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성경적 배경의 감사

Author
kgmcc
Date
2022-11-20 03:57
Views
18
본문 : 레위기 23장 39-44절

날짜 : 2022년 11월 20일

<레위기 23장 39-44절>

39.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일곱째 달 열닷샛날부터 이레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 날에도 안식하고 여덟째 날에도 안식할 것이요

40.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41.너희는 매년 이레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일곱째 달에 이를 지킬지니라

42.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

43.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44.모세는 이와 같이 여호와의 절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공포하였더라

 

오늘은 추수감사절 주일로 이렇게 예배를 드립니다. 먼저 추수감사절에 대한 배경은 두가지로 생각해 볼수가 있는데 하나는 청교도들에 의한 배경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성경적인 배경이라 할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추수감사절에 대한 유래를 청교도들에 의한 배경에서 찾고 있습니다. 청교도들에 대한 배경이 무엇입니까? 지금으로부터 402년 전인 1620년 10월달에 102명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 호 배를 타고 이 아메리카 신대륙을 향해서 영국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65일 동안의 긴 항해를 한 끝에 1620년 12월 21일에 미국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해 가을에 곡식을 추수하고 난후에 그동안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추수감사절의 유래가 시작된 청교도들에 의한 배경이라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청교들들에 의한 배경이 아니라 성경적인 배경에서 이 추수감사절을 찾는다면 그것은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초막절이라 할수 있습니다. 이 초막절을 다른 말로 장막절 혹은 수장절이라고도 불리고 있습니다. 이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기중에 가장 마지막에 드리는 절기입니다. 그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해마다 이 초막절이 되면 빈들이나 광야에 나가서 초막을 짓고 그 초막속에서 일주일동안 지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는 여러 가지 형편상 그렇게 까지는 할 수가 없고 자기 집 옆에다가 굵은 기둥을 모퉁이에 네개를 세우고 두꺼운 천이나 합판 같은 것으로 벽을 만들만듭니다. 그리고 그벽 위에다가 감람나무 가지나 종려나무가지를 얹어서 지붕을 만듭니다. 이것을 오늘날 이스라엘에 사는 사람들은 수코트(sukkot)라고 부르는데 이곳 미국에 사는 유대인들은 수카(sukka)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수카의 복수형이 sukkot 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Tabernacle(s) 가 됩니다. 어짾튼 모두가 다 초막 혹은 장막을 의미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초막 안에 가족들이 들어가서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파티를 열면서 즐겁게 지내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에 있는 시편말씀을 낭독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일주일동안 즐거워하고 감사하면서 지내는 절기가 바로 초막절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 초막절은 그옛날 애굽땅에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와서 광야의 생활을 하는 동안에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에 대해서 감사를 하는 절기입니다. 그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행진을 할때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보호해주신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낮에 광야를 행진할 때 그얼마나 뜨거웠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구름으로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막아주고 보호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추운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체온을 보호해주었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움직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야할 목표와 방향을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가 고팠을 때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시고 마실 것이 없었을 때 반석에서 샘물이 나게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들을 기억하고 감사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빈들에 나가서 초막을 짓고 그 초막 안에서 일주일동안 지내는 것이 바로 초막절입니다. 그런데 이초막절을 드리는 시기가 마침 가을 추수가 끝난 직후에 있었기 때문에 그해 한해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절기가 되기도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추수 감사절과 비슷한 모습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이 추수 감사절 주일을 맞이하여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오늘 추수 감사절 주일 뿐만 아니라 남은 생애동안 계속해서 감사를 하며 지낼수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초막절에서 볼수 있는 감사의 내용은,

첫째로 가정에 대한 감사입니다.

