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본심이 아니시로다

Author
kgmcc
Date
2022-06-19 01:26
Views
23
본문 : 예레미야 애가 3장 32-33절

날짜 : 2022년 6월 19일

 

<예레미아 애가 3장 32-33절>

32.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33.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미국 속담에  Man and melons are hard to know. 말이 있습니다. 남자와 메론(참외)의 속을 알기는 매우 힘들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우리말 속담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말과 비슷합니다.  결국 이 속담들은 사람의 마음, 사람의 본심을 알기는 힘들다는 뜻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본의 아니게 본심이 아닌 말을 할때가 있고 본심이 아닌 행동을 할때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삼대 거짓말을 잘아실 것입니다. 첫째는 밑지고 판다고 하는 장사꾼이 하는 말이고 둘째는 시집을 안간다는 노처녀의 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늙으면 죽어야지 하는 노인분이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드신 노인이 동네 마을 사람을 만나면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한다고 하십시다. ‘내가 빨리 죽어야지. 내가 너무 오래 살아서 이렇게 가족들을 고생시키고 있는데 내가 빨리 죽어야지’ 이말을 들은 머리가 그렇게 총명하지 못한 젊은 사람이 아주 정중하게 대답을 합니다. ‘어르신 올 한해가 다 가기전에 어르신의 소원이 이루어지시길 원합니다’ 자, 이렇게 말을하면 나이가 드신 그 노인이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그사람을 원수처럼 여길 것입니다. 다시는 그 사람을 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요? 이노인은 자기의 본심과는 다른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이렇게 자신의 본심과는 동떨어진 말을 하고 행동을 할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주 말썽을 피우는 자식을 보면서 속이 상한 부모님이 이런 말을 할때가 있습니다. ‘너 한번만 더 부모님 속을 썩이면 우리집 호적에서 너를 빼버린다’ 이런 말은 부모가 속이 상해서 하는 말이지만 부모의 본심은 절대 아닌 것이죠. 여자분들은 친구들을 오랜 만에 만났을 때 종종 이렇게 말을 할때가 있습니다. ‘야 너 너무 예쁘졌네. 요즘에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니?’ 이렇게 말을 하고는 있지만 사실은 자기 본심이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자기 본심이 아닌 말을 할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에게도 숨겨진 본심이 있다고 오늘 본문은 말씀합니다. 본문 33절입니다. ‘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본심이 아니시로다’ 자 그러니까 하나님에게도 본심이 아니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인생을 고생하게 하고 근심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생과 근심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닙니다. 예레미야서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다면 오늘 본문이 속하는 예레미야 애가서는 멸망한 예루살렘을 돌이켜보면서 슬픔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바벨론 국가의 침략으로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유다 백성들이 고통속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슬픈 노래를 부르는 것이 예레미아 애가입니다. 지금 유다 백성들은 우상숭배와 도덕적인 타락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습니다.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는 두눈이 뽑혀진채로 쇠사슬에 묶여서 끌려갔습니다.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들은 모두다 포로의 신분이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불에 탄 예루살렘 성전을 뒤로하고 고향과 조국을 떠나는 사람들이나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가족들이나 모두가 다 마음이 괴롭고 고통 스러울 것입니다.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중에 있는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도시와 그주변에 살고 있던 거주민들 약 3만명 가량을 강제로 러시아나라로 이주 시켰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옛날이 아닌 21세기인 지금도 이러한 일이 자행되고 있다는 것에 전세계 사람들이 분노를 하고 있습니다. 속히 전쟁이 끝나게 되고 러시아 푸틴은 반드시 하나님의 분노의 심판을 받기를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유다가 멸망을 당하고 많은 유다 백성들이 포로의 신분이 되어 강제로 바벨론으로 끌려갔을 때 그들은 육신적으로도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그드의 정신이나 마음에서 나오는 고통과 아픔이 훨씬 더 컸을 것입니다. “하나님 도대체 어디에 계십니까? 불에 타고 있는 저 예루살렘 성전을 보십시오. 전쟁중에 죽어간 가족들로 인해 슬퍼하고 있는 저 백성들을 보십시오. 포로가 되어 끌려가고 있는 저 사람들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듣고 계시고 보시고 계십니까? 하나님 살아계시는 것입니까?” 이렇게 그당시 유다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고통과 아픔을 가지고 외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당시 유다 백성들이 겪고 있는 이러한 고통과 아픔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었습니다. ‘너희들에게 고통과 근심을 주는 것은 나의 본심이 아니다’ 라고 오늘 본문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십니다. 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자기 백성이라 할지라도 죄를 지으면 징계를 하십니다. 그런데 자기 백성이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우상숭배를 했기 때문에 자기 백성을 징계는 하시지만 그 징계로 인해 자기 백성이 고통과 근심중에 살아가는 것은 자기 본심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본심은 무엇입니까?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지니고 계신 본심에 대해 생각을 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본심은 인자와 긍휼입니다.

