이나 야생마와 같이 원래는 힘이 있고 거칠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훈련되어 그 힘이 올바르게 사용할 때 ‘온유하다’ 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모세를 온유한 사람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민수기 12장 3절입니다. ‘3.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 하더라‘ 아시다 시피 모세는 원래 거칠고 다혈질 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을 받게 되면서 자신의 힘을 올바른 방향으로 사용하는 온유한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아내는 자기 남편을 입술로나 지식으로 충분히 누를수 있다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순종함으로서 그 힘을 억제하고 남편에게 부드럽고 친절하게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안정한 심령으로 내면을 단장하라고 말씀합니다. 4절 중간이후입니다. 4.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안정한 심령’ 은 헬라어로 ‘헤쉬키오스’ 인데 ‘고요한, 평화로운’ 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남편이 직장이나 사업에 실패할 수가 있고 건강을 잃어버릴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이런 저런 문제가 일어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정에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일어나더라도 아내는 가정을 안정되게 해야 합니다. 가정을 평온하게 해야 합니다. 남편이나 자녀에게 문제가 생겼는데 아내가 위로하거나 격려하지 않으면 가정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히려 반대로 아내가 더 화를 내고, 더 못 견디어 하고, 아내가 더 시끄럽게 하고 엄마가 더 화를 내고 큰소리를 내면 가정이 풍지박살 나는 것입니다.

어거스틴 의 자서전인 고백론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나의 어머니는 아버지를 자기 주인으로 섬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저의 어머니의 행실로 설교하게 하심으로 아버지를 하나님에게로 인도하셨습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가정에서 겸손과 순종의 삶을 통해 믿지 않는 남편을 변화시켰던 아내이었습니다. 말과 입술로는 불신자들을 감동시킬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거룩한 모습으로 살아갈 때 불신자들이 그 모습을 보고 주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5절과 6절은 이렇게 자기 마음을 온유함과 안정된 마음으로 내면을 단장하고 순종하며 살았던 대표적인 사람으로 사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이 부분은 생략하고 이제 남편들에게 주신 권면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남편에게 주는 권면

본문 7절입니다. 7.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남편에게 주는 권면은 지식을 따라 아내와 동거하라고 말씀합니다.

7절 전반부입니다. ‘7.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남편은 아내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여자와 남자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남자는 주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만 여성은 감성적입니다. 그래서 식당을 골라도 남편은 값싸고 양을 많이 주는 곳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아내는 분위기가 좋은 곳을 선택합니다. 음식이 별로 맛이 없고 가격도 비싸도 분위기가 좋다면 남편은 그런 아내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이해할수 있는 것입니다

TV를 볼 때에도 남편은 스포츠를 보기 좋아하지만 아내는 드라마를 보기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드라마에서 사건이 일어나면 흥분하기도 하고 또 드라마에서 사람이 다치거나 죽으면 눈물을 흘리며 지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아내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지식을 따라 동거하라’ 는 말은 남편이 자기 아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내에 대한 지식을 배우지 못하는 남편은 내가 돈을 두배로 벌게 되면 아내가 두 배나 행복할것이라고 잘못 생각합니다. 그럼으로 아내를 행복하게 하고 사랑하게 하는 것에는 아내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지식’ 이라는 말은 단순히 아내에 대한 지식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지식은 아내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도 있지만 그보다는 결혼 제도를 만드신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남편이 알아야 하는 지식은 무엇입니까?

 

