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인생의 마지막이 아름다운 사람

Author
kgmcc
Date
2022-08-14 03:44
Views
30
본문 : 사무엘 하 23장 1-5절

날짜 : 2022년 8월 14일

 

<사무엘 하 23장 1-5절>

1.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세워진 자,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가 말하노라

2.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3.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석이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4.그는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

5.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와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하게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

 

요즘에는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연락을 할때 가장 자주 듣게 되는 소식중의 하나는 바로 누가 병이 들어 병원에 입원했다는 내용입니다. 이제 나이가 60이 넘어가다보니 저나 제 아내의 가족들의 나이가 대부분 60, 70이 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나 아내의 가족들 중에는 지금 암투병 생활을 하는 분도 계시고 소장괴사로 인해 큰수술을 한 분도 있습니다. 주로 장과 연관된 병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으신 것을 봅니다. 이러한 시기일수록 인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하며 살아가야겠다고 하는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인생은 마지막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마지막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열정적으로 인생을 살아왔다 할지라도 인생의 마지막이 아름답지 못하면 추한 인생이 될수 있습니다. 솔로몬을 보십시오. 솔로몬이 평상시에 얼마나 멋지고 화려하고 지혜로운 인생을 살았습니까? 하지만 솔로몬 인생의 마지막은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기드온을 보십시오. 영적으로 어두운 사사시대에 사사로 부르심을 받고난후에 삼백명의 용사를 데리고 13만 5천 명의 미디안 군사들과 싸워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이 기드온을 이스라엘 왕으로 추대할려고 했을때 그는 하나님만이 참 왕이시다라고 말하면서 거절했습ㄴ다. 이렇게 기드온은 믿음의 사람이었고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했던 기드온 인생의 마지막은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대제사장의 옷인 에봇을 금으로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리고 후에는 우상을 숭배했고 또 많은 아내를 두어서 그의 자녀들이 무려 70명이나 될 정도로 가정생활이 문란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름다웠지만 그의 인생의 마지막은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삼손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신에 붙들린바 된 삼손을 그누구도 당해낼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멋지게 인생을 시작했던 삼손도 마지막엔 두눈이 뽑히고 블레셋사람들의 노리개가 되는 수치를 당하면서 최후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인생은 마지막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마지막이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 인생의 여정가운데 넘어짐이 있고 실수가 있다 할지라도 인생의 마지막이 아름다우면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아있게 되어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인생의 마지막이 아름다운 한사람을 보여줍니다. 그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다윗입니다. 우리가 잘아는 것처럼 다윗은 완전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허물과 실수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우리아 장군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그리고 간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죄를 감추기 위해서 밧세바의 남편을 최전선으로 보내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간음죄와 살인죄를 범한 사람입니다. 뿐만 아니 라 젊은 시절 때 사울왕의 핍박을 피해서 원수의 나라인 블레셋 땅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자신의 신분이 들통나니까 살아야 겠다는 생각에 미친 사람 흉내를 내면서 위기를 모면합니다. 이런 것을 보게 되면 다윗의 인생에는 약점과 허물과 그리고 넘어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마지막 인생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다윗이 인생마지막에 고백한 내용을 보면 그의 인생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알수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마지막 말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본문 1절 전반부입니다. ‘1.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다윗은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돌이켜 보면서 마지막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뿐만 아니라 열왕기상 2장을 보시면 다윗이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남기는 마지막 유언이 나옵니다. 열왕기상 2장 2-3절입니다. ‘2.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3.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다윗이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 솔로몬에게 남긴 유언은 크게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는 것입니다.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그리고 두 번째 유언은 모세가 기록한대로 지켜 행하라는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이 너를 형통케 하시리라‘ 는 유언입니다. 이 얼마나 멋진 유언입니까? 어떻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인생 마지막에 우리의 자녀들에게 이런 유언을 남길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저희 아버님과 나눈 마지막 대화를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계신 저희 아버님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사흘전에 저와 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당시 기력이 약해지신 아버님은 긴 대화를 이어가시기 힘든 것을 제가 알고 있었기에 저는 아버님이 간단한 대답만 하실수 있는 식으로 대화를 해나갔습니다. 그러니까 아버님은 제말만 듣고 ‘응’ ‘그래‘ 이런식으로 대답을 할수 있도록 제가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나마도 오래 이야기 할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해 채 1분이 되지 못하고 끊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끊기 전에 아버님이 무엇인가 하실려는 말이 있음을 제가 느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버지 저한테 하실 말씀이 있으세요?” 그러니까 아무런 말씀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을 바꾸었습니다. ’아버지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사셔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라도 만날 수 있지요“ 보통때는 제가 하는 이 말에 ‘응 그래’ 라고 대답하셨는데 그날은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한번더 ‘아버지 오래 건강하셔야 합니다’ 그리고는 통화를 끊었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통화이었고 사흘후에 아버지는 하나님의 품으로 가셨습니다. 저는 성경에서 나오는 다윗이나 야곱의 마지막 모습을 볼때마다 참 아름다운 마지막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부모가 자녀에게 신앙적인 마지막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인생은 정말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저도 자녀들에게 어떤 마지막 말을 해야 할까에 대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기 인생 마지막에 멋진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또 다윗은 인생의 황혼기에 자기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회고하면서 이런 아름다운 시를 지었습니다. 우리가 잘알고 있는 시편 23편입니다. ‘1. 여호와 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자기의 인생은 정말 파란만장했었지만 이제 자기의 인생을 되돌아 보니까 내게 부족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뒤에 나오는 내용도 너무 잘아시는 내용이고 시간관계상 생략을 하겠습니다만 마지막 6절에 뭐라고 고백합니까? ‘6. 내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지금까지 부족함이 없이 내잔이 넘치게 부어주신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앞으로의 나의 앞길에도 계속 되어질 것이다. 이렇게 고백을 하고 있는 다윗 인생의 마지막은 너무 아름다운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다윗의 마지막 말이 나옵니다. 이 본문은 다윗이 인생의 황혼시기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한 고백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보면서 왜 다윗의 마지막이 아름다운 사람이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다윗의 마지막이 왜 아름다웠습니까?

