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복이 되는 고백

Author
kgmcc
Date
2022-12-04 12:29
Views
75
본문 : 마태복음 16장 13-19절

날짜 : 2022년 12월 4일

 

<마태복음 16장 13~19절>

13.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이르되 더러는 침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빌립보 가이샤랴 지방에 이르렀을 때 제자들에게 세상의 사람들이 자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물으십니다. 그 때 제자들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본문 14절입니다. "14.이르되 더러는 침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그당시에 예수님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평가는 다양했습니다. 사람들은 침례요한이나 엘리야나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들중의 한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내리는 평가는 다양합니다. 예수님을 위대한 사상가나 철학자로 보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기독교를 만들어낸 위대한 종교가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번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15절)고 물으십니다. 사실 예수님의 관심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인 너희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하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요. 이 세상의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어떤 생각과 신앙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늘 예배를 드리고 있는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도 저와 여러분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예수님의 질문에 잘아시다시피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본문 16절입니다. 16.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베드로의 고백에 예수님이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17절 전반부입니다. 1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네가 복이 있도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러한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들은 복이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 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신앙의 고백이 나의 구원을 결정하고, 나의 신분을 결정하고, 나의 존재 가치를 결정하고, 나의 행복을 결정하고, 나의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가 이런 신앙을 고백할 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시몬아 네가 이런 고백을 하다니 참 지혜롭고 똑똑하구나" 가 아닙니다. “네가 복이 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예수님에 대한 신앙의 고백보다 더 큰 복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향하여 이러한 고백을 드릴 수 있는 사람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남보다 가진 것이 없고, 많이 배우지 못했다 할지라도, 건강하지 못하고, 사방으로 우겨 싸임을 당하여 이런 저런 어려움에 처해있다 할지라도, 이런 고백을 할수 있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저에게 있어서 주님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런 신앙고백을 하며 신앙생활을 해나가도록 하십시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신앙의 고백을 하는 사람이 행복한 것입니까?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이러한 고백을 하는 사람이 왜 복되고 행복한 사람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 이라고 신앙 고백하는 사람이 왜 복된 것입니까?

첫째로, 이 고백은 오직 은혜로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17절 후반부입니다. 17.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베드로가 이렇게 분명한 신앙고백을 하게 된 것은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기 이전에 우리 인간은 영적으로 죽은 존재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입니다. 1.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죽게 될 너희를‘ 아닙니다. ’죽었던 너희’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인간들은 영적으로 죽었다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럼으로 영적으로 죽어있는 상태인 우리 인간의 이성과 지식으로는 예수님이 구세주가 되시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심을 깨달을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배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선하고,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세상의 그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원자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 되심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 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이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알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에게 비밀이 되신 존재입니다. 골로새서 1장 27절 후반부입니다. 27.이 비밀은 너희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이 비밀은 너희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그런데 베드로는 어떻게 이 놀라운 영적인 비밀을 깨달아 알 수 있었던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서 깨달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후반부입니다. 3....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그러니까 이 베드로처럼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으로 인하여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고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이러한 사실을 깨닫았을까요? 다시말하면 베드로가 “아!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시고 그리고 그 성령이 나에게 이 비밀을 알게 해주셨구나” 이렇게 알았겠습니까?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해주시니까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중에는 하나님이 보내주신 성령이 깨닫게 해주셔서 내가 알게 되었다 라고 처음부터 고백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성령이 저와 여러분에게 ‘예수는 너를 구원할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야. 알겠지“ 이렇게 말해주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알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 은혜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입니다. 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에 의하여 우리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떤 믿음입니까? ”예수는 그리스도이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라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으로 인하여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은혜와 구원은 나로부터 난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자, 여기서 전체적으로 간단히 정리를 해보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으로 인하여 우리는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고백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만이, 성령의 은혜가 임한 사람만이, 구원을 받는 사람만이 할수 있는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 이라고 신앙 고백하는 사람이 왜 복된 것입니까?

둘째로, 이 고백 위에 주님이 교회를 세우시기 때문.

