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선한 목자와 양

Author
kgmcc
Date
2022-07-03 01:07
Views
271
본문 : 요한복음 10장 11-16절

날짜 : 2022년 7월 3일

 

<요한복음 10장 11-16절>

11.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13.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14.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 신앙은 관계이다.

지난 주에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에 있어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관하여 생각해보았습니다. 하버드 대학교의 위간 박사가 직장과 가정, 사회생활 등 각 분야에서 실패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전문적인 지식이 모자라서 실패한 사람들은 불과 15%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나머지 85%의 사람들은 인간관계를 잘못했기 때문에 인생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실력과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에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과의 관계보다 더 중요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원래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면서 살아가도록 창조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후에 태어난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이 나의 아빠가 되고 나는 그분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6절입니다.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아들의 영을 우리마음 가운데 보내사’ 여기서 그아들의 영은 예수의 영 즉 성령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이 내 마음에 보내주신 성령으로 인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믿는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가지고 언제든지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가 우리의 필요를 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한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그럼으로 내가 예수님을 믿음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으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고 진정한 성공인 것입니다. 이것이 지난 주일에 우리가 살펴보았던 내용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내가 예수를 믿게 될 때 일어나는 현상을 부모와 자녀의 관계로만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예수를 믿음으로 시작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친구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5절입니다. “15.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요15:15)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그리고 또 성경은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절입니다. 2.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사도바울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신랑되시는 예수님에게 중매하는 마음으로 사역을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서 주님은 우리의 신랑이 되셨고 우리는 그의 신부가 되었습니다. 신랑과 신부가 한 몸을 이루어 영원히 살아가게 되듯 우리도 주님과 한 몸을 이루어 영원히 살아가는 그런 존재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예수님과 믿는 성도와의 관계를 여러 가지 관계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여러 가지 관계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신앙은 관계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이러한 관계는 이론이 아닌 실제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모와 자식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신랑과 신부의 관계는 실제입니다. 이러한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막연하거나 추상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얼굴도 모르고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을 보고 나의 부모라고 말하고 반대로 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한달에 한 두 번 정도 만나는 사람을 보고 내 남편과 내 아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부모와 자녀는 실제적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신랑과 신부의 관계도 실제적입니다. 함께 식사를 하고, 함께 하루 있었던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여러가지 문제를 가지고 함께 걱정을 하며 같이 살아갑니다. 이렇게 실제적입니다. 친구와의 관계도 실제적입니다. 갈등이 있고 고민이 있을 때 친한 친구를 만나 얘기를 나누고 같이 샤핑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신앙은 예수님과 이렇게 실제적인 관계를 누리며 사는 것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성도는 주님과 이런 실제적인 관계를 누리며 신앙생활을 해나갑니다.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교회를 오래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과 실제적 관계를 누리지 못한채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 목자와 양의 관계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주님과 믿는 성도와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 11절입니다. “11.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그리고 14절 전반부입니다. “14.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나는 선한 목자라’ 예수님은 선한 목자가 되십니다. 우리가 잘알고 있는 시편 23편 1절에서도 주님은 목자이고 우리는 양으로 말씀합니다. 시편 23편 1절, 2절입니다. “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1,2)

이렇게 신약, 구약 성경은 주님과 나와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목자와 양의 관계를 바로 알려면 목자이신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목자를 따르는 양은 어떤 존재인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리고 믿는 성도는 또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 나는 선한 목자라

그러면 우리의 목자이신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조금 전에 살펴본 본문 11절과 14절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나는 선한 목자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이 선한 목자이십니까?

첫째로,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11절 다시한번 보시겠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11절)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립니다. 그러면 왜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렸습니까? 이유는 단한가지 양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입니다.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확증’ 확실하게 증명해 보이셨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을 어떻게 확실하게 증명해보이셨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확실하게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을 당신의 양으로 삼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자신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진정한 사랑은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구원한 양들을 지키고 돌보는 일에도 열심을 내십니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구원한 양인데 그 양을 이리와 늑대가 와서 물어가도록 그냥 놔 두시겠습니까? 목숨 걸고 자신의 양떼를 지키고 돌보십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주님께 속한 양들을 공격하고 양의 목숨을 노리는 이리와 늑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0장 16절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마10:16)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주님의 양들을 공격하고 목숨을 노리는 이리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사단 마귀와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입니다. 주변에 보면 기독교를 개독교라 부르며 목사를 먹사라 부르며 기독교를 박멸하여 교회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뿐만 아니라 거짓된 가르침을 가지고 성도들을 유혹하는 여호와 증인이나 신천지와 같은 각종 이단들이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풀이하면서 교회를 비판하고 있는 단체에 가서 성경공부 하는 것은 내 영혼을 멸망하는 일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땅 가운데 교회를 세우신 이유 중에 하나가 뭔지 아십니까? 그것은 주님이 피 흘려 값주고 산 당신의 양들을 지키고 보호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양을 공격하는 이리와 늑대로부터 보호를 받을려면 주님을 머리로 하는 교회 공동체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자들의 모임, 곧 공동체입니다. 왜 우리 주님이 선한 목자입니까?

