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천국의 시작은

Author
kgmcc
Date
2021-11-27 22:27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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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태복음 13장 44-46절

날짜 : 2021년 11월 28일

 

<마태복음 13장 44-46절>

44.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45.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아주 오래전에 제가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이제 막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을때 가장 궁금했고 관심이 있었던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천국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천국은 어떠한 곳일까?’ 라고 하는 것이 그당시 저에게는 제일 궁금했고 제일 관심꺼리 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하루는 주일 예배시간에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은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한 비유의 말씀을 하신 내용으로 가득차있습니다. 그래서 이 마태복음 13장은 천국의 장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날 목사님께서 무슨 설교를 하신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마태복음 13장에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한 비유 말씀으로 가득차있다는 말씀이 그날 제 귀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그날 그날 예배를 마치고 집에 가서 마태복음 13장을 읽어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을 하셨을까?' 라고 하는 기대와 호기심을 가지고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읽어보아도 제 마음에 별로 감동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천국이 뭐 이래” 라고 하는 느낌을 가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천국이라고 한다면 그나라가 금과 은과 귀한 보석으로 만들어져 있고 그리고 천사들이 날아다니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리고 천국에서 살고 있는 성도들도 마치 천사처럼 마음대로 날아다니면서 자기들이 가고 싶은 곳도 가고 보고 싶은 사람도 만나는 그런 나라를 예수님께서 설명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기대했었습니다. 뭐 꼭 그런 나라는 아니라 할지라도 그와 비슷한 나라를 말씀하셨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그런 내용은 전혀 없었습니다. “천국은 마치” 이렇게 말씀을 시작 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네 가지 밭의 비유의 말씀하셨습니다. 길가와 같은 밭, 흙이 얕은 돌밭, 가시 넝쿨이 있는 밭, 옥토와 같은 밭. 그리고 또 예수님께서는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의 말씀을 하시고 계속해서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를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읽으면서 저는 별로 감동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저처럼 천국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마태복음 13장을 읽으셨던 성도님들께서는 대부분 처음에는 특별한 감정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아니 천국이 뭐 그래. 그게 뭐 천국이야“ 이와 비슷한 이런 느낌을 가졌을 것입니다. 왜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는가 하면 천국은 우리가 죽고 난 이후에 가게 되는 나라 라고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천국은 우리가 이세상을 떠나게 될때 가게 되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천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나라입니다. 밧모섬에서 천국을 경험했던 사도요한은 인간의 언어로서는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을정도로 천국은 아름답고 영광스럽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천국을 다녀온 이후에 그 천국의 영광스러움을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요한이나 바울에게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 천국 구경을 시켜주셨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에게 있어서 좋은 방법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에 관심을 가지고 되고 기대하게 되는 것은 천국이지만 하나님께서 믿는 성도들에게 먼저 원하시는 것은 관계입니다. 그러니까 순서가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천국에 관한 비유의 말씀을 하실 때 그 천국은 내가 죽은 이후에 가게 될 나라이기도 하지만 지금 현재 이땅에 살면서 미리 경험할 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믿는 성도들이 이땅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게 될 때 그때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요 천국이다 라는 것을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0장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품꾼의 비유의 말씀을 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잘 아시는 내용이지만 잠시 그내용을 살펴보면 아침 6시, 아침 9시, 12시, 오후 3시에 각각 포도원에 들어와서 일을 하는 일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루 일과가 거의 다 끝나가는 오후 5시에 포도원에 들어와서 일하는 일꾼도 있습니다. 일꾼들이 일하는 시간은 각각 달랐지만 포도원 주인은 모든 일꾼들에게 똑같은 액수의 품삯을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포도원 품꾼 비유의 대략적인 줄거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얘기하실 때 이렇게 시작하십니다. 마태복음 20장 1절입니다. 1.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천국은 마치 ... (무엇과 같다고 말씀하십니까? 마지막을 보시면) 이른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 ’천국은 마치.. 집주인과 같으니’ 이 집주인이 누구입니까? 이 집주인은 바로 품꾼을 데리고 포도원에 들여보낼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온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품꾼에게 있어서 무엇이 천국인 것입니까? 이 집 주인을 만나는 것이 천국입니다. 