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Author
kgmcc
Date
2022-08-21 03:51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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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한복음 14장 15, 21절

날짜 : 2022년 8월 21일

 

 

<요한복음 14장 15, 21절>

15.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21.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명령에 늘 순종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기 강단에 서있는 저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순종하는 것은 힘들고 어렵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렇게 말하는 성도님들을 본적이 없습니다. “순종하는 것은 저에게는 누워서 떡 먹기입니다” “순종은 식은 죽먹는 것과 비슷합니다” “땅 짚고 헤엄치는 것처럼 순종하는 것이 쉽습니다”. 이렇게 말하시는 분이 계시면 아마도 그 사람은 천사이거나 아니면 정신병원에 가야 할 필요가 있으신 분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종하는 것이 힘들고 어렵다는 생각을 하며 신앙생활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순종하는 것이 왜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순종에는 반드시 대가가 지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순종하기 위해서는 시간이나 물질이나 그리고 나의 이 육신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순종할 수 없습니다. 아무런 댓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 누구라도 ‘아멘’하며 순종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 대가를 지불하면서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 하면서 순종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주님의 말씀 앞에 늘 순종할 수 있습니다.

□ 즐겨 순종하라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순종은 그냥 단순한 순종이 아닙니다. 이사야 1장 19절입니다. “19.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사1: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순종은 즐겨 순종하는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하는 순종입니다. 하기 싫어도 억지로 해야하는 율법적인 순종이 아닙니다. 순종하지 않았다가는 징계를 받을것 같고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 같으니까 어쩔 수 없이 마지 못해 하는 순종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순종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즐겨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는 순종입니다.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언제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거역하고 반역을 할 때 입니까?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와 많은 짐승들을 제물로 드리며 제사를 드릴 때입니다. 다시 말해 마음이 없는 형식적인 예배를 드릴 때 그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꾸짖으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앞에 나오는 이사야 1장 11절입니다. “11.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사1:11)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그리고 12절입니다 “12.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사1:12)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계속해서 13절 전반부입니다. “13.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사1:13) 그리고 그다음 14절을 보시면 “14.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사1:14)

자, ‘무수한 제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헛된 제물’ ‘다시 가져 오지 말라’ ‘내게 무거운 짐이라’ 이러한 단어들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담겨있지 않는 형식적인 예배를 싫어하시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불의와 죄악을 행하면서 경건의 모양만 가지고 드리는 위선적인 예배를 싫어하십니다. 요즘 방송에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사회자가 별로 성의가 없이 대답하는 상대방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영혼이 없는 대답을 하지 마세요’ 무슨 의미입니까? 마음이 담겨있지 않은 건성으로 말을 하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인간들 사이에도 영혼이 담겨 있지 않은 행동을 하면 싫어하는데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쁨으로 즐겨 순종하지 않는 순종은 하나님은 싫어하십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도 순종은 하지만 억지로 마지못해 불평하면서 순종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순종은 순종 그 자체보다 어떤 마음으로 순종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가식적인 순종은 엄밀한 의미에서 참다운 순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순종은 즐겨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즐겨 순종하는 자가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게 되는 것 입니다.

□ 사랑으로 순종하라

그러면 누가 하나님의 말씀에 즐겨 순종할 수 있습니까?

요한복음 14장 15절입니다. “15.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사랑하는 자가 순종하게 될 것 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사랑과 순종은 수레의 양 바퀴와 같습니다. 사랑과 순종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사랑은 하지만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사랑이 아닙니다. 그리고 순종은 하지만 사랑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참 순종이 아닙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입니다. “3.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한일서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기 때문에 순종하며 계명을 지키는 것이니까 그 어떤 계명도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그 사람이 얼마나 말씀 앞에 순종하느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입술로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을 할지라도 삶의 순종이 없다면 그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결코 아닌 것입니다. 순종의 동기에는 대략 세 가지로 나눌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무서워서 순종하는 것이고 둘째는 내가 필요해서 순종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사랑하기 때문에 행하는 순종입니다.

