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약속이 있는 첫계명

Author
kgmcc
Date
2022-05-07 23:19
Views
325
본문 : 에베소서 6장 1-3절

날짜 : 2022년 5월 8일

<61-3>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는 5월을 가정의 달로 지킵니다. 5월 5일은 어린이 날이고, 5월 8일은 어버이 날, 그리고 5월 15일은 스승의 날, 5월 21일은 부부의 날로 정해놓고 지냅니다. 그래서인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일년 12개월중에서 5월을 가장 기다린다고 합니다. 나이가 어린 자녀인 경우엔 5월 5일 어린이날이 되면 부모님이 장난감을 사주시기도 하고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이가 많으신 부모님은 5월 8일 어버이날에 자식들이 용돈이나 선물을 주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수 있고, 그리고 5월 21일 부부의 날이 되면 아내인 경우에는 평상시와 달리 남편이 꽃이나 카드를 사오기도하고 모처럼 외식도 같이 합니다. 왜 5월 21일을 부부의 날로 정했는가 하면 둘(2)이 하나(1)가 되는 날이라는 의미로 이날을 부부의 날로 정했답니다.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이 5월달을 기다리고 또 좋아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 그반대로 5월달을 싫어하고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아마도 가정에서 행복을 느낄수 없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이 5월을 가정의 달을 더욱 부담스러워하고 싫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늘은 mother's day입니다. 미국에서는 매년 5월 둘째 주일을 mother's day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5월 8일을 어버이 날로 지킵니다. 이 어버이날을 영어로 표현 한다면 parents day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미국에서는 mother‘s day이고 한국에서는 parents day입니다. 올해는 5월 8일이 주일이 되었으니까 한국에서나 미국에서 오늘을 mother's day와 어버이 날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부모님 공경에 대하여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부모를 공경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 기독교 뿐만 아니라 이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는 하나같이 부모님을 공경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종교가 없거나 있어도 형식적으로 존재하는 공산 국가에서도 부모님은 존경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니까 부모님에게 효도해야 할 것을 가르치지 않는 종교나 국가는 이세상 그어디에도 없다고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기독교와 다른 종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효도에는 단 한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본주의이냐 신본주의이냐의 차이입니다. 다른 종교나 이세상 사람들이 가르치는 효도사상은 인본주의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 기독교의 효도사상은 신본주에서 나온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우주적인 가정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가정관은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에서는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따로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라고 가르칩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이나, 반대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잘못된 것입니다. 보이는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공경한다고 하면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보이는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 잘못되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레위기 19장 3절입니다. “3.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부모를 경외하고‘ 여기서 ’경외‘ 라고 하는 단어는 하나님에게만 사용되어지는 표현인데 여기에서는 부모님을 대상으로 사용되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이말씀은 부모님을 대할때 하나님을 대하는 마음으로 섬겨야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10계명으로 요약될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10계명은 하나의 단어로 정리될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10계명이 적혀있는 두 개의 돌비를 받았습니다. 하나의 돌 비석에는 1-4계명이 기록되어 있었고 또다른 하나의 돌비석에는 5-10계명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1-4계명까지는 하나님과 관계에 대한 내용이고 5-10계명은 사람과 관계에 대한 계명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십계명의 핵심이고 우리가 믿는 기독교가 가르치는 핵심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사랑하라는 계명이 있는 5-10계명중 첫째되는 계명이 바로 부모님을 공경하라 입니다. 본문 2절입니다.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계명이니‘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는 명령은 제 5계명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5계명이 아니라 첫계명이라고 말합니다. 1계명이라고 말씀합니다. 무슨의미입니까? 하나님이 아닌 사람에 관한 계명중에서는 제 5계명이 첫계명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우리 인간이 가장먼저 지켜야 할 계명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며 살아가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부모님을 공경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은 약속을 해주십니다. 다른 계명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약속하지 않으시는데 부모님을 공경하는 살아가는 일에는 하나님이 약속해주십니다. 그래서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계명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약속해주신 내용이 무엇입니까? 본문 3절입니다.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이로써‘ 이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기 때문에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며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니까 반드시 이루어 질 것입니다. 이런 고전적인 예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이조 숙종 때 그당시 왕궁이 있었던 개성 도시 주변에 이름난 어느 한 효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효자는 나이가 들어 거동을 못하시는 어머니를 정성스럽게 모시고 있었는데 하루는 임금이 그 마을로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임금님이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가 임금님의 행차를 보고 싶어하시자 이 효자는 자기 어머니를 지게에 태우고서 거리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지게를 태운 그 효자의 모습이 지나가던 숙종 왕의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숙종왕은 나이가 드신 자기 어머니를 지게에 태우고 거리에 나온 그 효자를 칭찬하시면서 송아지 한 마리와 쌀 열가마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은 이웃 마을의 소문난 불효자가 자기도 상을 받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몇 달 후에 임금님이 자기 마을을 지나가신다는 소식이 들리자 병석에 누워 계신 자기 어머니를 억지로 지게에 태우고 임금님의 눈에 쉽게 띠는 곳에 가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임금님이 그마을을 지나가다 이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 사람이 평상시에 행하는 행실을 잘아는 마을 지주가 저 친구는 아주 못된 불효자라고 말하면서 벌을 내려야 한다고 일러바쳤습니다. 하지만 임금님은 지난번 효자에게 준 상급처럼 똑같이 송아지 한 마리와 쌀 열가마를 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임금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효도는 흉내내기도 어려운 것이다" 그렇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효도는 흉내만 내어도 그만큼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임금은 효자 흉내를 내는 그 사람에게 상을 주라고 명령했던 것입니다. 임금이 약속하고 명령했으니까 그 상이 주어지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하나님이 약속하셨다면 틀림없이 지켜지고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네가 잘될 것이다 그리고 땅에서 장수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 약속으로 인해 효도하며 살아가는 자녀들은 이런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저는 2남 3녀 중에 네 번째로 태어났습니다. 제 위로 형님 한분과 누님 두분 그리고 아래로 여동생이 있습니다. 형제간들중에 저희 부모님을 가장 잘 섬겨왔던 자녀가 있는데 지금 제일 잘살고 가장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저는 약속하신 것은 분명하게 이루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저를 비롯한 다른 네명의 자녀가 불효자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우리 네명의 자녀들이 따르지 못할만큼 특별나게 부모님을 섬겼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5형제간들중에 하나님의 약속으로 인해 이땅에서 가장 잘살고 가장 오래 살아갈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5월 8일 어버이 날이 되면 매년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주제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데 성경구절과 메시지 내용이 많이 제한이 됩니다. 그래서 설교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특별한 절기에 메시지를 전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부모님에게 효도 함으로서 하나님이 약속해주신 축복을 누린 하나님의 사람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도 부모님을 공경함으로 말미암아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누린 축복을 누리며 살아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이삭

