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은혜로 된 것이니

Author
kgmcc
Date
2022-09-18 01:31
Views
9
본문 : 고린도전서 15장 9-10절

날짜 : 2022년 9월18일

 

<고전 15장 9-10절>

9.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우리가 믿는 기독교가 세상의 다른 종교들과 확실하게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의 다른 종교들은 우리 인간의 행위를 근거로 인해서 구원과 심판을 받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의 은혜를 근거로 해서 구원을 받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세상의 다른 종교들은 인간의 행위로부터 시작하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다르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종교는 행위의 종교라 할수 있습니다. 인간의 행위를 강조합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선한 행위와 올바른 행동을 하며 살아가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은혜라는 단어가 정말 많이 나옵니다. 무려 291번이나 나온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 10절에도 은혜라는 단어가 세 번 반복하여 나오고 있습니다. 본문 10절입니다. 10.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것이니’ 그리고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마지막으로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이렇게 3번이나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은혜가 무엇입니까? 헬라어로 은혜를 '카리스'라고 부릅니다. 이 카리스,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호의나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은혜는 우리의 노력이나 우리가 어떤 행위를 했을 때 주어지는 댓가나 보수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댓가와 보수는 내가 일한 대로 정당하게 받는 것이기 때문에 은혜와는 다릅니다. 로마서 4장 4절입니다. 4.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여기서 ‘일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나의 행위와 나의 열심히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의인으로 인정을 받는 것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1장 6절입니다. 6.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 나의 선한 행동과 올바른 행위가 내 신앙의 출발점이 되고 동기가 된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은혜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올바른 행동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셨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당연히 받는 댓가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의 시작과 신앙의 동기는 나의 행위 이전에 반드시 은혜로 출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수제자이었던 베드로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베드로 전서 5장 12절 후반부입니다. 12.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이 은혜에 굳게 서라‘ 그런데 만일 은혜가 우리 신앙의 동기가 되지 못하고 우리 인간의 행위가 우리 신앙의 동기가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유함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내게 감격이 없고 확신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선행을 행하고 올바르게 살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면 과연 어느정도까지 선행을 해야 하고 또 얼마나 오래동안 의롭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내가 아무리 선행을 하고 의롭게 산다 할지라도 어느정도까지를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인데 그 마음에 어떻게 자유함이 있고 평강이 있겠습니까? 요즘에 한국에는 아파트 가격이 많이 내려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파트를 팔고자 하는 사람도 아파트를 살려고 하는 사람도 서로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왜요? 아파트 가격의 최저점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파트를 파는 매도자는 이제부터 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냐 라는 생각을 하고 있고 반면에 아파트를 사는 매수자는 앞으로도 계속 가격이 더 떨어지는데 내가 지금 사는 것이 아닌가 하면서 불안해 합니다. 어느 정도가 그 끝지점인지 모르기 때문에 서로의 마음에 평강이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내가 아무리 선한 행위를 하고 올바른 행위를 한다 할지라도 어느정도 까지 해야 또 얼마나 오래 해야 구원에 이르는 지를 모르는 상황에서는 평강이 없고 자유함이 없습니다. 물론 선한 행위가 나쁘다는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선하게 살아야 하고 올바르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은혜가 우선적이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순서가 바뀌면 안된다는 의미입니다. 은혜와 행위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수레의 두바퀴와 같습니다. 은혜와 행위는 뗄레야 뗄 수 없습니다. 그럼으로 은혜로 시작된 사람은 반드시 행위로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행위로 시작한 사람은 보상이나 댓가로 생각하기 때문에 은혜가 은혜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의 삶에는 반드시 선하고 올바른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의 시작은 반드시 은혜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신앙의 기초가 되어야 하고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은혜에 굳게 설 때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고 은혜 속에서 성숙한 삶을 살아갈수 있기 때문입니다.

 

◎ 내가 나 된것은

오늘 본문은 고린도 전서 15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고린도 전서는 사도 바울이 성령의 감동으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쓴 서신서입니다. 그런데 이 사도바울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10절 전반부입니다. 10.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사도바울은 지금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이전에 바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본문 9절입니다. 9.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이전의 바울은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며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가두고 죽이는 일에 가장 앞장을 섰던 핍박자 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이 바울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일려고 다메섹 도성을 향하여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사도행전 9장 4절입니다. 4.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이렇게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던 바울이전의 사울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사도 중에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바울이 말합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이것을 보면 바울에게는 은혜에 대한 감격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을 가지고 사도바울은 사역자의 길을 갔습니다.

