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인생에 가장 중요한 문제

Author
kgmcc
Date
2022-08-07 02:52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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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창세기 7장 1-5절

날짜 : 2022년 8월 7일

 

<창세기 7장 1-5절>

1.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2.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3.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4.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5.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우리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으로 받은 축복중에 가장 큰 축복은 바로 ‘내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에 있습니다. 내가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 이세상이 자연재해와 전염병과 그리고 전쟁의 소식이 여기 저기에서 들려와도 나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수 있습니다. 내가 영원히 살아가게 될 본향은 이 땅이 아니라 저 하늘나라에 있다고 하는 이 믿음 때문에 어떠한 환경속에서라도 소망을 가지고 극복해나가는 인생을 살아갈수 있습니다. 이러한 구원을 내가 받게 된 것은 은혜입니다. 은혜라는 의미는 내가 받을 자격이나 받을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주어질 때 은혜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은혜는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입니다. 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 성경 구절에서 강조되는 4가지 단어가 나오는 그것은 바로 ‘은혜’ 와 ‘믿음’ 그리고 ‘구원’ 과 ‘선물‘ 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내가 믿음을 가질때 하나님의 은혜로 받게 된 선물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구원은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심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것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구약성경에서 ‘은혜’ 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나오는 곳은 창세기 6장 8절입니다.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가 하나님으로부터 인간들 중에서 가장 먼저 은혜를 입은 사람으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그러나’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여기서 ’그러나‘ 의 단어 앞에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 하면 ’노아를 제외한 그당시 세상에 살고 있던 다른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했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한 것입니다. 그당시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노아만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제외되는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을 받는 구원의 비밀을 아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120년 동안 구원의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하루도 아닌 120년 동안 방주를 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들판이 아닌 산에서 그것도 축구장 보다 더 큰 방주를 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방주를 짓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수고가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마침내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노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시작인 1절입니다.

1.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네가 이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내가 보았음이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성적으로 타락하고 죄악이 만연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죄를 짓는 일에 동참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노아의 모습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을 받으면서도 120년 동안 묵묵히 방주를 짓는 일에 순종하던 노아의 모습을 보셨습니다. 산에서 방주를 지으라는 말씀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바보처럼 묵묵하게 순종하는 노아의 모습을 보셨습니다. 120년 동안 방주를 지으면서 노아가 흘렸던 수많은 땀과 눈물을 보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죄악으로 가득찬 이 세상에 살면서도 의롭고 진실되게 살려고 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기 위해 흘리는 나의 땀과 눈물을 주님은 보고 계십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이렇게 섬기고 봉사하는 나의 수고와 헌신을 주님은 보십니다. 남들은 몰라도 주님은 아시고 남들은 보지 못해도 주님은 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실족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보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입니다. 9.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 는 어디에 있습니까?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때가 되면 선을 행한 그 결과를 얻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누구에게 선을 행하여야 합니까? 그다음절인 갈라다아서 6장 10절입니다. 10.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모든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모든 사람에게 선한 행동을 해야 하지만 특별히 믿음의 가정들에게 더욱 많은 선한일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사람들을 차별해도 좋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물질과 시간과 체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보다 효율적인 방법으로 지혜롭게 선한일을 해나가야 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 방주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방주가 다 지어졌을 때 하나님은 노아에게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면 노아의 가족들과 하나님이 선택한 짐승들이 들어간 구원받은 방주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노아의 방주는 오늘날의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교회는 건물로서의 교회를 말하기 보다는 예수님이 머리가 되시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그의 몸이 되는 생명 공동체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할것없이 방주 속으로 들어간 존재는 모두가 다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보호를 받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선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십니다. 다른 말로 하면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여기서 말하는 교회는 건물과 조직으로서의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머리로 섬기고 살아가는 연합된 몸으로서의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오늘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우습게 생각하고 교회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교회는 완전한 곳이 아닙니다. 교회에는 의로운 자들만이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문 2절입니다.

