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사랑은 여기 있으니

Author
kgmcc
Date
2022-10-02 00:58
Views
33
본문 : 요한일서 4장 7-10절

날짜 : 2022년 10월 2일

 

<요한일서 4장 7~10절>

7.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또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 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올바로 아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 반대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올바로 아는 사람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이 참다운 성도라고 할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4장 16절 전반부입니다, 16.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오늘 본문에서도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본문 7절입니다. 7.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좀 전에 살펴본 구절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그리고 본문 7절에서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이렇게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알수 있는 길은 오직 한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으로 다시 태어나는 길 뿐입니다. 우리가 다시 태어나야만 하나님을 올바로 알수 있고 또 하나님의 사랑을 알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3절입니다. ‘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다시 거듭날 수 있습니까? 요한복음 3장 5절입니다. 5.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수 없느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대하여 신학자들마다 여러 가지 해석들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지만 물에 대한 해석은 너무나 다양합니다. ‘물은 침례이다, 아니다 물은 말씀이다, 그것도 이것도 아니다. 물은 예수님의 보혈의 피를 의미한다‘ 이렇게 다양하게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한다‘ 는 이 말씀에 대한 모든 해석을 포함할수 있는 보다 넓은 의미로 보는 것이 하나의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 복음을 듣고 믿을 뿐 아니라, 회개한 사람, 복음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보혈의 피를 의지한 사람, 이런 사람들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각각 따로의 것이 아니라 모두 같이 연결된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자연적으로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회개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의 말씀을 들은 사람이 다 믿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마음의 문을 열게 되어 복음의 말씀을 듣을때 믿게 됩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서 예수님의 보혈의 피를 의지하고 회개하며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우리 인간이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바로 첫 번째 탄생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두 번째 탄생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거듭남, 다시 태어남, 중생’ 이라고 말합니다. 그럼으로 우리인간이 하나님을 올바로 알기 위해서는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바로 내가 거듭났다고 하는 증거가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면, 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것은 마치 어린 아이가 태어나서 성장할수록 부모를 점점 닮아가는 것처럼 우리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을 점점 닮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고 은혜를 받을수록 나의 성품이 변하고, 사랑이 많아지게 됩니다. 하지만 교회에 다니고는 있지만 거듭나지 못한 사람,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지식으로 알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실제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경험하지 못하면서 교회출석을 합니다. 음식 맛은 직접 경험해 보아야 그 맛을 아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도 맛보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하나님의 사랑의 맛을 모르는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라 할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왜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왜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까?

첫째로,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8절입니다. 8.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가장 대표적인 성품은 사랑이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본질이 사랑이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이 사랑이시니까 사랑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우리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창세기 2장 7절입니다. 7.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은 신학자들마다 그리고 교파들마다 각각 다릅니다. 여기서 간단히 설명하자면 ’생기‘ 는 히브리말로 ’니쉬마트 하임‘ 인데 그 의미는 ’생명들의 호흡‘ 즉 생명력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생령은 히브리어로 ’네페쉬 하야‘ 인데 그 의미는 ’살아있는 목숨, 살아있는 존재‘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이 흙으로 된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서 생령이 되었다는 말씀은 사람의 몸안에 영을 넣으심으로서 살아있는 존재로 만드셨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모든 동물은 하나님의 생기를 받지 않고 말씀으로만 창조되었지만 사람만은 하나님께로부터 영을 받았기 때문에 영적인 존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영적인 존재로 지으셨습니까? 그것은 영이신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하기 위함에 있습니다. 영을 가진 자만이 영이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말은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존재로 지음을 받았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대표적인 성품이 무엇입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영적인 존재로 지으시고 사랑의 성품을 따라 우리 인간을 지으신 것은 사랑의 하나님과 친밀한 사랑의 교제를 갖도록 하기 위함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에는 대상이 필요합니다. 대상이 없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이신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을 따라 우리 인간을 지으시고 우리 인간을 당신의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2장 19절입니다. 19.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내가 네게 장가들어‘ 여기서 네게 는 이스라엘 백성을 말하는데 오늘날 믿는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 자신과 친밀한 사랑의 교제를 나누도록 하기 위해 우리 인간을 당신의 형상을 따라 지으신 것입니다.

