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균형의 중요성

Author
kgmcc
Date
2022-05-28 23:31
Views
25
본문 : 시편 119장 106-107절

날짜 : 2022년 5월 29일

 

<시편 119:106-107>

106.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107.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세상에는 균형이 필요합니다. 하늘을 날아가는 새도 두 날개가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 정상적으로 날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두발도 균형을 이루어야만 정상적으로 걸을수 있습니다. 정치에도 균형이 필요합니다. 여당이 있으면 건전한 야당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수진영이 있으면 진보세력도 있어야 나라가 제대로 운영이 되어집니다. 우리 이 몸에도 균형이 필요합니다. 음식물을 골고루 섭취하지 못하고 편식을 하게 되면 몸의 균형을 잃어버리고 면역체계가 떨어져서 병에 걸리기가 쉽게 됩니다. 잠을 자는 것에도 균형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 잠을 자서 탈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불면증으로 인해서 늘 힘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는데도 균형이 필요합니다. 찰스 가필드(Charles Garfield) 심리학 박사가 오랜시간을 각 분야에서 뛰어난 지도자들에 대한 연구를 한적이 있습니다, 각분야에서 뛰어난 이런 지도자들은 일에만 미쳐서 살아갈것이다라는 일반 사람들의 추측과는 달리 균형 잡힌 삶을 사는 사람들이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균형이 필요합니다. 물론 균형이 필요하다고 해서 진리를 적당히 양보하고 진리를 포기해도 좋다는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신앙생활에도 균형이 필요하다고 하는 이 말은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열두제자를 파송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0장 16절입니다. ‘16.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여기서 뱀은 지혜를 상징하고 비둘기는 순결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사람들에게는 뱀 같은 지혜가 필요하고 비둘기 같은 순결함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결함이 균형을 이룰때에 복음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신앙생활은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인 수평적인 관계가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을 보게 되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잘 맺으면서 사람과의 관계는 잘 맺지 못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오래전에 권위있는 기독교 잡지사에서 목사님들을 대상으로 교회에서 제일 불편한 사람이 누구인가 라는 설문조사를 한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1위는 40일 금식기도를 한 사람이었습니다. 2위는 철야기도를 한 사람, 3위는 신학을 공부한 장로. 이러한 순위로 나왔습니다. 40일 금식기도하고 철야기도를 하고 신학을 했다고 한다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아야 하는데 오히려 관계하기가 부담스런 사람으로 신앙생활을 해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이런 분들을 쉽게 볼수 있습니다. 일주일 동안 금식 기도 했다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자기 자랑만 하고 그리고 남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것을 쉽게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생활 뿐만 아니라 성경을 해석하는 것에도 균형이 필요합니다. 성경에는 율법도 있고 비유도 있고 문자적인 말씀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문맥에 맞추어서 비유는 비유답게, 문자적인 말씀은 문자적인 말씀 답게 해석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기본 원칙과 원리들은 모두 무시해버리고 오직 자기가 경험한 인생을 토대로 해서 해석해버리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무조건 영적으로 해석해버려서 육신을 가지고 이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가 도무지 적용할수 없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강조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늘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사실 저 개인적으로도 하나님의 거룩함보다도 사랑과 은혜를 많이 강조하는 설교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향하신 그 사랑과 은혜는 강조를 하고 강조를 해도 부족하다는 생각을 제 개인적으로는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에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하심만을 강조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고 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율법이라고 쉽게 말을 합니다. 물론 율법일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율법과 하나님의 사랑을 따로 분리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5장 17절입니다. ‘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율법으로서는 할수 없는 부족한 부분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땅에 오셨다는 의미입니다. 율법 자체가 나쁘고 그래서 그 율법을 없애기 위해서 오신 것은 아닌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생명으로 값을 치루어주심으로서 율법을 완전하게 이루어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생명을 바친 그 사랑으로 율법을 완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의 완성이 사랑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로마서 13장 10절입니다. 10.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그러니까 이 말씀은 율법 따로 사랑 따로가 아니라 서로 연결이 되어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연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게 되어있고 율법적인 생활을 하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주일을 지키고 부모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너무 율법적으로 살아가면서 남을 정죄하는 행위도 경계해야 하지만 반대로 너무 자유방임적으로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도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에 균형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 중입니다. 물론 러시아가 우수한 군사력을 가지고 일반적으로 공격을 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가 정말 결사각오의 심정으로 잘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4월 14일 흑해에서 러시아 함대의 자부심이라 할수 있는 모스크바 순양함이 우크라이나가 발사한 넵툰 미사일 두발을 맞고 침몰했습니다. 러시아는 미사일에 맞은 것이 아니라 배 내부에 화재가 발생했고 그 함대안에 실려있던 폭탄의 폭발로 인해 침몰하게 되었다라고 발표했지만 미사일에 맞아 모스크바 순양함이 침몰하게 된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이 모스크바 미사일 순양함은 길이가 약 186 m(610ft) 이고 넓이는 약 20m(65ft)입니다. 그리고 승무원 500여명을 태워 전쟁 임무를 수행하는 러시아가 자랑하는 최고의 함대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함대에 치명적인 결과를 줄수가 없는 넵툰 미사일 두발을 맞고 배안에 있는 폭탄의 연쇄적인 폭발로 인해서 이 거대한 모스크바 순양함이 침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500여명이 타고 있었던 승무원 대부분이 실종이 된 것으로 보도되었는데 이런 실종은 사망했다는 의미입니다. 왜 이러한 결과가 생겼습니까? 그것은 배안에 둔 폭탄들이 제대로 관리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사진과 함께 보도되었습니다. 신속하게 폭탄을 발사대에 실고 발사를 하기 위해서 폭탄들이 배 선상에 그냥 놓여있었던 사진들도 있었습니다. 공격을 하기 위해 배안에 많은 장비를 설치했지만 반면에 방어를 하는 일에는 소홀히 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그러다보니 미사일 두발을 맞았는데 그것으로 인해 배안에 있던 폭탄들이 연이어서 폭발을 하는 바람에 이 거대한 배가 침몰하게 된 것입니다. 