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Author
kgmcc
Date
2022-09-11 02:03
Views
11
본문 : 마태복음 19장 16-22절

날짜 : 2022년 9월 11일

 

<마태복음 19장 16~22절>

16.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을 지키라

18.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19.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20.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1.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오늘 본문은 어느 한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이런 질문을 하면서 시작됩니다. 본문 16절입니다. 16.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자 예수님에게 와서 이렇게 질문을 하는 이 청년은 어떤 사람입니까?

첫째로, 이 청년은 영생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 청년이 예수님에게 찾아간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내가 무슨 선한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영생을 얻으리이까?“ 영생을 얻기 위해서 이 청년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이 청년이 영생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영생이라 할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땅을 떠나고 난 이후에 영생을 누리는 사람과 영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가는 곳은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인들을 보면 영생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당장 먹고 사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요즘에 인플레이션이 얼마나 많이 오르고 있습니까? 그로서리 가게나 인터넷에서 무엇을 하나 살때마다 가격이 이전보다 올랐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됩니다. 게다가 금리 인상까지 올라가니 날이 갈수록 살아가는 것이 힘들어 지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보니 많은 사람들이 지금 당장 먹고 살아가는 문제에 매달려서 영생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이가 든 사람보다는 젊은 사람들이 먹고 살아가는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젊은 사람들은 취직을 해서 돈을 벌어서 집도 마련하고 결혼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젊었을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신나게 먹고 마시고 하나뿐인 인생을 즐기며 살아갈려고 합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이 젊은 청년은 달랐습니다. 이 청년은 젊었지만 영생에 대한 관심이 있었습니다. 현실보다는 내세에 더 관심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와서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하여 물었던 것입니다.

 

둘째로, 사회적 지위와 많은 재물을 가진 사람입니다.

본문과 같은 장면이 누가복음 18장 18절에도 나옵니다. 눅 18장 18절입니다. 18.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니까 이 청년은 그지역 회당의 관리이거나 아니면 로마 정부에 의해 임명된 정부관리일 수 있습니다. 어떤 성경학자는 ‘아마도 이 청년은 산헤드린 공회원일 것이다’ 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산헤드린 공회원은 오늘날 국회의원과 비슷한 신분이니까 상당한 사회적 신분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렇게 이 청년은 사회적인 신분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돈도 많은 부자였습니다. 본문 22절 전반부입니다. 22.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재물이 많으므로’ 그리고 누가복음 18장 23절 전반부입니다. 23.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큰 부자이므로’ 그러니까 이 청년은 돈이 많은 부유한 계층의 사람입니다. 요즘에 돈이 많은 부자들을 보면 올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부자가 된 사람이 많은데, 이 청년은 올바른 방법으로 부자가 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 부자 청년은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을만한 신분에 있었고 많은 재물을 가진 부자이었습니다.

 

