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어려운 것도 아니요

Author
kgmcc
Date
2022-01-22 22:10
Views
88
본문 : 신명기 30장 11-14절

날짜 : 2021년 1월 23일


 

<신명기 30장 11-14절>

11.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12.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이 아니요

13.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도 아니라

14.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이 명령하신 말씀 앞에 늘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켤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기에 서있는 저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순종은 힘들고 어렵다 라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렇게 말하는 성도님들을 본적이 없습니다. “순종하는 것은 제게 누워서 떡 먹기입니다” “순종은 식은 죽먹기입니다” “땅 짚고 헤엄치는 것처럼 쉽습니다”. 이렇게 순종하는일에 대해서 말하시는 분이 계시면 아마도 그 사람은 천사이거나 아니면 정신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순종은 힘들고 어렵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순종은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까? 우리는 이렇게 순종이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순종에 대하여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본문 11절입니다. “11.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신30:11)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것도 아니라’ 하나님은 이 명령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실천할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순종은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순종이 그렇게 힘들고 어렵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갑니까?

몇가지 이유가 있지만 이시간에는 가장 중요한 두가지 이유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순종이 어려운 이유는

첫째로 표적을 구하면서 순종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순종하기 전에 표적을 구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8절입니다. 38.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무슨 의미입니까? 표적 보여주시면 믿고 순종하겠다는뜻입니다. 이러한 유대인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그다음절 마태복음 12장 39절입니다. 39.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의 표적이 무엇입니까? 요나가 밤낮 사흘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도 십자가 사건이후 사흘동안 무덤속에 계셨던 사건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표적을 행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많은 표적을 행하였지만 그들은 믿고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12장 37절입니다. 37.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표적을 구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순종하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유대계 지도자인 피터 허쉬 박사가 쓴 ’성공을 디자인 하라‘ 라는 책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미국 시골 통나무집에 몸이 허약한 남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집 문 앞에는 큰 바위가 있어서 이 남자기 집을 출입하는 데 늘 방해가 되고 거추장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루는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 집 앞에 있는 바위를 매일 밀어라.” 그때부터 이 허약한 남자는 희망을 품고 매일 바위를 밀었습니다. 그렇게 약 8개월이 지났을 무렵에, 이 남자는 자신의 꿈에 나타나 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에 점점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보아도 바위의 위치가 조금도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확실히 알고 싶어서 줄자를 가지고 바위의 위치를 측량해 보니, 역시나 바위가 1인치도 옮겨지지 않았고 제자리 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지난 8개월 동안 바위를 밀었던 일이 헛수고 이었던 것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한탄하면서 이제는 더 이상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을려고 작정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이 찾아와 이렇게 물으십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왜 그렇게 슬퍼하느냐?” 그러자 이 남자가 대답합니다.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대로 지난 8개월 동안 희망을 품고 바위를 밀었는데 바위가 전혀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게 바위를 옮기라고(to move the rock) 말한 적이 없다. 그냥 바위를 밀라고(to push against the rock) 했을 뿐이야. 이제 거울앞으로 가서 너 자신을 한번 봐라.”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이 남자는 거울 앞에 가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거울에 비쳐진 남자는 허약하고 병약한 남자가 아니라 근육질의 남자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때 이 남자에게는 이런 깨달음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제 생각해보니 지난 몇 개월동안 밤마다 하던 기침이 없어졌구나! 그리고 매일 기분이 상쾌했었고, 잠도 잘 잤었지.”

