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Author
kgmcc
Date
2022-01-29 21:43
Views
77
본문 : 요한복음 16장 20-24절

날짜 : 2022년 1월 30일

*저녁(토) 8시에 설교 영상이 활성화 됨믈 알립니다.

 

<요한복음 1620-24>

20.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21.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22.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23.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귀한 가치가 있는 금은 보화를 캐내기 위해서는 깊은 산속에 있는 광맥을 찾아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만나게 되는 귀한 보화도 깊은 곳에 있습니다. 그 깊은 곳은 바로 '고난' 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C.S 루이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평안할 때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서 속삭이는 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보내시고 그 고난을 통해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큰 소리로 듣게 된다“ 이말이 주는 의미는 고난을 통해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된다는 것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사건을 앞두고 제자들과 저녁 만찬을 같이 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 자신의 죽음을 인하여 슬퍼할 것을 아셨습니다. 하지만 그 슬픔의 순간이 제자들에게 오히려 기쁨이 된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본문 22절입니다. “22.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을 하고 슬퍼하지만 나중에는 그 슬픔이 기쁨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기쁨을 빼앗을자가 없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슬픔과 아픔을 경험한 사람이 기쁨과 행복을 느낄수 있다는 것입니다. “야 이제사 내가 평안하고 행복하구나” 라고 이렇게 느낄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이전에는 내가 불안하고 어려움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불안하고 걱정해본 적이 없다면 지금 내가 평안하고 행복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 원리에서 배고픔을 경험한 사람이 배부름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고생을 해본 사람이 참다운 평안함을 누릴수 있습니다. 슬픔을 경험했기에 기쁨을 느낄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기뻐하기 위해서는 먼저 슬퍼할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기쁨을 얻기 위해서 반드시 먼저 슬픔을 겪어야 한다는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믿는 성도들에게도 슬픔이 있을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는 성도들이 겪게 되는 슬픔은 특별한 유익함이 약속되어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 하신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슬픔 가운데서도 기뻐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슬픔과 아픔이 있다할지라도 기뻐할수 있는 이유를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슬픔과 아픔속에서도 기뻐하며 살아갈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슬픔과 근심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있는 이유