공격과 방어에 대한 균형을 갖추고 항해해야 한다는 교훈을 이번 모스크바 함의 침몰 사건에서 배우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스크바 함이라는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공격하기도 하고 반대로 그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하면서 항해를 합니다. 그런데 공격과 방어에는 균형을 가지고 인생이라고 하는 바다에서 항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상대방이 잘못한 행동에 대해서 그냥 침묵할 수는 없습니다. 말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때는 다소 공격적으로 보인다할지라도 말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한편 다른사람들이 나를 비판하고 공격 하는 것에 대해서도 우리는 대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균형이 있는 삶의 자세를 지니고 인생의 바다를 항해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나의 인생의 배를 항해하는 동안에 균형을 잡을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넘어지지 않고 침몰당하지 않도록 든든히 세워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도 행전 20장을 보시면 사도 바울이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가기 전에 에베소 교회 장로들과 헤어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제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될수도 있는 그때 바울이 장로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행 20장 32절입니다. ‘32.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리고 계속해서 보시면 ‘하나님의 은혜의 그 말씀이 여러분들을 능히 든든하게 세우고 거룩하게 지내게 해줄 것이다’ 라고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각자의 심령들을 능히 든든하게 세워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119편 107절 에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107.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그런데 그냥 나를 살아나게 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살아나게 해달라고 간구합니까?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해달라’ 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지금 어떤 상황에 있습니까?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그러니까 고난이 매우 극심한 상황에서 간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내가 지금 고난이 매우 극심한 가운데 있지만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나를 이 고난가운데서 이기게 해주실줄 믿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고난가운데서 지키게 하시고 살아나게 해주실줄 믿습니다“ 이것이 믿는 성도인 저와 여러분이 가져야 할 믿음입니다. 우리들 중에 그 누구도 풍랑을 원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지금 내가 항해하고 있는 이 인생의 배에 고난이라고 하는 미사일을 맞고 바다에 침몰하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순풍에 돛단 듯이 안전하게 항해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나면 원하지는 않지만 여러차례 나를 침몰하게 할려는 미사일이라고 하는 폭탄에 맞을수 있습니다. 그것은 미사일 일수도있고 태풍으로 인한 거센 파도와 풍랑일수도 있습니다. 이런 저런 종류의 고난의 종류로 인해서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만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항해하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러니까 때때로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크게 사용하시기 위해서 이런 저런 시험을 허용하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편 기자도 말씀을 순종하고 있는 가운데에서 고난을 만났습니다. 본문 106절입니다. ‘106.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지금 이 시편기자는 ‘주님의 의로운 규례를 지키고 따라가리라’ 라고 맹세하고 굳게 정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떠한 결과가 일어났습니까? 매우 극심한 고난이 일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지 않고 속도를 내게 되면 바람의 저항을 반드시 경험하게 됩니다. 말씀으로 순종해 나가게 되면 반드시 마귀의 저항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예수를 믿고도 가만히 있으면 마귀의 저항을 경험하지 않고 살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 갈길을 달려가고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뛰고 달리기 시작하면 저항을 받게 됩니다. 뛰고 달리면 바람의 저항을 받게 되듯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명과 비젼을 위해서 달려가게 되면 반드시 마귀의 저항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인생의 풍랑들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인생을 항해하는 사람은 어떠한 공격과 풍랑이 와도 침몰되지 않습니다. 거친 비바람이 몰아쳐도 말씀의 능력으로 중심을 잡고 오뚝기처럼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심령속에 자리잡고 있는 성도는 어떤 환난 중에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는 사람은 실족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제말이 아닙니다. 시편 37편 31절 말씀입니다. ‘31.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의 걸음은 실족함이 없으리로다’ ‘실족함이 없으리로다’ 누가 실족하지 않는 것입니까? ‘그의 마음에 하나님이 법이 있는 사람’ 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있는 자입니다. 그러니까 왜 실족을 합니까? ‘내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 입니다. 오늘날 우리 믿는 성도들이 이땅을 살아가면서 실족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것입니다. 내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면 모든 것이 다 끝난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다시 일어나게 되어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다 끝났습니다. ”야 저친구 이제 다 끝났구만. 더 이상 소망이 없어“. 모두가 다 그렇게 말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몸부림을 치는 사람은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상황이 와도 매이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충만한 사람은 산더미 같은 파도가 나를 삼킬려고 온다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제가 종종 전하는 내용이지만 사도행전 27장을 보면 바울이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 황제앞에 서기 위해서 배를 타고 항해하다가 유라굴로라고 하는 강풍을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유라굴로라는 강풍으로 인해서 배안에 있는 사람들은 14일 동안 칠흑같은 어두움속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채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더 이상 살아갈 소망마저 없게 되었습니다. 배를 탄 275명의 사람들이 ”야 이제는 죽었구나, 이제는 다 끝났구나“ 라고 하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속에서 떨고 있었습니다. 그때 죄수의 신분이었던 바울이 갑판 한복판에서 자신있게 이렇게 외칩니다. ’여러분이여 이제 안심하십시오. 여러분들중에 한사람도 생명에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타고 있는 배만 손상을 입게 될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자신있게 말할수 있는 이유는 어제밤에 하나님이 보낸 사자가 나에게 이런 말씀을 전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합니다. 사도행전 27장 24절입니다.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왜 바울이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할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주신 말씀 때문입니다.