자, 그러니까 하나님이 지니신 계획은 바위의 위치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아남자를 변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남자에게 일어난 변화는 자기가 ‘바위를 옮겼기 때문’ 이 아니라 ‘바위를 밀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순종하기가 어려운 것은 우리가 표적을 바라보면서 순종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입니다. 하지만 순종의 동기가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순종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닐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가나 혼인 잔치집에서 예수님이 종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종들은 그 말씀에 순종해서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종들에게 그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가져다 주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그 종들이 그 물이 포도주가 되는 것을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순종했다면 그 순종은 어려웠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 물을 떠서 가지고 가는 동안 변하지 않는 물을 바라보면서 계속 순종을 해야 할 것인가 여기서 되돌아서야 할 것인가 갈등하며 순종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순종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겠습니까? 그런데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시는 일은 주님이 하실 일입니다. 그럼으로 종은 예수님이 명하신 말씀대로 물을 떠서 가져다 주는 일만 하면 됩니다. 주님은 그이상의 역할을 기대하지 않으십니다. 몸이 허약했던 그 남자는 바위를 옮기는 일이 아니라 바위를 미는 일에 순종하면 됩니다. 그리고 가나 혼인 잔체집의 종들은 자기가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물을 떠서 주는 일에 순종하면 됩니다. 하지만 바위가 옮겨져야 하고 물이 포도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순종하니까 그 순종이 어려운 것입니다. 이렇게 표적을 바라보고 기적을 바라보면서 순종을 하기 때문에 순종을 지속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두 번째로 순종하기 어려운 이유는

순종에는 댓가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은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부족한 전기를 아끼기 위해서 당분간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말라 고 하는 정책이 시행되었다고 하십니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말라는 그 정책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매번 계단을 오르내리는 수고를 해야만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도 역시 이렇게 수고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내가 네게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 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노아를 보십시오. 노아는 산 위에 방주를 지으라는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120년의 수고와 왕따를 당해야만 했습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베드로도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밤새 지쳐있었지만 다시한면 배를 돌려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지는 수고를 해야만 했습니다. 뿐만아니라 이해하지 못하고 불평하는 형제 안드레를 설득해서 같이 데리고 가야 했습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마게도냐 사람이 손을 흔들면서 이리로 건너와 우리를 도우라는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기 위해 유럽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러다가 빌립보에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핍박을 당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순종은 언제나 물질의 손해, 자존심의 상처, 관계의 단절, 왕따와 같은 대가를 지불해야만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순종의 필요성을 알지만 그 순종을 치룰 댓가를 생각하면서 지레 겁을 먹고 쉽게 순종의 자리에 나아오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 순종은 어렵지 않다.

이제 다시 본문 11절을 보겠습니다. “11.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신30:11)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 왜 순종이 어렵지 않는가?

그렇다면 왜 순종이 어렵지 않는 것입니까?

 

첫째로, 실천 불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문 12절 전반부와 13절 전반부를 보시겠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12절a)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13절a)

하나님 말씀은 하늘에 감추어져 있는 비밀스러운 것도 아니고 우리가 닿을 수 없을 만큼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하늘 꼭대기까지, 바다 밖까지 나아가야 할 명령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일어서서 순종의 걸음을 떼기만 하면 능히 이룰 수 있는 명령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간의 실제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서 실천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실천할 수 있는 것들만을 말씀하시지 실천이 불가능한 것들을 명령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선악과를 먹지 말라” “기름을 담을 그릇을 빌려와라.” “요단강에 들어가 몸을 일곱 번 씻으라!” “항아리에 물을 가득히 채워라” “나사로의 무덤의 돌을 옮겨 놓으라!” 죄성을 가진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힘든 면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순종할 수 없는 것들은 없습니다.

만에 하나 내가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도저히 할수 없는 일이라면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붙여 주면서까지 그 말씀에 순종하도록 하십니다. 모세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애굽 왕 바로에게로 가서 내 백성을 구출하여 내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모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출애굽기 4장 10절입니다. “10.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출4:10)

