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Author
kgmcc
Date
2021-12-25 22:08
Views
163
본문 : 마태복음 18장 15-20절

날짜 : 2021년 12월 26일

 

<마태복음 18장 15-20절)

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오늘은 2021년도 올 한해 마지막 주일입니다. 오늘 이시간 올한해를 잘 마무리하고 내년 한해를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하기 위해서 지금 저와 여러분이 해야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용서입니다. 용서함을 받고 용서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순서가 중요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용서함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용서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잘못한 일에 대해서 용서함을 받는 것은 좋아하고 원하지만 용서하는 것에는 인색하고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용서함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용서를 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시면 용서를 하는 방법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용서의 방법으로 용서하심으로 말미암아 오늘 이 한해를 잘 마무리 하고 2022년도 새해부터는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힘차게 출발을 할 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용서의 방법은

1. 인간적인 관계에서 먼저 풀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용서에 대한 말씀을 하신 이유가 15절에 나옵니다. 15절 전반부입니다 “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그러니까 죄를 범한 형제를 어떻게 용서하고 어떻게 회복시킬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사실 진짜 용서는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에게 베푸시는 것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가장 완전한 선이시고 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용서하실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일로 인해 다투었던 두사람중에 어떤 한 사람이 상대방을 찾아가 자기를 용서해달라고 말하면 그 상대방 사람이 이렇게 대답하기도 합니다. ‘뭐 내가 용서할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까? 사실 우리 모두가 다 잘못했지요“ 그렇습니다. 진정하고 온전하게 용서하실수 있는 자격이 있으신 분은 하나님 한분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은 우리가 이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서로간에 맺히고 꼬여지게 된 것에 대해서는 인간들끼리 먼저 풀어야 한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본문 18절입니다.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너희가 땅에서 매면... (그리고 조금더 지나가서)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여기서 땅에서 매고 땅에서 푸는 일이 먼저인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땅에서 매어지고 닫히게 되는 문제는 여기서 먼저풀고 먼저 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문이 닫혔는데 하나님보고 문을 열어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여기서 문을 열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사이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인간이 먼저 풀고 해결 해야 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그렇게 기도를 하고 어떤 선한 일을 열심히 해도 일이 잘 풀려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내가 내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매여있는 관계를 풀지 못했다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나의길을 풀어주시지 않기 때문에 나의 길이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이시간에 꼬여있고 매여져 있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풀수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욥기를 보면 욥은 오랫동안 고난속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고통을 받았던 욥이 그 고난에서 벗어나고 갑절의 축복을 받은 것은 바로 자기 세명의 친구를 용서를 할때입니다. 욥기 42장 10절 입니다. “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때‘ 이전에 보면 욥은 친구들과 서로 다투고 논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욥이 먼저 친구들을 위한 기도를 했습니다. 친구들과 매어지고 닫혀있는 관계를 풀었습니다. 인간들 사이에 매어진 매듭을 풀었습니다. 욥이 땅에서 먼저 풀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매여진 매듭을 풀어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까 욥의 기도가 열매를 맺어지게 되고 욥의 기도가 응답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욥은 이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받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고 축복을 받으며 살아갈수 있는 첫 번째의 길은 인간들 사이에 매여진 것이 없어야 합니다. 지금 있다면 이시간에 풀어버리고 내년 새해를 맞이하십시다. 사실 인간들 사이에 감정이 풀어지지 않고 있으면 내마음이 편하지가 않습니다. 그냥 풀어버리십시다. 마태복음 5장 23절과 24절입니다.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지나가서)...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하나님앞에 우리의 예배가 상달이 되고 기도 응답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과 먼저 화목해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시간 한해가 다 가기전에 내이웃사람이나 내 가족사이에서 쌓인 것이 있다면 용서하고 풀어버리도록 하십시다. 그래서 내년 새해에는 저와 여러분이 하는 일마다 열려지게 되고 풀어지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용서의 방법은