1. 하나님의 섭리 때문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십자가 사건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는 시기입니다. 오늘 본문 다음장인 17장을 보시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난후 예수님께서는 붙잡히시고 사람들의 비웃음과 조롱을 받으며 고통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십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심정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14장 34절입니다. "34.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내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십자가에서 받게 될 고통과 고난은 인간의 몸을 지니신 예수님에게 견디기 힘든 일이셨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을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어려움보다는 자신의 죽음으로 인하여 제자들이 받게 될 어려움과 슬픔을 더 생각하셨던 것을 알수 있습니다. 본문 20절 후반부 에서 22절입니다. “20.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때가 이르렀으로 근심하나... (그리고 지나서 22절을 보시면) 22.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이렇게 근심이라는 단어가 4번이나 반복되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근심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특별히 많이 사용하신 것은 그만큼 이날 저녁에 제자들이 두려워하고 슬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이 근심과 슬픔에 눌리지 아니하고 이러한 근심과 슬픔을 극복하고 마침내 기뻐할 수 있길 소망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섭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불신자와 믿는 성도와의 차이는 바로 이것입니다. 믿지 않는 세상사람들은 ‘운’ 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믿는 성도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힘들게 살아가다가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은 ‘운이 좋았다‘ 라고 말합니다. 반대로 실패하고 망하게 되면 ’운이 나빴다‘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믿는 성도는 모두를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는 것에 그 차이가 있습니다. 21절을 다시 보시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믿고 계시는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21.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아기를 가진 임산부에게 매사에 힘들고 고통이 있어도 그 고통을 견딜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입니다. 이 고통 끝에는 내가 사랑하는 생명이 탄생한다고 하는 소망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통을 견디어낼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고난이나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이 고난이나 어려움을 당하는 이유나 의미를 알고 있다면 어려움속에 있다 할지라도 이겨낼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고난을 당할 때에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내가 이 고난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당해야 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욥이 고난을 당하면서 가장 힘들어했던 것도 내가 지금 당하고 있는 이 고난의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이 슬픔이 이 고통이 나중에 의미가 있는 창조적인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을 내가 믿을수 있다면 지금 이 고통과 이 슬픔은 견딜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임산부가 자신이 당하고 있는 아픔과 고통을 견디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살아가는 성도라고 한다면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고통은 없다고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로마서 8:28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지금은 내게 슬픔이고 아픔이고 고통이라 할지라도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재료로 해서 결국은 선한 결과로 만들어 내실 것이다 라는 믿음을 우리가 가질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으로 내가 겪고 있는 이 슬픔과 이 고통은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가 있다고 하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지금은 하나님 곁으로 가셨지만 전도 폭발 창시자로 유명한 제임스 케네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이 목사님의 원래 직업은 댄스 교습소 강사였습니다. 댄스 교습소를 차리고 난후 사업이 잘되어서 댄스 교습소를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불경기를 만나 굉장한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버티고 버티다 결국 나중에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제임스 케네디가 굉장한 실의에 빠져있었는데 하루는 그당시 자기가 운영하는 댄스 교습소 곁에 신학교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평상시에는 그냥 지나쳤지만 그날따라 신학교에 들어가보고 싶은 마음이 강력하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신학교를 방문했고 당담자를 만나 이런저런 말을 하던 차에 마음에 감동을 받고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곤 그 신학교에 가서 완전히 변화를 받고 헌신하면서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을 받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댄스 강사가 바로 전도 폭발이라는 세계적인 전도 교재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왜 그가 open을 한 댄스 교습소가 망했습니까? 이유는 한 가지, 하나님께서 더 선한 도구로 쓰시겠다는 섭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댄스 교습소가 망할 때 이 제임스 케네디 댄서 강사에게는 고통이 있었고 아픔이 있었을 것입니다. 자기 사업이 망했으니까 당연히 아픔과 고통이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후 이 댄스 강사는 오늘날 교파를 초월하고 각 교회에서 가르치고 사용하는 위대한 전도 폭발이라고 하는 전도 교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플로리다 코럴 리지 교회를 개척해 1만명의 교인을 둔 목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만일 댄스 강습소가 망했을 때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알수 있었다면 그 아픔과 그 고통은 오히려 기쁨을 가지기 전에 겪어야 하는 아픔이요 고통이 될수 있습니다. 물론 되돌아 보면서 말하기는 쉽지만 그 당시 어려움중에 있을 때 기쁨을 가지는 것은 너무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임산부 여인이 지녔던 것과 같은 마음으로 믿는 성도들은 고통과 아픔중에서도 소망을가지고 극복해나가야 한다고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이렇게 아픔과 슬픔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서 것 순간 순간의 아픔과 고통을 극복해나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슬픔속에서도 기뻐할수있는 이유

2. 하나님의 임재 때문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만나게 되는 슬픔이나 고통의 사건 중에서 가장 힘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죽음이라 할수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 근심하거나 슬퍼하지 않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죽음을 슬퍼하는 것입니까? 죽을때 겪게 되는 고통과 아픔 때문입니까? 그럴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죽음이 가져다 주는 가장 큰 슬픔은 관계의 단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는 볼수 없다고 하는 것이 굉장히 나를 슬프게 하고 나를 두렵게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만날수만 있다면 우리는 죽음에서 오는 어떠한 고통이나 슬픔도 견디어 낼수 있을 것 입니다. 오래전에 제가 Furneral home의 관속에서 누워계시는 돌아가신 저의 어머니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았을때 저를 가장 슬프게 했고 아프게 했던 것은 이제 내가 어머니를 다시는 볼수가 없겠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마지막으로 어머니 손을 잡아보고 얼굴도 만져보면서 이제는 이것도 마지막 이겠구나 라고 하는 생각에 제 마음이 메워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게 마지막이 아니다 라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죽음이 헤어짐의 마지막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다시 만날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22절입니다. "22.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죽어도 다시 만날수 있게 된다’ ‘죽어도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라는 이 말씀을 우리가 믿는다면 어떤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내가 사랑했던 부모님, 내가 사랑했던 남편이나 아내 그리고 사랑했던 자식들이나 이웃 사람들과 이세상에서 이별을 한다 할지라도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하는 소망을 가질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슬픔과 고통을 이겨낼수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4장 13절, 14절입니다. ”13.형제들아 자는 자들에(믿고 죽은 성도를 말함)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믿고 죽었던 성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그래요 우리는 모두가 다 하나님의 곁으로 가면 다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의 인사에는 Good Bye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죽음앞에서 See you again ”다시 만납시다“라고 인사를 할 수가 있는 사람들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슬픔속에 있는 믿는 성도들에게 부활하여 만나게 되는 사건 이전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가장 외롭고 슬픈 시간에 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계셨던 것을 볼수 있습니다. 본문 바로 뒤에 나오는 요한복음 16장 32절입니다. "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그당시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혼자 놔두고 다 도망 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예수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셨습니까? 이것은 제자들인 우리들을 위해서 인 것을 그다음절에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에서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그다음절 33절입니다.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여기에서 ‘이것’ 은 무엇입니까? 그 앞절과 연결해서 살펴보면 ‘모든 제자들이 나를 혼자 내버려 두고 도망을 가버렸을지라도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 이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고 세상에서 슬픔을 당하고 세상에서 고통을 당해도 나는 담대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희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면 세상을 이기고 슬픔을 이기고 고통을 이기고 담대하게 살아갈수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믿으십니까?

