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에서 와 야곱

Author
kgmcc
Date
2022-07-17 00:15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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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창세기 25장 27-34절

날짜 : 2022년 7월 17일

 

<창세기 25장 27-34절>

27.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28.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29.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30.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31.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32.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33.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34.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성경은 이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으로 나누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한 종류는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이고 또 다른 종류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을 향해 하나님은 의롭다 라고 보십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의롭게 된 최초의 사람은 잘아시다시피 아브라함입니다. 창세기 15장 6절입니다. 6.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여호와께서 이를(여기서 이는 여호와를 믿은 것) 그의 의로 여기시고’ 그래서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부릅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이름은 데라입니다. 그리고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습니다. 창세기 11장 27절, 28절 입니다. 27.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28.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하란이 큰아들이고 아브람이 둘째 그리고 나홀이 셋째인 것으로 봅니다. 성경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의 순서로 기록한 것은 아브람이 영적인 장자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이삭을 낳고 이삭은 에서와 야곱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서로 너무나 다르게 성장했습니다. 본문 27절입니다. “27.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에서는 사냥꾼으로 성장했습니다. 사냥꾼도 보통 사냥꾼이 아니라 익숙한 사냥꾼 이었습니다.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이 말씀은 다른 사람들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능숙하고 탁월한 사냥꾼이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에서는 많은 시간을 들판에서 보내는 ‘들사람’ 이라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로’ 그러니까 야곱은 내성적이면서도 차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밖으로 나돌아 다니기 보다는 주로 집안에 머물면서 집안일을 도우는 일을 좋아했습니다.

외모를 보아도 형 에서는 남자답고 몸에는 털이 많고 붉은 색 피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털이 거의 없는 매끈매끈한 부드러운 피부를 가졌습니다. 쌍둥이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에서와 야곱은 이렇게 외형적인 모습뿐만이 아니라 기질과 성격에서 너무나 차이가 있었습니다.

제가 2남 3녀중 네 번째 로 태어났는데 아들인 제 형님이나 저보다는 딸이 더 활동적이고 더 적극적인 편입니다. 그래서 살아생전 저희 어머님이 내성적이고 소심한 저를 보면서 종종 이런말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너와 네 바로 위의 누나가 서로 성별이 바뀌어서 태어났으면 참 좋았을텐데“ 이렇게 같은 부모님 밑에서 태어난 자녀인데도 불구하고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이 너무 다른 점을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볼수 있습니다.

쌍둥이로 태어난 에서와 야곱이 서로 다르고 흥부와 놀부가 서로 다르듯이 이 세상에 나와 똑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양보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살아갈때가 많이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릅니다. 쇼핑을 할때도 남자와 여자는 구별이 됩니다. 남자는 직선으로 들어가서 한 눈에 필요한 것을 사버리지만 여자는 돌고 돌아봅니다. 그리고 만져보고 입어보고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전화까지 해서 알아보고 사기도 합니다. 유명한 사회 심리학자인 에릭 프롬에 의하면 남자는 하루에 25,000마디의 말을 하고 여자는 하루에 30,000마디의 말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남자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 올 때면 이미 25,000마디의 말의 분량을 다 해버리고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자는 똑같은 직장 생활을 해도 아직도 5000마디의 말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남편이 들어오면 미주알 고주알 자기의 감정을 다 이야기합니다. 그러니 남편들은 피곤한데 왜 그렇게 말을 자꾸 시키느냐고 짜증을 내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럴때 남자와 여자가 하루 사용해야 하는 말의 수가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면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는 일에 유익할 것 같습니다.