품꾼에게 있어서 천국은 바로 자기에게 일꺼리를 주는 포도원 주인을 만나는 것에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일꾼은 일을 해야 돈을 벌수 있고 그래야 자기와 자기 가족들이 살아갈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꾼에게는 일꺼리를 줄수 있는 포도원 주인을 만나게 되는 것이 천국생활을 할수 있는 시작이 됩니다. 오전 6시에 만나던 오전 9시에 만나던 12시나 오후3시 그리고 오후 5시에 만나던 이렇게 시간은 달라도 일꾼이 그 주인를 만나기만 하면 그때부터 천국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니까 이 비유의 말씀에서 제일 중요한 파운데이션 기초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관계입니다. 일꾼은 일단 주인을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국의 출발점은 관계에서 시작되어집니다. 마찬가지로 포도나무 가지에게 있어서 천국의 시작은 일단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포도나무가지가 생명을 가지고 성장하고 열매를 맺을수 있는 것입니다. 신부에게 있어서 천국의 시작은 일단은 신랑과 같이 생활을 하는 것에 있습니다. 어린 자녀들에게 있어서 천국의 시작은 일단 부모님과 같이 지내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양이나 염소에게 천국은 무엇보다도 목자와 같이 있는 것에서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비유의 내용을 보면 모두다 이 관계의 중요성을 염두에 두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수있습니다. 자 주일날 교회 선데이 스쿨에서 공부하고 있는 어린아이들에게 주일학교 선생님이 이런 질문을 했다고 가정해보십시다. ‘얘들야, 너희들 지금 여기에 있을래? 아니면 엄마가 예배드리는 예배 본당으로 갈래?’ 라고 물으면 모든 어린 아이들이 엄마가 있는 본당 예배실로 가겠다고 할 것입니다. 왜요?. 그 어린아이들에게는 거기가 천국이니까요. 그래서 아이들이 부모가 있는 본 예배당에 오면 가만히 있지 못하고 신이나서 소리를 지르면서 정신없이 여기저기 돌아 다닐 것입니다. 그 어린아이들에게는 부모님이 계시는 에배실이 천국입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생각하고 있는 천국과 지금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천국이 같습니까? 물론 다를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천국은 막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행복해 하는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가 우리에게는 천국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릅니다. 천국이 천국 되기 위해서 하나님은 믿는 성도들인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알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우선 관계를 가지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비유의 말씀을 하시면서 관계를 맺고 살아갈 때 곧 그것이 천국의 시작이다 라는 사실을 알려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지금 여기에 있는 동안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고 살아가게 되면 천국에 가서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 마음을 알지 못하면서 그냥 지내게 되어집니다. 다른 말로 설명하자면 그 사람에게는 천국다운 천국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부끄러운 구원도 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천국에서 그렇게 살아가기를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사실 천국에서도 저와 여러분이 해야 할일이 있다고 제 개인적으로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일이 무엇인지 지금으로서 온전하게 알수는 없지만 분명히 알수 있는 사실은 기쁘고 즐거운 일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일은 너무나 크고 엄청난 일일 것입니다. 두달란트와 다섯 달란트 받았던 종이 많은 달란트를 남기고 주님앞에 섰을 때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5장 21절입니다. ‘21.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이땅에서 믿는 성도들이 한 일은 아무리 위대하고 크게 보여도 적은 주님앞에서는 적은 일입니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주님이 많은 것이라고 말씀하시면 우리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일일 것입니다)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그일이 어떤 내용인지 알수는 없지만 주인의 즐거움이 되는 일인 것은 확실 한 것입니다) 자 주님께서는 믿는 성도들이 고통이 있고 눈물이 있고 어려움과 슬픔이 있는 이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의 위로하심과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면서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면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저 천국은 이땅에 있는 이런 고통, 이런 눈물 이런 슬픔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천국에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싶어도 더 이상 깊이 알수가 없습니다. 그럴 기회도 없습니다. 내가 이땅위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나를 위로하시고 어루만져주시고 응답해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경험한 만큼만 내가 하나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그만큼 나를 신뢰하고 그만큼 주님의 즐거움에 참여할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은 이땅에서 훈련중에 있습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에게는 내것이 없습니다. 다 맡겨진 것뿐입니다. 내게 맡겨진것을 가지고 내가 얼마만큼 신실하고 충실하게 살았는가에 따라 그때 주님앞에 섰을때 내가 받게 될 것이 결정되어질 것입니다. 그것이 진짜입니다.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히 살면서 영원히 가지게 되니까 진짜 내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 이땅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이런 원칙을 가지고 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보물과 진주의 비유라고 부르기도 하고 밭에 숨기인 보물과 진주의 비유라고도 부르기도 합니다. 오늘 이시간에는 이 두가지 비유가 주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오늘은 성찬식이 있기 때문에 가급적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이 두가지 비유의 말씀을 보시면 공통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가치가 있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본문 44절입니다. 44.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밭에서 일을 하고 있던 농부가 밭을 갈다가 밭에 숨겨져 있었던 보물 상자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농부는 이 보물상자를 일단 다시 감추어 두고 집에 가서 자기 소유를 다팔아 그 보물이 숨겨져 있는 밭 전체를 샀다는 것이 첫 번째 비유입니다.