본문 40절입니다. 40. 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여호와 앞에서 이레동안 즐거워 할것이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가지고 만든 초막안에 들어가서 온가족이 일주일 동안 지낼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이것은 가정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시는 것에 있습니다. 지금도 매년 이 미국에서 추수 감사절이 되면 그동안 집을 떠나서 여러 지역에서 살고 있던 자녀들이 모여 같이 지내지 않습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가정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이 추수감사절 기간에 함께 모여서 지나간 일들을 서로 이야기 하면서 새로운 힘을 얻고 다시 각각 생활 터전으로 되돌아갑니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에 많은 고난이 있었고 시련이 있었지만 그들이 그 고난을 이겨낼 수가 있었던 이유중의 하나는 바로 가족 때문에 가능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내 남편, 사랑하는 내 아내, 사랑하는 내 자녀들과 내 부모. 그 가족 사이에서 나누어지는 그 사랑의 힘이 광야에서 생활을 하는 동안에 내가 힘들고 어려워도 극복할수가 있는 에너지가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은 핵가족시대라고 부릅니다. 자녀들이 대학을 다니게 되면서부터 간혹 방학때에 얼굴을 보이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가지게 되면 얼굴 보기가 힘든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서로가 편리한 방식으로 살아가다 보니까 젊은 사람들은 이제는 식구들이 많아지게 되는 일을 부담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고 난후에 자녀 하나만 낳고 잘 키우겠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젊은 부부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아예 결혼을 하지 않고 인생을 즐기면서 자유롭게 살아갈려고 하는 젊은 남녀들이 너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결혼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마도 배우자와 자녀들은 내인생에 짐과 부담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가정을 부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가족들은 새의 날개 와 같다. 새는 날개를 부담으로 여기지 않는다. 새는 날개 때문에 오히려 저 멀리 저 높은 곳을 향해서 날아 갈수가 있다.” 그래요 가족들은 부담스런 존재가 아닙니다. 결혼을 해서 자녀가 한명 더 생긴다고 해서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하나 더 생기면 그만큼 기쁨이요 즐거움이 되는 것입니다. 아시겠지만 저에게 세명의 딸이 있지 않습니까. 이번 추수 감사절을 맞이하여 저희집에 다 모일 계획이 있습니다. 그런데 딸이 세명이 모이면 자기들끼리 집에만 있어도 심심해 하지 않고 재미있게 지냅니다. 넷플리스에서 방영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지냅니다. 지난번에는 자정이 넘도록 영화를 보면서 떠들어서 제 아내가 조용하게 했던 일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우리의 즐거움이 됩니다. 추수 감사절이 끝나고 그다음주에 각자가 자기가 생활하던 곳으로 돌아가게 되면 집안이 적적한 느낌이 들게 될 것입니다. 밤늦게 까지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소리가 귀찮고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워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족은 저와 여러분에게 큰 위로와 즐거움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가족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도 있을 것입니다. 가족 중의 하나가 다치고 병이 나서 힘들어 하는것을 보면 내 마음이 아플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보다는 훨씬 더 많은 축복, 훨씬 더 많은 행복, 훨씬 더 많은 격려가 우리의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수코트를 가족들의 shelter, 가족들의 안식처 라고도 말을 합니다.

우리는 요즘 경제적으로 참으로 어려운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물가가 높아지는 인플레이션은 계속 진행 중이고 연방 준비제도는 이 높은 인플레이션을 잡겠다고 계속 금리를 올리고 있습니다. 연준이 경기가 침체 되는 것을 각오 하면서라도 인플레이션을 잡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경기 침체는 이미 누구나 예상하고 있는 기정 사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년 경기는 지금보다도 더 침체가 될 것이라고 모두 예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렇게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에 나의 가족마저 없었더라면 나는 더 힘들고 더 메마르게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내 가족들의 격려와 애정이 있기 때문에 어려움 속에서도 내가 기쁨과 힘을 다시 얻을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므로 저와 여러분, 나에게 가족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하십시다. 가정에 대한 감사 이것이 바로 초막절에 드리는 첫번째 감사입니다. 가정에 대한 감사, 가족을 주심에 대한 감사 이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 드리시는 감사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초막절에서 볼수 있는 감사의 내용,

두 번째는 신앙의 공동체에 대한 감사입니다.

본문 41절입니다. 41. 너희는 매년 이레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매년 이레 동안(일주일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초막절기을 지내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만든 수코트 안에서만 지내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다른 사람들이 세운 수코트를 방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옛날에는 거리가 조금 떨어진 광야에 여러 사람들이 함께 거할 수 있는 굉장히 큰 수코트를 만들어놓고 그곳에서 같이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유대인 회당 같은 곳에 방문해서 회당안에 만들어놓은 수코트에서 같이 지내기도 한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이렇게 행동을 하는 것은 그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에서의 생활이 바로 신앙 공동체의 생활이었다 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같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섬기던 공동체에서 보여주었던 격려와 위로 때문에 내가 그 힘든 광야의 길을 행진할 수가 있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을 오늘날 신약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이 믿음의 공동체는 바로 교회를 의미한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이 사회에서 할 일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는 비판을 여기 저기에서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그 비판들이 상당한 일리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이 교회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 세상을 한번 상상 해 보십시요. 교회가 비판을 받고 있는 부끄러운 요소도 있지만 교회가 줄 수 있었던 축복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귀한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올 때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드리면서 내가 다시 회복되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회복되어지는 과정속에서 기쁨과 새로운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땅 너머 저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질수 있게 해주는 이러한 교회가 하나도 없는 세상에서 산다는 것을 우리는 상상해 볼수가 없습니다.