왜 많은 가정이 깨어집니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왜 이렇게 시끄럽습니까? 러시아가 왜 지금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있습니까?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푸틴이 젤렌스키를 보면서 ‘왜 너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못하고 다르게 행동을 하고 있느냐. 내 생각에 맞추라’ 라는 의미로 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왜 오늘날 많은 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까?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세우신 교회지만 교회마다 주신 비전이 다르기 떄문에 교회도 서로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장로교 교회처럼 조용하고 경건하게 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오순절 순복음 교회처럼 방언과 찬양으로 뜨겁고 시끄럽게 예배를 드릴수도 있습니다. 침례 교회처럼 물속에 들어가는 침례를 할수도 있고 장로 교회처럼 물을 손에 적셔 머리와 얼굴에 뿌리는 세례를 할수도 있습니다.

진리 외에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성숙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나와 같지 않다고 해서 무조건 미워하거나 무시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면 어떤일이 일어납니까? 본문 28절입니다. 28.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아버지 이삭은 에서를 사랑했고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왜 이러한 일이 생겼습니까? 아버지 이삭은 에서가 바깥에 나가 사냥을 해서 잡은 고기를 먹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머니 리브가는 하루종일 집안에 머물러서 가정일을 도와주는 야곱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이삭은 에서를 사랑했고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더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삭과 리브가는 자기 자식들이 서로 다르다고 하는 사실을 별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편애를 하게 된것 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편애하는 이유가 많지만 대부분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가정에 편애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어느 한 자식이 말을 잘 듣는다고 그리고 공부를 잘한다고 그 아이를 편애하는 부모가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나라 사람들은 장남을 편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둘째인 자녀가 어긋나게 행동을 하는 경우가 참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럼으로 어떤 경우에도 부모는 자녀를 편애해서는 안됩니다. 편애는 자녀들 간에 경쟁심과 질투심을 유발시켜 끊임없는 갈등과 적대 관계를 갖게 하는 것입니다.

 

□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린 에서

쌍둥이로 태어난 야곱 과 에서는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여러 가지 사건들이 서로 연관 되어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두사람 사이에서 일어났던 사건들 중에 성경이 가장 의미있게 다루는 장면은 단지 두군데 입니다. 하나는 에서가 야곱에게 장자의 명분을 판 장면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야곱이 20년에 걸친 타향살이를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장면에서 형 에서를 만나는 장면입니다. 야곱이 20년 전에 고향을 떠나게 된 이유는 형 에서가 자기를 죽이겠다고 불같이 분노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에서가 분노한 이유는 아버지 이삭이 장자에게 주는 축복을 야곱이 가로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형을 피해 외삼촌 라반이 사는 하란으로 도망갔습니다. 야곱은 거기서 라헬과 레아와 결혼을 하고 경제적인 기반을 잡은 후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20년전에 도망 간 야곱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은 에서는 4백 명의 젊은 장정들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납니다. 이때 만일 에서가 옛날 일에 대해 앙심을 품고 야곱을 죽였다면 야곱의 운명은 거기서 끝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도 달라졌을 겁니다. 하지만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이 역사하심으로 인해 에서는 동생 야곱을 보는 순간 마음이 열리게 됩니다. 그래서 20년동안 품었던 증오심이 사라지고 서로 부등켜 안고 눈물로 화해를 하게 됩니다. 야곱이 형 에서에게로 부터 도망을 가고 그리고 20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는 이러한 일이 일어난 동기는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팥죽 사건 때문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외형적으로 나타난 것 이외에 더욱 중요한 영적인 의미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어느날 하루 형 에서가 들판에가서 하루 종일 사냥을 하다가 저녁 늦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하루 종일 들판을 뛰어다니다 왔으니 얼마나 배가 고팠겠습니까? 그런데 마침 동생 야곱이 팥죽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30절을 보면 형 에서는 동생 야곱에게 내가 배가 고프고 심히 피곤하니 그 팥죽을 먹게 해 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동생 야곱은 형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라고 제안합니다. 본문 31절입니다. “31.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아니 형이 배가고파서 팥죽 한 그릇을 달라고 요청하는데 주면 되지 형제간에 거래는 무슨 거래입니까? 이것을 보면 야곱이 보통 사람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웃기는 것은 형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팔고 그 팥죽을 사서 먹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32절입니다. 32.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그런데 에서는 그냥 먹은 것이 아니라 맹세까지 하고 팥죽 한그릇을 먹었습니다. 33절입니다. 33.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우리나라 속담에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 는 말이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이 사실은 더 적극적으로 욕심을 내면서 행동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야곱이 바로 이러한 속담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볼수 있습니다. 야곱은 배가 고픈 형에게 맹세까지 하게 하면서 장자의 권리를 가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34절 전반부입니다. 34.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이렇게 에서는 떡과 팥죽을 먹고 그 자리를 일어나 떠나갑니다.

