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예수의 부활이 없다면

Author
kgmcc
Date
2022-04-17 00:41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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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고린도전서 15장 12-19절

날짜 : 2022년 4월 17일

 

<고린도전서 1512-19>

 

12.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오늘은 부활절 주일입니다. 2천여년 전 이날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의 죄값을 십자가에서 지불하시고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 하신 날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곧바로 하늘로 승천하신 것이 아니라, 40일 동안 이 땅에 더 머물러 계시면서 사람들을 만나십니다. 왜요? 사도행전 1장 3절입니다. 3.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행1:3)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11번 사람들에게 나타나 보이신 것입니다. 이시간 잠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던 장면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제일 먼저 나타나시고 만나주신 사람은 무덤가에서 슬피 울고 있던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마가복음 16장 9절입니다. 9.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일곱 귀신이 들렸던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나 온전함을 받았습니다. 그이후 마리아는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에 대한 뜨거운 믿음과 사랑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막달라 마리아이었기에 주님께서는 제일 먼저 만나주셨다고 생각해봅니다.

두 번째로 나타나시고 만나주신 사람은 주님을 사모하며 따르던 여인들입니다. 마태복음 28장 9절입니다. 9.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마28:9). 남자가 아닌 여자들에게 주님은 먼저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서 걸어가실 때 제자들은 모두가 다 도망을 갔지만 여자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향한 간절한 믿음과 사랑을 가진 여인들에게 먼저 나타나신 것입니다.

세 번째로 나타나시고 만나주신 사람은 베드로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절입니다. 5.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게바에게 보이시고’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지만 그후에 통곡하며 회개를 한 제자 베드로에게 나타나주십니다.

그리고 네 번째로 나타나시고 만나주신 사람은 슬픔에 쌓여 고향으로 돌아가던 두제자입니다. 누가복음 24장 15절입니다. 15.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과 동행하시나’ 이 두 제자중 한사람의 이름은 글로바입니다. 이 두제자는 예수님이 선택하신 열두 사도는 아니었지만 그당시 주님을 따르는 수십명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이 두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후 슬픔과 절망에 쌓여서 자기들의 고향인 엠마오라 하는 시골로 돌아가고 있을때 예수님님께서 그들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방황하는 한 마리 양을 찾아가시는 목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로 나타나시고 만나주신 사람들은 부활하신 그날 저녁 두려움에 쌓여 문을 닫아 걸고 숨어있었던 열 제자들입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입니다. 19.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후에 두려움에 쌓여 문을 닫아 걸고 방 구석에 숨어 있었지만 예수님은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일주일 후에 여섯 번째로 도마에게도 찾아오십니다. 요한복음 20장 26절입니다. 26.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요20:26). 열명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 자리에 없었던 도마는 열 제자들의 말을 듣고서도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서는 믿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도마에게 예수님께서는 찾아오시고 만나주십니다.

일곱 번째로 나타나시고 만나주신 사람은 디베랴 바닷가에서 고기 잡던 일곱 제자들입니다. 요한복음 21장 1절입니다. 1.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예수님이 왜 또 나타내신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시고 만나주셨는데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여섯 제자들을 데리고 고기잡이 하러 디베랴 바다로 갔습니다. 옛날 직업으로 세상으로 돌아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또 다시 나타나시고 만나주신 것입니다. 끝까지 포기 하지 않으시는 주님의 인내하심을 볼수 있습니다.