2.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부정한 짐승도 방주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부정한 사람도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삭개오를 만나시고 난이후에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19장 10절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예수님은 그당시 죄인의 대명사인 세리와 창기들을 찾아 구원하시기 위해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안에는 크고 사나운 동물들도 있었습니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스컹크 도 있었고 부정한 동물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안에서 시끄럽고 냄새가 나는 사건들이 일어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이 교회를 통해서 구원하도록 계획하셨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들어와 은혜를 받고 치료를 받고 변화를 받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 순종하는 짐승들

노아의 방주가 완성되었을 때 노아의 가족만이 아니라 호흡하는 모든 짐승들이 방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9절입니다.“9.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며” ‘방주로 들어갔으며‘ 그리고 15절입니다. 15.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방주로 들어갔으니‘

우드모라페(Woodmorappe) 박사가 쓴 '노아의 방주 : 그 가능성 연구(Noah‘s Ark : A Feasibility Study)' 라는 책을 보면 방주에 들어간 동물들의 종류와 마리 수를 이렇게 추정하고 있습니다.

포유류 7,428 마리, 조류 4,602 마리, 파충류 3,724 마리로 이를 합하면 15,754 마리가 되는데 그래서 약 16,000 마리의 동물들이 방주 내로 들어간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렇게 많은 숫자를 만일 노아가 혼자의 힘으로 각 동물을 한쌍씩 구별하여 방주안에 넣을려고 했다면 불가능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택한 동물들이 어디에서부터 인가 한 쌍을 이루어 노아에게로 나아왔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16000마리가 되는 짐승들이 줄을 지어서 노아에게로 나아와 방주의 열린 문으로 순서를 따라 들어가는 모습은 굉장히 장엄한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짐승들까지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온 만물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모든 짐승들이 쌍을 이루어 나아와 방주 안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만물의 주관자이십니다. 그럼으로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수가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입니까? 쉽게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입니다. 언제 우리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볼 수 있습니까? 언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볼수 있습니까? 믿음으로 순종할 때입니다. 노아는 믿음으로 순종하여 방주를 지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 일은 노아가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그 많은 짐승들을 잡아 방주 안에 넣는 일은 노아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는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고 하나님께서 하셔야만 되는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기 전에 ‘무덤의 입구를 막고 있는 문을 열어 놓으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다음에 예수님이 무덤안에 있던 죽은 나사로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그러자 죽은 나사로가 무덤안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무덤의 문을 여는 것은 믿음으로 순종하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일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믿음으로 순종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할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처음부터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통닭 구이 믿음이라고 어느 한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제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샘스 클럽과 같은 그로서리 가게나 통닭을 파는 식당에 가면 큰 오븐 안에 들어가 있는 많은 통닭들이 쇠꼬챙이에 꽂혀서 빙빙 돌아가고 있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그 통닭들은 오븐 안에서 다 익혀질때까지 그 모습 그대로 빙빙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주인이 오븐에서 통닭을 꺼집어 낼때까지 가만히 있는 것이 바로 통닭구이 믿음 이라는 것입니다. 어미 독수리가 새끼 독수리를 창공 높이에서 떨어트리면 새끼 독수리는 있는 아래로 떨어지면서 날개짓을 합니다. 하지만 아직 날개 힘이 모자라기 때문에 자꾸만 아래로 떨어집니다. 그런데 새끼독수리가 땅에 닿기 전에 어미 독수리가 그 새끼 독수리를 낚아 채는 것 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여러날 동안 몇차례 시도를 하게 되면 그 새끼 독수리는 마침내 자기 힘으로 날아다닐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만약에 그 새끼 독수리가 통닭구이처럼 그냥 가만히 움츠리고 떨어지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물론 처음에 몇 번은 새끼 독수리가 땅에 닿기 전에 어미 독수리는 낚아챌 것입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몇 번이나 새끼 독수리가 어미 독수리만 믿고 통닭구이처럼 가만히 움츠린채로 떨어진다면 어미 독수리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너 독수리가 맞아” 라고 말하면서 땅에 부딪치게 그냥 놔 둘것입니다. 만일 그새끼 독수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나게 된다면 그다음부터는 자기가 떨어질 때 몸부림치면서 막 날개짓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으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참된 믿음은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며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 나머지는 하나님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순종하여 맡기신 일에 최선을 다할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방주가 다 지어졌을 때 하나님은 노아에게 너와 네 온 가족은 방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십니다. 본문 1절 전반부 다시한번 보시겠습니다. 1.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방주로 들어가라’ 왜 하나님은 방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 저와 여러분이 노아에게 방주안에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노아에게 방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십니까?