본문 32절입니다. ‘32.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여기서 인자의 단어를 원어로 보면 헤세드입니다. 이 헤세드는 언약적인 사랑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으로서 계약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 사랑하심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실수가 있고 부족함이 있고 한눈을 파는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지켜주시는 사랑이 바로 헤세드입니다. 인자입니다. 그리고 긍휼은 무엇입니까? 불쌍히 여기고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바로 긍휼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징계를 받아서 고통중에서 몸부림을 칠 때 속시원히 여기시지 않으시고 자신의 창자가 끊어지는 것과 같은 아픈 마음을 가지십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키우다 보면 자녀들에게 호통을 치고 때로는 매로 때릴 때가 있습니다. 왜요? 자식이 바르게 인생을 살아가게 하고 잘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가 부모의 본심을 모르고 “네가 이렇게 속을 썩일것이면 차라리 집을 나가라‘ 고 말했다고 해서 그 자식이 집을 나가버리면 그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말로 표현할수 없을 정도로 아파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본심은 자녀의 고통과 근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자와 긍휼에 있습니다. 우리는 남유다 히스기야 왕의 아들 므낫세를 통해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하심을 볼수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렸을 때 히스기야는 하나님앞에 통곡하면서 기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15년이라는 생명을 연장 받았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연장받은 3년째 되던 해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므낫세입니다. 히스기야왕은 원래대로 라면 이미 죽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생명을 연장받아 살게 되었고 거기다가 덤으로 아들까지 낳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히스기야가 이 므낫세를 얼마나 사랑했겠습니까? 덤으로 아들까지 얻게 되었으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아들을 잘 키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히스기야는 이 아들을 그렇게 잘 키우지 못했습니다. 이 아들이 망나니 짓을 하면서 성장합니다. 그리고 이 므낫세는 열 두살에 왕이 되어 55년 동안 유다를 통치하게 됩니다. 55년 동안 나라를 통치하면서 하나님앞에 온갖 악을 행합니다.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고 바알의 제단을 다시 쌓았습니다. 하나님의 성전 마당에 일월성신을 세워놓고 온갖 잡신들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점치는 자와 무당과 그리고 신접하는 자를 가까이 하면서 그들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통치합니다. 거기다가 한걸음 더나아가 의롭고 바른말 하는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악행을 행하였스니다. 이때 이사야 선지자는 톱으로 켜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므낫세는 유다 왕중에서 가장 사악한 왕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정도로 악하고 못된짓을 했다면 하나님께서 날벼락을 보내 죽게 하는 심판을 내리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55년 동안을 기다리시다가 마침내 징계를 내리십니다. 역대하 33장 11절입니다. 11.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이 와서 치게 하시매 그들이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간지라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이 와서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해서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런데 그 앞에 보시면 ‘여호와께서’ 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다음 12절 13절을 보시겠습니다. “12.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13.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가 환난을 당하여 여기서 환난이 무엇입니까? 므낫세가 쇠사슬에 결박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바벨론 감옥에 갇혀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므낫세가 포로의 신분으로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에 숱한 고통과 어려움속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모진 환난을 당하면서 그때서야 깨닫게 됩니다. 이런것을 보면 우리 인간은 쉽게 깨닫고 돌아서는 존재가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환난속에서 므낫세는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의 죄를 용서해주십시요. 제가 교만했고 제가 타락한 행동을 했습니다. 저의 잘못을 용서해주십시요’ 환난을 당하자 므낫세는 이렇게 절실하게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를 합니다. 우리 인간은 조언 하는 말 몇마디를 들은 것 가지고 고쳐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아주 박살이 나야 깨닫고 겸손하게 기도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이 므낫세의 기도에 응답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므낫세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사실 이 므낫세 때문에 나라가 망하게 되었고 이 므낫세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죽게 되었고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므낫세는 죽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에게 인자와 긍휼을 베푸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므낫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회복시켜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입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고통과 근심이 아니라 인자와 긍휼에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였을때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내 쫓으십니다. 그들을 내쫓으실때에 하나님은 그냥 내 보내신 것이 아니라 가죽옷을 지어 입혀서 내 보내십니다. 범죄한 우리 인간을 위해 하나님은 인류 최초로 재봉사가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짐승을 잡아 벗긴 가죽으로 아담과 하와 허리 사이즈에 딱 맞게 재단을 하시고 그들에게 입히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를 했기에 징계하셨지만 하나님의 마음속에는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의 본심이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에 있다는 사실을 믿고 확신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럴때 우리가 아무리 고통과 근심속에 있다 할지라도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갈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고통과 절망 속에 있다할지라도 주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라는 믿음을 잃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인자와 긍휼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본심은 평안과 미래와 희망입니다.

