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맹인이 받은 축복

Author
kgmcc
Date
2022-10-09 00:33
Views
27
본문 : 요한복음 9장 35-41절

날짜 : 2022년 10월 9일

 

<요한복음 9장 35~41절>

35.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인자를 믿느냐

36.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37.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38.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39.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40.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41.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오늘 본문 앞에 나오는 내용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한 맹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 같이 길을 가던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요한복음 9장 2절입니다. 2.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그당시 유대인들은 사람에게 병이 나고 어떤 문제가 생기게 되면 죄와 연관을 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아기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게 되는 경우에는 그 아기 부모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출애굽기 34장 7절입니다. 7.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대까지 보응하리라’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그당시 유대인들은 아기가 태어날 때 부터 장애가 된 것은 그 부모나 그 조상의 죄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예수님은 어떻게 대답을 하십니까? 요한복음 9장 3절입니다. 3.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왜 어떤 사람은 태어날때부터 보지 못하는 맹인으로 태어나는가? 그리고 또 왜 어떤 사람은 태어날때부터 듣지 못하거나 또 걷지 못하는 장애인으로 태어나는가? 혹은 왜 지적인 장애자로 태어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분명한 대답을 해주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대답을 해주지 않으시는데 어떻게 우리가 그 이유를 알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그 이유에 대해 대답을 해주지 않으십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 그 이유를 아는 것 보다 훨씬 더 중요한 내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걷지도 못하는 그 이유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분명히 알수 있는 것은 그일을 통해 하나님이 나타내고자 하시는 일을 보게 될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정상인으로 태어났지만 어떤 사고로 인해 눈이 멀게 된 경우에는 오늘날 발전된 의학기술로 볼수 잇는 일이 생길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태어날때부터 맹인이 된 사람을 보게 하는 일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만이 할수 있는 일입니다.

그럼으로 본문에 나오는 이 맹인은 지금까지 살아오는 가운데 예수님을 만나게 된 일이 가장 축복이다 라고 할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서 보지 못했던 자신이 볼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이 맹인이 받은 축복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도 이 맹인과 같은 축복을 누리며 살아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맹인이 받은 축복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는 도구가 됨

좀전에 살펴보았지만 예수님께서는 누구의 죄 때문이냐고 묻는 제자들에게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3절입니다. 3.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맹인으로 태어나게 된 것은 이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큰 어려움과 고난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맹인은 예수님을 만남으로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는 쓰임을 받는 도구가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마다 자신이 처한 환경과 만나게 되는 어려움과 장애물은 저마다 다를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어려움과 장애물을 만나게 될 때 왜 나에게 이런 어려운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해 그 이유를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길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이유를 아는 것이 곧 문제 해결이 될수 있을 만큼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보다는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행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내가 만난 이 고난과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나타날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영광되고 축복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생각해보십시오. 태어날때부터 보지 못하는 맹인이었던 이 사람은 예수님을 만남으로서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그당시에는 물론 오늘날에도 과학이나 의학으로는 불가능한 영역의 차원입니다. 이러한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이 맹인은 예수님이 구세주이요 메시야 임을 드러내는 하나님이 나타내고자 하는 일에 쓰임을 받는 도구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저와 여러분이 고난과 어려운 가운데 있다면 원망과 불평보다는 하나님이 나를 통해 행하실 일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할수 있어야 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내가 처한 이 환경과 이 어려움을 보면서 나를 판단하고 빈정거리는 말을 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나자신을 자책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반대로 지금 내가 처한 이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께서 행하실 크고 놀라운 일을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를 하며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합니다.

어떤 성도님은 사업이나 직장에서, 또 어떤 성도님은 가정에서 그리고 어떤 성도님은 건강과 물질로 인해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을 만날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왜 이러한 일이 내게 일어나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알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이유를 안다할지라도 그것이 궁극적인 문제 해결책은 되지 못합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이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누구에게도 아무런 이유나 목적이 없이 그냥 우연히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나게 하지는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인생에서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되었을 때 오히려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심으로 말미암이 하나님이 나타내고자 하시는 일에 쓰임을 받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맹인이 받은 축복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둘째로 육신의 눈을 뜨게 되었음

