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쉬지않고 너를 생각하여

Author
kgmcc
Date
2020-02-23 21:32
Views
115
본문 : 딤후 1장 3-5절

날짜 : 2020년 2월 23일

 

<디모데 후서 13-5>

3.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4.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5.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오늘날 과학 문명이 점점 발달해져 감에 따라 우리가 생활하기에는 더욱 편하여 지고 있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강퍅해지고 악해져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뉴스를 보게 되면 하루가 멀다하고 강도 나 강간 그리고 살인 사건을 접하게 되어서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종종 훈훈한 미소를 짓게 만들고 감동을 주는 소식들도 있습니다. 얼마전에는 서울 경동 초등학교에서 어린이 회장단 5명이 아침 자습 시간과 쉬는 시간에 각 학급 교실을 방문해서 불우 이웃 돕기 모금을 하였다고 합니다. 일주일동안 잠시 쉬는 시간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학급 교실을 방문해서 모금을 했는데 학생들이 자기의 용돈을 내놓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모금이 된 총액은 1백 3십 5만 8천 5백원이었는데 그돈으로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게 되었다는 훈훈한 소식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훈훈한 감동을 주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감동을 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 사람은 바로 디모데 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디모데는 언제나 감동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3절입니다. “3.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않고 너를 생각하여...‘ 바울에게 있어서 디모데는 기도할때마다 쉬지 않고 생각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기도할때마다 디모데를 잊지 않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를 하다 보면 생각이 나는 사람이 있잖아요? 주로 어떤 사람이 생각이 납니까? 내 돈 떼어먹고 도망간 사람이 생각이 나십니까? 나에게 기도 부탁을 한 사람이 가장 먼저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기도 부탁은 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너무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또 어떤 경우는 전혀 생각지도 않은 사람이 갑자기 생각이 나서 기도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할때마다 기도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반대로 기도하기엔 웬지 부담스러운 존재로 다가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절로 기도를 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디모데는 바울이 기도할때마다 쉬지않고 기도해주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누군가가 기도할때마다 나를 잊지 않고 늘 기도해 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누군가가 기도할때마다 나를 잊지 않고 늘 기도해준다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겠습니까? 바라옵기는 내 주변의 사람들이 기도할때마다 잊혀지지 않고 기도를 해주게 되는 그런 축복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바울은 왜 밤낮 없이 기도할때마다 쉬지 않고 디모데를 위해 기도했을까요? 그것은 디모데가 믿음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앞에 있는 2절 전반부를 보시게 되면 ‘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라고 시작합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믿음으로 낳은 영적인 아들이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할 때 내 자녀를 위해서는 빠트리지 않고 기도하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바울도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생각하며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기도할때마다 쉬지않고 디모데를 위해 기도를 했던 것은 디모데가 꼭 믿음의 아들이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복음을 전하여 낳은 사람이 디모데 한사람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믿음의 아들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많은 믿음의 아들중에서도 디모데를 위해 쉬지 않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디모데는 바울에게 언제나 감사와 기쁨을 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3절 말씀을 다시한번 보시겠습니다. “3.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때마다 디모데가 생각났는데 그 디모데를 위하여 기도하면 감사가 저절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할때 대체로 무슨 생각이 먼저 납니까? 그사람이 기도요청했던 내용이 생각이 납니다. ‘저희 가정에 문제가 있는데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제 건강에 문제가 있는데 회복되도록 기도해주세요“ ”사업이 어려운데 잘되게 기도해주세요“ 이렇게 문제 해결을 위해서 요청햤던 기도 내용들이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바울이 디모데를 위해 기도할때마다 생각이 나는 것은 뭐 문제 해결하게 해달라는 그런 내용이 아니라 감사가 그냥 저절로 나왔다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때마다 뭐 해주십시오 라는 기도내용이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감사기도만 나오게 된다면 그것보다 더 축복된 인생이 어디있겠습니까? 뿐만아니라 디모데는 바울에게 언제나 기쁨을 가져다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4절입니다. “4.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바울은 인생의 황혼에 이 편지를 쓰면서 디모데를 만나 보기를 원했습니다. 왜 보기를 원했습니까?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기쁨이 가득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디모데는 만나 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보는 것만으로 역겹고 부담스러운 사람이 있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시끄럽고 웬지 만나기 두려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있어서 디모데는 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옛날 우리의 자녀들이 어렸을때 학교에서 다녀와 인사를 하면 그 아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뻤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군대에 있다가 휴가온 아들이 오랜만에 집에 와서 부모가 차려놓은 음식을 먹는 것을 보면 그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부모는 기쁜 것입니다. 휴가온 아들이 밥을 먹는 것을 보고 밥을 축내고 있다고 화를 내는 부모가 있습니까? 그런 부모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에게 있어서 디모데는 그냥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쁨과 감사가 생겨나는 존재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를 보길 원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디모데는 바울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이렇게 감동을 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저도 마찬가지 이지만 사람들은 모두가 다 한결같이 감동을 주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 이렇게 감동을 주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어쩌다가 한번씩 만나게 됩니다. 돈이 있고 많이 배운 사람도 아닌데 만나서 대화를 나누다가 보면 잔잔한 감동을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IMF가 있었던 시대 때의 일입니다. 추운 겨울날 버스정류장 앞에서 군밤장사와 군고구마 장사 꾼 들이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장사군들 속에 낯선 리어카 한 대가 끼어 있었는데 그 리어카안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값싸게 보이는 도자기들이 가득 실려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고 그 곁을 지나가고 있는데 그 리어카 곁에는 작은 피켓이 하나 걸려 있었고 그 피켓에는 이런 내용의 글귀가 적혀있었습니다. 구경만 해주셔도 우리는 감사하겠습니다. 값을 물어봐 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를 구입해주신다면 우리는 더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이 사람은 어느 도자기 회사에 자재를 납품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IMF를 만나서 대금을 받을수가 없게 되니까 돈 대신에 도자기를 받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도자기를 팔아야 하는데 난생 처음해보는 장사라 리어카 에다가 도자기를 싣고 거리에 나갔지만 입이 열리질 않았던 것입니다. 입이 열리지 않으니까 어쩔수 없이 피켓에다가 이렇게 글자를 쓴 것입니다, 구경만 해주셔도 우리는 감사하겠습니다. 값을 물어봐 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를 구입해주신다면 더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글귀를 본 사람들이 가격을 물어보고 한개나 두 개씩을 사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장사를 해도 진솔한 마음으로 장사를 해야지 속이 다 보이는 장사를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것 손해보고 팝니다. 진짜로 밑지고 파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다 속 보이는 행동인 것입니다.