양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릴 뿐만 아니라 그 양을 끝까지 지키고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왜 주님이 선한 목자이십니까?

둘째로, 양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14절과 15절입니다.

“14.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나는 내 양을 알고’ 누가 선한 목자입니까? 자신의 양을 아는 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안다’는 말은 보고 지식적으로 안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안다는 것과 목숨을 버린다는 말씀이 함께 나옵니다.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사랑하기 때문에 목숨을 버리고 목숨을 걸만큼 사랑하기 때문에 그 양을 잘 아는 것입니다. 지식적으로 아는 것과 사랑하기 때문에 아는 것은 너무나 다릅니다. 사랑으로 아는 것은 그 마음을 함께 공유하며 아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딸이 결혼을 약속했던 약혼자와 파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알게 된 그 딸의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하겠습니까? 자기의 딸 이상으로 괴로워하고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으로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종종 부르는 찬양 가운데 ‘사랑한다 아들아 내가 너를 잘 아노라. 사랑한다 내딸아 내가 너를 잘 아노라’ 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복음송 가사 내용처럼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십니다. 어느정도 알고 계십니까?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우리의 이름을 아십니다. 본문 앞에 나오는 요한복음 10장 3절입니다. “3.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우리는 양을 하나의 동물로 생각하고 대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양을 동물이 아니라 하나의 가족처럼 생각하고 대합니다. 그래서 양들에게 이름을 지워 줍니다. 그런데 선한 목자는 수백 마리의 양이 있지만 양의 이름을 다 알고 있습니다. 양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양의 생김새 뿐만이 아니라 양이 가지고 있는 성품과 기질까지 다 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게 세명의 딸이 있지만 이 세명의 이름을 생각할때마다 각각의 성격과 직업과 그리고 각각 현재 놓여 있는 상황이 같이 떠오르게 됩니다. 이름만 생각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선한 목자되신 우리 주님은 나의 이름을 아십니다. 나의 약함을 아십니다. 나의 성품과 기질까지 모두 아십니다. 오늘 나의 필요가 무엇인지 내가 왜 그렇게 쉽게 넘어지고 좌절하고 절망하는지 주님은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배신과 가난과 외로움을 받으셨기 때문에 나의 가난도 아시고 배신의 아픔이 어떤 것인지도 아시고 외로움과 고독이 무엇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5분 후를 알지 못하지만 주님은 아십니다. 내 자신이 나를 아는 것보다 나를 더 잘 아십니다.

그런데 선한 목자되신 주님은 이렇게 나를 아는 것으로 끝나지 않으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각각 불러 내어 인도하십니다.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3절)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낸다는 말은 목자와 양의 관계가 개별적이며 인격적인 관계인 것을 말해 줍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을 세상 가운데서 불러 내어 주실 때 무리들 중에 한 사람으로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와 이곳 미국에서 학교 졸업식을 할 때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미국에서는 학생 한사람 한사람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리고 학교 총장이 그 학생 한사람 한사람에게 직접 졸업장을 주고 악수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기독교 정신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삭개오를 부르실 때에도 개별적으로 그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니고데모를 부르시고 사마리아 여인을 부르실 때에도 개별적으로 각각 만나주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오직 이 세상에 나 하나만을 사랑하시는 것처럼 개별적으로 나의 이름을 부르시고 개별적으로 나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우리 안에 있는 양들만이 아니라 우리 밖에 있는 양들에 대하여서도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본문 16절입니다.

“16.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누구입니까? 아직 예수를 믿지 않고 세상 가운데 살아가는 영혼들을 말합니다. 주님은 그들에 대하여서도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우리 안에 있는 99마리의 양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주님의 관심은 우리 밖에 있는 그들이 주님의 공동체 다시 말하면 우리 안에 들어와 한 무리가 되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도 우리 밖에 있는 양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주님의 양이 되게 해야 합니다.