18절입니다. 18.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여기서 반석을 무엇을 의미합니까? 로마 가톨릭에서는 베드로라는 이름이 반석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반석 위에" 라는 말을 "베드로 위에" 라는 말로 해석을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 위에 주님이 교회를 세운다' 라는 의미로 해석을 해서 베드로가 제 1대 카톨릭 교황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 로마 카톨릭 교황은 누구입니까? 프란치스코(Papa Francesco)인데 제 266대 교황입니다. 그러니까 로마 카톨릭에서는 지금까지 266명의 교황들에게만 예수님이 교회의 문을 열고 닫을수 있는 열쇠를 주셨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카톨릭에서는 교회에 대하여 로마 교황이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것 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반석은 베드로가 아닙니다. 베드로는 이러한 고백을 한 이후에 몇분이 지나지도 않은 시간에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3절입니다. 23.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그리고 잘 아시다시피 베드로는 나중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인간 베드로에게 교회를 세우셨다면 교회는 벌써 무너지고 사라져 버렸을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의 주장처럼 인간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셨다면 예수께서 교회를 세우신 뒤 몇 시간도 안 돼 교회는 사탄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에서는 베드로가 반석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베드로라는 단어와 뒤의 나오는 반석이 같은 단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에서 앞에 나오는 베드로는 헬라어로 ‘페트로스(petros)’ 인데 이 ‘페트로스‘ 는 남성형 명사입니다. 그리고 뒤에 나오는 반석은 ’페트라(petra)‘ 라는 여성형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여성 명사로서 반석이나 바위를 말합니다. 반석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지면에서 보이도록 솟아 있는 바위(페트로스)가 있고 땅속에 숨어 보이지 않는 암석층으로 형성된 반석(페트라)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앞에 사용되어진 ‘페트로스‘ 와 뒤에 나오는 ’페트라‘ 는 다른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인간 베드로를 향하여 반석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이 반석 위에"라는 말을 베드로 라는 한 사람 개인이 아니라 베드로처럼 신앙고백을 드리는 자 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의미로 해석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는 어떤 한 인간보다는 믿음의 신앙 고백을 훨씬 중요하게 여깁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라고 믿는 신앙의 고백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교회를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18절b) 라는 말씀에서 교회를 세운 이는 베드로가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베드로가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십니다. 로마 카톨릭 교황이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주인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라는 온전한 신앙의 고백 위에 주님이 교회를 세우십니다. 그러므로 이 고백이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아무리 구제를 많이 하고 사회 참여를 많이 하고, 세계 선교를 많이 한다 할지라도 이 고백이 없으면 하나님의 모임이고 단체이지 교회가 아닙니다. 이러한 믿음의 신앙 고백이 없으면 교회는 흔들립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첫 출발은 사람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고백위에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는 믿음의 고백을 하며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이러한 믿음의 신앙 고백을 하며 그 믿음의 고백을 따라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 이라고 신앙 고백하는 사람이 왜 복된 것입니까?

