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Author
kgmcc
Date
2022-12-25 06:03
Views
20
본문 : 누가복음 2장 1-7절

날짜 : 2022년 12월 25일

 

<누가복음 2장 1-7절>

1.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3.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6.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오늘은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땅에 오신 성탄절입니다. 그리고 올해는 성탄절이 주일이기 때문에 이 성탄절날에 기독교 교회들이 성탄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성탄절과 관련해서 우리가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내용은 바로 산타 할아버지가 아니라 아기 예수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성탄의 주인공은 산타 할아버지가 아니라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이되시는 아기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처녀인 마리아의 몸에서 탄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짐승들의 음식물을 담는 구유에 누이시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도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님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본문의 배경을 잠시 살펴보시면 그당시 로마의 황제 이었던 가이사 아구스도가 온 천하로 호적하라 라고 하는 영을 내립니다. 본문 1절입니다. 1.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천하로 다 호적하라’ 호적하라 이러한 표현은 우리가 오늘날에는 잘 사용하지 않죠. 호적 이라는 표현 대신에 ‘인구조사’ 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을 보시면 ‘Census' 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당시 로마황제의 명령으로 인구조사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인구조사를 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세금을 내야 되는 사람들의 숫자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보다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서 로마 황제 자신의 통치 기반을 든든하게 다질려고 하는 것에 가장 큰 목적이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이렇게 로마 황제의 명령을 따라 호적 신고를 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요셉과 마리아도 자기들의 고향인 베들레헴에 호적신고를 하기 위해서 내려가게 됩니다.

그 때는 마리아가 이미 아기 예수를 잉태하여 해산할 때가 가까워질 때 이었습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집에서 해산을 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지만 로마 황제의 명령 때문에 할수 없이 그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갈릴리 나사렛 마을에서 유대 베들레헴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마리아가 곧 해산을 하게 될 몸이라 요셉과 마리아는 서둘러 여관을 찾았지만 가는 곳곳마다 방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요셉과 마리아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마음이 조급했겠습니까? 결국 빈방을 못 얻어서 부득불 어느 한 집 허름한 헛간 같은곳에 들어가서 거기서 아기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아기를 눕힐 침대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기를 받아 포대로 싸서(강보로 싸서) 짐승들이 먹는 음식을 담아두는 구유에 눕혔습니다.

예수님이 누구 이십니까? 하나님의 아들이고 만왕의 왕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구세주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이 이세상에 오실 때, 우리 인간들이 드린 것은 고작 구유통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가 이렇게 말한적이 있습니다. "우리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에게 우리 인류가 최초로 준 선물은 구유통 이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이 그분에게 마지막으로 준 선물은 십자가였다"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가운데서 살아야 할 우리 인간을 천국에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이땅에 오신 예수님에게 우리 인간이 처음으로 준 것은 구유이었고 맨 마지막 선물은 십자가이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지옥불에 떨어져 고통속에서 영원히 살아가야 할 마땅한 존재들임을 알수 있습니다.

이렇게 2천년 전 이땅에 오신 예수님은 여관문을 두드렸지만 그 누구도 예수님을 모실 빈방하나 내놓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라고 하는 것에 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의 마음의 방에 들어오시길 원하십니다.

요한 계시록 3장 20절입니다. ‘20.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왜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시는 것입니까? 문 안에 들어오시기 원해서입니다. 이렇게 주님은 지금도 우리 마음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영적인 교제를 나누시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열지 않습니다. 왜요? 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모실 방이 나에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문을 열지 않는 것이죠.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을 우리 마음밖에 두면서 신앙생활 하고 있는 경우가 흔히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성탄절을 앞두고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에게 드릴 방이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한번 생각을 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주님이 머무실수 있는 방을 언제나 준비하며 신앙생활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 당시 예수님에게 드릴 방이 없었던 이유

