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감사할수 있는 이유

Author
kgmcc
Date
2021-11-06 22:42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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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한복음 11장 32-44절

날짜 : 2021년 11월 7일


 

<1132-44>

32.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36.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37.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38.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41.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이곳 미국 교회에서는 매년 11월 달을 감사의 달로 여기고 여러 가지 행사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11월에 추수감사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11월 4번째 목요일이 추수감사절인데 올해는 11월 25일이 추수감사절이 되죠. 이 추수감사절에 대한 배경은 두가지로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하나는 성경적인 배경이고 또 다른 하나는 청교도들에 의한 배경이라 할수있습니다. 성경적인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켰던 3대 절기를 보면 유월절(passover), 오순절(pentecost), 초막절(Feast of Tabernacles) 이 있는데, 이중에서 초막절이 추수 감사절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초막절은 가을 추수가 끝나고 일주일동안 감사드리는 절기인데 대한민국에서 지키고 있는 추석 명절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지키고 있는 이 추수 감사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고 있는 초막절에서 유래했다기 보다는 약 400여년 전에 이 미국에 들어온 청교도들이 지냈던 감사의 축제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620년 12월 21일에 영국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 플라워 호 배를 타고 영국을 떠난지 65일 만에 이 아메리카 신대륙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미국땅에 도착했던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그리고 또 가지고 왔던 식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해 겨울을 지내는 동안에 절반가량이 죽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해 봄철에 인디언 원주민들의 도움을 받아서 농사를 지을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가을에 풍성한 곡식을 수확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청교도들이 그당시 90여명의 인디언 원주민들을 초청해서 다같이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감사의 잔치를 가졌습니다. 이것이 미국 청교도들의 첫 번째 감사의 예배이었고 훗날 지금의 Thanksgiving Day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그이후 수많은 시간이 지난 1863년 미국 에이브레함 링컨 대통령이 이런 청교도정신(puritanism), 특별히 감사의 정신은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매년 11월 네 번째 목요일을 Thanksgiving Day로 정했습니다. 그래서 다가오는 11월 25일이 네 번째 주 목요일이 되고 그래서 Thanksgiving Day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청교도들이 그당시에 처한 입장은 아주 좋지 않았습니다. 그당시에 그들 중의 절이나 되는 사람이 추운 겨울을 지내는 동안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당시 살아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사랑했던 가족이나 친척을 잃어버린 아픔과 슬픔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식량도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살아남은 자기들도 어떻게 될지 한치 앞도 내다 볼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감사했습니다. 이런 감사의 정신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까? 사실 이런 감사의 정신은 바로 예수님으로부터 배웠다고 할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감사하는 모습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감사 기도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41절입니다. “41.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감사하나이다’ 그런데 지금 상식적인 눈으로 볼 때 감사할수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친구 나사로가 나흘전에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당시 예수님께서 지니고 계신 마음을 우리는 33절과 35절에서 알수 있습니다.

33절입니다. 33.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5절입니다.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지니고 계신 슬픔과 아픔을 잘 알수 있습니다. 죽음의 권세 앞에 힘없이 쓰러져가는 연약한 인생을 보시면서 예수님께서는 한없이 슬퍼하시고 눈물을 흘리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도 감사할수있는 분위기는 아닌 것 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감사를 하신 것입니다. “감사하나이다”

성경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감사하나이다” 라고 말씀하신 장면이 여러군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 다 좋은 상황에서 예수님이 감사하신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1장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고라신과 벳세다 마을에서 많은 기적과 권능을 베푸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마을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누가 복음 5장 32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자신이 이땅에 오신 목적을 말씀하십니다. 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회개시키러 왔노라" 어떻게 회개를 시킬수 있습니까? 회개 시키기 위해서는 일단 내가 죄를 짓고 살아가는 죄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죄에 대해 회개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행하시고 난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면 ‘회개하여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 메시지를 보다 쉽게 풀어보면 이런 의미입니다. ‘너희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 죄인이다. 그러니까 지은 죄를 회개해라. 그리고 내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 구세주임을 믿어라. 그러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이렇게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가 죄를 짓고 살아가는 죄인임을 인정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럼으로 예수님께서 공생애 활동을 하시면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고라신과 벳세다 마을에서 많은 권능을 베푸셨는데도 불구하고 그 마을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이 두 마을에서는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목적에 실패를 한 상황이라고도 할수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감사하신 것입니다. 마 11장 25절입니다. “25. 그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회개를 하지 않는 모습을 보시면서 기도 하신 것입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11장 25절). “감사하나이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감사할 상황이 되어서 감사하신 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사랑했던 친구 나사로의 죽음을 보시면서 그래서 슬퍼서 눈물흘리고, 가슴 아파하시면서도 ‘감사하나이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이 목적하셨던 그 일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도 감사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감사할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실수가 있었던 것입니까? 그래서 이시간에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예수님께서 감사할수 있었던 그 이유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내게 슬픔이 있고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처럼 감사하며 신앙생활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아버지 때문에