여덟 번째로 나타나시고 만나주신 사람은 500여 형제들입니다. 고린도 전서 15장 6절입니다. 6.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고전15: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여기 오백 여 형제는 그당시 주니을 믿었던 사람들 대부분이라 할수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은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홉 번째와 열번째로 나타나시고 만나주신 사람은 야고보와 모든 제자들입니다. 고린도 전서 15장 7절입니다. 7.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고전15:7). 여기서 야고보는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가 아니라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 야고보입니다. 이때 육신의 동생 야고보는 비로소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게 되고 이후에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적인 지도자의 길을 갑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또다시 열한제자들을 갈릴리에서 만나주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열한번째로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기 바로 전에 사랑하는 열 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만나주시고 마지막 부탁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구름 타고 하늘로 승천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9절입니다. 9.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땅에 40일동안 머물고 계시면서 여인들과 제자들 그리고 동생 야고보와 믿음을 가진 500여명의 형제들에게 일시에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볼 사실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받게 한 빌라도 총독이나 그당시 종교지도자들을 만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심판보다는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고린도 전서에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AD 50년 경에 사도바울의 2차 선교 여행중에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5년 후인 AD 55 년경에 사도바울이 에베소에 머물고 있을때 고린도 교회에 보낸 서신서가 바로 이 고린도 전서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이후 약 20여년의 세월이 흘러갔던 때입니다. 그리고 그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을 사실로 믿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 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사도들과 5백명이나 되는 목격자들 중에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생존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20여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자기 눈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똑똑히 보았다고 계속 간증하고 있었습니다. 한 두명도 아니고 오백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주장하니까 그들이 모두 헛것을 보았다고 무시해 버릴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는 대체로 시인 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이었음을 우리는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의 부활이 아닌 자신들의 부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니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실수도 있겠지만 우리와 같이 평범한 사람들이야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수가 있겠는가. 인간들도 죽었다가 살아나는 일이 생긴다면 나보다도 훨씬 더 능력이 있었던 모세나 엘리야나 이런 사람들이 벌써 살아났겠지 뭐. 예수님은 몰라도 나는 아니야“ 라고 생각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우리 믿는 성도들의 부활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신앙생활을 해나가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렇게 생각하며 신앙생활하시는 믿는 성도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저와 여러분 우리의 부활이 중요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합니다. 본문 12절입니다.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그리스도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이 말씀을 보시면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하지 않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은 바로 뒤에 나오는 성도인 자기 자신들의 부활에 관한 것입니다. “어찌하여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하느냐” 여기서 ‘죽은자 가운데’는 우리 인간들의 죽음입니다. 그러니까 인간들의 죽음 가운데서 부활이니까 믿는 성도들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믿는 성도들의 부활이 없다고 하느냐’ 라는 것이빈다. 그리고 계속해서 13절입니다.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역시 마찬가지로 성도들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16절에 다시한번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역시 성도의 부활이죠?)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자 그러니까 믿는 성도들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의 부활도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믿는 성도들에게 자신의 부활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믿는 성도들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이 이땅에 오실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구태여 죽으시고 부활하실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시고 그런일을 왜 하시겠습니까? 우리 인간이 부활하지도 않는다면 말입니다. 믿는 성도들에게 부활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신랑이요 우리 믿는 성도는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신랑되시는 예수님은 신부인 믿는 성도와 같이 천국에서 혼인잔치를 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신부가 없는 혼인잔치를 계획하는 신랑은 없습니다. 예수님과 믿는 성도들은 신랑신부처럼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는 예수님의 부활이 중요하고 또 예수님에게는 우리의 부활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만약에 예수님의 부활사건이 없다면 이라는 질문을 가지고 부활의 중요성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첫째로 우리의 믿음은 헛것이 되고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게 됩니다.

17절입니다.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여기에서 ‘헛되고’ 라고 할 때 원어는 ‘마타이아’라고 하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마타이아 라는 단어의 의미는 ‘열매가 없다’는 뜻이 있습니다. 열매나 결과가 없는 빈 쭉정이를 볼 때 ‘마타이아’ 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왜 믿음의 생활을 해나갑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구원을 주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9절입니다. ”39. 우리는 ...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구원함에 이르는 (그다음에는?) 믿음을 가진자니’ 믿음이 바로 영혼을 구원하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열매는 구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믿음의 생활을 해도 헛것이 됩니다. ‘마타이아’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결과인 구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어떻게 하면 인간이 구원을 얻을수 있는가에 대해 물어볼 때 거듭나야 한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 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적으로 우리가 잘아시는 요한 3장 16절 말씀을 하십니다. “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고 요한복음 5장 24절입니다. ”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자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주시지 않으셨다면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믿을수 없게 되는 것이죠. 열심히 믿고 신앙생활을 했는데 나중에 “뻥이야!”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로마서 4장 25절 후반부입니다. “25. 예수는 ...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은 예수님이 의롭고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살려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의로우시기 때문에 그분이 하신 말씀도 거짓말이 아닌 참된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믿을 때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은 바로 우리가 의로운 자가 되어 구원받고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라는 의미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이 저와 여러분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자들도 역시 멸망하게 됩니다.