 

방주 안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는

첫째로 방주로 들어가야만 생명을 보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6장 19절과 20절에 보면 방주로 들어가 생명을 보존하라! 는 말씀이 두 번이나 나옵니다. 창세기 6장 19절입니다. 19.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그리고 그다음 20절입니다. 20.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방주 속으로 들어가는 것에 있습니다. 방주로 들어가는 길 만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 생명을 보존할수 있는 유일한 구원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방주가 완성되었을 때에 노아에게 방주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인생에 있어 제일 중요한 문제가 무엇입니까? 지금 내가 방주 안에 있느냐 아니면 내가 방주 밖에 있느냐? 라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지금 내가 이 세상에서 어떠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내가 지금 얼마나 건강하느냐? 내가 지금 얼마나 좋은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지금 내가 방주 속에 있는가? 방주 밖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올바로 대처하며 살아가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나뿐만이 아니라 나의 가족 모두가 다 이 방주 속에 있느냐 하는 문제도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만 방주로 들어가라!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의 뜻은 나만이 아니라 나의 온 가족이 구원받는 것에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31절입니다.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나님의 뜻은 나와 나의 가족들이 구원받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가족들이 이땅에서만 사는 인생으로 끝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가족들이 방주밖의 사람들로 나뉘어지기를 원하지 않으십니아. 나뿐만 아니라 나의 가족들이 구원받고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럼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셨다면 그것은 나를 통하여 나의 가족을 구원하시기 위함에 있습니다. 그럼으로 가족의 구원을 위해 포기하지 않는 마음과 행동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노아와 가족들은 방주안으로 들어갔습니다. 7절입니다. 7.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모두 몇 명입니까? 13절을 보시면 모두 8명인 것을 알수 있습니다. 13절입니다. 13.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노아와 그아들 세명 그리고 노아의 아내와 며느리 세명 모두 합해 8명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노아와 그 가족들이 방주를 짓는 모습을 하나님과 관계 없는 주변의 사람들이 보면서 노아와 가족들을 조롱하고 빈정되는 모습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드시 그렇지 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노아의 아버지 이름은 라멕입니다. 그리고 노아의 할아버지 이름은 므두셀라입니다. 지난 주에 저희들이 살펴보았지만 므두셀라의 아버지는 에녹입니다. 에녹은 첫아들인 므두셀라를 낳고 난 이후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니까 그의 자손들이 축복을 받았다는 교훈을 지난주에 우리는 배웠습니다. 그 축복을 받은 자손으로 므두셀라와 노아가 받은 축복을 살펴보았습니다. ‘므두셀라’가 가진 이름의 뜻은 ‘그가 죽을때에 심판이 온다’입니다. 그러니까 므두셀라가 나이 969세가 되어 죽었을 때 그해에 노아의 홍수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자, 여기서 우리는 노아의 할아버지 므두셀라의 자녀들과 노아의 아버지 라멕의 자녀들을 한번 생각해보십시다. 창세기 5장 25절 26절입니다. 25.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26.라멕을 낳은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라멕을 낳은 후 ... 자녀를 낳았으며’ 자, 그리고 창세기 5장 30절입니다. 30.라멕은 노아를 낳은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노아를 낳은 후 ...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러니까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방주를 지을때에 므두셀라와 그의 자녀들 그리고 라멕과 그의 자녀들이 노아 주변에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창세기 5장에 나오는 므두셀라와 라멕의 나이를 계산해보면 므두셀라는 노아의 홍수가 나던 해에 죽었고 라멕은 노아의 홍수가 나기 5년전에 죽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므두셀라와 라멕은 살아생전에 어떠한 모양으로든지 방주를 짓는일을 도왔을 것이라고 제 개인적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므두셀라과 라멕의 자녀들도 처음에는 아버지 때문 에서라도 방주를 짓는 일을 도왔을 수 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12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도중에 포기를 하고 자신들의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마치 조카 롯이 아브라함을 따라갔지만 가나안땅에 정착하지 못하고 도중에 소돔땅에서 정착하는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짓는 일에 불교 신자나 불신자가 돕는 일이 있을수 있는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하지만 구원은 교회안에서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믿는 성도들에게만 있는 것 입니다. 그러니까 노아와 그 가족들이 구원을 받은 것은 그들만 방주안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생명을 보존할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노아의 가족들 중에는 노아의 방주를 짓는 일에 게을리 한 사람도 있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방주안에 들어갔기 때문에 생명을 보전할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와 가족들에게 방주안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방주 안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