20세기의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나이가 많이 들고 나서야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그때 이 아이슈타인 박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평소에 특별히 젊었을 때 교회를 경멸했고 교회를 무시했다. 그러나 나의 조국 독일이 어두워져 가고 있을때 그리고 나치의 핍박 아래 있었을 때 내가 경멸하고 무시했던 교회는 우리 민족의 유일한 소망이었고 사람들의 안식처였다. 그리고 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내 인생의 황혼에 나는 교회 이외에 내 영혼의 위로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교회로 다시 돌아온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가족, 하나님의 교회. 이 교회를 주신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하십시다. 교회에 대한 감사 믿음의 공동체에 대한 감사 이것은 바로 저와 여러분이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할수 있는 원동력이 될것입니다. 믿음의 공동체에 대한 감사 이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드리시는 감사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초막절에서 볼수 있는 감사의 내용,

세번째로는 영원한 소망에 대한 감사입니다.

본문 42절입니다. 42. 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 ‘너희는 이레동안 초막에 거주하되’ 초막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집을 떠나는 연습을 하게 됩니다. 집을 떠나 광야에 있는 초막에 들어가서 한 주간동안 야영 camp를 하는 것입니다. 일시적이고 시한적이지만 살고 있었던 집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동안 편안하게 지냈고 정이 들었던 그 집을 잠시 떠나면서 그들은 이세상에서 살았던 집을 떠나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여년 동안 살아왔던 애굽 땅에 있는 집을 떠나서 광야로 왔을때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서 광야에서 지낼수 있는 처소를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처소에 있을때 하나님께서는 가나안땅에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갈수 있는 처소를 예비해 놓으십니다. 이러한 일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지금 광야와 같은 이땅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지금 저와 여러분이 영적인 가나안 땅 즉 천국에서 영원히 살아갈수 있는 처소를 예비해놓으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언젠가 저와 여러분이 집을 떠나야 하는 날이 오게 됩니다. 초막 절기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잠시동안 자기집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떠나야 할 순간이 올 것입니다. 그날은 나의 이 영혼이 이 육신의 집을 떠나는 순간입니다. 그날에는 내 사랑했던 식구들과 가족들이 있는 이 땅에 있는 집을 떠나야 합니다. 그런데 그날 우리는 주님께서 예비해놓으신 집에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에 가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요한복음 14장 1절입니다.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내 아버지 집에 거할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하늘나라로 올라가신 예수님은 지금 저와 여러분이 거할 처소를 예비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추수 감사절을 맞이하면서 지낼때마다 하늘나라에서 나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해놓으신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절입니다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줄 아느니라”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장막집은 바로 나의 이 육신입니다. 이 장막집이 무너질 때, 이 육신이 무너질때 우리는 주님께서 지으신 영원한 집에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요 저와 여러분. 우리가 언젠가 세상을 떠나갈 때 사랑하는 내 남편 내 아내에게 이렇게 인사하게 될것입니다. “여보 내가 먼저 떠나서 미안해요. 우리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십시다. 그때 우리가 거기에서 다시 만나게 되면 이러한 이별은 더이상 없겠지요” 그리고 내 자녀와 나의 부모님, 형제 자매에게도 이러한 비슷한 인사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 영원한 처소에서 영원한 만남을 소망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 믿는 성도들은 헤어져도 소망이 있고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목회를 했던 교회에 출석하시던 어느 한 여 집사님 으로부터 몇 년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던 자기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암에 걸려 투병생활을 하시다가 이제 세상을 떠나기 얼마전에 자기 남편이 이렇게 자기에게 말을 하더랍니다. “여보 우리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십시다. 나는 지금 저 좋은 하늘나라에 너무 가고 싶어서 내 가슴이 너무 너무 벅차 올라요. 여보 내가 먼저 좋은데 가서 미안해요. 나중에 천국에서 우리 기쁘게 만나요”

그 집사님이 눈물을 훔치면서 저에게 하시는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제 마음에 큰 감동이 왔습니다. 사실 너무나 멋진 이별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천국이 천국다울수가 있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내가 거기에서 만날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했던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그곳이 천국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너무나 많은 고통을 당하고 너무나 많은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다면 이 아픔과 이 고통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육신의 집이 다가 아니고 내 이 육신의 집을 내가 떠나게 되는 날 나는 하나님이 예비해놓으신 집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집에서 내 사랑했던 가족과 내 사랑했던 신앙의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함께 기쁨의 축제를 벌리면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거기 영적인 가나안땅인 천국에서 드리는 초막절 감사가 진정한 기쁨의 축제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동안 내게 아픔이 있고 고난이 있어도 내가 감사해야할 충분한 이유가 될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감사의 계절에 나에게 가정을 주심에 감사를 드리십시다. 신앙의 공통체인 교회를 주심에도 감사를 하십시다. 그리고 이땅에 살고 있으면서도 영원히 살아갈수 있는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이세상에서 살아갈수 있게 해주심에 대해 감사 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