□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만드셨는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만드신 것도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깊고 풍성하게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너희들이 모든 것을 다할 수 있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왜요? 그이유는 아담 네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 모든 것을 할지라도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악과는 에덴 동산의 중앙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매일 그 선악과를 바라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기 이전에 그들이 선악과를 볼 때 어떤 생각을 했겠습니까? 기분 나쁘게 생각했을까요?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는 매일 그 선악과를 바라보면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깨닫곤 했을 것입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가? 나는 원래 흙에 불과한 존재가 아닌가? 나는 피조물이 아닌가?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이 나 같은 비천한 자를 당신의 형상을 따라 지으시고 이렇게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로 지으셨구나' 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성경을 읽으면 기분이 나빠집니까?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앞으로 구원자로 오실 메시야를 예언하신 말씀을 읽으면 기분이 나빠집니까? 그리고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우리 인간이 지은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장면을 읽으면 기분이 상합니까? 예수님께서 ‘다이루었다’ 라고 크게 외치시고 숨을 거두신 장면을 읽을 때 어떤 감정이 생깁니까? 나같은 인간을 위해 그 크신 일을 행하신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도 마찬가지이었을 것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볼 때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자신들을 사랑의 대상으로 지으시고 그래서 하나님과 교제를 하며 살아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으면서 날마다 감사하며 지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깊고 풍성한 사랑의 교제를 위해서 당신의 형상을 따라 우리를 지으시고 에덴 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 자신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흙 덩어리에 불과한 저와 여러분을 이렇게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사랑의 대상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럼으로 날마다 성경을 읽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교제를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까?

둘째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나타난 바 되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9절 전반부입니다. 9.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사랑은 나타나고 표현하게 되어있습니다. 사랑은 감출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이 가진 속성입니다. 그럼으로 사랑한다고 말을 하지만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 사랑은 참사랑이 아닙니다. 오늘날 매스 커뮤니케이션에 나오는 연예인들을 보면 무대에서 관객들을 향해 사랑한다고 하는 말과 함께 손가락으로 사랑의 표시를 하는 모습을 쉽게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될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자연히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어지는 것이지 쇼맨쉽으로 보여주는 차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9절 후반부입니다. 9.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여기서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이세상에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신 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입니다. 45.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리고 오늘 본문 10절입니다. 10.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그러니까 하나님은 자기의 아들을 이땅에 보내셔서 우리가 지은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위해 자기의 아들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우리 하나님은 생명을 바쳐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되 시시하게 사랑하지 않으셨습니다. 적당하게 사랑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생명을 걸고 사랑하셨습니다. 자기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비참하게 죽이기까지 하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도 너무나 시시하게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비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정도는 너무나 미약하고 이기적인 사랑에 머물러 있을때가 참 많습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날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 있던 선악과를 바라보듯이 날마다 주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 사랑은 여기 있으니

