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

Author
kgmcc
Date
2022-01-01 22:50
Views
159
본문 : 고린도전서 15장 57-58절

날짜 : 2022년 1월 2일

 

<고린도전서 15장 57, 58절>

5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오늘은 2022년도 새해 첫 주일로 예배를 드립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간이 점점 빨라지는 듯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올해 2022년도 우리교회 교회 표어는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자‘  로 정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자 라는 주제로 같이 은혜를 받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오늘날 믿는 성도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일에는 크게 주의 일과 세상의 일, 이렇게 두 종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의 일은 귀하고 가치가 있지만 세상의 일은 주의 일 만큼은 귀하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골로새서 3장 23절입니다. “23.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무슨일을 하든지’ 그러니까 이 일이 주의 일이냐 세상의 일이냐를 구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이든지 간에 바로 주님에게 하듯이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에 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말씀하신 특별한 하나님의 일은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 29절입니다. 29.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하나님의 일이니라하시니’ 그러니까 하나님의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 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님이 보내신 이’ 는 누구입니까?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이 이땅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이 보내신 이, 즉 예수님을 믿게 하는 일’ 을 해나갈 때 바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믿음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이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로마서 10장 17절입니다. 17.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음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생겨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 말미암아 생긴 이 믿음으로 인해 내가 하나님의 일을 즉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믿게 하는 일을 해나갈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2022년도 올 한해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일에 열심을 다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믿는 일과 믿게 하는 일에 더욱더 열심을 다할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기록된 고린도 전서 15장은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서 ‘부활 장’ 이라고도 불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복음중의 복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시는 성도님 들 중에는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대속적인 죽음은 믿지만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은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사랑하셔서 우리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다 사실을 믿는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 역사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믿지 못하시는 분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믿는 것은 반쪽 신앙입니다. 나머지 반쪽 신앙은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에 있습니다. 로마서 10장 9절입니다. “9.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네가 만일 네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예수님이 나의 구주가 되신다. 내 지은 죄값을 지불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다’ 라고 하는 사실을 믿는 것은 반쪽 신앙입니다. 나머지 반쪽 신앙은 “또 하나님께서 그를(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온전한 신앙은 예수님의 부활까지를 믿는 것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으면서 어떻게 우리의 부활을 믿을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라는 사실을 믿지 않으면서 어떻게 우리가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 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상식적으로나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 생각입니다.

오늘 본문 58절을 보시면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저와 여러분에게 부담이 되는 말씀은 ‘견실하라 즉 견고하라’ ‘흔들리지 말아라’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가 아닐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말씀도 부담이 되기는 하겠지만 그가운데서도 가장 부담스러운 단어는 ‘항상‘ 에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은 견고하게 그리고 흔들리지 않을때도 있고 주의 일에 힘쓰며 신앙생활을 해나갈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항상‘ 그렇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내 기분에 따라, 환경에 따라 견고하지 못하고 흔들릴때도 있고 주의 일에 게을리 할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 일이 아니라 주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나의 일 이라면 내 기분과 환경에 따라 게을리 할수도 있겠지만 주님의 일이기 때문에 늘 열심을 다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기분이 좋지 않아도, 내 마음이 편하지 않아도, 내가 하고 싶지 않아도 주님이 원하신다면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성도의 기본적인 마음 자세입니다. 이렇게 저와 여러분이 견실하게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며 살아가 는 이유에 대해서 오늘 본문은 두가지로 설명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2022년도 올 한해동안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며 살아가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로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며 살아가는 이유는