여러분, 지금 내가 순종하는 동기는 무엇입니까? 무섭고 두려워서입니까? 아니면 내가 무엇인가가 필요해서이기 때문 입니까? 그것이 아니라면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까? 우리의 순종의 동기는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참되고 성경적인 순종은 예수님이 베풀어주신 사랑에 대한 나의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할머니가 고속버스에서 내려 커다란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 보따리 안에는 김치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반찬들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제법 무거워 보이는 보따리였지만 할머니는 하나도 안 무거운 듯 환한 미소를 띠우며 웃으며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도시에 가서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주는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보따리라도 억지로 머리에 이면 무척 무겁습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이게 되면 가벼운 것입니다.

야곱은 라헬을 너무 사랑하였습니다. 그래서 외삼촌의 딸 라헬을 얻기 위해 외삼촌 집에서 7년을 봉사했습니다. 그런데 그 칠년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습니까? 창세기 29장 20절입니다. “20.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창29:20) ‘칠년을 며칠같이 여겼더라’ 어떻게 해서 칠년을 며칠같이 여겼습니까? ‘그를 하는 까닭에‘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에 칠년을 며칠같이 여기고 외삼촌 라반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칠년이 다된 그날 밤에 외삼촌 라반은 라헬 대신에 언니 레아를 야곱에게 보내 하룻밤을 지내게 합니다. 외삼촌 라반에게 속은 것을 알게 된 야곱이었지만 라헬을 사랑했기에 칠년을 더 봉사합니다. 창세기 29장 30절입니다. 30.그가(야곱이)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더라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칠년동안 라반을 섬겼더라’

성경은 외삼촌 라반이 야곱을 속였던 것을 강조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라반에게 속았던 야곱이 사기를 당했다고 난동을 피우거나, 이를 갈며 훗날에 복수를 다짐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칠년동안 라반을 섬겼던 것을 강조합니다. 사기결혼을 당한 현실이 너무 억울하고 억장이 무너지지만 라헬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장 컸고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야곱은 자기가 만난 그 현실을 극복해나갈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넘치면 사기꾼이자 철천지 원수와도 같은 라반의 말에도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 니다.

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생명으로 내가 진 죄값을 지불하신 예수님이십닏. 그 예수님이 베푸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우리는 그 주님을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순종의 동기가 사랑이어야 할 때 도중에 어떤 장애물을 만나게 되어도 끝까지 순종할 수가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세 번이나 반복하여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왜 이렇게 물으시는 것입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그 부끄러운 죄를 드러내기 위해서입니까? 만일 그런 의도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예수님은 이렇게 물어보았을 것입니다. ‘베드로야 그날 밤에 네가 나를 세 번이나 부인했는데 너 왜 그랬니?’ 그리고 난 이후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러한 순서로 질문을 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날 새벽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세 번 물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의 동기는 바로 사랑이어야 함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섬기고 봉사하는 이 모든 순종의 동기는 바로 사랑이어야 한다는 교훈을 우리는 얻게 됩니다.

우리는 대개의 경우 섬김과 봉사를 할 때 그 동기보다는 그 결과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 일의 결과보다 그 일의 동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그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하는 것보다 왜 그 일을 하였느냐를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얼마나 세련되고 얼마나 아름답게 찬양을 하느냐 하는것 보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찬양을 하느냐 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보십니다. 얼마나 많은 헌금을 드렸느냐 하는 것 보다 어떤 마음으로 헌금을 드렸느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얼마나 순종했느냐 하는 것보다 어떤 마음으로 순종했느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에게 용기가 있느냐? 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너에게 믿음이 있느냐’ 라고도 묻지 않았습니다. 물론 용기가 중요하고 믿음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용기나 충성이나 믿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주님에 대한 사랑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음성을 듣는 삶’의 저자 인 조이 도우슨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핵심은 성공이 아니라 순종이다.". 이 조이 도우슨이 말한 대로 우리의 핵심은 성공이 아니라 바로 순종이어야 합니다.