1.자신의 인생이 하나님의 은혜이었음을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1절 전체입니다. ‘1.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세워진 자,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가 말하노라’ 지금 다윗은 자기 자신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높이 세워진 자’ ‘기름 부음 받은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자‘ 이것은 어떻게 보면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사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요? 높이 세워진자. 이것은 스스로 높아졌다는 것이 아닙니다. 높이 세워진 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높이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어떤 사람입니까? 베들레헴 작은 마을에서 양을 치는 목동의 신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거대한 골리앗을 넘어뜨릴수가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스라엘 왕이 될 수가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난이후에 전쟁할때마다 연전 연승을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다른 나라에 조공을 바쳤던 이스라엘이 오히려 조공을 받는 나라가 될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높이 세워주셨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스스로 높아진 것이 아닙니다. 두 번째로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 받은자라고 고백합니다.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다윗은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내가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말을 하지 않고 야곱의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다라고 고백합니다. 왜요? 자신이 기름 부음 받고 왕이 된 것은 사무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이스라엘의 노래를 잘하는 자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노래 가사를 잘 만들었을뿐만 아니라 노래도 잘 불렀습니다. 다윗은 성령의 감동을 입어서 노래를 지었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사울 왕앞에 수금을 타며 노래를 불렀을때에 사울에게 있던 악귀가 떠나가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노래를 잘하는 자라고 표현한 것은 자기 자랑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이렇게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높이 세워진 자이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기름부음을 받은자이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노래를 잘 만들고 잘 부르는 자 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이 모든 축복은 내가 재능이 있고 똑똑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고 고백을 한 것입니다. 본문 5절입니다. ‘5.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와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하게 하셨으니... ’ 자 여기서 주어는 무엇입니까? 주어는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동사는요 마지막을 보시면 ‘하셨으니‘ 입니다. 그러니까 주어와 동사를 연결시키면 ’하나님이... 하셨으니‘ 가 됩니다. 다윗은 자기가 살아온 인생을 회고해보면서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셨다‘ 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이 아름다운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이 하셨습니다. 이렇게 고백을 할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땅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 나는 지금까지 성실한 인생을 살아왔다,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 이렇게 고백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귀한 고백은 ’이 모든 일은 다 주님이 하셨습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성실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한 인간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연약한 가운데서도 성숙한 자녀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한 다윗이었기에 그의 마지막은 아름다웠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 인생의 마지막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었음을 고백할 수 있게 됨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의 마지막이 아름답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왜 다윗은 마지막이 아름다운 인생이었습니까?