1.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57절입니다. 5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2005년에 나온 ‘싸움의 기술’ 제목의 한국 영화 내용중에 싸움의 고수 오 판수가 이런말을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주먹질만 하는게 싸움이 아니고 살아가는 인생 그 자체가 싸움인거야’ 그렇습니다. 인생은 싸움의 연속입니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의 성적 싸움을 하고 직장에서는 직장동료들과 승진 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경쟁 업체들 사이에서 생존하는 싸움을 해야 하고 심지어는 나 자신과도 싸움을 해야 합니다. 시간과의 싸움을 해야 하고 질병과의 싸워야 합니다. 요즘 우리 모두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면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생은 싸움과 전쟁입니다. 그리고 우리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내안에 있는 죄성과 싸움을 해야 하고 특별히 보이지 않는 악한 영들과 싸우면서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이런 저런 싸움에서 누가 이기는가 하는 것에 있습니다. 이제 올해 3월이 되면 대통령 선거가 치루어지게 되는데 벌써부터 윤석열 후보가 이길 것인가 아니면 이재명 후보가 이길것인가에 대해 우리나라 전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 미국에서도 11월달에 미국 중간선거가 치루어지는데 공화당이 다수당이 될 것인가 아니면 민주당이 다수당이 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얼마전에 유투브를 보았는데 흥미진지한 영상들이 있었습니다.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누가 이길것인가를 놓고 유투버들끼리 논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호랑이가 이긴다 하면서 호랑이가 이기는 영상을 내보내는 유투버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사자가 호랑이를 물리치는 영상을 내보내는 유투버들도 있었습니다. 제가 왜 그런 영상들을 보았겠습니까? 과연 누가 이기는가에 대해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결론은 호랑이가 이길지 사자가 이길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사람들의 관심은 싸우게 되면 누가 이기게 될 것인가? 하는 것에 있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성도들의 싸움은 보이지 않는 어두운 영들의 세력과의 싸움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러한 영적인 전쟁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딤후 2장 3, 4절입니다. 3.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4.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예수님과 함께 선한 싸움을 싸우는 병사들입니다. 그럼으로 우리 믿는 성도의 삶은 영적인 전쟁이며 나 자신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영적인 전쟁 중에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왜 이땅에 오셨습니까? 요한 일서 3장 8절입니다. 8.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 인간이 진 죄값을 대신해서 생명으로 다 지불하시고 ‘다 이루었다’ 라고 말씀하시고 승리하셨습니다. 마귀의 일을 멸하시고 승리하신 예수님께서는 지금 저와 여러분에게 담대하게 세상을 살아갈 것을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입니다. 3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 속에는 두가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첫째는 ’담대하라‘ 는 말씀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영적인 전쟁을 하며 싸워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는 말씀에서 우리는 승리가 보장된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이 믿는 성도로서 살아가는 동안 나는 반드시 영적인 전쟁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한시라도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남들이 싸우는 모습을 구경하는 자가 아니라 직접 싸워야 할 주체들입니다. 가나안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여호수아와 갈렙과 함께 가나안 원주민들과 싸우면서 인생을 살아갔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은 어릴때부터 골리앗과 같은 원수와 싸움을 시작으로 대부분의 인생을 싸우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인답게 살려고 한다면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기를 원한다면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신실하고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살려면 싸워야 합니다. 마귀를 대적하고 싸울 때 마귀는 떠나가고 승리를 경험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영적인 전쟁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영적인 전쟁을 말하면서도 실제적으로 영적인 전쟁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이단으로 몰아세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령 충만을 말하면서도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면 이단으로 몰아세우고 정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다고 하는 소문이 나면 우리는 그 사건을 신중하게 말씀을 기준으로 분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을 보시면 하나님은 어느날 갑자기 아무나 불러서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이 갑자기 나타나 골리앗을 물리치고 전쟁에 승리한 것이 아닙니다. 사무엘상 17장 37절입니다. 37.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다윗이 목동으로 양을 치고 있었을 때 곰이나 사자의 공격을 받을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수없이 많은 물맷돌을 던지면서 양떼들을 지켜왔던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이러한 준비된 경험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물맷돌 5개와 막대기만을 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골리앗과 싸우러 나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영적인 전쟁을 위하여 준비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매일 매일 주님과 기도하며 교제할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지는 예배의 자리에 나아가 하나님의 보좌로 부터 흘러나오는 생수를 마셔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이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 21장 31절입니다. 31.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싸울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몫입니다‘ 하지만 ’이김은 여호와께‘ 있습니다. 모든 싸움의 이김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항상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싸움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무엘 하 8장 6절입니다. 6.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그리고 사무엘하 8장 14절입니다. 14.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그러니까 다윗이 모압땅으로 가든지 암몬땅으로 가든지 아말렉 지역이나 유브라데 강이나 어느곳으로 가든지 하나님께서는 다윗으로 하여금 싸움에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 그럼으로 전쟁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에 나자신의 능력 보다는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본문 57절을 다시한번 보시겠습니다. 5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까? 그앞을 보시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그러니까 우리 믿는 성도의 승리의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며 살아가게 될 때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잊지말아야 하는 중요한 사실 하나는 싸움은 내가 해야 합니다. 그런데 종종 나는 싸우러 나가지 않고 주님보고 나가서 싸우라고 기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이 믿음을 가지고 순종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영적인 전쟁터에 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 영적인 전쟁터에서 내가 내자신의 능력으로 이길수 있다고 생각 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영적인 싸움은 내가 해야 하지만 이김은 하나님에게 있다고 하는 사실을 명심하면서 신앙생활해나가야 합니다. 승리의 비결은 나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주님을 의지할 때 주님이 이기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바라옵기는 무엇을 하시든지 주님을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승리가 보장된 축복을 누리며 살아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며 살아가는 이유는