바울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거친 풍랑과 바람과 칠흑같은 어둠을 바라보면서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있게 행동합니다. 왜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었기 때문입니다. 칠흑같이 어둡고 거친 풍랑속에서도 바울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을수 있는 귀가 열려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믿는 성도는 양이고 예수님은 목자가 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양은 동물중에서도 약한 동물입니다. 하지만 양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들판에서 안전하고 평안하게 풀을 뜯어먹고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양의 배후에는 목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양은 목자의 음성에 의존하며 생활해나가고 있습니다. 양은 앞을 보는 시력이 아주 약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대신에 듣는 청력이 아주 발달되어 여러면의 목자와 양들이 서로 섞여 있어도 자기 목자가 부르면 그 음성을 알아듣고 따라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양은 수많은 위험과, 맹수의 공격에 노출된 들판에 있는 동안 듣는 청력에 의존하여 목자의 주변에서 생활해 나갑니다. 그러므로 이런 양에게 있어서 듣지 못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듣지 못하면 목자를 따라 갈수 없고, 듣지 못하면 목자의 보호를 받을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으며 살아갈수 있습니까? 아가서 5장 2절입니다. ‘2.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 잠을 자고 있어도 내가 사랑하고 관심이 있다면 그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려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까? 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오지 않는 것입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내가 하나님보다 세상의 것을 더 사랑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주파수를 맞추지 못하고 세상의 잡다한 것에 주파수를 맞추고 살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파수를 맞추고 있는 것이 내게 들어오게 되어있습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카톡이지 않습니까? 카톡에 내가 가입을 하면 그때부터는 내게 있는 전화번호가 두 개의 종류의 사람으로 나눠지게 됩니다. 카톡을 하는 사람과 카톡을 하지 않는 사람 이렇게 나눠지게 됩니다. 왜요? 카톡이 가지고 있는 주파수에 맞추고 있는 사람들은 카톡 회사가 카톡의 명단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내가 어떤 주파수에 맞추는가 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풍랑속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에 주파수를 맞추었습니다. 그러자 음성을 들을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도 바울은 그음성을 듣기만 한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사도행전 27장 25절입니다. ‘25.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될 것을 믿었습니다. 여러분 상황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여전히 풍랑이 일고 여전히 하늘이 보이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어려운 가운데 있습니다. 지금도 인생의 터널 가운데 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인생의 폭풍가운데 있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될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들려와도 그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신명기 30장 14절입니다. ‘14.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가까이 있어야만 내가 말씀대로 행할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멀리 있으면 그말씀을 어떻게 붙들겠습니까? 내입과 내 마음에 있을만큼 가까이 있어야만 말씀을 붙잡고 인생의 파도와 풍랑을 헤치고 나아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시간이 없고 바빠서 하나님 말씀을 보지 못한다고 하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나면 젊은 사람들은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고 나이가 있으신 사람들은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드라마나 뉴스를 보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없고 바빠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습니까?