셋째로, 도덕적이고 율법적인 사람입니다

이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선생님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라고 물을 때 예수님은 "네가 영생을 얻을려면 계명을 지키라" 고 말씀하시면서 계명의 내용을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이 부자 청년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본문 20절입니다. 20.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데" 그러니까 이 청년은 올바르게 인생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만큼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이렇게 의미심장한 말을 더 붙여서 예수님에게 말합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그러니까 이 청년은 자신이 지금까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표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 도덕적으로,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물질적으로 뭔가 부족함이 없는 삶을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습니까? 너무 많은 죄를 지어서 입니까? 아닙니다. 죄가 많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문제는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변을 보면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그리고 책임감이 있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오히려 주님을 믿지 못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상식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한 말은 철두철미하게 지켜나갑니다. 그래서 주변의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 한 말을 오히려 믿는 성도들보다도 더 신뢰를 하고 인정을 할때가 있습니다. 가정적이고 매사에 책임감이 있고 그리고 주변 이웃들에게 인격적인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보시기에 그런 사람에게 한가지 부족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한가지 부족함을 이 청년에게 깨닫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이 청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1절 전반부입니다. 21.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러자 이 부자 청년은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떠나면서 본문은 끝이 납니다. 22절입니다. "22.그 청년은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여 가니라" ‘근심하여 가니라’ 왜 이 청년은 근심하며 예수님의 곁을 떠나갔습니까? 오늘 본문은 이 청년을 떠나간 이유를 재물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재물이 많았기 때문에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 청년에게는 큰 근심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부자 청년은 모든 면에서 자신이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주님은 이 청년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 부자 청년에게 있어서 한가지 부족한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 부자 청년이 가진 문제점은 물질에 대한 사랑, 재물에 대한 집착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부자 청년은 돈을 사랑했기에 예수님의 곁을 떠났다 라고 주장합니다. 한편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이런 요구하신 것은 아닙니다. ‘네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 라는 말씀을 모든 사람들에게 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부자 청년에게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이 부자 청년에게만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신 것입니까? 20절을 다시한번 보시겠습니다. 20.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이청년은 자신이 구원받고 영생을 누리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청년에게 이런 마음이 오히려 영생을 얻고 구원을 받는것에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 22절 전반부입니다. 22.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 ’네게 아직도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그러니까 예수님이 보시기에 이 부자청년에게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아직도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이 부자 청년이 가진 아직도 한가지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합니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이 부자 청년이 아직도 한가지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1.영생은 나의 선행과 나의 노력에서 오는 것이 아님