2. 기도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말만 용서한다고 해서는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해야 합니다. 본문 19절입니다.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너희 중의 두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결단을 하고 난후 용서를 하면 되는 것인데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까? 기도를 강조하고 있습니까? 왜냐하면 용서는 인간의 의지로만 할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용서는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용서를 해주는 체 할수는 있습니다. “내가 용서했다 다 잊어버렸다“ 이렇게 말을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보시기엔 진정한 용서의 단계는 아닌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사람을 위해서 기도를 하기 전에는 진짜로 용서한 것은 아니라고 주님은 보십니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용서를 할수 있는 힘은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기도를 할 때 용서할수 있는 힘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것입니다. 기도를 할때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이 나에게 들어오게 되고 그래서 용서받아야 할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라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함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용서함을 받게 되었다는 확신이 오게 될 때 내가 남을 용서해줄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그 사람을 용서해주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용서해주는 체 한 것 일수가 있습니다. 내가 나의 의지로 용서를 했지만 사실 그 용서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렇게 되면 시간이 날때마다 기억이 나고 나를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제개인적인 경우에도 진정한 용서를 한 경우와 그냥 말로만 용서한다고 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두가지의 경우는 시간이 지나면 너무나 차이가 납니다. 진정으로 용서한 경우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내게 어떠한 괴로움이나 쓴 맛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일을 생각해도 그냥 남의 일이었던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말로만 용서한다고 했지만 진정으로 용서하지 못한 경우는 그일이 생각날때마다 괜찮을때도 있지만 나를 힘들게 할때도 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용서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용서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기도를 통해서입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기도는 대화입니다. 내가 말하고 그리고 내가 듣는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의 말을 듣을수 있는 길은 대화를 통해서입니다. 그럼으로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나에게 구하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뒤를 보시면 예수님께서 일만 달란트 빚진자의 비유의 말씀을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일만 달란트의 빚을 하나님앞에 진 사람들입니다. 다른 것은 다 제외하고 이시간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한 두개만 생각을 해보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이 공기를 공짜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공기를 한번 숨쉬는데 1센트의 값을 받는다고 하십시다. 1센트니까 대단히 쌉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하루 평균 2만 3천번 정도 숨을 쉰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루에 2만 3천 센트를 지불해야 하는데 달러로 계산하면 230불입니다. 적지 않은 액수입니다. 한달이면 6천 900불인데 거의 칠천불 돈입니다. 숨을쉬지 않으면 죽으니까 살기 위해서는 한달에 7천불 돈을 내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 하늘 태양에서 나오는 태양에서 나오는 빛 때문에 대낮에 전기불도 없이 이렇게 걸어다니고 보다 안전하게 차를 운전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태양에서 열 때문에 이런 옷을 입고도 얼어죽지 않고 살아갈수 있고 또 우리가 먹고 살아가는 곡식이나 과일 나무들이 자랄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태양에서 나오는 빛이나 그 태양 열값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불하라고 한다면 계산이 좀 복잡해집니다. 이것도 아주 싸게해서 공기값 만큼만 받겠다고 해도 한달에 7천불을 더 보태야 합니다. 그러면 한달에 만 4천불이 됩니다. 태양열이 없으면 금방 얼어 죽게 되니까 어쨌튼 돈을 만들어 내어야 합니다. 여기다가 또 물이나 또 다른 것을 보태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께 지불해야할 돈은 엄청나게 많아지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1만달란트라는 의미입니다. 일만달란트가 얼마입니까? 일 달란트가 6천 데나니온 이니까 1만달란트이라면 6천만 데나니온입니다. 1데나니온이 그당시 노동자 하루 일당이니까 6천만 일 동안을 일을하고 한푼도 쓰지않고 모아야 벌수 있는 돈입니다. 일년에 300일을 일할수 있다고 한다면 20만년동안을 꼬박일을 하고 한푼도 사용하지 않고 모아야 벌수 있는 돈입니다. 20만년동안 일을 해야 하니까 우리 인간이 죽었다 살아나고 죽었다 살아나는 일을 5, 6천번을 해서 일을 하고 한푼도 사용하지 않아야 벌수 있는 액수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수천번 죽었다 깨어나도 빚쟁이 신분에서 벗어날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남자들이 군대에 가면 가장 많이 부르는 군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면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의 내용으로 시작됩니다. 이것을 일만달란트 빚진자에게 적용시켜 가사를 바꾸어볼수 있습니다. ‘빚쟁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 나 빚을갚는 영광에 살았다.’ 이것이 바로 일만달란트 빚진자의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앖다면 우리는 모두 이렇게 살다가 죽어야 하는 빚쟁이입니다. 그런데 탕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없는 것으로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사실을 언제 알수가 있습니까? 기도할 때 알수가 있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용서의 말씀을 듣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할때 하나님의 그 사랑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와 길이를 우리가 알게 되는것입니다. 기도하기 전에는 머리로만 아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내 가슴에 들어오는 것이고 그래서 내가 내 주변의 사람을 용서해줄수가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기도를 하십시다. 때로는 혼자 기도하기가 힘들고 어려울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부부와 같이 기도를 하는 것이 정말 힘이되고 서로 격려가 됩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형편에 있는 성도님도 계십니다. 그럴때는 중보기도를 부탁하여 같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중보기도 부탁을 받기도 하고 중보기도 요청도 합니다. 그리고 중보기도 부탁을 받은 경우는 계속해서 기도를 합니다. 그러니까 그사람과 내가 같이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이 됩니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고 기도하는 시간이 맞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문제를 놓고 같이 기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웬지 모르게 힘이 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합심하여 기도를 하기 때문에 주님이 힘을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같이 기도를 하게 되면 혼자서 하는 것 보다는 더 쉽고 능력이 있는 기도를 할 수가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시간 한해가 다 가기전에 기도를 하심으로 말미암아 진정으로 남을 용서 할수 있는 힘을 얻을수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용서의 방법은

