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하나님께 맡긴다는 의미

Author
kgmcc
Date
2022-04-24 00:45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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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역대하 20장 17-23절

날짜 : 2022년 4월 24일

 

<역대하 20장 17-23절>


  1.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2. 여호사밧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니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도 여호와 앞에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하고
  3.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에게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니라
  4. 이에 백성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5.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6.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7.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지금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중에 있습니다. 사실 러시아가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때만 해도 3-4일이 지나면 우크라이나가 항복을 하고 전쟁은 끝이 날것이다라고 세계 각국의 군사 전문가들이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로서 정확하게 60일 두달이 되도록 전쟁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속한 어느 한 도시도 제대로 점령하지 못하고 우크라이나보다도 더많은 군사적인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군사력이 월등히 약한데도 불구하고 러시아를 상대로 잘 싸우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배경을 살펴보면 지금 우크라이나가 처한 입장과 비슷한 상황인 것을 깨닫을수 있습니다. 유다의 제 4대왕이었던 여호사밧 왕 때에 모압과 암몬과 마온의 연합군이 유다를 공격했습니다. 그리고 유다나라는 이 세나라가 연합을 한 군사력과 대응할만한 군사력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지금 러시아와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약하고 부족한 군사력을 가진 우크라이나가 처한 환경과 비슷하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바로 앞에 있는 역대하 20장12절 말씀을 보시면 여호사밧왕이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12.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그러니까 이 전쟁은 유대나라가 승리하기 힘든 싸움 인것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지금 우크라이나가 승리하기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과 비슷한 환경에 처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지금 본문에 나온 유대나라가 처했던 것처럼 우리도 극복하기 힘든 문제들을 만날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성숙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자주 고백하는 내용중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 이 문제를 제 힘과 제 능력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제가 가진 모든 문제들을 모두 하나님께 맡깁니다. 내 가정의 문제, 내 직장의 문제, 내 사업의 문제, 내 건강의 문제 모두 다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 우리는 내가 극복하기 힘든 문제들을 만나게 될 때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또 우리는 주변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종종 듣게 될 때가 있습니다. ”목사님, 장로님, 집사님 이제 제가 그 문제는 하나님께 다 맡겼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을 보내고 있는 성도님들을 우리는 종종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고백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성경적이고 성숙한 모습인데 실제 행동하는 것을 보면 그렇지 못할때가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물론 나이가 다르고 성품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행동이 다르게 나타날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 사람의 모습에서 나오는 그 공통된 점은 볼수가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께 모든것을 맡긴 사람들에게서 볼수 있는 공통된 점을 찾아볼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공통된 점이 있기는 있어요. ’이젠 하나님께 다 맡겼습니다‘라는 말하는것하고 또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그렇게 알아주기를 바라는 그 모습은 공통된 점이라 할수 있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다 맡겼습니다. 저를 믿어주세요“ 자, 그렇다면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맡기고 나는 아무것도 안한다. 하나님이 알아서 다 하실꺼야‘ 이런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그랬으면 참 좋겠지만 물론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1절입니다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부지런해라 열심을 내어서 주를 섬겨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냥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하고 열심히 주를 섬기는 것이 하나님께 내 인생을 맡기는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자세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본문에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살펴보면서 “나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긴다”라고 하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1.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조금전에 잠시 살펴본 것첨 유다의 제 4대왕이었던 여호사밧왕때 모암과 암몬과 마온의 연합군이 유대를 공격을 해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여호사밧왕은 하나님앞에 나아가 이렇게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저 큰 무리들을 대적할 능력이 없습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이렇게 기도를 하고 나서 여호사밧왕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행동을 보여줍니다. 본문 20절입니다. “20.이에 백성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맡긴다 라는 뜻입니다. 믿으십니까? “하나님 내 문제를 하나님께 맡깁니다. 하나님이 해결해주세요. 하나님 내 자녀의 문제를 맡깁니다. 내 건강의 문제를 내 사업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깁니다.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옵소서” 이말은 아무나 할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만이 할수 있는 내용입니다. 쉽게 예를 들어보십시다. 저와 여러분의 자녀를 학교에 맡길수 있는 것은 내가 학교를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내 자녀를 앞으로 사람답게 살아갈수 있는 길과 사회에 나가 적용할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준다고 하는 신뢰가 있기 때문에 맡기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싸움이나 마약하는 방법을 가르친다고 하면 맡기지 못하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그러니까 내 문제를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만이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8장 49절을 보시면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예수님께서 들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얘기를 들으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8장 50절입니다. “50.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 하지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두려워 하지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왜 두려움이 생깁니까?” 믿지 못해서입니다. ’두려워 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러니까 믿고 신뢰한다면 두려움이 없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나타나는 모습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라는 말을 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내가 두려워하고 있다면 나는 아직도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구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터에 싸우러 나가기 전에는 언제나 제사장이 설교를 했습니다. 그때 제사장이 설교하는 내용은 대략 이런 것이었습니다. 신명기 20장 2절에서 4절입니다. “2.너희가 싸울 곳에 가까이 가면 제사장은 백성에게 나아가서 고하여 그들에게 3. 말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아 들으라 너희가 오늘 너희의 대적과 싸우려고 나아왔으니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하지 말며 떨지 말며 그들로 말미암아 놀라지 말라 4.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적군과 싸우시고 구원하실 것이라 할 것이며” “겁내지 말며 두려워 하지 말며 떨지 말고 놀라지 말아라 이것은 우리의 싸움이 아니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싸움이다!” 그러니까 전쟁을 앞둔 군사들에게 한마디로 이것은 하나님의 싸움이니까 하나님께 맡겨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을수만 있다면 두려워하지 않고 겁내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지도자의 권리를 여호수아에게 이양해 주면서 마지막 유언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신명기 31장 8절입니다, “8.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너는 두려워 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우리가 왜 두려워하고 염려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날마다 이 말씀을 붙잡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바나나를 주어도 그 바나나를 내가 잡지 않으면 그 바나나는 내것이 되지 않습니다. 바나나가 내것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 그 바나나를 내가 잡고 있어야 합니다. 평상시에 내가 잡고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배가 고프고 힘이 없게 되었을때 먹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배가 고프고 힘이 없게 되었을 때 그때 바나나를 찾아 다니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평상시에는 이 말씀을 붙잡지않고 있다가 필요할때가 되면 찾습니다. 학교 시험이나 회사 취직 시험을 칠때가 되면 이 말씀을 붙잡을려고 합니다. “두려워 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내가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실 평상시에 이런 말씀을 붙잡고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입학 시험을 칠때 이 말씀을 붙잡을려고 합니다. 그래서 대학에 들어가면 또 휙 던져 놓아버립니다. 그리고 대학졸업하고 회사취직 시험을 칠때 또 붙잡습니다. 그리고 직장에 다니게 되면 또 휙 던져버립니다. 한동안 잊어버리고 자유롭게 살아가다가 결혼할때가 되면 또 붙잡고 결혼을 하고 나면 또 던져버립니다. 몸에 병이 나면 또 결사적으로 붙잡고 병이 나으면 또 놓아버립니다. 이렇게 하니까 하나님께 맡기는 생활이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수가 있습니까? 내가 두려워하느냐 두려워하지 않느냐를 보고 알수가 있습니다. 물론 인간은 감정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두려움이라고 하는 감정이 전혀 없을수는 없습니다. 감정이 없으면 목석이지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이 있고 염려가 있는 와중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더 큰 것입니다. 그 신뢰로 말미암아 그 두려움과 염려가 감사와 감격으로 변하여 지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두려움으로 시작되어져요. 걱정이 되요. 하지만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기도를 하는 동안 그 두려움이 점점 작아지게 되어집니다. 그와 동시에 감사와 감격이 점점 내마음을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런 감사의 고백을 할 수가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문제를 두고 기도를 할때는 내마음에 두려움이 사라지고 그두려움을 이겨낼수 있는 능력이 생길때 까지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 시간은 10분이 될 수가 있고 한시간이 될 수가 있고 하루 나 이틀이 될 수 있습니다. 아니 몇 달 몇 년 동안 계속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이 주님을 신뢰함으로 말미암아 두려움이 없는 신앙 생활을 해나갈수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존귀하게 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20절 후반부입니다. “20. ...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여기서 선지자는 오늘날로 본다면 설교자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증거하는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을 신뢰하라는 의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 중에서 가장 축복을 많이 받은 교회가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가 많은 축복을 받았던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13절입니다. “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마지막에) 너희 믿는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데살로니가 교회는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 사람의 말로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생활을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목사를 보면 말씀을 듣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고 얘기를 하는 성도들을 우리 주변에 적잖게 있습니다. “저 목사는 돈을 너무 좋아해, 그리고 또 이 목사는 너무 이기적이야. 또 그 목사는 매사에 너무 비판적이고 부정적이야” 이렇게 목회자들을 평가하면서 그 목회자의 설교를 듣고 싶어하지 않아하는 성도들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제사장 중에 엉터리같은 제사장이 있었는데 바로 엘리 제사장입니다. 하지만 한나는 이 형편없는 엘리 제사장의 축복을 받고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사무엘상 1장17절입니다. “17.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성경에 나오는 가장 형편없는 엘리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한나가 사무엘 선지자를 낳을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를 존귀하게 여겨야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이유를 찾게 됩니다.

