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하나님을 바라라

Author
kgmcc
Date
2022-10-23 03:09
Views
22
본문 : 시 62:1-5절

날짜 : 2022년 10월 23일

 

<시 62:1~5절>

1.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2.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3.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4.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셀라)

5.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기록된 이 시편 62편의 저자는 다윗이지만 다윗이 언제, 어디에서 어떤 목적으로 이 시편을 썼는지는 정확하게 알수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신학자들은 이 시편62편은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하여 쫓기고 있을 때 썼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쫓기고 있을 때 인지 아니면 또 다른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이 시편을 쓴것인지는 확실하게 알수는 없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다윗은 자신 인생에서 힘들고 어려운 고난을 당하고 있을 때 이 시편을 썼다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만났지만 다윗은 두려움속에서 우왕좌왕 하지 않았습니다.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그 순간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다윗이 지닌 이러한 마음을 본문 1절에서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본문 1절입니다. 1.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우리나라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원문을 보면 ‘오직’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사람과 환경을 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겠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여기서 영혼은 영혼을 포함한 자신의 전인격을 포괄적으로 나타내는 단어인 것으로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자신의 전 인격을 다해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어떻게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까?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여기서 ‘잠잠히’ 라는 단어는 인간적인 수단이나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해결하는 이러한 모든 방법들을 내려놓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적인 모든 방법을 제외하고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본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을 NASB 영어성경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My soul waits in silence for God only" ‘Waits in silence' 그러니까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기다리는 것‘을 ’잠잠히‘ 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기다리는 것은 아무런 생각없이 단순히 기다리기만 하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감나무 밑에 앉아서 입을 벌리고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그런 기다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을 기대하고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애가 3장 26절입니다. 26.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그러니까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모습을 침묵가운데 기다리고 있는 모습으로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다림은 하나님을 신뢰할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을 기대할수 있을 때 보여지는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냥 수동적으로 앉아서 마냥 세월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사람 앞에서는 침묵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룻기 3장을 보면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가 시키는 대로 보아스가 누워있는 타작마당 곡식단 곁에 가서 눕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시다시피 룻은 결혼을 했지만 자녀가 없이 남편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당시는 ’자녀가 없이 남편이 죽은 경우에 친족중 한사람이 그 미망인과 결혼을 해서 그 집안에 자녀를 이어나가게 하는 ‘고엘‘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룻이 보아스에게 ’당신으로 하여금 내가 결혼했던 이 집안의 기업을 무를수 있게 해달라‘ 는 말을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룻에게 보아스는 타작마당에 있던 보리를 나누어 주면서 ’기업을 무를자의 입장에 있는 친척중에 나보다 더 가까운 한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책임을 이행하지 않으면 내가 행하리라‘ 라고 말하면서 룻을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온 룻의 이야기를 들은 나오미가 이렇게 말합니다. 룻기 3장 18절입니다. 18.이에 시어머니가 이르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 이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 ‘앉아 있으라’ 이것은 나오미가 보아스를 신뢰하고 믿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룻기 4장을 보시면 보아스가 바쁘게 행동하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보아스가 하는 행동으로 인해 룻은 보아스와 결혼을 하게 되고 나오미는 그 두사람 사이에서 낳은 손자를 안고 기뻐 찬양하는 모습으로 이 룻기는 끝이납니다. 보아스는 오늘날 주님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인생을 살아가보면 룻과 나오미처럼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날수가 있습니다. 의지하고 믿어왔던 남편과 자식을 모두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한치앞도 내다볼수 없는 캄캄한 환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을수가 있다면 다위처럼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볼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을수 있다면 원망 불평보다는 침묵하는 가운데 기다릴수가 있습니다.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사람 앞에서는 침묵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부르짖어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환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정말 인생의 어려운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앞에 나아가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이러한 다윗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권면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8절입니다. 8.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그러니까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수동적으로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토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토한다는 것은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으로 갈수도 없고 뒤로 물러설수도 없는 사면초가가 된 상황에서는 하나님앞에 마음을 토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럴 때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의 영혼으로 하여금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합니다. 사탄은 상황과 문제만을 보게 합니다. 그리고 연약하고 부족하여 실패한 나 자신만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 문제를 일으킨 그 사람만을 보게 합니다. 나를 배신하고 떠났던 그사람,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나를 미워하고 나를 시기하는 그사람, 나에게 거짓말로 속이고 그래서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만든 그 사람을 바라보게 합니다. 엘리야를 보십시오, 갈멜산에서 850명의 바알 선지자와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를 했습니다. 어떻게 승리를 했습니까? 하나님만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엘리야가 도망을 갔습니다. 왜요? 자기를 죽이겠다고 말한 아합왕의 아내인 이세벨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탄은 우리들로 하여금 사람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왜 사람을 바라보면 안되는 것입니까?