그래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 나를 지으시고 만유를 지으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 그분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슬픔속에서도 기뻐할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라고 약속을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슬픔속에서도 기뻐할수있는 이유

3.하나님의 응답 때문

우리 인생이 슬픔을 당하게 되면 두가지 종류의 사람들로 나뉘게 됩니다. 하나는 절망하는 사람이고 또 다른 하나는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나는 슬픔속에서도 당연히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도 때로는 기도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살아 갈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슬픔을 만나게 되면 우리는 잃었던 기도를 다시 찾게 됩니다. 고통속에서 우리는 다시 무릎을 꿇고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도의 응답을 체험하게 됩니다. 23절입니다. “23.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그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그날’ 은 무엇을 하는 날입니까? 계속되는 뒷 문장을 보시면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이름으로 주시리라’ 라는 말씀에서 ‘구하는 것을’ 이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그날’ 은 바로 기도하는 날인 것을 알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내가 슬픔과 근심속에서 기도를 하는 날을 의미합니다. 그래요 슬픔과 근심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를 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결과로 응답을 받게 되는 경험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성도의 삶인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까지 제자들은 문제가 있을때마다 예수님에게 가서 이야기를 하고 그래서 도움을 구할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곧 예수님이 자기들 곁을 떠나가십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그래서 도움을 얻을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자들이 가진 걱정과 근심은 ‘이제는 어떻게 주님으로부터 도움을 얻게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마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으로 기도를 해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들에게 기도 응답을 해주시리라” 그리고 24절에서 다시 한번 더 강조하십니다. 24.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가 기도하고 간구하는 것마다 응답받게 될줄로 믿으십시다. 그래서 이 슬픔과 고통이 기쁨이 될 줄로 믿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나가십시다.

그래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이런 저런 모양의 슬픔과 근심을 만나게 됩습니다. 사랑하는 배우자를 잃어버리고 재산을 잃어버리고 건강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이런 슬픔이 다가 아니다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슬픔이 마지막이 아니고 고통이 우리 인생이 마지막으로 가는 장소가 아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반대로 슬픔은 우리를 성숙시키기 위한 하나의 단계인 것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믿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슬픔은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겪어야 하는 단계인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내가 슬픔 속에 있다 할지라도 절망하지 마십시다. 슬픔속에서 기도하는 자가 되십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기도응답을 받아 기쁨을 경험하고 일어서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제 간단하게 정리합니다.

예수님이나 제자들에게는 십자가의 고통보다도 더 한 고통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고통속에서라도 소망을 가지고 기쁨을 가질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분명히 고통의 이유를 알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다고 하는 믿음이 있을 때 소망을 가지고 고통을 극복할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고난과 슬픔의 현장가운데서라도 그 아픔과 그 슬픔을 이겨내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신 것마다 응답받게 되는 것을 믿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아픔이나 고통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의 기도응답해주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힘든 순간순간을 극복해낼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 있을때마다.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난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고 믿으십시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고 하는 약속의 말씀을 믿으십시다. 그리고 내가 드리는 기도에 대해 늘 응답해주신다고 하는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승리하는 믿음의 생활을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