좀전에 잠시 살펴보았지만 본문 10절에는 은혜라는 단어가 세 번이나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은혜에 얼마나 감격했으면 이렇게 성경 한구절에 "하나님의 은혜, 내게 주신 그의 은혜,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을 세 번이나 사용하였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놀라운 감격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이러한 은혜의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현재 지금 나를 만들었다는 이 은혜의 감격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고백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가장 축복된 인생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알며 살아가는 사람은 어떠한 삶을 살아가는 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어떠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까?

첫째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헛되지 않게 합니다.

10절 전반부입니다. 10.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헛되지 않게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오늘 현재 잊지 않고 간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타락한 심성을 가진 인간이었기에 때로는 이렇게 탄식할때가 있었습니다. 로마서 7장 19절입니다. 19.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 도다’ 이러한 탄식을 할때마다 사도바울은 자신을 부르시고 사명자의 길을 가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감사의 마음으로 그 순간을 극복하며 살아갑니다. 로마서 7장 25절입니다. 2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감사하리로다’ 이런 저런 유혹과 장애물에 넘어지고 탄식하게 될때 나를 찾아오셔서 나를 만나주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순간을 이겨내었던 바울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며 살아가는 길’을 갔던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법은 무엇이고 죄의 법은 또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법은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사건이고 죄의 법은 율법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두 개의 법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죽을때까지 이 두가지 법을 지키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때로는 실수를 하고 넘어지기도 하면서 탄식을 하고 갈등을 하게 될것입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그때마다 자기를 찾아오셔서 불러주신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바울이었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하지 헛되지 않게 하며 살아갈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나를 낳아주시고 나를 키워주신 육신의 부모님의 은혜를 헛되지 않게 하기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짐으로부터 은혜를 아는 삶이 시작되어집니다. 그럼으로 우리에게 때로는 사람을 통하여, 그리고 또 때로는 힘들고 어려운 사건을 통하여 이런 저런 방법으로 주님이 나를 찾아오셔서 만나주심에 대해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십시다. 그럴 때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살아가는 축복된 삶을 살아가게 될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어떠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까?

둘째는 남보다 더 많이 수고하며 살아갑니다.

본문 10절 중반부입니다. 10.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감격스럽습니다’ 이렇게 말만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을 때 사도바울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다른 모든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며 살았습니다. 바울은 결혼도 하지 않고 복음을 위하여 달려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세계적인 성경 강해 설교자이었던 영국의 캠벨 모건 목사님은 자신이 은퇴하는 자리에서 이런 의미심장한 말씀을 한적이 있습니다. “설교하기 가장 힘든 대상은 설교내용을 잘 듣는 것 같지만 신앙생활에 변화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설교를 통해 은혜를 받고도 섬김과 봉사가 없는 성도들이 가장 힘든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감사하고 감격하는 것으로만 그치게 되면 그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섬김과 봉사의 모습으로까지 나타나야 합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찾아와 만나주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던 사도바울은 생명을 바치며 헌신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럼으로 내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섬김과 봉사의 자리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왜 바울이 다른 모든 사도들 보다 더 많이 수고를 하였습니까?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하나님의 은혜를 갚기 위해 내가 남보다 더 많이 수고해야 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갚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갚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은혜가 은혜가 되는 것은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하고 내가 아무리 수고를 해도 도저히 갚을수 없기 때문에 은혜입니다. 그럼으로 은혜는 값으로 매겨지는 차원이 아니라 값없이 받는 것이고 그냥 누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더 많이 수고를 합니까? 은혜를 갚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내게 주신 그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은혜를 아는 자는 아무렇게나 살지 않습니다. 은혜를 아는 자는 반드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수고와 봉사를 합니다. 은혜를 아는 자는 그 은혜가 헛되지 않기 위해 더 많이 수고하며 살아갑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가 되어 남보다 더 수고하고 헌신하는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어떠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까?