3. 공동체의 도움이 함께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범죄를 한 사람을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느냐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회복이 1:1로 개인적으로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때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도 있지만 그 문제를 공동체가 같이 해야할 때가 있을수도 있습니다. 17절입니다.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개인적으로 해서 그 사람이 회복이 안되면 교회에 말하는 것 입니다. 그래서 같이 힘을 합해 회복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안되면 교회서 징계해야 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그사람의 잘못에 대해 징계와 비판을 하기 이전에 교회 공동체의 관심이 있어야 하고 중보기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이 과정을 생략해버리고 급하게 징계를 해버리기 때문에 서로 상처를 주고 받다가 주님의 몸된 교회가 상처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뿐만 아니라 가정이나 사회단체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됭수 있습니다. 공동체가 같이 힘을 모아서 그사람의 회복에 마음을 같이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노아의 홍수때 방주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장면을 한번 생각해보십시다. 그 방주안에는 고슴도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고슴도치는 온몸에 가시가 돋쳐있어서 움직이기만 하면 남을 찌릅니다. 그 방주안에는 스컹크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스커크는 지기 기분이 상하면 불편하면 독한 냄새를 한번씩 풍깁니다. 거대한 몸집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는 코끼리도 있었을 것이고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잘난체하는 공주병에 걸린 공작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저런 동물들이 노아의 방주안에서 같이 매일 매일 지내야 했습니다. 남을 찌른다고 고슴도치보고 방주 밖으로 나가라고 할수도 없습니다. 냄새가 난다고 스겅크를 쫓아낼수도 없고 제 잘난체한다고 공작새를 내 보낼수도 없습니다. 미우나 고우나 좋으나 나쁘나 방주안에서 같이 지내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의 구원의 방주는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러니까 동물들이 방주안에 있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안에서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예수님 안에서 살아감으로서 구원을 받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안에 있다고는 하지만 타락한 심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인간인지라 남을 찌르기도 하고 남에게 찔리기도 합니다. 악취를 내면서 살아가기도 하고 잘난체 하면서 신앙생활을 할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주안에서 모든 동물들이 함께 지냈듯이 우리 믿는 성도들도 예수안에서 함께 사랑하고 용서하며 지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저와 여러분의 주변에 고슴도치가 있고 스컹크가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성령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이겨낼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질문을 하는 사람을 만난적이 있습니다. 사랑하기 힘든 사람을 향해서 웃는 얼굴로 인사를 나누는 것은 가식이요 위선이 아닙니까? 그것은 가식이나 위선이라는 개념을 잘 못알고 있는 것입니다. 위선이나 가식이라는 것은 내게 없는데 있는척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인인데 의인인척 하는 것이 위선이요 가식인것입니다. 하지만 힘들지만 손을 내미는 것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며 우리의 인격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성숙한 인격, 한 마디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을 보시면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여인을 예수님앞에 데려와서는 돌을 던져 죽일려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중에 죄없는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러자 그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얌심에 가책을 느껴 모두가 다 떠났습니다. 그리고 여인과 예수님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너를 고발하던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라고 물으십니다. 그때 여인이 대답합니다. 요한복음 8장 11절입니다. 11.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여기서 결론을 내립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하고 싶은 결론은 그다음절 12절에 있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왜 간음을 한 여인을 향해 돌을 던질려고 했습니까? 