먼저 이삭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삭은 아시다시피 아브라함이 나이 백살이 되어서 얻은 외동아들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독자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게 됩니다. 그당시 이삭이 아버지를 따라 모리아산에 올라갈 때 이삭의 나이는 대략 25세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당시 아브라함의 나이는 125세가 됩니다. 그러니까 청년이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의 말에 순종하지 않을려고 했다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25세의 젊은 청년이 125세가 되신 나이가 드신 아버지를 충분히 감당할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아브라함은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바칠려고 해도 바칠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리기 위해서 결박할 때 순순히 묶였습니다, 자신의 몸을 불로 태울 나무 위에 놓아도 반항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자신의 목을 칠려고 할 때도 이삭은 반항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에 대해 순종하는 아들이었습니다. 이런 아들인 이삭이었기에 아버지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될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이삭의 행동을 보면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볼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는 부모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할 교훈을 얻게 됩니다. 이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 들중에서 이삭을 가장 오래 살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175세 살았습니다(창 25:7),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은 147세 살았습니다(창 47:28). 그리고 아브라함의 증손자 요셉은 110세를 살았습니다(창 50:26). 그런데 이삭은 183세를 살았습니다. 이삭은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과 자기 아들 야곱 과 자기 손자인 요셉중에서 가장 오래 살았습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했던 그 보상으로 가족들 중에 가장 장수한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 이삭만큼 잘되고 평탄한 인생을 살아갔던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네가 잘되고 장수하리라’ 라는 축복을 누리며 살았던 이삭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알수 있습니다.