셋째는 자신이 한 일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본문 10절 후반부입니다. 10. ...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다른 모든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를 하였지만 자기 자랑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생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다른 사도들 보다 더 많이 수고를 했지만 내가 그들보다 더 큰 사도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9절 다시한번 보시겠습니다. 9.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나는 사도중에 가장 작은 자라’ 여기서 한걸음 더나아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이렇게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을 했고 하나님의 은혜로 끝난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마치는 삶을 살아갈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의 삶을 살아갈수 있는 축복의 비결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면서 염려하고 불안해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 복음 14장 16절입니다. 16.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이제 곧 십자가에 매달려 제자들의 곁을 떠나시게 될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대신하여 성령 보혜사를 보내주셔서 영원토록 함께 있게 하실 것을 제자들에게 약속해주십니다. 여기서 보혜사는 ‘파라클레토스’ 인데 우리말로는 ‘협력자, 곁에서 돕는자, 상담자’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날 이 보혜사 성령은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 안에 계셔서 세상끝날까지 함께 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7절 후반부입니다. 17....그는(성령보혜사)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너희속에 계시겠음이라’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을 때 성령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십니다. 왜요?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나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보증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고린도 후서 1장 22절입니다. 22.그가(하나님)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보증으로‘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습니다. 어떤 보증입니까? 영원토록 함께 하시고 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라고 하는 보증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 심령안에 성령이 함께 거하신다는 것은 영원히 함께 하신다는 보증과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는 보증을 주님이 약속해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특권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누리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습니다.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있었고 내가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어떠한 고난과 핍박도 이겨낼 수 있었다고 고백을 합니다. 바울은 나 자신의 힘과 자신의 능력으로 이 많은 사역을 감당하였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신을 자랑하는 것을 굉장히 부담스러워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능력이나 힘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게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성령이 나와 함께 하심으로 이런 저런 사역을 해나갈수 있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시면 하나님과 함께 하심을 잊지 않음으로서 위대한 일을 이룬 하나님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이 억울하게 누명을 받고 감옥에 들어갔지만 그 감옥 간수장은 요셉이 하나님과 함께 하심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간수장은 요셉을 신뢰하고 감옥에 있는 죄수들을 이 요셉의 손에 완전히 맡깁니다. 창세기 39장 23절입니다. 23.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요셉)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유다나라 제 4대 왕이었던 여호사밧왕을 보십시오. 여호사밧왕이 오직 하나님만을 찾을 때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심으로 유다 왕국을 번성하게 하십니다. 역대하 17장 3절입니다. 3.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 그리고 역대하 17장 5절입니다. 5.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나라를 그의 손에서 견고하게 하시매... 그리고 신약에 들어와서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초대교회 일곱집사를 들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6장 5절입니다. 5.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인 일곱 집사가 초대교회 때 많은 사역을 해나갔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스데반은 최조로 순교자가 되고 빌립 집사는 성령의 역사로 많은 질병과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행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명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얼마전에 제가 ‘기적을 사고 싶어요.’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올라온 동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그 내용을 소개하고 메시지를 마치고자 합니다.

어느 한 약국에 7-8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소녀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와서 동전이 든 작은 캔디 통을 약사에게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제 동생이 많이 아파요 수술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데요. 그래서 … 제가 아저씨에게 기적을 사러 왔어요.” 사정을 알게 된 약사는 마음이 아파왔지만 미소를 띠면서 친절하게 말합니다. “어떻게 하지? 꼬마야, 우리는 기적을 팔지 않아요.” 그러자 꼬마아이가 말합니다. “아저씨 저 돈이 있어요! 보세요!” 이렇게 말하면서 소녀는 캔디 통 뚜껑을 열다가 그만 캔디통을 놓치는 바람에 동전과 캔디통이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바닥으로 떨어진 동전을 주우면서 어린 소녀가 전날 밤에 자기 아빠가 엄마에게 말했던 장면을 기억합니다. “아이를 살리려면 이젠 기적이 필요해…” 어제 아빠가 한 말이 생각이 난 이 소녀는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그래 아빠는 기적이 필요하다고 했어! 내가 기적약을 가져가면 내 동생이 나을 수 있어!’

이런 생각을 하면 동전을 줍고 있던 이 소녀에게 나이가 많은 어느 한 남자가 다가와서 말합니다. “울지말아라. 꼬마야, 동생이 많이 아프니?” “네, 동생 머릿속에 나쁜 것이 살고 있대요. 그런데 할아버지, 기적은 얼마예요? 어디서 살 수 있어요?” 나이가 드신 그 남자는 소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합니다 “얼마를 가지고 왔니?” 소녀가 들고 있는 캔디 통에는 겨우 1달러 11센트가 전부이었습니다. 그 남자는 동전이 든 캔디 통과 소녀의 작은 손을 꼭 잡고 말합니다. “1달러 11센트면 충분하단다. 우리 같이 동생을 만나러 가볼까?” 그 남자는 그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뇌수술 전문 의사이었습니다. 그 남자는 소녀의 동생을 자신의 병원으로 옮겼고 10시간의 대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내었습니다. 수술을 마친후에 소녀의 부모님이 그 남자에게 말합니다.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까요?” 그러자 그사람이 말합니다. “저는 1달러 11센트나 받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딸이 아끼던 캔디 통까지 받았으니 그걸로 충분합니다.” 이것이 제가 본 ‘기적을 사고 싶어요’ 의 동영상 내용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이 남자가 어린 소녀의 가정에 베풀어주신 은혜에 비할바가 아닐 만큼 더 크고 도저히 갚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갚기 위해서 내가 선한 일을 하고 봉사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도저히 내 힘으로는 갚을수가 없는 은혜의 양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헛되지 않게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남보다 더 수고하며 더 성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크고 위대한 일을 이루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내 자신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이 바로 은혜를 아는 사람이 살아가는 길입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로 남은 평생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