꽃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물을 주기를 싫어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나는 꽃을 좋아해” 라고 말하면서도 그 꽃에 물주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그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말씀이 지금 나에게 쓰고 그래서 당장 내뱉고 싶은 마음이 들지라도 순종해야 합니다.

제가 이곳 미국에 오기 전 한국에 있었을 때 아파트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당시 제가 살고 있던 아파트는 5층 건물이었는데 저희 집은 바로 5층에 있었습니다. 그 아파트에는 엘리베이트가 없었기 때문에 하루에도 몇번씩 5층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해야 했습니다. 무더운 여름철에는 숨이 턱턱 막힙니다. 그런데 제가 계단을 올라가기 힘들고 귀찮다고 계단을 올라가는 수고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집에 계신 부모님을 만날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준비해놓으신 식사도 하지 못하게 되고 내 방에서 쉴수도 없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내게 어떠한 고통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천국을 향한 계단을 올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내 사랑하는 주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주님이 나를 위해 예비해놓으신 곳에서 영원히 쉴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 사랑으로 순종하는 자가 받는 복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누릴 수 복은 어떠한 것입니까?.

첫째로,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는다.

요한복음 14장 21절 전반부입니다. “21.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요14:21절a)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여기서 내 아버지는 누구이십니까? 이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말해도 그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고 하는 어느 목사님의 설교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가정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라는 것입니다. 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시달립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랑을 받지 못해서입니다.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사랑받을 때 행복함을 느끼고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때 존재의 이유를 알게 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때 희열을 느낍니다.

이렇게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아도 행복해지고 삶의 여유가 생기고 희열이 생기는데 천지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의 사랑을 받으며 인생을 산다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피조물의 최고의 행복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생의 행복은 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고백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 후반부입니다 “1.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 로마서 8장 35절입니다. “35.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롬8:35)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한일서4:16)

“10.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요한일서4:10)

이렇게 성경은 여러 군데에서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누가 느끼면서 살아갑니까? 누가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며 살아갑니까? 그것은 바로 순종하는 자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자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더 느끼고, 하나님의 사랑을 더 누리며 살아가는 축복을 받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복은 어떠한 것입니까?.

둘째로, 자신을 나타내 보여주신다.

요한복음 14장 21절 후반부입니다. "21.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절b)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여기서 나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니까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면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를 사랑하여 자기 자신을 우리 가운데 나타내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사실 사랑하면 안보이던 것이 보이게 됩니다. 사랑하지 않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누군가를 사랑하면 보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눈물도 보이고, 아픔이 보이고, 웃음도 보이고 기도의 제목이 무엇인지 필요가 무엇인지 보입니다. 없어서 안 보였던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것뿐입니다. 하루는 학교에서 수백명이나 되는 전체 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여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진 속에 들어있는 자기 자식을 부모님들은 기어이 찾아내는 것을 봅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아이가 그아이같고 해서 다 똑같아 보이는데 부모님 눈에는 자기 자식이 보이는 것입니다. 왜요? 사랑하며 눈에 보이게 되어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즐겨 순종하면 그이전에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보여지기 시작합니다. 주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보여지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신앙세계가 열려지기 시작합니다.

말씀을 묵상할 때 주님의 음성이 더 분명하게 들려옵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나타내 주시면 의심이 사라지고 절망이 사라지고 믿음과 소망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기에 즐겨 순종하면 삶의 현장에서 성령의 나타남을 볼 수 있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나를 위해 일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뜻을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뜻을 사랑으로 순종하는 자들에게 나타내 보여 주십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이전보다도 더욱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나가십시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즐겨 순종생활을 해나가십시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이 즐겨 순종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나타나게 되는 놀라운 일들을 보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