예레미아 29장 11절입니다.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 나의 관심 나의 마음은 평안이지 재앙이 아니다. 너희들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 바로 나의 본심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이당시 유다 백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먹는 음식도 아니었습니다. 평안이었습니다. 지금 그들은 우상숭배와 도덕적인 타락 때문에 나라가 무너졌습니다. 재능이 있고 똑똑한 사람들은 포로로 잡혀갔고 성전은 불에 타버렸고 가족들은 서로 멀리 떨어져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 당시 세계 최강대국가인 바벨론을 보고 그리고 망한 조국의 현실을 볼때 그들은 불안과 염려속에서 하루하루 지내며 살았습니다. 이런 상황에 있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길 원하셨던 것은 평안입니다. 모든 것이 암담하고 절망가운데 있다할지라도 하나님은 평안가운데서 살아가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본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우리에게 권력이나 물질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명예나 성공도 아닙니다. 평안입니다. 왜요? 평안이 없는 축복은 진정한 축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저와 여러분의 자녀가 하버드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일하면서 높은 페이를 받으며 살아간다고 하십시다. 그런데 그 자녀가 신경 과민증에 걸려 회사 동료들과 원만하게 지내지 못하고 불화를 일으키면서 살아간다고 한다면 부모된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 좋은 대학 그 좋은 직장이 무슨 축복이겠습니까? 많은 돈을 받고 있는 것이 무슨 축복이겠습니까? 자녀의 건강과 자녀의 가정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것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불안한 것입니다. 차라리 많이 배우지 못하고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평안한 가정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볼때 부모의 마음이 더 행복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관심은 평안입니다. 그리고 또 미래와 희망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보다 앞으로의 인생에 더 관심이 많으십니다. 사탄은 언제나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과거의 인생에 포커스를 맞추지만 하나님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보다 앞으로 살아갈 미래에 포커스를 맞추십니다. 사탄은 우리의 실패 우리의 연약함을 지적하고 정죄하면서 물고 늘어지지만 하나님은 과거를 잊어버리고 미래에 대해서 희망을 가지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당시 포로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유다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은 미래에 희망을 주시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지금은 너희들이 포로 신분에 있지만 언젠가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성전을 다시 재건하고 희망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고난과 환난중에 있는 백성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관심은 미래와 희망에 있습니다. 이것은 요즈음 말로 표현하면 꿈과 비젼이라 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저와 여러분이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꿈과 비젼을 가지고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의 사람은 나이를 초월해서 언제나 꿈과 비젼을 가지며 살아야 합니다. 갈렙을 보십시오. 그의 나이가 85세가 되었지만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젼이 있었기에 가나안땅에서 산지가 가장 험악하고 또 거인인 아낙 자손이 살고 있는 헤브론 산지를 내가 정복하게 해달라고 여호수아에게 요청했습니다. 이때 갈렙의 나이가 85세이었는데 어떻게 해서 갈렙이 헤브론 산지를 정복할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이 미래와 희망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노아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었기에 주변에서 조롱하고 손가락질을 해도 120년동안 묵묵하게 방주를 지었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을 보십시오. 미래와 꿈이 있었기에 그 숱한 고난과 어려움 중에서도 끝까지 달려갈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분명하게 기억하며 신앙생활해나가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본심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입니다. 그리고 미래와 희망입니다. 그럼으로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평안을 누리며 그리고 미래에 대하여 주님이 주신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본심