 

□ 왜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렸는가?

그렇다면 왜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았습니까? 물론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배가 많이 고팠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에서는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린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34절 후반부입니다. 34.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에서는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렸습니다. 장자가 지금 내 배고픔을 해결할수 있냐 팥죽이 지금 내 이 문제를 해결할수 있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어떻게 보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볼 때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아주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6절입니다. 16.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히12:16절) 성경은 에서의 이러한 행위에 대해서 ’망령된 자‘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망령된 자”란 헬라어로 ‘베벨로스’ 인데 누구라도 가까이 할 수 없는 더러운 자, 불경건한 자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루터는 이 망령된 자를 “하나님을 업신 여기는 자” “무신론자”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망령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무엇입니까? 그다음에 나오는 히브리서 12장 17절입니다. “17.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히12:17)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바 되어’ 에서는 이후에 자신의 실수와 허물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 이삭에게 장자의 축복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에서는 자신이 잃어버린 축복을 되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에서는 버린바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에서의 실수는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일어날 수 있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영원한 실수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단 한번의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 장자권이 갖는 의미

그러면 왜 성경은 이렇게 장자권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장자권이 갖는 특별한 의미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장자는 가문을 이어가는 자로서 가정을 통솔할 수 있는 통솔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자는 부모의 유산을 다른 아들보다 두 배나 더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습니다. 그런데 야곱에게 있어서 장자권은 이런 것 보다 훨씬 더 중요한 영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오도록 하나님은 계획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을 보시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기록되어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 1절, 2절입니다. ‘1.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2.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정상적인 방법으로 족보를 기록 한다면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에서를 낳고”로 기록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렸기 때문에 장자인 에서 대신에 야곱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는 장자권을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린 것입니다. 에서는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을 통해서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일찍부터 듣어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축복의 씨가 될 수 있는 장자권을 우습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서가 장자권을 가볍게 여기고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렸다는 것은 “나는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는 것 별로 관심이 없어요”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곧 “나는 예수님이 필요없어요” "나는 예수님이 없이도 살 수 있어요“ ”나는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하지 영적인 축복은 중요하지 않아요“라는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서는 이러한 의미가 있는 장자권을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팔아버린 것입니다. 순간적인 욕망과 육체적인 축복 때문에 영적인 축복을 소홀히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 주변에는 에서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엔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하지 예수 믿는게 뭐 그리 중요하느냐?”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에서가 들판을 누비며 사냥하듯 세상의 들판을 누비며 세상 재미에 빠져 하늘의 축복을 거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순간적인 욕망과 육체적인 소욕 때문에 예수님과 등지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에서가 행한 가장 큰 실수는 자신의 영혼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축복에 대하여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오로지 자기 욕망에 따라서 행동하며 살았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축복이 무엇인지를 알았다면 아무리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 되었다 할지라도 장자권을 팔았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신자들 가운데도 에서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원한 것을 포기해 버립니다. 눈에 보이는 것 앞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포기해 버립니다.

데마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딤후4:10절입니다.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데마는 이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지금쯤 데마는 2천년전에 자신이 선택한 행동에 대해 얼마나 후회를 하면서 그 어두운 음부의 세계에서 지내고 있겠습니까?