2.특별한 성령의 감동하심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2절입니다. ‘2.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여호와의 영, 즉 성령이 자기 자신을 통하여 말씀하셨다고 다윗은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여호와의 말씀이 내혀에 있다고 고백합니다. 이표현은 다윗이 성령의 특별한 감동과 영감속에서 살아왔음을 의미합니다. 사실 다윗이 쓴 시편을 읽어보면 성령의 특별한 감동과 역사를 통해서 쓰여지게 된 내용인 것을 알수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과 역사하심이 없이 어떻게 미리 앞날을 예언하는 그런 시를 쓸수가 있겠습니까? 예를 들면 시편 22편은 메시아가 수난을 받게 되는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천년전에 다윗은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손과 발에 못박혀 매달리시게 될 것을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시편 22편 16절 하반부입니다. ‘16.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시편 22편 18절입니다. ‘18.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을 때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의 겉옷을 나눠가지고 속옷은 제비뽑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구체적으로 다윗은 예수님이 받으신 고난을 예언했습니다. 성령의 특별하신 감동이 없이 일천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난후에 일어난 이런 예언의 시를 쓸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이 성령님의 특별하신 감동과 감화가운데서 살아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과거뿐만 아니라 지금도 성령님의 감동 감화속에서 살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본문 2절을 다시 보시면 ‘2.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말씀하심이여’ ’말씀하셨음이여‘가 아니라 ‘말씀하심이여’입니다. 지금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의 말씀이 내혀에 있도다’ ‘있었도다’ 가 아니라 ‘있도다’ 지금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과거부터 시작해서 인생의 황혼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순간에도 성령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나를 통해 말씀하시고 그리고 그 말씀이 내 혀 가운데 있다면 그 누가 나를 업신 여길수가 있겠습니까? 누가 나를 무시할수 있겠습니까?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은 늘 성령의 감동과 감화가운데 살아갈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나이가 들고 인생의 황혼이 되었다 할지라도 성령은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생은 마지막날까지 멋지고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바라옵기는 늘 성령의 감동과 역사하심속에서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왜 다윗은 마지막이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까?

3.메시야의 왕국을 기다리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본문 3,4절입니다. ‘3.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석이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4.그는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 다윗은 메시야가 통치하시는 그날을 소망하며 살았습니다. 주님이 통치하시는 메시야는 어떠한 나라입니까? 첫째는 ’돋는 해의 아침 햇빛 같고‘ 입니다. 아침해가 쏟아오르면 방금까지 칠흑같은 어두움은 한순간에 물러가고 사라져 버립니다. 어두움 밤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죄악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나라가 임하면 어둠의 권세 죄악의 권세가 사라지고 물러가게 됨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로 ’구름없는 아침 같고‘ 입니다. 아침에 해가 돋자 어둠이 사라지고 구름한점없는 맑은 하늘이 보였습니다. 여기서 구름은 근심과 염려 억압을 상징합니다. 주님이 통치하시게 되면 나를 억압하고 두렵게 하고 있는 온갖 것들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메시야 나라의 특징은 ’비 내리는 후의 광선으로 인하여 땅에서 돋는 새풀‘ 입니다. 농사를 지어보신 분은 잘아실 것입니다. 씨앗을 뿌렸는데 새싹이 나오지 않다가 비가 오고 난후에 땅을 보니까 땅에서 돋는 새풀이 보입니다. 제가 집 뒷마당에 해마다 고추와 오이 그리고 상추등 여러 가지를 심습니다만 비가오고 난후 햇살이 비치게 되면 그 작물들이 얼마나 잘 자라는지 모릅니다. 비가 내린 후에 햇빛이 비칠때 땅에서 움이 돋는 새풀은 새로운 생명을 상징합니다. 주님이 오시면 땅에서 돋는 새풀같이 새로운 생명이 생겨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이러한 메시야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았습니다. ’메시야가 오시면 의로운 통치를 시작하실 것이다. 아침해가 돋을때에 비치는 햇빛으로 인하여 모든 죄악의 어두움은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구름 한점없는 맑은 하늘처럼 우리의 온갖 근심과 염려의 구름들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비가 온후 햇살에 의해 돋아나는 새풀처럼 수많은 영혼들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아나는 창조의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 이것이 다윗이 인생 마지막날에 마음속에 가지고 불렀던 노래 내용입니다.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도 다윗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간직하며 노래를 불렀던 메시야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며 살아갈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은 환경이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의 통치하시는 그날을 소망하며 그 어려운 환경들을 극복할수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를 보십시오. 예레미야 선지자는 망해가는 조국의 현실을 보면서 많이 울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눈물의 선지자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런 환경속에 있었던 예레미야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예레미야 애가 3장 22-23절입니다. ‘22.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롭다’ 지금 현실은 나라가 망해서 왕궁과 성전이 불에 탔습니다. 그리고 똑똑하고 재능이 있는 남유다 사람들은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기가막힙니까? 하지만 주님이 예레미야의 마음을 통치하시니까 아침마다 죽을 지경이 아니라 아침마다 새롭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내 마음을 주장할 때 일어나게 되는 현상입니다. 환경을 보고 사람을 보면 기가 막히고 눈물만 나오는 상황이지만 주님이 마음을 통치하시고 주장하시니까 매일 아침마다 새롭고 신선한 것입니다.