세 번째는 믿음의 성장과 성숙입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징계나 고난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징계와 고난을 통한 성장과 성숙에 있습니다. 마가복음 7장을 보시면 수로보니게 여인이 귀신들린 자신의 어린딸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와서 자기 딸의 병을 고쳐달라고 간청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뜻밖의 반응을 보이십니다. 마가복음 7장 27절입니다.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그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보고 개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있는 앞에서 직접 대놓고 이런 표현을 하지는 않았고 자기들끼리 이야기 할때만 사용했습니다. 그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이런 말을 하면 그사람들이 그냥 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방 여인을 앞에다 두고 직접 이런 표현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예수님의 본심이겠습니까? “너는 이방인이고 그래서 개와 똑같으니까 내 자식이 먹는 이 음식을 네게 못주겠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본심입니까? 아닐 것입니다. 이 여인을 향한 예수님의 본심은 이런 것입니다. ‘너는 지금 내가 개라고 하는 이 말에 너의 자존심이 아주 상하고 낙심이 되어도 나를 믿고 신뢰할수 있겠느냐?’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가지신 본심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님은 이 여인의 믿음을 테스트 한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을 보시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 우리를 흔드실때가 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우리를 훈련시기키 위해서 내 인생의 삶을 송두리째 흔드실때가 있는 것입니다. 사실 훈련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다 고통스럽고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그 훈련을 통해서 우리는 더 가다듬어 지고 더 귀하게 쓰임을 받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개 훈련가인 스타일스 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개를 훈련시키는 것은 개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개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하면 훈련을 잘 받은 개는 매어있지 않고 자유롭게 주인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매어있지 않기 때문에 자유롭게 다닐수가 있고 주인의 사랑을 받으며 지낼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훈련 받지 않은 개는 쇠사슬에 묶여서 생활을 하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훈련을 받은 개만 그런 자유를 누릴수가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25년 동안 흔드십니다. 1년 2년도 힘드는데 그 긴 25년을 흔드시고 난 다음에 약속대로 축복의 씨앗인 아들 이삭을 주셨습니다. 요셉은 또 어떻습니까? 13년을 흔드셨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요셉의 꿈대로 지도자가 되게 하십니다. 모세는 몇 년입니까? 무려 80년을 흔드셨습니다. 그리고는 출애굽의 지도자로 세우셨던 것입니다. 그래요.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붙들고 막 흔드셔서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반드시 우리가 기억해야 할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흔드실려면 나를 붙잡아야만 가능하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내 인생이 막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강력한 손이 나를 붙잡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를 꽉 붙잡아야만 막 흔들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고난과 근심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시라면서 왜 우리의 인생을 흔드시고 힘들게 하시는 것입니까? 사람네 따라 그 이유는 다를수 있겠지만 해결책으로 가는 길은 동일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본심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는 그런 상황에서도 나를 신뢰할수 있겠니? 너의 인생이 힘들고 때로는 너의 자존심이 상하고 고통스러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신뢰할수 있겠니? 그래도 믿음으로 반응할수 있겠니. 그래도 기도하면서 나를 의지하며 살아갈수 있겠니?“ 이런 하나님의 본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무나 붙잡고 흔드시는 것이 아닙니다. 부르심의 소명이 분명한 자를 붙잡고 흔드십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녀를 푸른 풀밭 시냇가로만 인도하시지 않으십니다.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거닐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축복을 내리시기 전에 반드시 우리를 흔드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누군가가 내 마음을 몰라줄 때 속이 굉장히 상하게 됩니다. 남편이 내마음을 몰라주고 부모님이 내 본심을 몰라주고 내 자식이 내 마음을 몰라주면 속이 굉장히 저리도록 아픈 것입니다. 특히 내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몰라주고 미워하면서 반항을 할 때 우리의 마음은 찢어지도록 마음이 아프고 속이 상하기도 합니다. 우리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본심을 모르고 고통과 고난 앞에서 실족하고 원망 불평할 때 그때 우리 하나님은 마음 아파하십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은 하나님의 본심을 알면서 살아야 합니다. 자녀가 언제 철이 들었다는 소리를 듣습니까? 자식이 부모님의 본심을 알아주고 행동을 할 때 철이 들었다고 말합니다. 이제 사람이 되었다는 말을 합니다. 이제 우리도 철이 없는 신앙생활을 하지 마십시다. 하나님의 본심은 저주가 아닙니다. 징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고난과 근심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은 인자와 긍휼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본심은 두려움이 아니라 평안입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우리 인생의 미래와 희망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고난과 고통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의 성장과 성숙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의 본심을 아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본심을 아는 사람은 아무리 고통 가운데 있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어떠한 상황속에서라도 하나님의 본심을 알고 성숙한 신앙생활을 해나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