두가지 이유를 생각해볼수 있는데 하나는 내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탐욕 때문입니다. 우리안에 수많은 종류의 탐욕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러시아가 왜 우크라이나를 침공 했습니까? 정치가나 역사학자들은 여러 가지로 분석하지만 인간의 탐욕 때문입니다. 모스크바 순양함이 왜 침몰했습니까? 공격하는 쪽으로만 치중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더 많이 더 빨리 파괴시켜야 승리할수 잇다고 하는 탐욕 때문입니다. 그래서 방어하는 일에는 소홀히 여겼습니다. 탐욕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탐욕이 모스크바 순양함을 침몰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탐욕이 수많은 우크라이나 사람들과 러시아 사람들의 생명을 죽게 했기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잃어버리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세상을 보면서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저와 여러분의 심령에 새겨지게 되고 그 말씀이 저와 여러분은 균형있는 신앙생활을 해나가게 할 것입니다. 탐욕이 아니라 섬기고 봉사하는 마음과 남을 세우고자 하는 희생적인 마음으로 살아갈수 있게 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는 반드시 풍랑을 만날 수 밖에 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유라굴로와 같은 거센 풍랑에서 이겨낼려면 이 풍랑을 이겨낼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인생을 항해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나를 두려워 떨게 만드는 환경을 만난다 할지라도 저와 여러분의 심령의 그릇에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차있음으로 말미암아 균형을 잡고 신앙생활을 해나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