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롯의 처를 기억하라!

Author
kgmcc
Date
2022-01-08 23:07
Views
162
본문 : 누가복음 17장 26-35절

날짜 : 2022년 1월 9일

 

<누가복음 17장 26-35절>

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28.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29.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30.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31.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32. 롯의 처를 기억하라

33.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3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35.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러시아의 문호 위대한 작가인 톨스토이(Tolstoy)가 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단편소설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천사 하나가 하나님께 죄를 짖고 벌을 받아 땅으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하일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구둣방 가게의 점원이 됩니다. 그런데 하루는 털외투를 입은 건장한 신사가 구둣가게로 들어와서 보자기로 싼 물건을 내보입니다. 보자기 안에는 아주 비싸고 질좋은 가죽이 들어있었습니다. 이 신사는 그 가죽으로 자기 구두를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신사가 내거는 요구조건이 특별했습니다. 그 가죽으로 구두를 만드는데 구두 사이즈가 자기 발에 조금이라도 맞지 않는다거나 그리고 1년후에 구두가 조금이라도 벌어지거나 떨어져나가게 되면 감옥에 들어가든지 아니면 벌금을 내야 하는 조건을 내겁니다. 그리고 구두값은 1년동안 신어보고 이상이 없으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요구조건을 듣게 된 구두방 주인은 너무 황당해서 아무말도 못하고 있는데 그옆에서 지켜보던 미하일이 일을 맡아도 좋다는 신호를 자꾸 보냅니다. 그리고 그 구두방 주인은 이 미하일의 뛰어난 솜씨를 잘알고 있기 때문에 알았다고 승낙을 합니다. 그 신사가 가죽을 두고 나간 뒤에 미하일은 그 가죽을 가지고 일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가죽을 가지고 구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슬리퍼 한 켤레를 만들어 버립니다. 그동안 잠깐 밖에 나갔다 돌아온 주인이 그 슬리퍼를 보고 깜짝 놀랍니다. “아니 자네, 이게 무슨 짓인가? 이것은 구두가 아니라 슬리퍼가 아닌가. 이제 나는 망했구나." 라고 하면서 탄식을 하고 있는데 그때 누군가가 급히 가게로 뛰어들어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조금 전에 이 가게에 들어와서 구두를 주문했던 분의 하인입니다. 실은 저희 주인께서 방금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구두가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주인 마님께서 주인님의 시체에 신길 슬리퍼를 만들어 오라고 해서 왔습니다. 구두 대신에 슬리퍼를 만들어주십시오” 그때 미하일은 기다렸다는 듯이 슬리퍼를 내어 줍니다. 이 미하일은 털외투를 입은 건장한 신사가 왔을 때 그 뒤에 죽음의 사자가 따라오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톨스토이 작가는 이 작품에서 우리 인간은 자기 인생에 대하여 한치 앞도 보지 못하는 존재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요 우리 인간은 언제가 나의 마지막 날인지를 모르고 하루 하루 살아가고 있는 존재라고 할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우리 모든 인간의 마지막때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본문 26절입니다. “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여기서 ‘인자의 때’ 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때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은 이 세상의 끝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날에는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뉘게 될 것인데 심판을 받는 사람과 구원을 받는 사람으로 나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노아의 때와 같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노아의 때 사회의 분위기는 어떠했습니까? 27절입니다.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이런 일들은 특별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일어났고 또 앞으로도 계속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평상시와 다름없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을 갔는데 홍수로 인하여 멸망을 당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것이 왜 멸망의 이유가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그당시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무관심하였기 때문입니다. 노아가 전했던 구원에 대해서 무관심하였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도 무관심하였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를 지으면서 사람들에게 홍수가 온다고 하는 심판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그누구도 노아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당시에 그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것 외에 다른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시말해 영적인 일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살아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예수님께서는 인자의 때가 바로 롯의 때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28절입니다. “28.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살고 있었던 시대도 노아의 때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모습과 똑같았습니다.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집을 짓는 것들도 역시 일상적인 생활에 속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가던 소돔성에 거하는 사람들이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는 심판을 받았다고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29절입니다. “29.