 

2.요셉

두 번째로 요셉을 살펴보겠습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두명의 아들중에 11번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야곱은 요셉의 어머니인 라헬을 무척 사랑했는데 이 라헬이 요셉의 동생 베냐민을 낳다가 죽었습니다. 그이후 야곱은 라헬이 낳은 요셉을 다른 자녀들보다도 더 유난히 사랑했습니다. 이런 아버지의 야곱의 사랑을 받고 자란 요셉이 하루는 아버지의 심부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세겜땅에 가서 양을 치고 있는 형들과 그 양떼들이 잘 있는지 알아보고 오라는 심부름이었습니다. 그당시 요셉이 살고 있던 헤브론에서 세겜땅까지 거리는 약 100km입니다. 마일로 환산하면 60마일이 조금 더 넘습니다. 여기 고속도로에서 시속 60마일로 한시간을 달려야 도착하는 거리인데 이러한 거리를 걸어서 간다면 얼마나 오래걸리겠습니까? 요셉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100km가 떨어진 세겜땅까지 갑니다. 그런데 세겜땅에서 아무리 찾아보아도 형들과 양이 없는 것입니다. 세겜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만날때마다 물어보면서 한참 찾고 있던 중에 마침내 자기 형들의 소식을 알고 있는 어느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창세기 37장 17절 전반부입니다. 17.그 사람이 이르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하니라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형들이 세겜땅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세겜땅에 가서 형들과 양들이 있는가를 알아보고 오라는 심부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형들이 세겜을 떠났던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은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 야곱에게 이렇게 알려주면 됩니다. “지금 형들이 세겜에 있지않고 도단으로 떠났습니다.” 이렇게 소식을 전해도 야곱은 안심할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들이 도단으로 떠난 것을 보니까 그동안 아들들이 아무 탈없이 무사하게 잘지내고 있었구나” 라고 생각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요셉은 자기 임무를 다한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세겜으로부터 30km 마일로 환산하면 20마일이 더 떨어져 있는 도단으로 까지 갑니다. 창세기 37장 17절 후반부입니다. 17. ...요셉이 그의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요셉은 자기 형들이 평상시에 자기를 미워하고 시기하는 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심부름은 세겜땅에 형들과 양들이 잘 있는가 보고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으로 요셉은 도단까지 가지 않아도 되었지만 결국 도단까지 갔습니다. 왜요? 이유는 단한가지입니다. 아버지 야곱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해드릴려고 일부러 도단까지 찾아간 것입니다. 그러다가 형들에게 붙잡혀서 노예의 신분으로 애굽에 팔려가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마음을 지닌 요셉을 축복하시고 마침내 애굽나라의 총리가 되게 하십니다. 요셉이 아버지 야곱과 헤어진지 2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식량을 사기 위해서 애굽에 온 자기 형들을 요셉은 만나게 됩니다. 그때 요셉은 형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기 45장 9, 10절입니다. 9.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아뢰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지체 말고 내게로 내려오사 10.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머물며 나와 가깝게 하소서 ‘형들과 조카들과 함께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머물며 나와 가깝게 하소서’ ‘나와 가깝게 하소서’ 아버지 야곱이 요셉이 전하라고 한 말을 요셉의 형들을 통해 듣게 되었을 때 어떤 생각을 가졌을 것입니까? ‘요셉이 자기형들을 용서를 하는 구나“ 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제가 형들과 형들의 가족들과 함께 같이 화목하며 살아가는 것을 아버지께서 가까이 오셔서 지켜볼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요셉은 아버지 야곱에게 간절히 요청한 것입니다. 부모님에게는 자녀들이 서로 화목하고 가까이 지내는 것을 보는 것 만큼 더큰 행복은 없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믿지 못할 것 같아서 아버지를 모실려는 수레를 형들의 편에 같이 보냅니다. 창세기 45장 27절입니다. 27.그들이 또 요셉이 자기들에게 부탁한 모든 말로 그에게 말하매 그들의 아버지 야곱은 요셉이 자기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서야 기운이 소생한지라 ‘요셉이 자기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서야 기운이 소생한지라’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부모님의 기운이 소생하게 하는 것이 바로 효도하는 방법입니다. 이세상을 살아갈 맛이 나게 하고 힘이 생기게 하는 것이 바로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이세상을 살아가기가 힘들어지고 세상 인심이 메말라진다 할지라도 자녀들의 효도를 받는 순간에 이세상의 부모님들은 새로운 힘이 생기게 되고 살아갈 소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에게도 부모님에게 보내는 수레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보낸 수레를 보면서 부모님이 이세상을 살아갈 기운이 솟아날 수 있게 해드려야 합니다. 수레를 보내는 일은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에게 따뜻한 사랑의 말을 하는 것도 수레를 보내는 일입니다’ ‘부모님에게 안부 인사를 하는 것도 부모님의 기운이 소생하게 하는 수레가 되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들간에 사이좋게 화목하게 살아가는 것도 부모님의 기운에 소생하게 되는 수레입니다’ 이렇게 부모님을 공경하며 살았던 요셉이었기에 하나님은 요셉에게 약속하신 축복을 베풀어주십니다. 요셉의 두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이스라엘 열두지파에 속하게 됩니다. 이는 자기 형들보다 두배나 되는 갑절의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믿는 성도인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둔 영적인 형제 자매입니다. 에베소서 4장 6절입니다. 6.하나님도 한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의 아버지시라’ 우리 믿는 성도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살아가는 형제 자매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3장 33절에서 35절입니다. 33.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34.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35.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이 믿는 성도의 교제를 나누면서 화목하며 살아갈 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다. 자녀들이 서로 화목하며 살아가는 것을 볼 때 하나님 아버지에게는 기쁨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육신의 부모님이 이미 돌아가셨다 할지라도 저와 여러분의 주변에 나이가 드신 성도님들이 있으시다면 마치 부모님처럼 공경하십시다. 그럴때 하나님에게는 기쁨이 됩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이렇게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부모님을 공경함으로서 요셉이 받았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갈수 있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다윗