오늘 본문 9절을 보시면 ‘우리 가운데 나타난 바 된 하나님의 사랑’ 을 말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 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는 말씀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것은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나를 먼저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거짓도 아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내가 얼마나 무력하고 죄악 투성이며 허물이 많다는 것도 잘알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십자가에서 모두 다 담당하셨습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함이나 우리의 연약함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사랑의 대상으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아들를 보내사 화목제물이 되게 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스바냐 3장 17절입니다. 17.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이 스바나는 ‘여호와의날’에 일어날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약 요엘서와 함께 이 스바냐에는 세상 심판 마지막날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세상 마지막날에 믿는 성도인 저와 여러분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고 노래를 하시면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왜요? 우리 인간이 죽기까지 하나님을 따르고 충성했기 때문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을 위해 하나님이 행하신 일 때문입니다. 자신의 아들을 이땅에 보내시고 생명을 희생하게 하신 그 댓가로 저와 여러분이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믿는 성도들과 영원토록 사랑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첫사람 아담은 실패하고 흙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이후 흙에 속한 아담의 후손들은 모두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행하신 일로 인하여 우리 믿는 성도들은 흙에 속한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신분이 되었습니다. 고린도 전서 15장 47절입니다. 47.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저와 여러분은 하늘에서 나신 예수님에게 속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제 흙에 속한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태어나게 된 사람입니다. 다시 태어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먼저 사랑하신 그 사랑을 알게 됩니다.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앞에 서게 될 때 하나님은 자신이 베풀어 주신 그 사랑으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만히 있지 못하시고 즐거이 노래를 하시면서 참으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기독교 베스트 작가로도 유명한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이 쓰신 ‘예수가 선택한 십자가’라는 책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단 한 번도 자신이 지닌 초자연적 능력을 자기의 안위를 위해 사용하지 않으셨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눈썹을 한 번만 치켜 올리셔도 십자가 주변에 있던 로마 군병들의 손을 마비시킬 수 있으셨지만 그러지 않으셨다. 놀랍다. 하지만 이것이 그분이 오셔서 행하신 사건 중에 가장 놀라운 부분일까? 별들로 구슬치기를 하시던 분이 자신의 무한한 능력을 포기하신 것도 놀랍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성육신의 가장 멋있는 부분을 알고 싶은가? 예수님과 가장 가깝다는 친구들이 그분을 배반하고 달아날 때도 그분이 끝까지 침착함을 잃지 않으셨다는 사실이 가장 멋진 장면인가? 아니다. 아담 이후에 모든 남녀 죄인들의 온갖 죄를 대신 뒤집어쓰시면서도 주님은 자기 변호를 거부하셨다. 그러나 그것도 가장 놀랄 만한 사실은 아니다. 천국의 법정에 무수한 유죄 판결이 울려 퍼지고 빛의 창조자가 죄인들이 가득한 밤의 냉기 속에 버려졌을 때도 여전히 침묵을 지키셨다. 그러나 이것 역시 가장 멋진 모습은 아니다. 예수님은 어두운 무덤에서 사흘을 보내신 후 환한 웃음으로 부활의 아침 햇살 속으로 당당히 걸어 나오시며, 초라한 루시퍼에게 “그것이 너의 제일 센 주먹이더냐?”라고 물으셨다. 그러나 사실은 그 부분도 가장 멋진 장면은 아니다. 물론 이러한 것들도 다 멋있다. 말할 수 없이 멋있다. 그런데 천국의 면류관을 버리고 가시 면류관을 쓰신 그분의 가장 멋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가? 그것은 바로 당신을 위해 그렇게 하셨다는 사실이다. 바로 당신을 위해...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그들을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 세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에덴동산에 있는 선악과를 날마다 보면서 피조물인 아담과 하와에게 모든 것을 맡겨주시고 사랑의 하나님을 알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하나님은 왜 에덴 동산에 먹어서는 안될 선악과를 두셨는가를 묻습니다. 그리고는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창조자이신 하나님처럼 될수 있다는 사탄의 꾀임에 넘어가는 우리 인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소유에서 사탄의 소유물로 떨어지게 된 우리 인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먼저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독생자를 보내시고 범죄하여 사탄의 소유물이 된 우리 인간을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하나님나라에서 영원히 살아가게 될 우리 믿음의 성도들을 보시면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고 노래를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우리는 이땅에서 뿐만 아니라 저하늘 나라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하면서 살아갈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인생의 성공과 행복을 내가 얼마나 많이 소유했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인생의 성공과 행복은 내가 얼마나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이 하나님을 사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남은 생애동안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리고 또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