곧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진주장사 비유의 말씀하십니다. 45절, 46절입니다. 45.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좋은 진주를 구하고 있던 진주 장사가 극히 값진 진주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그 진주장사는 자기가 가진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그 진주 하나를 샀습니다. 이 두 비유에 나오는 농부와 진주장사는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샀고 또 그 진주 하나를 샀습니다. 왜요? 그것은 그 보물과 그 진주가 얼마나 귀한것인가 하는 그 가치를 농부와 그 진주장사는 알았기 때문입니다.

자 예수님께서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장 가치가 있는 것이다 라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가 이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예수님을 소유하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천국이요 하나님의 나라이다 라는 것을 가르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천국은 다시말해 예수님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팔아서라도 가져야 할만큼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나오는 내용중에서 가장 슬픈 내용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요한 복음 1장 11절 말씀이라고 생각해봅니다.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과 같이 이땅을 창조하시고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이 죄를 짓고 그 죄의 결과로 죽게되자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 자신이 만드셨던 이땅에 오셨습니다. 천국의 소망을 주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하지만 이땅에 사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그 가치를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그 삶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하다 라고 하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눈물이 있고 슬픔과 고통이 많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예수님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데 더 이상 눈물이 없고 슬픔과 아픔이 없는 저 하늘나라에서 살게 된다면 어떻게 예수님의 귀한 가치를 알수 있겠습니까?

마태복음 7장 6절입니다.

“6.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그 가치를 알지 못한다면 그 보물이 아무리 귀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다이아 몬드가 아주 귀한 보석이지만 개나 돼지에게는 돌맹이와 똑같아 보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농부가 밭에서 발견한 보화가 아무리 귀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가치를 알지못하고 진주장사가 그 진주의 가치를 알지 못했다면 그 보화나 그 진주가 그사람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들은 그 가치를 알았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믿는 성도인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과 같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이 생활이 얼마나 얼마나 가치가 있고 귀중한일인지 알면서 신앙생활을 해나가셔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이 비유에서 볼수 있는 공통된 점은 소유할려고 하는 결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농부는 밭에서 발견되어진 보물이 위대한 가치가 있는 것을 알았고 진주장사는 진주가 지극히 갑진 진주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어떠한 댓가라도 지불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결단을 했던 것입니다. “어떠한 댓가를 치루게 되더라도 저것을 내가 가져야하겠다” 이 결단이 농부와 진주장사에게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단은 손해 보는 결단이 아닌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만일에 농부가 자기가 발견한 보물이 자기가 소유한 전 재산 보다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면 왜 재산을 팔았겠습니까. 진주를 발견한 그 진주장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극히 값진 진주하나를 사기 위해서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진주들을 다 팔았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소유한 전 재산보다도 그것이 더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믿는 성도인 저와 여러분들도 예수님이 나에게 정말 중요하다고 하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귀하시고 소중하신 분 인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인간으로 오셨고 그리고 부끄러움과 멸시와 천대를 받으시고 생명을 바치시면서 까지 나를 사랑해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서 그분은 참으로 귀하시고 소중하신 분이십니다. 보물이고 진주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나의 것으로 소유하기 위하여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 예수님만이 나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서 해야 할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가장 먼저 했던 일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땅에 들어왔을때 가장 먼저 했던 일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이었습니다. 창세기 12장 6,7,8절을 보시겠습니다. “6.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7.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8.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니까 그곳에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사람이 그땅에 거주하였더라“ 그당시에 새로운 지역에서 정착하기 위해서는 기존해 있는 족속들과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그럴려면 성벽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방어벽 정도는 쌓아야 하고 무기도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살아야 가야 할 땅도 개간해야하고 마실 우물도 파야하고 집터도 세워야 하고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가나안땅에 와서 제일먼저 한 것은 바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장소를 옮길때마다 가장 먼저 한일이 단을 쌓는일 예배를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7절 후반부를 보시면 ”여호와께 그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그리고 8절 중간부분을 보시면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그래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땅에 들어가라고 하셨는데 그 하나님이 책임지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주변에 있는 가나안 주민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책임을 지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다른 여러 가지에 대해서는 내가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내가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께 예배드리는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과 내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을수 있다면 우리는 성공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노아도 노아의 아들도 그리고 아브람도 아브람의 후손도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을 받을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예배 드림이 우선입니다. 왜냐하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날때 우리는 모든 것을 얻을수가 있습니다. 주님을 얻게 되면 다른 모든 것이 내게 없다 할지라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부자입니다. 천국을 소유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 가져도 주님이 없다면 나는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비유에서처럼 가장 가치가 있는 주님을 소유하기 위한 결단을 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두가지 비유에서 보여주는 차이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기대를 하고 안하고의 차이입니다.