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소돔과 고모라 도시가 멸망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서 잘알고 계실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문제를 삼으시고 계시는 것은 먹고 마시고 팔고 심고 집을 짓는 일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먹고 마시고, 물건을 사고 팔고 집을 짓는 일이 무슨 죄가 됩니까? 인간으로서 일상생활을 해나가는 것이 당연한데 그 일이 무슨 죄가 되겠습니까? 예수님이 문제 삼는 것은 사람들이 그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에만 정신이 온통 팔려서 영적인 일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특히 소돔과 고모라에 사는 자들은 성적으로 타락해 있었습니다. 오늘날 남자들의 동성연애를 가리키는 말이 sodomy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이 소돔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저지르고 있는 죄악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도시가 성적으로 얼마나 타락했으면 이러한 단어가 그 도시 이름에서 유래되었겠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바로 노아의 때와 같고 롯의 때와 같습니다. 시대의 징조로 볼 때 우리는 지금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교훈을 본문 32절에서 말씀합니다. 32절입니다 . “32. 롯의 처를 기억하라” ‘롯의 처,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 고 말씀합니다. 이 롯의 아내는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어떤 마음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수 있습니다. 롯의 아내가 언제 롯이라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는지는 성경에 나오지 않아 우리는 알수 없습니다. 하지만 롯의 아내가 남편 롯을 만나서 결혼하게 된 것은 너무나 큰 축복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롯의 아내는 롯을 만났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는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함께 산다는 것은 정말 큰 축복입니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중의 축복입니다. 성경은 이 롯을 의로운 자로 평가 합니다. 벧후 2장 7절입니다. “7.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소돔에 사는 사람들의 행실을 의미합니다)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그러니까 롯의 아내는 의로운 남자의 아내로서 살아온 것입니다. 자, 이렇게 볼 때에 롯의 아내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살아온 축복받은 여자 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롯의 아내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소금기둥이 됩니다. 롯의 아내는 하나님으로 부터 많은 축복을 받고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멸망해버린 대표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롯의 아내가 왜 소금기둥이 되었습니까? 하나님을 몰라서입니까? 아닙니다. 롯의 아내는 하나님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입니다. 그러니까 롯의 아내는 아브라함의 조카 며느리가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 롯의 아내는 하나님을 믿는 집안에 시집을 온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조카 며느리가 된 롯의 아내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법도 배웠을것입니다. 오늘날로 적용시켜보면 처녀가 예수님을 믿는 집안에 시집와서 교회를 다니면서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 얼마나 축복받은 여인입니까? 이 롯의 집안이 많은 재물을 가지고 그당시에 가장 큰 도시인 소돔땅에 살게 되었는데 그것은 사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롯에게 많은 재물과 살아갈 곳을 양보해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잘아시다시피 아브라함이 롯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조카 롯아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고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겠다’ 이렇게 조카 롯에게 먼저 배려를 한 아브라함의 양보가 있었기에 롯과 그 가족은 그당시 가장 큰도시이었던 소돔땅에서 잘먹고 잘살면서 지낼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롯의 아내는 하나님을 믿는 집안에 시집을 와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누리면서 살아왔던 여인이었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만일 롯이 하나님을 믿는 남편이 아니었다면 롯의 아내는 평생토록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점에 있어서 롯의 아내는 정말 축복받은 여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의 아내는 소돔도시가 불과 유황의 심판을 받는 그날에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롯의 아내가 멸망하게 된 원인이 무엇입니까? 거짓말 때문입니까? 간음때문입니까? 아니면 동성연애와 살인 때문입니까? 도둑질입니까? 아닙니다. 이유는 단한가지 뒤를 돌아본 것 때문입니다. 창세기 19장 26절입니다. “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창19:26)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그러면 뒤를 돌아본 것이 왜 문제가 됩니까? 사람이 길을 가다가 도중에 뭔가 찜찜해서 뒤를 돌아볼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뒤를 돌아보았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뒤돌아보지 말라’ 는 말씀에 불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9장 17절입니다. “17. 그 사람들이(여기서 그사람들이란 사람으로 변장한 천사들입니다)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창19:17)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이 말씀에 롯의 아내는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소금기둥이 되어 멸망한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믿는 자의 집안에 시집을 와서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아온 이 여인이 왜 뒤돌아보았던 것입니까? 그래서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봄으로 멸망하게 된 원인을 한번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올한해 뿐만아니라 주님앞에 설때까지 평생동안 뒤돌아보지 않고 바로 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여인이 왜 뒤를 돌아보았습니까?