2. 우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본문 58절 후반부입니다. 58.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우리 믿는 성도들이 하는 모든 수고는 결코 헛된일이 아닌 것입니다. 왜 헛된일이 아닌 것입니까? 그것은 주안에서 하는 수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주안에서 하는 수고는 헛된일이 아닌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지금도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과 믿는 성도들의 부활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러한 질문을 고린도 교회 성도들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하는 사실은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들 주변에 예수님의 부활믈 본 목격자들이 500여명이나 될만큼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의 부활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부활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생전에 많은 기적을 행하셨고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시니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수도 있겠지만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수가 있겠는가? 라고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고린도 전서 15장 13절입니다. 13.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16절에 다시한번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16.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지금 여기 이 말씀에서 할려고 하는 중요한 메세지는 무엇입니까? 성도인 나 자신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성도들간의 관계는 신랑 신부의 관계입니다. 그러니까 한번 생각해보세요. 신부 없이 신랑 혼자서 결혼식장에서 예식을 진행하는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신부 없이 혼자 결혼식을 하는 신랑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신랑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신부인 성도가 없이 혼자 결혼잔치를 진행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할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과 성도인 우리와의 사이가 밀접하고 가까운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예수님의 부활은 나에게 그렇게 중요한 사건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지금 이세상 곳곳에서 매주마다 로터리 복권에 당첨이 되는 사람이 생깁니다. 또 매일같이 직장에서 승진하고 있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그 사람들이나 그 가족들에게는 큰일이고 감격스러운 일이겠지만 우리에게는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왜요? 그 사람과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 남편이나 내 아내가 그리고 내 가족이 복권에 당첨이 되고 승진하게 되면 그것은 나에게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믿는 성도들인 나에게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과 나는 신랑신부처럼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수고가 헛된 것이 아니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헛되지 않은줄 앎이라’ 라고 할때 ‘헛되다’ 라고 하는 원어는 ‘마타이아’ 라고 하는 단어가 사용되어졌는데 이 ‘마타이아’ 단어는 ‘열매가 없다’ 는 뜻입니다. 열매나 결과가 없는 빈 쭉정이를 볼 때 ‘마타이아’ 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우리 믿는 성도들이 하는 수고에는 열매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 일에는 헛수고가 있을수 있지만 믿는 성도들이 주안에서 하는 일에는 헛수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보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6장 4절입니다. 4.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저와 여러분이 평상시에 말없이 그리고 은밀하게 남을 돕고 구제하는 일을 할지라도 모든 것을 은밀하게 보시고 계시는 주님께서 갚아 주시기 때문에 시간낭비나 돈낭비가 아니고 헛수고가 아닌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5장 10절입니다. “10.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심판대’는 ‘백보좌 심판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백보좌 심판대는 무엇입니까? 백보좌 심파대는 천국과 지옥을 결정짓는 심판대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며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영생으로, 하지만 주님을 믿지 않고 영접하지도 않고 살아갔던 사람들은 영벌로, 심판하는 곳이 바로 백보좌 심판대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는 상급의 심판대를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바꾸어보면 '하나님의 시상대' 라 할수 있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는 시상대앞에서 자기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이처럼 하나님이 보상해주시는 상급에 대해 여러군데 에서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 8절입니다. “8.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각각 자기가 일한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고린도전서 9장 24절입니다. 24.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같이 달음질하라’ 이럴게 성경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즉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시상대에서 상급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베푸어주시는 상급은 이 땅의 왕이나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주는 상급과 어찌 비교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 세상의 상급들은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고 낡아지지만 하나님의 시상대에서 받는 그 상급은 썩지않고 없어지지 않는 영원한 상급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주님이 주시는 그 상급을 위해 순교를 얼마 앞둔 시점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디모데후서 4장 7-8절입니다..

“7.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도니라.”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이렇게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가 다 하나님이 주시는 그 상급을 바라보면서 어떠한 어려움과 고통을 인내하며 살았습니다.

이제 2022년도 새해 첫주일입니다. 이렇게 새 해가 되면 사람들은 저마다 새로운 계획을 세워나갑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루어내기 위해 열심히 살아갈려고 결단을 하기도 합니다.

농부라고 한다면 언제 무슨 씨앗을 뿌리고 어떻게 가꿀 것인지 계획을 세웁니다. 회사의 Ceo 라면 어떤 제품을 어떻게 잘 만들어낼지, 또 어떻게 판매할지 계획을 세우기도 합니다. 그리고 회사 직원들은 올한해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일을 함으로서 인정을 받아 승진을 할 계획을 세우기고 합니다. 그리고 올한해가 지나고 연말이 다가오면 농부는 자신이 한 노력의 결과로 그 수확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회사 Ceo 도 열심히 노력을 한 결과 거기에 맞는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될것이고, 회사 직원도 회사에서 열심히 일을 한 댓가로 인정받아 승진을 하게 될 기회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이 뿌리고 심고 땀을 흘릴 때 그 결과로 심고 거두는 법칙을 경험하며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일어나는 원리와 법칙이 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원리에도 적용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믿지 않는 세상사람들은 이 땅의 것만을 거두고 결실하기 위해 애를 쓰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 믿는 성도들은 이 땅에 적용되는 원리와 법칙을 저하늘 나라에까지 연결될수 있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저 영원한 천국에서 주님의 시상대에 서서 받게 되는 상급을 기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무엇을 뿌리든지, 그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들 모두는 이 땅에서도 복을 받고, 저 영원한 하나님의 시상대 앞에서도 영원한 영광의 상급을 받을수 있도록 주님의 일에 더욱 힘쓰며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