두번째로는 방주의 문이 항상 열려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16절 입니다. 16.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노아와 그 가족들 그리고 하나님의 택한 짐승들이 다 방주 안으로 들어가자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밖에 없는 그 방주의 문을 닫으셨습니다. 이제 이세상 사람들은 방주 속에 있는 자 들과 방주 밖에 있는 자들로 나뉘어졌습니다. 방주의 문이 닫히게 되면 더 이상의 구원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게 됩니다. 그러니까 방주의 문이 닫혀졌다는 것은 노아 당시의 사람들에게 구원받을 기회가 사라졌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므두셀라를 온 인류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아가게 하심으로 심판을 그만큼 늦추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노아가 방주를 짓는 120년 동안 그 기나긴 세월을 구원을 받을 기회로 주셨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가족들이 방주로 들어가고 난 이후에도 곧 바로 문을 닫지 않으십니다. 본문 4절입니다. 4.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그리고 그 뒤에 나오는 9절과 10절입니다. 9.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며 10.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하나님은 곧 바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120년을 기다리셨습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칠일을 더 기다려 주셨습니다. 노아의 가족들과 짐승들이 들어가고 난 다음에 일주일을 기다리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방주 안에 있고 나의 남편이나 나의 아내가 방주 밖에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방주안에 있고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방주밖에 있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 내 주변의 사람들이 다 방주 안에 들어오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시간이 많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제가 지금까지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면 시간이 정말로 짧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나보다 더 젊은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는 현실속에서 살아갑니다. 초등학생들이 나를 보면서 “아저씨 아줌마” 라고 부를 때 깜짝놀랐을때가 얼마전이었는데 이제는 ‘할아버지, 할머니’ 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시간은 너무나 빨리 지나갑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시간을 아끼며 살아야 하는데 특별히 구원에 관한 일에는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형편에 의해서 전도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할지라도 그 영혼을 위한 기도는 할수 있습니다. 그 기도 하는 것 마저 하지 않는다면 그사람에게는 아무리 많은 시간이 주어진다 할지라도 하루 아침이슬처럼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방주의 문은 항상 열려있지 않습니다. 방주의 문이 닫힌다는 것은 지상에서 성령의 사역이 끝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다 믿음을 갖게된 것은 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령의 사역이 끝날 때가 있습니다. 저는 지금이 노아와 그 가족들이 방주안에 들어가고 하나님이 방주의 문을 닫기 전인 칠일 동안의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방주의 문은 항상 열려 있지 않습니다. 11절과 12절입니다. 11.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12.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그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엄청난 양의 물이 한꺼번에 몰아 쳤던 것을 의미합니다. 큰 깊은 샘들이 터지고, 하늘의 창들이 열렸다는 말은 땅에서 물이 콸콸 솟아 오르고 하늘에서는 하늘의 창들이 열려 궁창 위에 물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저수지 둑 하나가 무너져도 한 마을이 순식간에 물바다가 되고, 사람들이 죽어 가는데, 온 세상의 모든 저수지들이 터지고, 하늘에 담고 있던 모든 비가 일순간에 내리면 누가 살아남겠습니까? 성경을 보면 누구 하나 방주가 있는 곳까지 달려오지 못했습니다. 누구하나 달려와 방주의 문을 두드리지도 못했습니다. 왜요? 너무나 갑자기 홍수의 심판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문이 닫혀지면 더 이상 기회는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지막날에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은 믿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마태복음 24장 37-39절입니다. 37.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우리가 사는 이세상의 마지막은 노아의 홍수때와 같은 모습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노아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끝까지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옛날 노아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은 오늘날 믿는 성도인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너와 네 온집은 방주안으로 들어가라’ ‘너와 네 가족은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 예수를 믿고 살아라’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심으로 말미암아 나와 나의 가족들이 예수안에서 구원받고 살아가는 축복의 삶을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