41절입니다.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아버지여‘

예수님께서는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아버지’ 라고 부를수 있는 대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호소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힘이 들고 어려울 때 육신의 부모님을 찾게 되어있습니다. 딸들이 결혼을 해서 임신하게 되면 일어나게 되는 일중의 하나가 바로 엄마를 자기 곁에 부릅니다. 그래서 제 주변에 있는 선배 목사님들 중에는 임신한 딸을 돕기 위해서 사모님이 집을 떠난 탓에 목사님이 혼자 계시는 모습을 쉽게 볼수 있습니다. 저도 딸이 세명이 있어서 나중에 그렇게 되지 않을까 예상 해봅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힘들고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특별히 부모님을 찾게 됩니다. 하지만 육신의 부모님이 돕는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자기 자식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야 많지만 그 도와주는 능력에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에게는 한계가 없습니다. 그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면 이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그 하나님을 향하여 저와 여러분이 감히 ‘아버지“ 라고 부를수가 있다면 이 얼마나 감사할수 있는 일 이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 이렇게 부를수 있다는 것만 해도 우리는 감사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내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무슨 의미입니까? ‘지나간 세월동안에 아버지께서 그동안 나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라는 뜻입니다. 그다음 42절입니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 ’그동안 내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 지금도 내 기도를 듣고 계시는 것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일도 모레도..., 영원토록 내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계실것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감사할수 있었던 이유이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이 처한 현실이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내가 드리는 기도에 관심을 가지시고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고 계시는 그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시기에 우리는 다시 일어날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일어나 걸을수 있고 뛸수도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아픔이고 지금은 눈물이고 지금은 어려움이 있다할지라도 하나님이 내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에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이 예수님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될 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믿음 때문에

40절입니다.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내말이 네가 믿으면’ 이것은 누구에게 하신 말씀입니까? 나사로의 누이 마르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마르다야, 너에게 믿음이 있다면 오라비 나사로가 죽어버린 이렇게 슬프고 마음이 아픈 상황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하실 영광을 바라보며 감사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보면 두가지 중요한 동사가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믿다’ ‘보다’ 입니다. 이 동사도 중요하지만 순서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믿으면 보리라‘ 이지 ’보면 믿으리라’ 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눈으로 보아야 믿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믿으면 보리라” 믿음이 먼저입니다. 믿음이 있고 난 뒤에 볼수 있게 됩니다. 사실 이것은 신앙의 원리뿐만이 아니고 세상의 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커넬 샌더스의 할아버지에게 믿음이 있고 난후에 켄터키 후라이 치킨 식당이 세워진 것입니다. 하워드 슐츠에게 믿음이 있고 난후에 지금의 스타 벅스 가게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믿음이 먼저입니다. 아무런 믿음이 없이 저절로 식당이나 거피 숍이 생기게 된 것은 아닙니다. 이와 같은 원리가 신앙인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하지만 믿는 신자와 불신자와의 차이가 단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없고의 차이입니다. 우리 믿는 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은 자신의 신념이나 자신의 생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까 우리 믿는 신앙인에게 있어서 믿음의 원동력은 말씀에서 오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입니다. “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음은 말씀을 들음 에서’ 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겨자씨 하나를 땅에 심으시면서 그 겨자씨가 자라서 큰 나무가 되고, 그 나뭇가지에 공중의 새들이 둥지를 짓고 살아가게 되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았습니다. 작은 겨자씨 같은 열두명의 제자들이 자라서 큰 나무가 되고 그 가지가 뻗어서 오대양 육대주 이세상 전체에 뻗치게 될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뭇가지가 태평양을 건너서 한국에 까지 이르게 되고 그리고 마침내 그 나무가지에 저와 여러분이 둥지를 트고 살아가게 될 것을 믿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이 가지신 그 믿음을 지금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내 상황이 힘들고 보잘 것 없다 할지라도 중요한 것은 지금 내게 보이고 있는 이 현실이 아닙니다. 지금 내게 믿음이 있느냐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 내눈에 보이는 내 이 남편, 내 이 자식, 내 이 교회, 내 이 모양, 내 이 건강이 아닙니다. 내게 믿음이 있느냐 하는 것에 있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됩니다. 믿음이 있으면 밀알과 같은 작은 씨이지만 생명이 있기 때문에 자라게 됩니다. 이 믿음은 사과안에 들어있는 사과씨와 같습니다. 그래서 사과를 심으면 그 사과안에 있는 씨가 자라서 많은 사과 나무가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사과안에 사과씨가 없다면 사과를 심으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럼으로 믿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믿음은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되면 생기게 되며 말씀을 듣게 되면 믿음이 자라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위대한 일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내 주변의 환경으로 인해 마음이 약해지고 힘들어질 때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들어야 합니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장 33절).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구하는 이마다 받을것이요 찾는이는 찾아낼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것이니라’(눅11장 10절) 이런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될 때 우리는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약해져 있을때도 다시 회복하여 담대하게 살아갈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성장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주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힘들고 어려운 환경을 극복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행하실 위대한일을 바라보면서 감사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사명 때문에