첫째는 예수님께 드릴 방들이 이미 다른 사람들로 다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7절입니다. 7.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여관에 빈방이 없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당시 로마 황제의 명령에 의해 사람들은 호적 등록을 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니까 여관마다 빈 방이 없을수도 있습니다. 먼저 온 사람들이 방들을 다 차지해 버려서 마리아 와 요셉에게까지 차례가 오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내용은 마리아가 해산하게 될 몸인데도 불구하고 가는 곳곳 마다 여관 주인이 방하나를 내놓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그만큼 사람들은 먹고 살아가는 일에만 너무 열중하다보니까 이땅에 오실 예수님께 드릴 빈방 하나 내놓을 여유가 없었다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의 마음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영적으로 교제를 하시길 원하십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 마음에는 이미 너무 많은 세상의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들어오실 마음의 방이 나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지금은 목사님이 되셨지만 그당시 작곡가 이자 복음성가 가수 이었던 하덕규씨가 1988년도에 작사 작곡한 ‘가시나무’ 라고 하는 제목의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곡이 그당시에는 별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2000년도에 조성모 가수가 불렀는데 아주 큰 히트를 치게 되었습니다. 이곡의 가사내용 일부를 살펴보면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릴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이렇게 시작 됩니다. 그런데 그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 곡의 가사내용에 나오는 ’당신‘ 은 주님이 아니라 사랑하는 연인으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예수님, 주님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연인이 아니라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인줄 사람들이 알았더라면 그렇게 대박을 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어쨌든 이 곡은 주님이 내마음에 들어와 계시고 싶어하시지만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이 바래는 것이 너무 많아서 주님에게 자리를 내어줄 자리가 없다 라고 하는 고백입니다. 이 노래 가사 내용처럼 요즘 우리 주변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너무나 많은 생각들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있으면서도 “오늘 이 예배를 마치고 난 이후에 무엇을 할까? 이제 곧 새해가 다가 오는데 성탄 카드를 보내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새해 카드라도 써서 보낼까? 아니면 귀찮은데 카톡으로 대신해서 새해 인사를 할까? 저 목사님의 설교는 언제 끝이 날까? 오늘은 성탄주일인데 좀 짧게 하시는게 은혜가 될텐데...“ 뭐 이런 저런 생각들이 저와 여러분의 마음의 방에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들로 인해 예수님께서 우리마음 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첫 번째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나 자신의 마음을 오늘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라고 하는 매일 일어나는 이러한 일상적인 생각으로 가득 채워놓고 살아간다면 예수님께서 머무실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우리에게 없어지게 됩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이 성탄절을 맞이하여 무엇보다도 우선 예수님이 머무시는 마음의 방을 마련하며 살아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 당시 예수님에게 드릴 방이 없었던 이유는

두 번째로 사람들의 영적인 무지함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장 11절입니다.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예수님은 구세주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그리스도는 히브리말로는 ‘메시아‘ 인데 그 의미는 ’기름 부음을 받은자‘ 라는 뜻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세워서 사용하시는 왕 과 선지자 그리고 제사장들에게 그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은 이 세가지 직분 즉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 직분을 모두 다 한꺼번에 감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믿는 성도의 왕이 되시고 성도들이 진 죄를 대신하여 희생의 번제물이 되신 제사장이 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는 마지막 선지자가 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영적인 지식입니다. 하지만 그당시에 유대인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신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당시 여관방이 다 차 있었던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사람들이 마리아에게 잉태된 아이가 누구인지 바로 알기만 했다면 절대로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 중에 사모님이 결혼하시기 전에 대한항공 스튜어디스로 일하셨던 분이 계셨습니다. 그 사모님이 말씀하시기를 비행기 좌석에 승객들이 다 차도 VIP 들을 태울 1등석 자리는 언제나 남겨놓는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그 비행기를 타야하는데 빈 좌석이 없어서 그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 비행기 회사 사람들이 보기엔 내가 VIP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호텔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었습니다. 사람들이 다 찼다고 해도 정말 귀한 VIP를 위한 방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당시 베들레헴 여관도 마찬가지이었을 것입니다.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어 세상에 나오실 분이 누구인지 알았다면 여관 주인이 내놓을수 있는 방이 왜 없었겠습니까? 온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 이땅에 오시는 것을 알았다면 그 누가 그분에게 방을 내놓지 않을수가 있겠습니까? 그분 때문에 이땅에서 지금까지 먹고 살아가고 있는데 그분이 나의 창조주 이신줄 알았다면 자기들의 방이라도 내놓았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0절, 11절입니다.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요 1: 10,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왜 사람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영접하지 않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바로 그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구세주 메시야이심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이 머무실 방을 내드리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영적으로 맹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바로 안다고 하면 아무리 바빠도 예수님을 위해 시간을 마련하고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어도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예배하는 시간을 만들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누군지 모르고 살아갑니다. 심지어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조차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귀로 많이 들어서 머리와 이론으로는 알고 있지만 실제 마음과 가슴을 열어놓고 주님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성도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9장 58절입니다. 58.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그만큼 그당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멀리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지식으로 알고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영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 1장 12절입니다.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자’ 그러니까 믿는다는 것은 마음 문을 열고 그분을 영접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생명을 바치신 참 제사장이 되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의 왕이 되시고 우리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그럼으로 이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존귀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 이십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예수님만큼은 내 마음에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가치있게 살아가는 길이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당시 유대인들은 성경을 많이 보았고 그래서 성경을 많이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당시 성경을 많이 읽고 알고 있던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 40절입니다. 39.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40.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우리가 성경을 알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예수님을 알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알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나타나게 됩니까? 예수님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당시 유대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 우리가 예수님에게 가까이 가야 합니까? 영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그럼으로 우리가 성경을 읽고 공부를 하다보면 예수님에 대해서 알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목회자는 날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요. 성경이 곧 예수님에 대해 증언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서로 교제를 해야 서로를 알아갈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나의 구원자되시는 예수님과 영적인 교제를 함으로서 올바른 영적인 지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할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세번째로 그 당시 예수님에게 드릴 방이 없었던 이유는

사람들의 무정함 때문입니다.