남편이 알아야 할 지식 첫째로 아내는 더 연약한 그릇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7절 전반부입니다. 7.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더 연약한 그릇이요’ 여기서 그릇은 흙으로 만들어 불에 구운 질그릇을 의미합니다. 흙으로 구워 만든 질그릇이니까 잘 깨어집니다. 땅에 떨어뜨리게 되면 깨어지는 것이 질그릇입니다. 그러니까 남편은 아내가 질그릇처럼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나의 도움과 나의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지식을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힘이 없고 연약한 남편이라 할지라도 자기 아내는 나보다 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육체적으로 볼 때 아내는 남편에 비해서 힘이 없습니다. 또 감정이나 정서적으로도 아내는 쉽게 상처를 받습니다. 작은 말 한마디로도 상처를 받고 한번 상처를 받으면 오랫동안 힘들어 하는 존재가 아내입니다. 남편이 입술로 말해버린 30초가 아내의 가슴에는 30년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남편이 알아야 할 지식은 아내는 나와 함께 생명을 유업으로 얻게 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7절 중반부입니다. 7.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여기서 생명의 은혜는 한마디로 ‘영생’ 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내 아내는 나와 천국을 같이 누리게 될 존재 입니다. 이 70, 80년 짧은 세월을 살아가는 동안 다투지 말고 천국에서 영원히 같이 살아갈 존재라는 사실을 늘 생각하며 보다 넓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생동안 한번도 부부싸움을 하지 않고 결혼 생활을 해나가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그 부부에게 이웃사람이 찾아가서 물어보았습니다. “어떻게 당신들은 단 한번도 부부싸움을 하지 않고 지낼수 있습니까?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그집 남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희들이 부부싸움을 하지 않는 비결은 바로 남편이 해야 할 일과 부인이 해야 할 일을 엄격하게 구분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주어진 일은 자기가 하고 상대방에게 주어진 일에는 일체 서로 간섭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더 궁금해진 이웃 사람이 묻습니다. ‘그렇다면 서로 각자가 맡은 업무 분담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그때 그 남편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자질구레하게 일어나는 작고 소소한 일은 아내가 결정하고 보다 크고 원대한 일은 제가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웃사람이 또 묻습니다. ‘무엇이 작고 자질구레 한 일이고 또 무엇이 크고 원대한 일입니까?’ 그러자 그 집 남편이 대답합니다. “작고 자질구레한 일이란 예를 들면 집을 이사해야 할 것인가? 말것인가? 이사를 한다면 언제 하며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또 아파트로 옮길 것인가? 단독주택으로 옮길 것인가? 이번 주말에는 외식을 할것인가, 말것인가? 외식을 하게 되면 어느 식당에 갈 것인가? 또 다가오는 공휴일에 여행을 할 것인가 말것인가? 아니면 친척이나 친구 집을 방문할 것인가? 이런 것에 대해서는 아내가 맡아서 결정을 합니다. 그리고 저는 보다 더 큰일을 맡아서 결정합니다. 예를 들어서 앞으로 달나라에 사람이 가서 살 수 있다면 우리 가족이 그곳에 가서 살 것인가? 말 것인가, 달나라에 있는 어느 식당에 가서 외식을 할 것인가? 금성이나 화성에 언제 여행을 할 것인가? 이렇게 보다 크고 원대한 일에 대해서는 제가 결정하기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가정에는 부부싸움이 일어날수가 없는 것이죠. 부부는 이땅에서는 한시적으로 같이 살아가고 있지만 죽음 이후에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면서 영원히 하나님의 나라에서 같이 살아갈 존재입니다. 그럼으로 아내는 조금 작은 일에 그리고 남편은 보다 큰 일을 맡아서 서로 간섭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와 비슷한 원칙이라도 있다면 평안하고 행복한 가정생활이 될줄 믿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남편이 알아야 할 지식은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라 할수 있습니다. 7절 후반부입니다. 7.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남편이 아내와의 관계에서 막히게 되면 기도가 막히게 됩니다. 남편이 아내의 말을 듣지 않으면 하나님도 그 남편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내와의 관계가 잘못되면 내가 기도를 해도 하나님이 듣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남편이 되는 입장에서 이사실을 아는 지식이 가장 중요합니다. 왜 남편인 내가 아내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까? 그것은 바로 내가 아내를 귀하고 소중하게 여겨야 하나님도 나를 귀하고 귀중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내와 관계가 좋아야 하나님이 나의 기도와 나의 소망을 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남편보다 아내를 더 연약한 그릇으로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더 연약한 그릇인 아내를 아끼고 사랑해주지 않으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럼으로 남편이 되는 사람은 가정의 축복을 위하고 내 자녀를 위하고 나를 위해서라도 아내를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결혼을 하고 84년 이라는 긴 시간을 같이 지내고 있는 어느 한 미국인 부부에 관한 기사를 몇 년전에 제가 접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 코네티컷 주에 살고 있었는데 그당시 남편인 존 베티는 나이가 104살이고 아내인 앤 베티는 100살이었습니다. 당시 자녀가 5명, 손주가 14명, 증손자 16명이었습니다. 어느날 하루 이 부부를 찾아온 기자에게 ‘사랑의 원칙’ 다섯가지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시간에는 아내 앤 베타가 말한 한가지 그리고 존 베타가 말한 한가지만 알게 되어도 나머지 세가지는 여기에 다 포함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첫째는 타협하고 절충하라 는 것입니다. 아내인 앤 베티 가 이렇게 말합니다. ‘결혼할 사람을 변화시킬수 있다는 생각은 미친 생각입니다. 바꿀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도 마세요. 그렇다고 그대로 내버려 두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항상 타협점을 찾고 절충하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타협하고 절충하기 위해서는 서로 존중하고 보살펴야 한다는 대 원칙이 필요합니다. 서로 존중하고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어떠한 문제라도 타협하고 절충할수 있습니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원칙 두번째로 남편인 존 베티가 짧지만 임팩트가 있는 한마디 말을 합니다. ‘아내가 보스가 되게 해야 합니다’ 

그러자 아내인 앤이 웃으며 이렇게 토를 달아줍니다. ‘우리 사이에는 '보스'가 없습니다. 제 남편이 말한 '아내를 보스로 모시라' 말은 "아내가 하는 말을 관심있게 들어야 한다"라는 의미입니다' 라고 설명합니다.

사소한 서운함도 쌓이고 쌓이면 오해가 되고 미움이 되니까 그것이 쌓이지 않게 아내의 말을 잘 들어주라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그리고 아내는 남편을 서로 세워주고 존중을 하면 모두가 결혼 생활에 승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예수님이 교회를 위해 죽으신 것처럼 희생하고 사랑하며 살아가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행복한 가정생활을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