지나온 제 과거를 돌이켜보면 저를 양육시켜주셨던 목사님들을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섬겨왔음을 고백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사역자가 되어가지고 옛날 그 순간순간을 한번씩 생각해보면 그때 그목사님이 그렇게 행동 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라는 생각이 들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확실한것은 그때 저는 그분들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았고 또 믿음이 성장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설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은 모두 다 똑같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설교자가 전하는 말씀은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물론 제일 좋은 것은 신실하고 성실한 하나님의 사람이 신실하고 성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형태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종종 그사람의 인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만 사용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대한 설교자이었던 사도바울이 고린도 전서 9장 27절에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로라” 그러니까 설교를 해서 영혼들을 주께로 다 돌아오게 한 다음에 진작 말씀을 증거한 그 사람은 버림을 받을 수 있다고 사실 때문에 사도바울은 교만하지 않고 신실되게 신앙생활을 했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설교자에게 부족한 면이 보인다 할지라도 그 부분은 하나님이 감당하실 영역으로 두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그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전하는 메세지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존귀하게 여기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어찌 사랑을 소홀히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어떠한 상황에 있다할지라도 분명한것은 하나님의 말씀만은 존귀하게 여김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존귀하게 여길 때 전쟁에서 승리 할수가 있었고 그렇지 못할때는 전쟁에서 패배했던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무엇이예요?) 형통하리라”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역사를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받아들이십시다. 그리고 그럴때 나에게 형통한일이 일어나게 될줄 믿습니다.