본문앞에 나오는 6절과 7절입니다. 6.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예수님은 땅에 침을 뱉으시고 그 침으로 진흙을 이겨 이 맹인의 눈에 바르십니다, 그리고는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종종 예수님께서 왜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셨는가 라는 질문을 가질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설명을 하는 내용을 목회자로부터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왜 이런 방법을 사용하셨는가 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이 맹인이 순종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땅에 침을 뱉지 않으셔도 그리고 진흙이 없어도 그냥 말씀이나 기도만으로도 얼마든지 이 맹인을 고칠수가 있습니다,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사용하셔서 이 맹인의 눈을 뜨게하실수 있으신 분입니다. 그럼으로 고치시는 방법보다는 말씀에 순종을 한 이 맹인에게 우리는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이 맹인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실로암 못으로 갔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자가 실로암 못에 까지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맹인은 포기하지 않고 물어 물어서 실로암 못에까지 갔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이 맹인이 실로암 못에 까지 가는 동안 자기 눈에 붙은 진흙이 얼마나 거추장스럽고 부담스러웠겠습니까? 그래서 자기 눈에 더덕더덕 붙은 진흙을 떼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생길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눈에 이 맹인이 어떻게 보였겠습니까? 맹인인데다가 눈에 진흙까지 잔뜩 붙이고 걸어가고 있으니까 보기가 굉장히 흉하였을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온전히 회복하게 되고 문제 해결함을 받게 될 때 까지 때로는 주변 사람들의 눈에 이전보다도 더 심각해지는 것처럼 보여질때가 있습니다. 상황이 더 좋아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더 악화된 것처럼 보일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끝까지 말씀에 순종하는가를 보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여야 하나님이 나타내시는 일에 쓰임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길 주님은 원하십니다. 이 맹인은 주님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여 실로암 못을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자신의 눈에 발라 놓은 진흙을 씻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7절 후반부입니다. 7.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밝은 눈으로 왔더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실로암 못에 가서 씻었더니 눈이 밝아졌습니다. 닫혀진 눈이 열려진 것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하늘을 보고 그리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를 보며, 자신의 부모님을 보고, 그리고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보게 된 것입니다. 보지 못해서 평생동안 길거리에 앉아 구걸하며 먹고 살아가던 거지 이었는데 이제는 보게 되었습니다. 보게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자신이 마음대로 걸을 수 있고 뛰어다닐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거리에 앉아 남에게 구걸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인생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유로운 신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맹인은 예수님을 만나 그 말씀에 순종하므로서 육신의 눈이 뜨져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보지 못하던 이 맹인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큰 인생의 축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런 축복은 예수님을 만남으로서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맹인이 받은 축복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셋째로 영적인 눈을 뜨게 되었음