디모데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감동과 감사를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 디모데는 어떻게 해서 이렇게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1. 디모데는 눈물의 사람

4절입니다. “4.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그러니까 바울이 디모데를 만나고자 하는 이유중의 하나가 무엇입니까? 디모데의 눈물이 생각났기 때문인 것입니다. 디모데 뿐만아니라 바울도 눈물이 많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의 서신서를 보면 눈물이라는 단어가 자주 보입니다. 고후 2장 4절입니다. “4.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빌립보서 3장 18절입니다.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사도바울은 자신이 에베소 교회서 3년동안 목회를 했는데 그 에베소 교회서 장로들 앞에서 고별설교를 할 때 지난 3년동안 나는 모든 겸손과 눈물로 목회를 해왔다는 말을 합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목회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가슴으로 하는 것입니다, 목회는 눈물로 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아 선지자는 죄에 빠진 백성들을 보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느헤미아도 조국에 있는 성전이 훼손 되어진채 방치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수일동안 앉아서 울었습니다. 그런데 눈물을 흘린다고 하는 것은 단지 슬퍼하고 있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보좌앞에서 많이 울지 않습니까? 내자신이 서러워서 울때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하나님의 보좌앞에 나와 기도할때마다 흘리는 눈물은 내힘으로는 안된다고 하는 고백의 눈물입니다. 그러니까 누가 웁니까? 내 힘으로 안된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이 울수 있는 것입니다. 자식의 문제 내힘으론 안되니까 우는 것입니다. 남편의 문제 내힘으론 어쩔수 없으니까 우는 것입니다. 질병의 문제 내 힘으로 어쩔수 없으니까 우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처해있는 상황 내 힘으로 어찌할수 없으니까 우는 것입니다. 내힘으로 안된다고 하는 고백이 눈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세상 내힘으로 되는 것보다는 안되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그것을 깨닫는 사람들이 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반대로 화를 내고 정죄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우리들 주변엔 너무나 많습니다. 이세상에는 점점 눈물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사람들의 마음이 점점 더 강퍅해지고 있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말세에 이러한 현상이 일어날 것을 성경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디모데 후서 3장 2절을 보시면 말세에 있게 될 현상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자기를 사랑하며’ 사람들은 자기밖에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처한 입장을 생각하지도 않고 행동을 하는 것을 봅니다. ‘돈을 사랑하며’ 오늘날 사람들이 얼마나 돈을 사랑합니까? 또 돈이 있다고 교만해서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무시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또 부모를 거역합니다. 이러한 사실도 모르고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얼마나 잘해줍니까? 자녀 사랑을 해야 하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다 도와줄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게 해준다고 해서 자식들이 더 효도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종말이 가까워 질수록 이러한 일들이 점점 더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디모데에게 이런 눈물이 있었기에 바울은 만나보기를 원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눈물이 필요합니다. 내생각을 아시고 내부족함도 아시고 내 연약함도 아시는 주님을 생각하면서 기도할때마다 울수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가서 울수가 있겠습니까? 식당에 가서 울겠습니까 직장에서 울겠습니까? 내 힘으로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울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많은 말을 하지 않고 그냥 울기만 해도 됩니다. 내생각 내 마음을 아시는 주님앞에서 그냥 울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주님 내 힘으로는 안되요. 내가 해보았지만 안됩니다. 이렇게 솔직하게 고백하고 나면 더 이상 할수 있는 말이 어디있습니까? 더 이상 할말이 없고 해결책도 없으니까 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랍 속담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항상 햇빛만 나면 사막이 된다“ 비가 오지 않고 항상 햇빛만 쨍쨍 내리쬐는 날이 계속되면 땅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막이 되는 것이잖아요.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가운데 먹구름이 없고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리지 않고 항상 좋은 일만 생겨보세요. 우리의 마음은 반드시 사막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좋은 일만 생기면 물론 좋죠. 저도 좋은일만 생기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좋은일만 생기면 내 기도의 무릎이 약해지고 기도하는 시간이 적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 머물게 되는 시간이 적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에는 종종 비바람을 동반한 천둥 번개가 치는 날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어쩔수 없이 보좌앞에 엎드려 기도를 하는 일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받고 깨닫게 되는 은혜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문제만 보지 말고 문제 뒤에 숨겨져있는 은혜를 바라볼수 있어야 합니다. 아 나에게 이런 사건과 이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에게 받고 있는 은혜를 알수 있게 되었구나 라는 고백을 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감당하기 힘든 사건과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의 마음이 사막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메마른 사막이 안된 은혜가 있기 때문에 주님이라는 그 말 한마디에도 눈물이 펑펑 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삶속에 좋은 일만 계속 있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토마스 왓슨이 이런말을 했습니다. ‘눈물 골짜기를 지나야 낙원이 나타난다’ 스펼전 목사는 이런말을 했습니다. ‘천국은 메마른 눈을 가지고서는 갈수 없다’ 그렇습니다. 눈물의 사람이 곧 은혜에 젖어있는 사람입니다. 차가운 마음과 비판의 눈을 가지고 이야기 하는 똑똑한 사람들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습니다. 사람을 보는 순간 예리하게 그사람의 약점과 허물을 들추어내는 똑똑한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똑똑한 사람들보다는 부족하고 연약해서 눈물을 흘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들어 사용하십니다. 왜요? 이런 사람들에게 감동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똑똑한 사람이 되기 보다는 감동을 주며 살아가는 사람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디모데는 어떻게 해서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1. 거짓없는 믿음