‘나는 본래 말을 잘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모세는 자기 대신에 말을 잘하는 사람, 보낼만한 사람을 보내시라고 요청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말을 잘하는 그의 형 아론을 붙여 주시고 모세의 손에 능력의 지팡이를 들려주십니다. 이렇게 내가 부족하면 사람까지 붙여 주셔서 그 일을 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경험이 있었던 모세이었기에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시는 명령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하나님의 명령은 순종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격려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순종만 하면 됩니다. 순종의 결과는 내가 책임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나사로를 살리시기 전에 무덤의 돌을 옮겨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순종하여 무덤의 문을 열어 놓기만 하면 됩니다. 나사로를 살리고 안 살리고의 문제는 내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아닙니다.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리라 명령하셨다면 우리는 배를 몰고 가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면 됩니다. 그 시간에 고기가 잡히고 안 잡히고의 문제는 내가 책임질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면 우리는 그대로 순종만 하면 됩니다. 누군가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순종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그 다음의 결과는 주님이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순종의 결과까지 내가 책임을 질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순종이 더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순종하고 잘못되면 어떻게하나? 순종하다 부끄러움을 당하면 어떻게 하나? 라는 생각에서부터 자유로와져야 합니다. 사실 부끄러움도, 수치도 우리가 당할 일이 아닙니다. 수치도 부끄러움도 그렇게 명령하신 하나님이 당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명령하실 때 자신의 전 인격을 걸고 말씀하십니다.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순종의 결과는 저나 여러분에게 그 책임이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순종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순종은 결코 실천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둘째로, 순종이 어렵지 않은 이유는 말씀이 내 입과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14절입니다. “14.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 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면 네 마음에 있은즉“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입과 마음에 있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속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입과 마음에 두고 살아갑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했던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 19편 10절입니다. “10.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시19:10)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는 그 말씀을 사모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묵상하며 자신의 마음에 담아둡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의 말을 마음에 담아 둡니다. 그리고 순간순간 그 말씀을 묵상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가 아닌 마음에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마귀는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으려고 합니다. 누가복음 8장 12절입니다.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눅8:12)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마귀가 하는 일이 우엇입니까?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내 입과 내 마음에 있는 자에게는 순종이 어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과 사랑의 관계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관계 속에 있으면 순종이 어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라는 명령을 하기 전에 먼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순종의 동기가 사랑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그 말씀이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그 명령이 켤코 무거운 짐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한일서5:3)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사랑하는 자에게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는 자에게는 모든 말씀이 부담이요 짐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는 함께 보내는 시간은 아무리 길어도 지루한줄 모르고 기쁘고 즐겁습니다. 하지만 사랑하지 않은 사람과 같이 있게 되면 그시간은 힘들고 고역입니다. 주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파스칼은 ‘신앙생활이 기쁘고 즐거운 사람이 바로 참된 신앙인이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입술에 떠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있는 자는 순종이 어렵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사랑의 관계 속에 있으면 순종이 어렵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억지로 순종하려고 하기보다 내가 주님을 더욱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이전보다 주님을 더 사랑할 수 있도록 저를 도와 주십시오 라고 기도할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로, 순종이 어렵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면 순종이 어렵지 않습니다. 왜 순종이 어렵습니까? 사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오늘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신 분이십니다. 나의 약함, 나의 실패, 나의 넘어짐까지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선하시고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로마서 8장 28절입니다. “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시고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먼저 예비해 놓으시고 내게 말씀하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무거운 멍에를 지우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언제나 나의 멍예를 쉽게 가볍게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육신의 부모보다 더 좋은 것을 주길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마태복음 7장 11절입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11)

이렇게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분이 선하신 분이시고, 전능하신 분이시고, 가장 좋은것을 예비해 놓으신 분이시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시고,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길 원하시는 분이심을 믿는 사람은 언제든지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닫신 자신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호세아 6장 3절입니다. “3.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6:3) 여기서 알자는 말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말함이 아니라 경험을 통하여 아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바로 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서 경험하는 모든 만남과 사건들을 통하여 하나님 당신을 알아가는 것에 있습니다. 만일 고난이 고난으로 끝을 맺고 아픔이 아픔으로 끝을 맺는다면 그것처럼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인생의 모든 사건들을 통하여 하나님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 알기를 원하십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합니까? 부자 되기 위해서입니까? 성공하기 위해서입니까?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관심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답게 알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면 순종은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명령만 듣고 명령하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간단히 정리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성공이 아닌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순종은 힘들고 어렵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은 순종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순종이 어렵지 않습니까? 주님의 말씀이 실천 불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입과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사랑의 관계 속에 있으면 절대로 순종이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면 순종은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순종하는 이 모든 일을 합하여 선으로 이루어내시는 전지 전능하신 분이심을 아는 일에 힘쓰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기쁨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순종을 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행하시는 크고 위대한 역사를 경험하실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