이 맹인은 예수님을 만나 하나님이 나타내고자 하시는 일에 쓰임을 받게 되었고 그리고 보지 못했던 육신의 눈이 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크고 귀한 축복은 바로 영적인 눈을 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눈을 뜨게 된 이 사람은 그 이후에 주변사람들로부터 ‘어떻게 해서 보지 못하던 네가 보게 되었느냐?“라는 질문을 받게 됩니다. 그때 이 맹인은 ”예수님을 만나 그분이 하신 말씀에 순종하였더니 내가 보게 되었다“ 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이 맹인이 예수님을 만나 보게 되었다는 말을 듣게 된 바리새인들이 이 맹인을 만나 이렇게 묻습니다. 요한복음 9장 17절 후반부입니다. 17.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하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이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이사람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선지자니이다 하니‘ 선지자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죠.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분으로 생각한다고 이 맹인이었던 사람이 대답합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쉬어야 할 안식일에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14절입니다. 14.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안식일이라‘ 그리고 16절 전반부입니다. 16.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예수님은 안식일에 보지 못하던 자를 보게 하셨습니다. 어둠속에서 매여 있던 자를 밝은곳으로 나와 살아갈수 있도록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사망의 길을 가던 자에게 생명의 길로 옮겨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입니다. 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이렇게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살아가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당시 종교 지도자 신분이었던 바리새인들은 사망에서 생명이 아니라 사망에서 사망의 길을 갔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율법이었습니다. 우리 인간이 구원을 받을수 있는 판단의 기준은 법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이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렇지 못하면 심판을 받고 구원받지 못하는 것으로 그들은 판단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로마서 3장 20절입니다. 20.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 말씀은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는 의미는 아닙니다. 율법과 계명은 원래부터 의롭고 거룩한 것입니다. 로마서 7장 12절입니다. 12.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원래 율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믿는 성도들은 교리나 계명에 대해서 너무 소홀히 하고 가볍게 여기며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을때는 너희들은 그 율법을 온전하게 지켜나가지 못하는 죄인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뜻이 있었습니다.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는 부족한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짐승을 가지고 하나님앞에 번제물로 드리고 죄사함을 받는 제사를 드리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이곳 미국에서 하이웨이의 제한 속도에 관한 법은 대개의 경우 시속 60마임입니다. 그리고 로칼 도로에서 제한 속도는 대개의 경우 시속 45마일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 제한속도에 관한 법을 한번이라도 어기지 않고 운전을 해온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리들중 대부분은 알고도 그리고 모르고도 이런 저런 법을 위반해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제한 속도에 관한 법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법을 어긴 경험이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법을 어긴 일로 인해 우리는 스스로 내가 의롭고 거룩한 사람은 아니다 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법이 하는 일입니다. 법이 하는 일은 즉 율법이 하는 일은 우리가 법을 어기고 살아가는 죄임임을 깨닫게 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죄를 깨닫게 하고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에 있습니다. 다시말해 회개하고 돌이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이 바로 율법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오직 율법을 지키느냐 못지키느냐 하는 차원에서만 매달려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이런 바리생인들을 항하여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문 41절입니다. 41.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율법을 온전하게 지키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죄인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으니까 어둠속에 있기 때문에 죄를 보지 못하는 맹인이라는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맹인이었던 사람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십니다 본문 35절입니다. 35.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인자를 믿느냐 ‘네가 인자를 믿느냐’ 이 예수님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본문 36절입니다. 36.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이사람에게 육적인 눈 뿐만 아니라 영적인 눈을 뜨게 해주시는 말씀을 하십니다. 본문 37절입니다. 37.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그러자 이 사람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38절입니다. 38.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주여 내가 믿나이다’ 이렇게 영안이 열리게 된 사람은 예수님이 구원자 메시야임을 믿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경배하고 예배하며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 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만나 고치시기 전에 먼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5절입니다. 5.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세상의 빛이로라’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 되십니다. 그래서 이세상의 어둠에 갇혀 앞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맹인에게 볼수 있는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그리고 육신의 눈을 뜨게 해주실 뿐만 아니라 영적인 눈도 뜨게 해주십니다. 영안이 뜨게 되는 것도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영적인 눈을 뜨게 되는 것에 대해서 이상한 환상을 보게 되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럴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훨씬 더 많은 경우 말씀을 올바로 깨닫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대하여 깨달음을 가지고 세상을 올바로 볼수 있는 길은 영적인 눈이 열렸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기 전에는 우리는 나자신이 잘못된 인생을 살아간다s,s 생각을 하지 못하면서 살아갑니다. 바리새인들이 그 좋은 본보기가 아닙니까. 바리새인들은 육적인 눈은 열려있었지만 영적인 눈은 열려 있지 않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믿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을때 성령이 그 심령에 들어오게 되고 그래서 자신이 어둠속에 있어서 보지 못하던 잘못된 부분들을 볼수 있게 됩니다. 영적인 눈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의 고백을 하며 살아갑니다. 33절입니다. 33.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이사람이(예수)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맹인이었던 이사람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쫓겨날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눈을 뜨게 한 이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십니다’ 라는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구원자 메시야이심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과 예수님을 믿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가진 차이는 본문이 보여주는 맹인이었던 사람과 바리새인들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사람은 어둠과 사망의 길에서 밝음과 생명의 길로 옮기게 됩니다. 보지 못하는 맹인에서 볼수 있는 눈이 열리게 됩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믿지 못하는 자는 여전히 사망의 길을 가게 되고 보지 못하는 맹인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좀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교리나 율법이 필요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덴마크 출신의 유명한 동화작가인 안데르센이 쓴 ‘미운 오리새끼’ 를 예로 들어보십시다.

미운 오리 새끼들 속에 태어난 이 백조는 자신이 많은 노력을 했지만 끝내 오리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 백조가 오리가 되지 못한 것은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원래부터 오리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을 해도 오리는 될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인간을 지으실 때 이 육신의 노력으로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의롭게 되는 존재로 지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의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성경 말씀대로 살아가도 의인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것은 ‘성경대로 행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대로 살아가는 생명을 가진 사람이 되라’고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지키지 않아서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성경을 읽고 어떻게 행동하면 내가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게 되는가를 생각하면서 성경을 읽고 그 방법을 찾는 일에 열심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미운 오리새끼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할지라도 오리가 될수 없습니다. 백조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오리가 될수 없습니다. 오리가 되는 길은 노력해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리로 다시 태어나는 길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야 할 죄인임을 가르쳐주는 책이라 할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대로 살아감으로서 예수님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생명을 가진 사람은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대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은 생명을 가지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은 영적인 눈이 열리게 됩니다. 영육간에 눈이 열려서 이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예수님만이 이 세상의 빛이심을 고백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믿는 성도인 저와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서 그분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맹인이었던 사람이 누렸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남은 생애동안 어려운 순간을 만날때마다 영육간에 눈이 열려있는 자로서 하나님이 나타내시고자 하는 일에 쓰임을 받게 되는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