 

3. 내 문제를 하나님께 맡긴다는 의미는 감사 찬송하는 생활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문 21절과 22절입니다. “21.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22.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우리가 하나님께 모든 문제를 맡기게 되면 이제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은 감사 찬송밖에 없습니다. 지금 유다 백성들이 감사 찬송을 하고 있는데 전쟁에서 승리를 했기 때문에 한 것이 아닙니다. 아직 전쟁을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유다 백성들은 미리 감사 찬송을 한 것입니다. 시험을 치는 학생이 하나님께 맡겼다면 시험을 치기 이전에 감사 찬송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직장을 구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맡겼다면 직장을 구하고 있으면서도 감사 찬송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볼 때 믿음은 일종의 가불이라 할수 있습니다. 가불의 의미를 아십니까? 옛날 우리나라가 경제사정이 어려웠을 때 월급날에 받아야 할 돈을 사장님에게 부탁을 해서 먼저 미리 당겨 받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이것을 가불한다고 하죠. 옛날에는 자기가 일하는 회사나 공장에서 미리 가불해서 하루 하루 살아가야 할때가 있었습니다. 믿음생활에도 이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믿음은 장래에 이루어질 축복을 미리 당겨서 사용하는 능력이라 할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농부가 논에서 모내기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모내기가 얼마나 힘들고 어렵습니까? 제가 대학교때 시골 친구집에 가서 모내기를 해준적이 있는데 그때 제 허리가 부러지는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시골 친구는 힘든줄 모르고 노래하면서 신나게 일을 하고 있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아마 그 친구의 마음에는 30배 60배 100배로 맺히게 될 벼 수확을 상상하며 모를 심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수확한 쌀을 팔아 자기가 학교 등록금을 낼수 있게 된다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힘든줄 모르고 기쁜마음으로 노래를 불를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마음이 있다면 지금은 힘이들고 수고스럽다 할지라도 미리 찬양할 수가 있고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유다 백성들은 전쟁을 앞두고 미리 감사 찬송을 했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전쟁이라고 하는 큰 문제가 자기 코앞에 있는데 유다 백성들은 미리 감사 찬송을 했습니다. 이렇게 생활을 해나갈 때 하나님께서 적군의 진지를 혼란키고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신것입니다.

몇 년전 대만에서 살아가는 어느 한 노 부부의 사랑에 대한 뉴스를 온라인에 본적이 있습니다. 대만에 살고 있는 이 노부부는 결혼을 한지 50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주변에서 잉꼬부부로 소문이 났습니다. 언론에 보도가 된 그당시 남편은 나이가 85세 그리고 아내는 69세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두다 함께 치매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함께 지내온 그모든 삶을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은 다 잊어버렸는데 자기 남편과 자기 아내에 대한 존재만은 잊어버리지 않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노 부부는 요양원에서 지내면서 산책을 하든, 식사를 하든 언제나 항상 같이 붙어다니는 것입니다. 하루중 1분이라도 서로 서로가 자기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하면서 자기 아내나 자기 남편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참 특이하게도 치매가 걸린 할머니의 기억은 결혼하기전 처녀시절에 머물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만 만나기만 하면 맨날 이 말을 되풀이 한다고 합니다. ‘나는 이제 곧 이 왕씨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행복해하는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옆에 있는 그 남편은 아주 흡족한 듯이 듣고 있다고 해요. 그 요양원 간호사들은 그 노부부에게 매일 축하해주는 말을 해야 한답니다. 치매가 걸려도 이런 치매는 그래도 감동적인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치매 증세가 있는 사람처럼 살아갈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할지라도 나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그 사랑만은 잊어버리지 않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이 나를 향하신 주님의 이 사랑을 잊어버리지 않고 믿고 신뢰할수만 있다면 우리는 지금 내게 일어난 모든 문제를 주님께 맡길수가 있습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존귀하게 여기고 받아들이십시다. 그리고 믿음을 가지고 두려움이 없이 오히려 감사찬송을 하시면서 신앙생활을 해나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