우선 이 농부는 자기가 처음 밭에서 일을 할때 그 밭에 보물이 있다는 것을 기대하고 밭에서 일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귀한 보물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비유는 다릅니다. 이 상인은 처음부터 좋은 진주를 찾고 있었습니다. 구하고 구하다가 드디어 자기가 찾고 있었던 놀라운 값진 진주하나를 찾았던 것입니다. 농부는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상인은 기대를 하고 찾았습니다. 성경을 보시면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우물가 사마리아 여인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발견했습니다.

사도바울도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와 여러분들 중에 내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예수님을 만나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시면 예수를 만나기 위하여 찾고 찾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동방박사가 그랬습니다. 인간을 구원하게 될 구세주의 탄생을 알리는 계시의 별을 따라 예수님을 찾아 먼거리에서 왔습니다. 니고데모가 그랬습니다. 그는 사람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이 진리에 대한 대답을 얻고자 한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자기가 찾았던 지극히 값진 진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찾는자에게 찾게 해주십니다. 잠언 8장 17절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자가 나를 만날것이니라“(잠 8:17)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십시다. 찾는자에게 찾게 해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십시다.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 열어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십시다. 하지만 찾지않은 자에게도 찾아오시는 주님을 더욱 찬양하십시다. 구하지도 않았던 나, 예수님을 믿을 생각도 못했던 나, 이러한 나에게 어느날 뜻밖의 사건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에게 발견되어졌습니다. 내가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던 열려와 불안속에 있을 때 그래서 내마음이 가난해지고 애통해 져 있을때 마침내 갑자기 내 눈앞에 보물이 보여지게 되었습니다. 그이전까지 내눈에 보물로 보이지 않았고 진주로 보이지 않았지만 마침내 내 눈에 귀한 가치가 있는 보물로 그리고 지극히 값진 참 진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주시고 나에게 영생을 주시고 그리고 천국에 갈수 있는 소망을 주신 그 예수님이 얼마나 나에게 중요하고 소중한 보화이십니까? 이 예수님을 소유하기 위해서 사도바울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가진 모든 것이 소중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예수님이 너무나 소중하고 귀한 것이었기에 다른 모든 것이 상대적으로 하찮게 보여진 것입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예수님을 내 인생에 가장 가치가 있는 분으로 모시며 신앙생활을 해나가십시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앞에 섰을때 나의 생명을 구원해주시는 분이십니다. 나를 변호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나를 위하여 중보기도 하시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귀하신 예수님은 나와 함께 영원토록 살아가야 할 친구요 신랑이 되십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이땅에서와 저 하늘나라에서 예수님을 나의 인생에 가장 귀한 가치를 두고 살아갈수가 있으시길 그래서 어디에서나 늘 천국생활을 하며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