이 부자 청년은 올바르게 인생을 살아온 도덕적인 사람입니다. 어려서부터 십계명을 지키면서 성장했고 부자가 된 이후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는 선한일을 하며 살았습니다. 이 청년이 예수님에게 나아가 이렇게 질문합니다. 16절 후반부입니다. 16.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내가 무슨 선한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러니까 이 부자 청년은 영생은 자기 자신의 선행과 노력을 해서 얻을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부자 청년이 가지고 있는 영생을 얻을수 있다고 하는 그 차원에서부터 대답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웃사람들에 관한 계명이 기록되어있는 5계명에서부터 10계명의 내용을 말씀하신후에 이렇게 한마디로 정리하여 말씀해주십니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그러자 이 부자 청년은 ‘선생님이 방금 말씀하신 그 모든 십계명을 제가 다 지켰습니다. 그런데 영생을 얻기에 아직도 부족한 것이 저에게 있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그당시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라고 하는 말씀은 ‘가난한 이웃사람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라‘ 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이 부자 청년은 자신이 가진 물질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부자청년이 특별히 재물에 대한 탐심이 많아서 예수님의 곁을 떠났다고 쉽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만일에 우리가 이 부자 청년과 같은 입장이었다면 우리들중 대부분은 이 부자 청년보다도 못한 행동을 했을수도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구제는 커녕 계명도 제대로 지키지도 못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돈이 많고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온갖 세상 재미에 푹 빠져 영생에 대해 고민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영적인 갈증도 느끼지 못하며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이 부자 청년은 의인이었고 영적으로도 아주 성숙한 사람이라 할수 있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라고 질문을 한 것은 ’아무리 어려운 계명이라할지라도 영생을 얻기 위해서라면 지킬 자신이 있다‘ 는 의미입니다. 어떠한 어려운 계명이라 할지라도 지켜서 영생을 얻을수 있는 자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문 21절입니다. 21.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내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내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같은 장면이 나오는 마가복음 10장 21절입니다. 21.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네게 아직도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내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누가복음 18장 22절을 보시면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 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은 ’네가 가진 전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빈털터리 거지가 되라‘ 는 의미입니다. 남에게 구제를 베풀며 살아가던 입장에서 이제는 남이 베풀어주는 구제를 받으며 살아가는 자리로 떨어지라’ 는 의미입니다. 쉽게 말하면 ’빈털털이 거지가 되는 한이 있어도 영생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거지가 되느니 차라리 영생을 포기할 것인가‘ 이 둘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자 청년은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 일 것 입니다. 영생을 위해서 내가 가진 전 재산을 다버리고 거지로 살아가겠다는 사람은 이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물론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 거지는 그럴수 있겠죠. 하나뿐인 빈 깡통만 버리면 되니까요. 그런데 예수님이 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이 부자 청년이 자신의 선행과 자신의 노력으로 영생을 얻을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네 전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빈털터리 거지의 신분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네가 정말 모든 계명을 다 지켜서 영생을 얻을 자신이 있느냐? 그렇다면 지금 이 계명도 네가 지켜라‘ 라고 하면서 강하게 되 받아치신 것입니다. 선행과 계명을 지켜서 영생을 얻는 길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예수님은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며칠전에 기독교 잡지를 보니까 오늘날 미국 목회자들중 3분지 1이 되는 숫자가 착하게 살고 선행을 하면 천국에 갈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설문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믿음이 아니라 선행으로 천국에 갈수 있다고 믿는 목회자가 3분지 1이 된다면 일반인들은 훨씬 더많은 숫자가 선행으로 천국에 들어갈수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어떻게 대답을 하십니까? ‘그래? 착하고 구제를 하며 살아가면 영생을 얻을것으로 생각하니?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선행과 구제는 이런것이야. ’네가 가진 전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라. 그리고 빈털터리 거지가 되어 나를 따라와야만 해. 그래야 영생을 얻을수가 있어‘ 그러니까 우리 인간이 생각하고 있는 착하고 선행하는 정도와 주님이 생각하시는 착함과 선행에는 엄청난 괴리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본문에서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에 우리는 ’내가 영생을 누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하는 모양이다‘ 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의미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아닙니다. 오늘날 이단 종교는 예수님이 하신 이말씀을 근거로해서 자기가 가진 재산을 다 팔아 하나님께 바쳐야 천국에 갈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영생은 자기 재산을 다팔아서라도 가져야 할만큼 귀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밭에 숨기인 보화를 발견한 농부나 극히 값진 귀한 진주 하나를 찾은 진주장사는 자기 재산을 다팔아 그 보물과 그 진주하나를 차지했던 것입니다. 그만큼 귀한 가치가 있는 것이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의 의미는 내가 가진 재산을 다 팔아 남을 구제한다 할지라도 나를 따르지 않으면 구원을 얻을수 없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네가 구원자가 필요없는 선한 사람이 아니라 구원자가 필요한 죄인임을 깨닫아야 한다” 는 것입니다. 이 부자 청년에게 아직도 부족한 한가지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나는 도저히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수 없는 죄인이다‘ 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는 사실 그 하나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 같아야 들어간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은 바로 그때 그대 회개를 하고 믿음을 가지는 것에 있습니다. 이와같이 천국은 회개와 믿음이 없이는 들어갈수가 없는 나라입니다. 잘못했을 때 용서를 구하는 마음은 어린아이가 어른보다는 훨씬 더 쉽게 그리고 훨씬 더 잘합니다. 그리고 용서에 대한 말을 들었을 때 어린아이들은 그대로 믿고 신뢰합니다. 이 부자 청년은 온갖 선한 행동을 했습니다. 하지만 재물에 대한 탐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한가지 사실로 인해서 ‘너는 하나님나라에 갈수 없는 죄인이다’ 라는 사실은 주님은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착하고 선행을 하며 살아왔다 할지라도 우리는 단한가지 죄를 짓는 것만으로도 죄인이 됩니다. 야고보서 2장 10절입니다. 10.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단 한번의 거짓말이나 교만한 마음으로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죄인이 되어 천국에 들어갈수 없습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영생을 얻는 것은 나의 선한 행위나 나의 노력의 결과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 부자 청년은 자신의 노력으로 영생을 얻는 길을 갈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인간으로서는 지켜나갈수 없는 도저히 불가능한 계명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가지 부족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착하게 살고 선행을 하며 살아가면 구원받아 영생을 누리며 천국에 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부자 청년은 자신의 생각이 어리석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노력으로는 영생을 얻기가 도저히 불가능한 것임을 솔직하게 고백해야 했습니다. 어린아이들처럼 쉽게 그자리에서 잘못 생각했음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했습니다. 그 자리에 엎드리면서 “예수님,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인간으로써 온전하게 선을 행할 수 없는데 저는 제가 할 수 있다고 자신 만만하게 살아왔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이렇게 고백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부자청년은 근심하면서 예수님의 곁을 떠났습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우리는 언제나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내가 잘못 생각했을때 솔직하게 용서를 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이 부자 청년이 이직도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2.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서 모름.