 

□ 왜 야곱은 장자권을 얻으려고 했는가?

그러면 이제 왜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얻으려고 했는지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장자로 태어나지 못해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복을 상속받지 못하게 된 것을 두고 두고 애석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늘 그의 마음 속에는 “어떻게 하면 장자권을 차지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형 에서가 사냥을 하고 돌아와 배고파 죽겠다며 죽을 달라고 할 때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라고 말했겠습니까? 이것을 보면 야곱의 뇌리 속에는 자나 깨나 장자의 명분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왜 그토록 장자권을 얻으려고 했습니까? 장자권을 가짐으로 더 많은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서였겠습니까? 자신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도망을 가면서도 장자권을 얻으려고 했던 이유는 장자권의 축복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장자권을 갖게 되면 하나님이 약속한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장자권을 갖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이런 약속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그런데 누가 그 씨의 계보에 들어갑니까? 장자만이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원래대로 하면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에서를 낳고”로 되어야 하는데 성경은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로 기록 되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야곱이 형 에서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에서는 장자권을 우습게 알았지만 야곱은 장자권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야곱이 먼훗날 형 에서를 다시 만났을 때에도 이 장자의 명분을 내어 놓지 않았습니다. 형 에서에게 많은 재물과 물질을 주었지만 자신이 얻은 장자의 명분은 되돌려 주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보면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사모했고 끝까지 장자의 명분을 지키려고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로 이 야곱이 받은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존재임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로마서 4장 3절입니다. 3.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이 구절은 창세기 15장 6절에 나온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6.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 이때 아브라함은 할레를 받기 전이었고 아들 이삭이 태어나기 이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행위로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믿음으로서 이미 의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축복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집니다. 로마서 4장 23절, 24절입니다. 23.그에게(아브라함의 의미)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우리도 위함이니’ 여기서 우리는 누구입니까?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사람을 하나님은 의롭다고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는 성도는 이러한 영적인 축복을 다른 그 모든 것보다도 더욱 귀하게 여기고 소중하게 여기며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은 이 믿음이 주는 축복이 너무나 크고 중요하기 때문에 성경에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 6절에서 9절입니다. 6.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그럼으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야곱이 그토록 장자의 명분을 사모했듯이 오늘날 저와 여러분도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하늘의 은혜와 축복을 사모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땅의 복만이 아닌 하늘의 신령한 복에 대한 사모함이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목마름이 필요합니다. 야곱이 그토록 장자의 명분을 소중히 생각하며 끝까지 장자의 명분을 지키려고 했듯이 인생의 어떠한 어려움이 온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믿음을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 나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예수님 나는 당신을 놓치 않겠습니다. 나는 당신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나를 붙잡아 주시지 않으면 살아 갈 수 없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제 간단히 정리하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에서와 같은 사람이 있고 야곱과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에서와 야곱은 다같이 아브라함의 자녀입니다. 특별히 에서는 아브라함의 장자권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기록될 축복을 누릴 권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에서는 그 축복을 소홀히 여기는 망령된 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다른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베푸시는 영적인 축복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이스라엘 열두지파의 조상이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복에 기록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안에서도 에서와 야곱이 있습니다. 에서처럼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적인 축복을 소홀히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다른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약속한 영적인 축복을 가장 귀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에서처럼 당장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예수님을 멀리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에서처럼 자신에게 이미 주어진 축복들을 세상의 것들과 바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야곱처럼 하나님이 약속하신 은혜와 축복을 사모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야곱처럼 “나는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며 어떤 어려움의 순간이 닥쳐도 끝까지 예수님을 붙들고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야곱처럼 다른 것은 양보할지라도 예수님 안에서 주시는 축복들 만큼은 죽어도 세상의 어떤 것과도 바꾸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야곱처럼 영적인 축복을 귀하게 여기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시는 영적인 축복을 저와 여러분도 세상의 것보다 더 귀하게 여기시며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