첫째는 사람은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와 같기 때문입니다.

본문 3절입니다. 3.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담과 울타리가 하는 역할이 무엇입니까? 집에 쌓아놓은 담이나 울타리는 도둑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마을주변이나 도시 경계선에 쌓아놓은 담이나 울타리는 적군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지만 막상 도둑이나 적군이 들어가겠다고 마음을 먹고 행동을 하면 그 담과 울타리는 넘어지고 무너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 담과 그 울타리가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방어할 능력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일이 생기게 되면 그동안 자기가 의지했고 믿어왔던 사람들이 배신을 하고 떠나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담과 울타리는 평안할때나 필요하지 실제로 도둑을 만나고 전쟁과 같은 어려움을 만나게 될 때는 넘어지고 무너지는 것들입니다. 이렇게 내가 믿어왔던 사람들은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와 같다고 본문을 말씀합니다. 이사야 2장 22절입니다. 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있느냐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성경은 ‘사람을 의지하지말라’ 라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작은 코만 막혀도 죽게 될 만큼 연약한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연약한 인생이기 때문에 서로 돕고 서로 협력하며 살아가는 것이지 극심한 환난때에는 바라보며 의지할 존재는 아니다 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리고 왜 사람을 바라보면 안되는 것입니까?

둘째로 사람은 입김과 같기 때문입니다.

9절입니다. 9.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사람은 입김이며’ 왜 사람이 입김이라고 말씀합니까? ‘저울에 달면 그들은(사람)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입김을 저울에 달면 그 무게가 얼마나 나가겠습니까? 저울추나 바늘이 움직이지도 않을것입니다. 그만큼 가볍습니다. 사람이 바로 이러한 입김과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보기에는 곰처럼 덩치가 크고 엄청 무거워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입김과 같은 존재입니다. 입김은 한번 불면 그때 잠시 존재하는 것 같지만 곧 사라져 버리는 허무한 존재입니다. 이러한 입김처럼 인간도 허무하고 가벼운 존재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이런 입김과 같은 사람을 의지하고 이런 입김과 같은 사람에게 소망을 두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까?

첫째로 하나님만이 나의 구원이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1절 다시 보시겠습니다. 1.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다윗은 한치 앞도 내다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이 상황에서, 나를 구원해 주실수 있으신 분은 하나님 한분밖에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이사야 43장 11절입니다. 11.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나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그리고 호세아 13장 14절입니다. 14.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이렇게 성경은 여러군데에서 하나님만이 구원자가 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의 주된 메시지는 ‘하나님만이 구원자가 되신다‘라는 것에 있습니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이 인생을 살아가다가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면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고 이사람, 저사람을 만나서 문제 해결을 할려고 합니다. 요즘에 경기가 점점 침체되고 있는 가운데 물가는 자꾸 올라갑니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한숨소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미 연준이 올라가는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면서 금리를 계속 인상하는 바람에 경기는 바닥을 향하여 내려가고 있습니다. 요즘 금융이나 투자기관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들이 일구동성으로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들도 앞으로 경기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니까 자기가 하는 말에 참조만 해달라 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하는 말을 듣고 믿어서 당신들이 주식을 사거나 팔거나 해도 그것은 당신 책임이지 나의 책임은 아니다’ 고 하는 말을 늘 전제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사람은 믿고 의지하는 대상은 아닙니다. 사람은 서로 협력하고 사랑해야 하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의지하고 바라보아야 할 분은 하나님 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내가 처한 이 문제를 해결해낼수가 있으신 구원자 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처해있는 이 슬픔과 절망과 고통에서 구원해주실수 있으신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나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해주실수 있으신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이십니다. 그럼으로 구원가 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남은 생애 신앙생활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왜 우리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까?