 

□ 양은 어떤 존재인가?

자, 그렇다면 주님의 양된 우리는 어떤 존재입니까? 주님은 우리 구원받은 성도들을 왜 양으로 비유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양은 목자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양은 다른 짐승들과는 달리 목자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로, 양은 미련합니다.

양은 미련한 짐승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우리를 찾지 못합니다. 한 번 길을 잃으면 절대로 자기의 우리를 찾아오지 못합니다. 웬만한 짐승들은 제 집을 찾아옵니다. 몇 년전 앤더슨이 자신의 반려견인 조지아를 데리고 약 56km(36마일) 떨어진 공원에 갔다가 그만 강아지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당시 공원 순찰대와 함께 온종일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9일만에 강아지가 자기집에 찾아온 것입니다. 개 뿐만이 아닙니다. 봄이 되면 강남갔던 제비도 다시 집을 찾아옵니다. 하지만 양은 한번 자기 우리를 벗어나면 스스로 찾아오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범죄하여 에덴 동산에서 추방을 당한 인간들은 자기 스스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에덴동산을 찾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양의 우리였던 에덴동산을 다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선한 목자이신 주님을 통해서만 양의 우리인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믿음으로서 우리 인간은 천국인 에덴동산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땅에는 길을 잃고 방황하는 양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오늘도 인생의 참된 본향인 에덴동산을 찾지 못하여 길을 잃고 방황하는 양들이 있음을 생각하고 그들의 위하여 기도하며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스스로 먹이를 구하지 못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양은 스스로 먹이를 찾지 못합니다. 목자가 양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지 않으면 굶어 죽습니다. 이러한 양의 특성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매일같이 만나를 내려 먹여주신 것으로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주기도문에도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선한 목자되신 주님이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루 하루 살아갈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합니다.

셋째로, 연약합니다.

다른 동물이나 짐승들은 방어나 공격을 할 수 있는 공격용 무기가 있습니다. 날카로운 이빨, 뿔, 발톱 등으로 방어도 하고 공격도합니다. 또 힘이 없는 동물들은 나름대로 보호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포츠 프로 구단들의 이름을 보면 사납고 용맹한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타이거스, 라이언스, 베어즈, 드래건스’ 그런데 양을 상징하는 Sheep이라는 이름을 가진 스포츠 구단은 세계 어느곳에도 없습니다. 왜요? 양은 상대방과 싸워서 이길수 있는 그어떤것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격용 무기도 없고 방어용 무기도 없습니다. 그리고 보호색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눈에 잘 띄는 하얀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양은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지 못합니다. 이리와 늑대가 나타나면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잡혀 죽고 마는 것이 바로 양입니다. 양은 또 겁이 많아서 거세게 흐르는 물도 마시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자가 양들을 잔잔한 물가로 인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양은 전방을 제대로 내다보지 못하는 약한 시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양에게는 절대적으로 목자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나는 선한목자 너희는 양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양과 같은 존재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똑똑하고 지혜롭고 건강한자 같아도 하나님 앞에서 저와 여러분은 양입니다. 예수님앞에서 우리는 양입니다. 양처럼 미련하고 연약하고 혼자서는 절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절대적으로 목자가 되신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양은 목자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목자와 양의 관계를 가지고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 언제 목자와 양의 관계가 이루어지는가?

그러면 언제 목자와 양의 관계가 이루어집니까? 예수를 믿을 때입니다. 요한복음 10장 26절입니다.

“26.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이 말씀은 ‘너희가 믿지 아니하기 때문에 내 양이 아니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너희가 믿으면 내 양이된다’ 는 말씀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목자와 양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믿음이라는 것이 아무나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믿고 싶어도 믿어지지 않다고 고백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복음은 인간의 이성과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복음을 믿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값없이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 지금까지 믿어지지 않았던 사실들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이 믿어지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의 인생 가운데 최고의 기적은 바로 예수를 믿는 것이라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믿는 성도인 저와 여러분은 인생의 최고의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의 양이 되고 주님은 여러분의 인생을 지키시고 보호해주시는 선한 목자가 되신 것입니다.

이제 간단히 정리합니다.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은 사나운 풍랑 가운데도 나를 지켜 주십니다.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은 나를 평생동안 푸른 풀밭과 잔잔한 시냇가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양인 우리들은 선한 목자가 없이는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 후반부입니다. ‘5.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은 양의 존재인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한마디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수 없음이라’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만을 의지하면서 남은 평생을 살아가는 축복받은 양으로 살아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