본문 6절입니다. 6.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해산할 날이 차서’ 마리아가 해산할 날이 찼다는 사실을 여관 주인들은 알았습니다. 자 그당시 여관의 방들이 다른 사람들로 다 채워졌다고 하십시다. 그리고 또 그 당시 사람들이 마리아가 잉태한 아기 예수를 잘 알지 못했다고 하십시다. 그럴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당시 사람들이 변명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만삭이 되어 아기를 해산할려고 하는 여인을 문밖으로 내쳐버렸다는 것입니다. 사실 요셉이 여관 주인들에게 얼마나 많이 자신들이 처한 사정을 하소연 했겠습니까? ‘지금 제 아내가 해산을 할려고 합니다. 제발 저희들에게 아무 방이라도 좀 내어주십시오. 한시가 급합니다.“ 이렇게 사정 사정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외면 해버리고 그들은 문밖으로 내쳐버렸습니다. 사실 그들에게 방이 없는 것은 아닐수도 있습니다. 특별한 경우를 위해 준비해놓은 방은 있었을 것입니다. 하다 못해 자기들이 사용하는 방도 있지 않습니까? 아마도 그들은 방에서 아기가 해산을 하게 되면 그방이 상당히 더러워지게 될 것으로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주인들이 그 뒷감당 하는 것 보다는 아예 방이 없다고 말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할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기 예수를 가진 부부의 안타까운 사정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그들은 방하나는 준비할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메마르고 인정이 없는 사람들에 의해서 예수님께서는 구유에 누이시게 된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은 얼마나 정이 없는 사회가 되었습니까? 이 성탄의 계절에 아기 예수의 탄생을 노래하고 축하하고 기뻐하지만 정작 위로와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은 외로워하고 배고파 합니다. 오래전에 크리스마스날 밤에 술취한 사람이 거리에서 잠을 자다가 추워서 죽었다고 하는 뉴스를 본적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사람을 그냥 두는 바람에 그사람이 동사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이러한 뉴스는 사실 그렇게 큰 화제꺼리가 되지 않는 평범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감각이 없는 무정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딤후 3장1-3절을 보시면 말세에 일어나게 될 현상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무정하며.... ‘무정하며’ 정이 없는 무감각적인 상태로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말세에는 사람들마다 마음의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니까 자연히 남에게 대한 사랑과 정이 사라져 가는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님에게 방을 내놓을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네가 먼저 주라 네가 먼저 섬기라” 라고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예수님을 마음에 들어오시게 할수 있겠습니까? 자기만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살아가는 사람에겐 정말 부담스러운 일인 것입니다.

교회마다 성탄절이 되면 여러 가지 행사나 모임으로 바쁘게 지내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성탄절의 의미는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를 우리 마음에 영접하는 것에 있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교제하면서 예수님이 좋아하시는 것 나도 좋아하고 예수님이 미워하시는 것 나도 미워하면서 지내는 것이 진정한 성탄절의 의미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믿는 성도들은 아기 예수를 잉태하고 살아가는 마리아와 같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믿는 성도들이 힘들고 어려움에 있을 때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을 보시면 세상 마지막날에 예수님이 수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오른편과 왼편으로 나누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은 천국으로 왼편에 있는 사람들은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준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5장 40절입니다. 40. 너희가 여기 내 형제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내 형제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지극히 작은자 하나에게 섬김과 구제를 하며 살았는가 그렇지 않고 인정머리 없이 살았는가에 따라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이 된 것입니다. 물론 믿음으로 구원받지만 그 믿음은 바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에 있다고 좀전에 우리는 살펴보았습니다. 아기 예수를 잉태하고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도움을 청할 때 우리가 그 요청을 외면하고 모른채한다면 아기 예수를 문밖으로 내쫓는 것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성탄절을 맞이하는 이싯점에서 우리의 마음을 한번 돌아보십시다. 지금까지 내가 너무 분주하게 지내왔기 때문에 예수님이 들어오실수 없는 삶을 내가 살아가고 있지는 않았는지 한번 돌아보십시다. 예수님이 거하시고 머무실 마음의 방을 준비하는 것이 우리그분은 내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풍랑을 잠잠하게 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나의 연약함과 나의 아픔을 다 아시고 계시는 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문제 해결자가 되십니다. 하지만 그분은 때때로 아기 예수를 잉태하고 있는 도움이 필요한 이웃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수 있습니다. 2천년전에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셨을때는 그누구도 빈방을 내어주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도 그럴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기 예수는 구유에서 태어나셔야 할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믿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2장 12절입니다. 12.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세상 마지막날에 예수님이 수많은 사람들을 오른편과 왼편으로 나누어놓으시고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내 형제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예수님의 표적이 무엇입니까?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있는 아기입니다. 이것은 바로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수가 없는 지극히 작은 자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음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이 말씀을 저와 여러분은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저는 이 말씀을 ’너에게 내게 줄 빈방이 있느냐?“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기 예수를 잉태하며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이 어려움과 도움이 필요할 때 우리는 마음의 문을 열고 사랑의 교제를 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이 성탄절날 뿐만아니라 남은 평생동안 아기 예수를 잉태하며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이 어려움이 있을 때 마음의 문을 열고 섬김과 구제를 하며 살아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