5절 전반부입니다. “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디모데에게는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거짓이 없는 믿음이라는 있다는 것은 뒤집어보면 거짓된 믿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디면 거짓이 없는 믿음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복음적인 믿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과 부활을 믿는 믿음이 복음적인 믿음이요 거짓이 없는 믿음입니다. 이 당시는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교사들이 많아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 이외에 또다른 내용을 전했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예수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 줄 아느냐? 예수도 믿어야 하지만 그위에다가 할례도 받아야 돼.’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거짓 믿음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럼으로 거짓없는 믿음은 바로 복음적인 믿음입니다. 둘째로 순수하고 한결같은 믿음을 말합니다. 거짓이 없는 이라는 말을 헬라어로 보니까 포클리토스라고 하는데 이것은 꾸미지 않다 가식이 없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순수하고 한결같은 믿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순수하고 한결같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디모데 후서는 순교를 앞둔 바울의 마지막 서신서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바울은 감옥에 갇혀서 마지막 죽음을 앞두고 있는 아무 힘이 없는 노인입니다. 그러다가 보니까 그동안 그렇게 바울을 따라다니던 사람들 대부분이 그의 곁을 떠나가버리고 인생황혼기에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사 누가와 디모데와 같은 소수의 사람들은 끝까지 바울의 곁을 지켜주었습니다. 이것을 보게 되면 우리는 디모데는 순수하고 한결같은 믿음을 가진 것을 알수 있습니다. 여러분 순수하고 한결하지 않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상황이 자기에게 불리하면 떠나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거짓이 있는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큰교회에 가면 비즈니스 때문에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볼수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순수하지 않는 믿음이요 거짓이 있는 믿음 인 것입니다. 물론 우리도 넘어지고 실수할때가 있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날마다 날마다 어린양의 보혈의 피로 씻고 그래서 우리의 믿음을 순결하게 가꾸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디모데는 어떻게 해서 이런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까?

5절입니다. “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디모데가 가지고 있던 거짓없는 믿음은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었던 믿음이었습니다.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었던 믿음이 디모데에게로 흘러온 것입니다. 믿음이 삼대째 이어온 것입니다. 거짓이 없는 이 순결한 믿음은 흘러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외조모 로이스는 자기 딸인 유니게에게 거짓이 없는 믿음을 유산으로 남겨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딸은 아들 디모데에게 거짓이 없는 믿음을 그대로 남겨 준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 부모들은 이러한 거짓이 없는 믿음 즉 순수하고 복음적인 믿음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비극은 나혼자 믿다가 내 자신의 대에서 믿음이 끊어지는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반대로 가장 큰 축복은 이 믿음이 내 자식과 그리고 또 내 자식의 자식에게 흘러가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세상을 떠나가고 난이후에도 믿음의 유산이 내 자자손손 내려갈수 있다면 이 얼마나 큰 축복이겠습니까. 그럼으로 앞으로 자녀들에게 저와 여러분의 거짓이 없는 순수한 믿음이 흘러 갈수가 있도록 축원합니다. 바라옵기는 이렇게 디모데처럼 만나는 사람들마다 기쁨과 감동을 주면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