42절입니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이땅에 보내셨다고 하는 사실을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을 보시면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 라고 하시는 말씀을 여러번 볼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고 이땅에 오셨기 때문에 그 사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시면서 감사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상황이 좋아지고, 자신이 편해져서 감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감사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26장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떡을 떼시고 감사의 기도를 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 나누어주시면서 ‘이 떡은 내몸이니 너희들이 기념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그러신 후에 포도주 잔을 가지시고 감사기도 하십니다. 그리고는 ‘이것은 내 피이니 서로 기념하라’ 라 고 말씀하시고 마시게 하십니다. 이렇게 자신의 몸과 자신의 피를 내놓으시는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신 상황에도 예수님은 감사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 일을 이루어야 할 사명자의 마음가짐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사명이 이루어지고 있다면 지금은 아픔이고, 지금은 고통이라 할지라도 감사할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리셔서 자신의 생명을 바치심으로서 우리 인간이 진 죄 값을 다 지불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 라고 말씀하시고 운명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이 이땅에 오신 사명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20장 21절입니다.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명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이 이 교회에 보내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 교회에서 사명자 의식을 가지고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주님이 이 가정에 보내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 가정에서 우리는 사명자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이 이 직장에 보내셨기 때문에 우리는 사명자 의식으로 일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이 나를 여기에 보내셨다‘ 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셨다면 그분이 책임 지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내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 내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 그리고 내직장과 내 사업터에서 일어나는 일은 사실 주님의 일입니다, 주님이 보내셨기에 주님이 책임지실 일입니다. 우리는 보냄을 받은 사명자로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힘들고, 가정이 힘들고, 직장과 사업이 힘들어도 내가 사명자로 살아간다면 되는 것입니다. 사명자로 살아갈수 없는 것이 문제이지 내가 사명자 의식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힘들어도 감사할수 있습니다. 직장과 사업이 힘들어도 내가 사명자로 생활해나간다면 감사할 수있습니다.

믿는 성도인 우리는 예수님이 보내셨기에 이 교회와 이 가정과 이 직장과 이 사업터에 있게 된 사명자입니다. 사명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명을 감당해나가느냐 감당하지 못하느냐에 있습니다. 사명자에게 감사할 내용은 사명을 감당해나가는 것에 있습니다. 환경이 좋고 환경이 나빠지고 에 따라 감사하고 감사하지 못하고가 아닌 것입니다.

자, 이제 간단히 정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감사할수 있는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감사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가지신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감사할수 있었습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때 생깁니다. 그럼으로 주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더욱 열심을 내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을 들을 때 생긴 믿음으로 인해 어떠한 상황속에 있다 할지라도 감사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사명자 의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예수님은 감사할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떠한 곳에서 생활을 하든지 ‘주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셨기 때문에 오게 되었고 생활하게 되었다‘ 라고 하는 사명자의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사명을 감당해나감으로서 어떠한 어려움과 고통이 있다 할지라고 감사할수 있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이제 11월 감사의 달을 맞이하여 힘들고 어려울때마다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을 가진 사명자로서 감사하며 신앙생활을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