둘째로 하나님 만이 나의 반석, 나의 요새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2절입니다. 2.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오’ 반석이 무엇입니까? 영어성경에서는 반석을 ‘Rock'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넓고 편편하게 된 큰 돌을 말하는데 실제적인 의미는 안전하고 견고해서 흔들리지 않는 기초를 말합니다. 이세상은 변하지만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이시까 그분이 하시는 말씀도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8절입니다. 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아무리 수많은 세월이 흘러가고 그래서 천지가 변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변함이 없이 그대로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요새가 되십니다. 요새는 가장 안전한 곳을 의미합니다. 우리 인간은 담이나 울타리입니다. 하지만 큰 바람이 불고 환난을 만나게 되면 담이나 울타리는 무너지고 넘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요새는 큰 바람이 불거나, 적군이 공격해와도 요동하지 않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지가 내일 10월 24일이 되면 10개월이 됩니다. 제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을 보면서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전투중의 하나가 마리우폴에 위치한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의 항전이었습니다. 마리우폴 도시는 러시아와 가까이에 위치한 항구도시인데 러시아의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인해 도시 90퍼센트 이상이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 도시의 마지막 항전지이자 요새지 이었던 아조우스탈 제철소는 러시아의 무차별적인 폭격과 사용해서는 안되는 소이탄을 퍼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요새는 건재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아조우스탈 제철소안에 만들어놓은 요새는 러시아가 핵공격을 해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라고 까지 말할 정도이었습니다. 하지만 82일째 동안 이어온 우크라이나 군의 항전은 부상병들과 우크라이나 군 사령부의 권유로 인해 항전을 중단하고 항복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조우탈 제철소안에 깊고 견고하게 만들어놓은 요새는 그때까지도 건재하였다는 소식이 그당시 제마음에 깊이 새겨지게 되었습니다. 요새는 담이나 울타리와는 비교가 안될만큼 강하고 견고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요새가 되십니다. 사탄의 어떠한 공격이나 위협 앞에서도 하나님이 세우신 요새는 안전합니다. 다윗은 어려운 시기에 반석이 되시고 구원이 되시고 그리고 요새가 되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는 인생을 살아갈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저와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시선이라 할수 있습니다. 눈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어떤 일이 생기고 있는가 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무엇을 바라보느냐 하는 것에 있습니다. 누구를 바라보느냐 하는 시선이 더 중요합니다. 상황이나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선이 지혜롭고 복된 사람입니다. 다윗은 환란가운데서 오직 자신의 시선을 하나님을 향하였습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환경이나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왜 우리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까?

셋째로 소망을 가질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5절입니다. 5.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여기에서 ‘소망’은 자기를 해칠려고 하는 대적들로부터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기를 바라는 소망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과 같은 배경이 있는 성경 두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시편 39편 7절입니다. “7.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 39:7)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그리고 시편 71편 5절입니다. 5.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오 내가 어릴 때부터 신뢰한 이시라 ‘주는 나의 소망이시오’ 오늘 본문이 있는 시편 62편과 그리고 방금 살펴본 성경 두 구절인 시편 39편과 시편 71편은 공통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윗이 고통과 환난을 겪고 있을 때 썼다는 것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오늘 본문과 시편 39편 그리고 시편 71편 모두가 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하여 마음에 극심한 고통중에 있는 가운데 썼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분명한 것은 다윗이 편안하고 안전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아주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016년에 개봉된 ‘터널’ 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회사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중에 갑자기 터널이 무너져 내리면서 그안에 갇혔던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갑자기 무너져 내린 터널 안에서 오직 이 사람만이 살아남았습니다. 그 상태에서 이 사람이 할수 있는 일은 구조를 기다리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사람의 차안에는 자기 딸의 생일 케익과 마실 생수 두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외부에 자신이 처한 상황를 알릴수 있는 78 퍼센트의 배터리가 남아 있는 휴대폰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사람은 자신이 살아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휴대폰으로 가족과 경찰에 자신이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립니다. 그래서 무너진 터널 밖에서는 이 사람을 구조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과 장비가 동원이 됩니다. 하지만 무너진 터널 속에서 이 사람을 찾아내고 구조하는 일은 쉽지 않게 되고 며칠이 지났습니다. 이제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음식도 떨어졌고, 물도 다 떨어졌습니다. 휴대폰 배터리 파워도 수명이 다했습니다. 산소도 부족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사람을 끝까지 붙잡고 있었던 한 가지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소망이었습니다. 그리고 외부의 사람들이 자기를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소망이었습니다. 결국 이 사람은 무너진 터널에서 구조를 받게 됩니다. 그가 가진 작은 소망이 그를 절망에서 구원해 낸 것입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그를 견디어 내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소망은 사람이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그 환경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저와 여러분이 건강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암과 같은 불치병을 얻게 될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무너져 버린 터널안에서 어둡고 캄캄한시한부 생활을 할수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내가 처한 환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볼수 있어야 합니다. 왜요? 하나님만이 나의 소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구원자이시오 반석이 되시며 요새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소망은 어떠한 환경에 처해있어도 그 환경을 극복하고 견디어 낼수 있는 힘이 됩니다. 그럼으로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 처할수록 소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합니다. 집으로 가는 길이 무너진다 할지라도 소망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케익이 떨어지고 마실 물이 더 이상 없다 할지라도 소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휴대폰 밧데리의 파워가 다 되어도 소망에 대한 수명은 영원히 지속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러한 소망은 내게 주어진 상황이나 사람들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바라볼 때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나의 구원자이고 반석이시며 요새가 되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볼 때 가지게 되는 이 소망을 가지고 남은 생애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