일본에 '다하라 요네꼬(Yoneko)'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요네꼬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그런데 여고 삼학년때 어머니가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때라 방황을 하게되었고 마침내 자살을 시도합니다. 역에 전차가 들어올 때 뛰어들었는데 두눈을 떠보니 두발과 왼쪽 손이 잘려나갔습니다. 두손과 두발중에 남은 것이라고 오른손에 붙어있는 손가락 세 개뿐 이었습니다. 그이후 이 요네꼬는 기회가 있을때마다 자살을 시도했지만 번번히 실패를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마크라고 이름을 가진 미국인 선교사가 병원에 있던 이 요네꼬를 찾아옵니다. 그이후 계속해서 찾아온 이 마크 선교사에 의해 요네꼬는 마음을 열어 예수님을 영접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당시 이 요네꼬의 일기를 보면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왜 이렇게 다를까?’ 환경은 변한 것이 없는데 지금 자기 마음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루하루가 새롭고 신선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책을 썼는데 그 책제목이 ‘산다는 것이 황홀하다’ 입니다. 두 다리와 한쪽 팔이 없어도 주님이 자신의 삶을 다스리고 통치하시니까 산다는 것이 황홀할 정도로 신선하고 새롭다는 것입니다. 그후에 이 요네꼬는 미국인 사업가 듀프렌씨의 도움으로 양다리에 의족을 달아서 정상인처럼 걸을수 있게 되고 그후에 믿음이 있는 청년을 만나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그 청년은 목사가 되었고 이 요네꼬는 사모가 되어 황홀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임재속에 살아가게 되면 우리의 삶이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힘들지 않게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힘이 드는게 인생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임재하심과 주님의 다스림 속에 살아가게 될때 매일매일의 삶이 새롭고 신선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즉흥적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통해서 이루어 나가시기 때문입니다. 5절입니다. ‘5.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와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하게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 ‘하나님이 나와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저와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다는 언약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언약을 해주셨기에 이세상 그 어떤 것에도 무너지지 않는 견고하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이 이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내게 하신 그 언약을 이루실 것이다 라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언약을 이루실 것이다. 비록 내 생전에 내가 소원하던 것을 미처 다 보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내가 소원하고 간구하던 바를 이루어 주실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주님을 믿을 때 나는 하나님이 약속해주심에 때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래서 자녀가 된 내 소원과 간구하심을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은 반드시 이루어 내실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 인생은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약속하시메 기반을 두고 살아가는 인생의 마지막은 아름답고 행복한 것입니다. 다윗은 떠나갔지만 하나님은 다윗이 꿈꾸고 소원했던 언약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내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언약을 이루어주신 것을 경험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이 이세상을 떠날 때까지 못 이루게 된 마음의 소원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심에 따라 내 마음의 소원을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세상을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마지막 인생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입니까?

인생은 마지막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아름다워야 합니다. 다윗처럼 우리의 인생에도 넘어짐이 있고 실수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있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마지막은 아름다웠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지내온 인생을 회고하면서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다윗은 성령의 감동하심과 성령의 역사하심속에서 지내왔습니다. 그리고 메시야 그리스도가 오심을 소망하며 살았습니다. 바라옵기는 우리도 다윗과 같은 삶을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의 마지막도 다윗처럼 아름다운 인생이 될 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