첫째로 하나님 말씀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 롯의 아내가 뒤돌아보게 된 것은 ‘돌아보지 말라’ 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했지만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가볍게 여겼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일상생활을 하던중에 종종 친구나 가족들이 하는 말을 그냥 지나쳐 버릴때가 있을 것입니다. 저도 종종 제 아내가 하는 말을 그냥 건성으로 듣고 넘어갈때가 있습니다. 아내는 제가 자기가 하는 말에 동의를 했다고 말하는데 저는 아내가 그말을 내게 했는지 조차도 기억나지 않을때도 있습니다. 왜 이러한 현상이 생깁니까? 그것은 바로 제가 아내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지나치듯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가볍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롯의 아내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돌아보았고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대강 대강 말씀을 따라 가는 척하다가 결정적으로 내게 손해가 되는 것 같으면 말씀을 가볍게 여겨버리고 돌아서버리는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한번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이 여인이 왜 뒤를 돌아보았습니까?

두 번째는 세상에 대한 애착과 미련 때문입니다

천사들은 롯에게 아내와 모든 가족과 함께 소돔 도시를 떠나서 피해야 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그 위급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소돔에 두고 온 온갖 패물과 집과 땅 그리고 가축들에게 마음이 쏠려있었습니다. 발걸음은 옮기고 있었지만 마음은 거기에 매여 있었습니다. 세상 것에 대한 애착을 끊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게 되었고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만일 롯의 아내가 가진 것이 없었다면 뒤를 돌아보았을까요? 아마도 미련을 가지지 않고 떠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리고 남겨 놓은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뒤를 돌아 볼 확률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부르시는 시간에 뒤돌아보지 않고 미련없이 이 세상을 떠날려면 미리 미리 나누어주는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아무튼 롯의 아내는 천사들의 손에 이끌려 가면서도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창19장 16절입니다. “16.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이것을 보면 우리 인간이 천사의 손을 잡고도 얼마든지 뒤를 돌아볼 수가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았던 인생을 바꾸어 십자가를 바라보기로 작정한 사람들이라할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홍해를 건넌 것처럼 믿는 성도인 저와 여러분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람들입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은 다시는 애굽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광야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조금만 힘들면 애굽의 생활을 그리워하면서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질때가 있습니다. 조그만 힘들면 환경을 원망하고 지금 이 생활을 그만둘려고 하는 마음을 가질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에게 이런 저런 유혹이 생겨서 뒤를 돌아다 보고 싶을 때 우리는 롯의 아내를 생각해야 합니다. 말씀을 순종하기가 너무나 힘들고 어려울 때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불순종한 것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 소금기둥이 되어버린 롯의 아내를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비추어볼 때 많은 사람들이 멸망하게 되는 원인이 무엇입니까? 그사람들이 교회라는 곳이 무엇인지 몰라서 멸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 중에는 이미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녀서 교회가 무엇인지 잘아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교회를 다니는 배우자와 결혼을 한 이후로 가족이 모두 교회를 다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롯의 아내가 의로운 남편과 한 가족을 이루며 살아온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죄를 하나님이 싫어한다는 것도 압니다. 성경공부와 설교, 그리고 개인적으로 성경읽기를 통해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멸망합니다. 그것은 마치 소돔과 고모라성이 죄악 때문에 멸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멸망했던 롯의 아내와 같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시기 원하시고 그래서 인내하시고 계신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메시지를 받아들여야 살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멸망합니다. 마치 롯의 아내가 천사들의 손에 이끌려 가고 있으면서도 결국은 뒤돌아보고 멸망한것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 는 말씀은 하나님을 아예 모르고 있는 사람이 멸망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멸망하는 것이 아닌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있고 그분이 주시는 구원의 메시지를 다 알고 있으면서도 멸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으로 오늘 본문은 ‘롯의 처를 기억하라’ 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9장 62절입니다.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눅9장 62절)

롯의 아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존재는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성경이 있었고 믿음의 선배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던 역사가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멸망하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 중에서도 롯의 아내처럼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멸망하게 되는 사람들도 있을수 있는 것입니다. 왜요? 뒤를 돌아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게 되면 우리는 쉽게 뒤를 돌아볼수 있게 됩니다. 세상에 대한 미련이 너무 많으면 예수님이 손을 붙잡고 인도하시지만 저와 여러분은 돌아볼수도 있는 것입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은 처한 환경과 입장이 다 다를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 되시는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롯의 처를 기억하라‘ 한밤중에 갑자기 신랑이 왔을 때 미련한 다섯 처녀들이 당하게 된 그때 그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십니까? ’보라 신랑이로다‘ 라는 소리가 나며 신랑이 왔을때 그때 그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잠시후에 그들은 혼인 잔치의 닫힌 문을 두들기면서 열어달라고 울부짖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비유이시기 때문에 마지막 그날에 이런일은 반드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다고 하지만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살아갈때가 있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라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우리는 종종 너무 가볍게 여기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은 가볍게 여기지만 세상의 것들은 진지하고 무게가 있게 여기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종종 뒤돌아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 하신 말씀은 바로 롯의 아내처럼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평상시안 지금 돌아보면서 살아간다면 그 마지막 날에도 돌아보게 되어있다고 생각하시는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롯의 처를 기억하라” 이 말씀이 주는 교훈을 저와 여러분 주님을 만나게 되는 그날까지 우리는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노아의 시대때와 롯의 시대때 사람들과는 달리 일상생활을 해나가변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믿는 성도인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의 신부인 위치에 있습니다. 순결하고 정숙한 신부는 신랑이 올때까지 그분이 부탁한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올 한해 그리고 이땅을 떠나 신랑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될 때까지 뒤돌아보지 않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