세 번째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18절 후반부입니다. ‘18.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음부’란 히브리말로는 ‘스올’ 이고 신약 성경에서는 ‘하데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권세’라는 단어는 ‘성문’(gate of castle)이라고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권세는 '견고한 성의 능력과 힘' 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음부의 권세는 ‘악한 사람들이 죽어서 가는 곳’ 즉, ‘지옥의 힘’ ‘마귀의 능력’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미 창세기부터 계시록에 이르기 까지 이 ‘음부의 권세’ ‘성문의 힘’ 을 파멸 시키는 일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창세기 24장 60절입니다. 60.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 여기서 네 씨는 보다 구체적으로 보면 리브가의 남편이 될 이삭의 씨 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예언하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씨를 통해 탄생하시게 될 예수 그리스도가 ‘원수의 성문’ 즉 음부의 권세를 깨트리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 계시록 12장 5절입니다. 5.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낳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음부의 권세를 깨트릴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음부의 권세는 예수님을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왜 음부의 권세가 믿음의 고백위에 세워진 교회를 이기지 못합니까? 두가지로 생각해볼수 있는데 첫째는 마귀의 일을 멸하시고 승리하신 주님이 친히 세우신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3장 8절 후반부입니다. 8.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이유 중의 하나는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고백을 하며 살아가는 자마다 주님이 교회를 세우시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게 하시기 위해서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그 어떠한 기관이나 공동체도 음부의 권세를 깨트릴수는 없습니다. 음부의 권세를 깨트릴수 있는 그 어떠한 가정도 이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의 고백위에 세워진 교회에서만 음부의 권세를 깨트릴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가장 큰 사명중의 하나는 바로 음부의 권세와 대적을 하고 음부의 권세와 싸워 멸하는 것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가 친교모임이 됩니다. 같은 지역 고향 사람 모임이 되고 같은 취미 생활을 하는 사람의 모임이 됩니다. 그러다보면 자기쪽이 아닌 상대편 사람들을 비난하게 되는 모임이 되어질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예수님이 천국의 열쇠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 믿는 성도들은 음부의 권세를 이길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 19절입니다. 19.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열쇠의 주된 목적이 무엇입니까? ”매고 푸는 것’이 열쇠의 주된 목적입니다. 여기서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향하여 믿음으로 고백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마다 주님은 천국 열쇠를 주시는 특권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마다 천국 열쇠를 소유하게 되었다는 것은 천국에 들어갈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믿는 성도들에게는 하늘의 문을 열는 수단이 되는 불신자에게는 그 문을 닫는 수단이 되는 것이 바로 천국 열쇠의 단어가 주는 개념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열쇠는 매기 위해서 있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매어 있는 것을 풀기 위해서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문을 닫기 보다는 닫혀있는 문을 열기 위해서 열쇠가 더 소중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믿음의 고백을 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실때 예수님 자신처럼 본받아 행동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당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멸시하고 비난하는 세리와 창녀들에게 까지 천국의 열쇠를 사용하셔서 천국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도 용서받지 못하는 죄를 지은 사람들의 구원의 가능성에 대해서만큼은 마음의 문을 열어놓아야 할 것입니다. 지은 범죄에 대한 댓가는 당연히 받아야 하겠지만 십자가에서 피흘리시고 돌아가신 예수님의 고귀한 희생이 모든 죄인들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것임을 우리는 믿기 때문에 구원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우리가 미리 문을 닫는 것보다는 문을 열어놓고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류의 조상인 아담에게 세상 만물의 이름을 짓게 하시고 다스리는 통치권을 위임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아담이 범죄한 이후로 이러한 권한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되자 하나님은 두 번째 아담인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십니다. 그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믿음의 고백을 하는 성도들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 대해 천국을 열어줄 수 있는 권한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천국 열쇠가 예수님이 사용하셨던 방법대로 제대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올바른 순서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내자신의 마음의 빗장을 먼저 풀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선 내가 내마음을 매이게 하고 내 마음을 닫히게 한 이런 저런 환경에서 자유로운 신분이 되어야 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내 마음의 빗장을 먼저 풀어야 하는 것이 천국열쇠를 사용할수 있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 우리는 비록 나에게 아픔을 주고 고통을 준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그로 인해 닫혀진 마음의 문을 열수 있도록 하십시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남은 생애 열려있는 자유로운 마음으로 살아가심으로서 말미암아 주님이 주신 이 천국 열쇠를 올바로 사용하며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시간에 간단히 정리합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는 믿음의 고백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왜 복된 것입니까? 첫째로, 이 고백은 오직 은혜로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와 허물로 인하여 영저적으로 죽은 우리 인간의 이성과 지식으로는 이러한 사실을 알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고백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이 왜 복된 것입니까? 둘째로, 이 고백 위에 주님이 교회를 세우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일을 멸하시는 예수님이 세운 교회이기 때문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그리고 천국 열쇠를 가지고 문을 닫고 열수 있는 권한이 믿는 성도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음부의 권세와 싸움에서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남은 생애 예수님에 대해 올바른 믿음의 고백을 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