예수님께서는 슬퍼하고 근심하면서 돌아서 가고 있는 부자 청년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4절입니다,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놀라워 하면서 저렇게 어릴때부터 율법을 잘 지켜온 저 청년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 누가 구원을 받을수 있겠습니가? 라고 묻습니다. 본문 25절입니다. 25.제자들이 매우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누가 구원을 얻을수 있는가 하니’ 그때 예수님께서 이 부자 청년 사건이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이 되는 말씀을 하십니다. 26절입니다. 26.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사람으로는 할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수 있느니라’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인간이 영생을 얻게 되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사람의 힘으로 할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아무리 착하게 살고 선행을 하며 살아도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구원을 받을수 없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물속에 빠져 들어가는 사람이 자기 머리를 쥐고 올린다고 해서 물위로 올라올수 있습니까? 누가 외부에서 머리를 잡고 건져주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께서는 죄와 허물로 인해서 그 죄값으로 죽어야 하는 우리 인간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루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선물로 주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선물은 어떻게 받습니까?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받으면 됩니다. 선물을 제일 잘 받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어린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은 선물을 주면 그냥 잘 받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선물을 받으면 이게 선물인가? 뇌물인가? 한참 고민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선물을 그냥 받습니다. 주면 주는 대로 감사하며 다 받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수 있는 사람은 바로 이러한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이라고 예수님은 본문 앞에서 말씀하십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선물은 왜 주는 것입니까? 선물을 주는 그 사람이 자기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서 선물을 받게 된 이유는 단하나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착하고 선하게 살아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나의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는 사실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물로 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이 선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착하고 선하게 살았기 때문에 의인이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일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너는 의인이야’ 라고 인정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의인이야’ 라고 인정해주셨기 때문에 의인이 들어갈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3장 23, 24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자 되었느니라’

그럼으로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은자가 된 것은 즉 의인이 된 것은 착하고 선한 행동이 아니라 우리가 믿을 때 하나님께서 그냥 의롭다고 인정하셨기 때문에 의인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의롭다고 인정하시면 우리는 의인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성도들은 구원을 받았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착하고 선하게 살아가는 것이지 구원을 받기 위해서 착하고 선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구원받을 행동을 해서 구원받고 하늘나라에 가게 되었다면 그게 무슨 감사와 감격이 있습니까? 내가 구원받을 만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당연히 가게 되었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그 선한 행동을 한 그 양에 따라 천국에서도 서열과 등급이 매겨지게 된다면 갑과 을의 등급이 있는 이 세상이나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감사와 찬양의 나라인 것은 구원 받을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믿기만하면 그냥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찬양을 하며 이땅에서와 천국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 정리

이제 간단히 정리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자 청년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인간으로서 할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 부자 청년은 예수님을 만나 인간의 힘으로 영생을 얻고 구원을 받는 다는 사실이 불가능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힘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예수님앞에 긍휼을 베풀어주시길 간구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부자청년은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서도 영생을 얻지 못하고 슬퍼하며 떠났습니다. 이 부자 청년 은 사람이 할수 있는 일과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으로서는 할수 없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수 있느니라’ 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하며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다 하셨습니까? 아무리 애를 쓰고 간구를 해도 영생을 누릴수 없음에 대해 슬퍼하고 고민을 하면서 떠나가는 부자 청년과 같은 저와 여러분을 위해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무엇을 행하셨습니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이 하신일에 대해 믿음으로 아멘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일입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부자청년과 같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이 하신 일로 인해 구원받고 천국에 갈수 있게 되었음에 감사하며 신앙생활을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