18절입니다.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그리스도안에서 잠자는 자’ 라는 표현은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성도들을 죽었다라고 표현하지 않고 잠을 잔다 라고 표현합니다. 누가복음 8장에 나오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때도 예수님께서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잠을 잔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잠을 잔다고 말씀하십니까? 언젠가는 깨어서 일어 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의 심판이나 죽음은 분리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육신의 죽음은 성경적으로 볼때는 영혼과 육의 분리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영과 육의 분리가 일어날 때 육의 죽음이 옵니다. 이것을 첫 번째 죽음, 육의 사망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영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때문에 하나님으로 가야하는데 하나님 곁으로 가지 못하게 될 때 성경은 이것을 두 번째 사망 영의 죽음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진짜 죽음은 바로 이 둘째 사망 영적인 사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첫번째 죽음만을 경험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두 번의 죽음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육신이 다시 부활해서 영과 합치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때까지 그때까지 이 육신은 잠들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지금 이 육신은 영원히 살아갈수 있는 신령한 몸 영광스러운 몸 하늘에 속한 몸으로 변하게 되어 영과 합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까지 성경은 ”잠잔다“ 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신이 잠들어 있는 것이지 영혼이 잠들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믿는 성도님들의 장례식에 참석을 하셔서 성도님의 육신을 볼때마다 죽음이라는 생각 하시기 보다는 ”잠이 드셨구나“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모두가 다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에게 다시 깨어나는 일이 없게 될 것입니다. 결국 우리 믿는 성도들은 모두가 다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을 믿고 세상을 떠났던 저와 여러분의 부모님들이 그리고 나의 자녀들과 형제 자매들을 언제까지나 만날수도 없다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이 중요한 것입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성도들은 이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가 됩니다.

19절입니다.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이 없다면 우리의 인생은 이세상이 모두 입니다. 그렇다면 불신자들이 볼 때 우리 믿는 성도들은 가장 불쌍하고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여기 이 미국땅에서 힘들게 이민생활을 해오시면서 하고 싶고 하지 못하고 가고 싶은곳 가지 못하면서 우리 믿는 성도들은 살아왔습니다. 주말과 주일이 되면 경치가 좋은 곳으로 여행가고 싶은 마음들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교회에서 이렇게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시간을 드리고 몸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는 생활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만일에 이세상의 삶이 전부라고 한다면 우리는 가장 어리석고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이 없었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이 있기에 우리는 가장 지혜로운 사람으로 그리고 가장 축복을 받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20장 11절과 12절입니다. 11.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12.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1절 후반부를 보시면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예수님이 통치하시는 그 날에는 지금 이세상의 모든 땅과 하늘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이세상 모든 것은 사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때에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사람들과 두 종류의 책입니다. 12절 후반부입니다. ‘죽은 자들이 큰자나 작은자나 그 보좌 앞에 서있는데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앞에 나오는 책은 책들입니다. 복수입니다. 수많은 책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뒤에 나오는 책은 단수 즉 한권의 책입니다. 후반부를 보시겠습니다.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그러니까 앞에 나온 수많은 책들은 각각의 인간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자기들이 행한 행위가 적혀있는 책들입니다. 그리고 그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요한계시록 20장 13절에서 15절입니다. 13.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은 자기가 지은 행위를 기록한 책의 내용을 기준으로 해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고 구원을 받습니다. 뿐만 아니라 상급과 보상까지 받게 됩니다. 생명책에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이름만 기록된 책입니다. 생명책에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가 지은 행위가 기록되어있지 않고 이름만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권의 책으로도 충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있습니까? 선하고 착한 일을 많이 한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어있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이세상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입니다. 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은 바로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생명책에 기록되고 기록되지 않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게 되지만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그 죄가 주님의 보혈로 인해 사라지고 선한 행위만 남아 보상과 상급을 받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21장 26절 27절입니다. 26.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27.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중에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그리고 거짓말 안한 사람이 없겠습니까? 대부분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보혈로 인해 죄용서함을 받게 되고 선한일과 올바른 일만이 남아 그 행한대로 상급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든지 그 이상의 것이 우리에게 주어지고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감사와 은혜의 눈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인간은 모두가 다 행위에 의해선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의의 기준에 미달됩니다. 그래서 의인이 될 수가 없고 따라서 구원을 얻을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음으로서 우리는 거룩한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을 의인으로 인정하시겠다고 정해놓으시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입니다. “16.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어떻게 됩니까?)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은 행위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이 믿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행위입니다. 이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세상을 떠나게 되는 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보시고 의인이라고 불러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이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다시 살려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봉사하고 헌신을 하신 일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상급을 준비해놓으실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하심이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축복을 받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내눈앞에 있는 일들에 대해서 참고 인내하며 살아갈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생활 때문에 하고 싶은 것 하지 못하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눈치를 받고 사회생활을 할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믿는 성도들은 이세상의 삶이 다가 아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참고 견디고 이렇게 신앙생활 해나가는 것이 우리에게 훨씬 더 유익하다고 생각을 하셨기에 참고 인내하라고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믿는 성도들은 이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 가장 지혜롭고 축복을 받게 될 자들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바라옵기는 예수님의 부활이 저와 여러분에게 이렇게 중요하다 라고 하는 사실을 언제나 마음에 새기며 이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힘들고 어려운 생활을 극복할 수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