세 번째로 다윗을 살펴보겠습니다. 다윗의 아버지 이새에게는 여덟명의 아들이 있었고 그중 다윗은 막내 아들입니다. 그런데 그 형제들 가운데서 다윗이 가장 부지런하게 일을 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기름 부음을 붓기 위해 아버지 이새의 집에 왔을 때 형들은 집에 있었지만 다윗은 들에서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양을 치는데도 책임감을 가지고 짐승 떼가 와서 양을 물어갈려고 하면 쫒아가서 뺏어왔다고 다윗이 고백 한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던 다윗이었기에 아버지 이새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다윗이었기에 하나님은 이 다윗에게 약속하신 축복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해야할 첫계명이 바로 부모님을 공경하는 일입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4.제자 요한과 사도 바울

마지막으로 제자요한과 사도바울을 보시겠습니다. 예수님 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시기 전에 제자 요한에게 남기신 말씀중에 하나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9장 27절입니다. 27.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보라 네 어머니라’ 예수님께서 짧게 말씀을 하셨지만 이 말씀속에 함축된 내용이 얼마나 많이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제 곧 죽어가는 순간에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생각하십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떠나보내고 남은 평생동안 슬픔과 애통하며 살아가실 어머니를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어머니 마리아를 제자 요한에게 부탁한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요한은 그때부터 마리아가 살아있는 동안 자기집에 모시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열 두제자들중에 이 사도요한을 가장 오래 살게 하십니다. 오래 살았다는 것이 축복이라는 뜻에서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한에게 하나님은 오랫동안 장수하며 살아가게 하시면서 요한복음, 요한 1서, 요한 2서, 요한 3서 뿐만아니라 마침내 요한 계시록까지 기록하게 하시는 축복을 베풀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장수하면서 이세상 마지막날에 일어나게 될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게 되는 참으로 귀한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이 부모님에 대해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선교사역을 한 것을 우리는 로마서 16장 13절에서 볼수 있습니다. 13.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어머니니라’ 여기서 루포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다 쓰러졌을 때 로마 군인의 명령에 의해 억지로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고 갔던 구레네 시몬의 아들입니다. 구레네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간 사건이 일어난 이후 약 30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이 구레네 시몬의 아들 루포와 구레네 시몬의 아내는 믿음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사도바울이 한 이 고백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이 고백에서 우리는 나이가 드신 분들을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역을 해나가는 사도바울이 지닌 마음자세를 알수 있습니다. 이렇게 나이가 드신 분들을 어머니나 아버지로 생각하며 섬기는 사도 바울이었기에 하나님은 이 사도바울을 크게 들어 사용하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공경해야 할 대상이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고 또 다른 하나는 부모님입니다. 하나님은 내 영이 살아가게 하시는 생명의 공급자가 되신다면, 내 부모님은 육신이 살아가는 생명의 공급자가 되십니다. 그래서 부모는 하나님과 함께 공경의 대상입니다. 사실 사람으로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도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부모님을 공경하며 살아가면 잘되고 장수하게 해주신다는 약속을 하십니다. 사실 우리 인간이 얼마나 부모님을 공경하지 못하길래 하나님이 이렇게 약속까지 해주시는 것입니까? 저와 여러분중에 이미 육신의 부모님이 떠나신 성도님들도 계실 것입니다. 저도 이제 저희 부모님은 이세상을 떠나 하나님 품에 계십니다. 하지만 비록 육신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할지라도 성경에서 말씀하는 어머니는 우리 아직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세상에 살아가시는 동안 나이드신 부모님을 공경하며 살아가십시다. 그래서 하나님이 약속해주신 잘되고 건강을 누리는 축복을 누리며 살아갈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