왜냐하면 그래야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둠을 없앨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나쁜 죄를 물리치고 올바르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해서는 어둠을 물리칠 수 없고 그렇게 해서는 죄를 물리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어둠이 물러가는 것입니까? 돌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빛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8장 12절입니다. 12.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잘못한 사람에게 돌을 던져서 그사람을 아프게 해서 바르게 고칠려고 한다면 그사람은 영원히 변화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믿는 성도는 잘못된 길을 걷는 사람에게,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잘못을 깨닫게 하고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돌을 던져서 될 일이 아닙니다. 어둠을 향해서 어두워져서는 안 된다고 아무리 말하고 꾸짖어도 어둠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빛이 될 때 어둠을 사라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믿는 성도들을 보면서 많이 하는 말은 “예수쟁이들은 모두가 다 하나같이 말은 잘 하더라‘ 라는 것입니다. 말로 해서 사람은 변하지 않습니다. 돌을 던져 사람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둠을 향해 ’너는 어둡다 물러가라‘ 라고 해서 어둠이 물러가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빛이 되어 살아갈 때 내주변의 어둠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빛의 존재로 살아갈수 있는 방법은 세상의 빛되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것에 있습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빛되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잘못된 것에 대해선 잘못되었다고 말할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말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은 잘못된 길을 가는 인간들이 받아야 돌맹이를 대신 맞으며 가셨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돌을 맞지 않아도 되실 분이신데 우리를 대신해서 모든 비난과 정죄의 돌을 맞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용서와 구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길이요 이것이 바로 빛이 되는 길입니다. 그럼으로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모든 사람이 돌을 버렸던 것처럼 이제는 우리도 내 손에 있는 돌을 버리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말없이 그 어둠 속에 들어가서 빛이 되어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 가정이 사는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가 속한 신앙공동체가 살아가는 길도 여기에 있습니다. 본문 18절 말씀을 다시한번 보시겠습니다.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절을 계속 보시면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복수이죠)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20절도 읽겠습니다. “20. 두 세 사람(역시 복수입니다)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범죄를 해서 상처가 있는 영혼들의 회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동체의 관심과 중보 기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교회 멤버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 이고 직장이나 사회 단체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가 다 한마음으로 같이 간구하고 대처해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제 간단히 정리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먼저 내 주변에 있는 사람과 맺혀진 것을 풀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정말로 풀수가 있고 정말로 용서할 수가 있기 위해서는 기도를 해야 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기도할 때 먼저 용서를 받게 되고 그래서 용서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세사람이 같이 기도를 할때 혼자서는 풀어지지 않았던 것도 풀어질수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용서할수 있도록 하십시다. 진정한 용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함을 받았다는 확신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이 한해가 다 가기전에 올해 이땅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모두 다같이 이땅에서 풀어버리고 하늘에서부터도 풀어지게 되는 축복을 누릴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