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Author
kgmcc
Date
2023-01-01 04:22
Views
19
본문 : 시편 43장 5절

날짜 : 2023년 1월 1일

 

<시편 43:5>

5.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오늘은 2023년 새해 첫날입니다. 새해 첫날이 주일이기 때문에 많은 교회들이 새해 첫날에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일은 12월 25일 성탄절이었기 때문에 교회들마다 성탄절날에 성탄 주일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성탄절과 새해첫날이 주일과 겹치게 되면서 이곳 미국에서는 교회 예배를 드리지 않는 교회가 적지 않다고 하는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미국 라이프웨이 리서치가 얼마전에 미국 전역에 있는 교회들에 대하여 조사한 내용에 의하면 약 11%에 해당되는 교회가 올해 성탄절날이 주일과 겹치기 때문에 이날 교회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는 대답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새해 첫날인 1월 1일이 새해 첫주일과 겹치게 되어 첫날 주일 예배를 드리지 않는 교회가 무려 15%가 되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열 교회중 하나 반 되는 교회가 이날 교회 문을 닫고 주일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들로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내용이라 할수 있습니다. 이전에 우리들은 12월 25일이 평일이라 할지라도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렸는데 지금은 많은 교회들이 12월 25일이 주일이기 때문에 이날 교회 문을 닫고 있습니다. 성탄절과 새해 첫날 교회 문을 닫는 교회는 정말 믿음이 있고,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교회인가 하는 의심마저 생기게 됩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물론 행위의 종교가 아니라 믿음의 종교입니다. 우리 인간의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하지만 믿음과 행위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같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 따로 행위 따로 가 되는 순간 그 믿음은 참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옛날에 제가 한면만 새겨진 동전하나를 가져본적이 있습니다. 누가 장난삼아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동전 앞면은 그대로인데 뒷면은 콘크리트 바닥같은 것에 갈았는지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매끈하게 된 동전이었습니다. 아마 1원짜리 동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물건을 사고 가게에서 거스름돈으로 받았을때는 몰랐지요. 그런데 며칠후에 보니까 그 동전 앞면은 있는데 뒷면은 갈아버려서 아무것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게에서 그 동전을 사용할려고 하니까 가게 주인이 이것은 돈이 아니라면서 안 받아주는 것입니다. 그때 제가 이동전을 어떻게 해야 하나 참 고민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다음에는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아마도 제 형이나 누나들이 도와 주어서 어쨌든 사용 했던 것 같은데 어떻게 사용했는지 확실한 기억은 없습니다. 이렇게 동전에는 앞면과 뒷면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도 믿음과 행위가 같이 있어야 합니다. 성탄절이나 새해첫날이 주일과 겹친다고 교회 문을 닫는 교회가 있다면 그 교회에 출석하는 일에 대해 깊히 생각해보아야 할것입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2023년도 새해에는 믿음과 행위가 일치하는 성숙한 신앙생활을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올해 교회 표어를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라는 말씀으로 정했습니다. 시편 43편 5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인 시편 43편은 시편 42편과 같이 연결되어 한편의 시로 되어 있습니다. 원래는 한편으로 된 시인데 둘로 나누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42편과 43편을 보면 3번이나 반복되는 똑같은 내용의 구절을 만나게 되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먼저 시편 42편 5절입니다. 5.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편 42편 11절입니다. 11.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그리고 오늘 본문인 시편 43편 5절에도 똑같는 내용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글자 하나도 틀리지 않고 이렇게 연이어 사용하게 된 것은 이 두편의 시가 하나의 시임을 보여준다고 할수 있습니다. 이 시편 42편과 43편을 쓴 저자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신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성경책 시편 42편 서두에 ‘고라 자손의 마스길“ 이라는 설명을 볼수 있을 것입니다. ’마스길‘ 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교훈시‘ 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설명에서 나오는 것처럼 저자는 당연히 고라 자손이 쓴 시라고 주장하는 신학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고라자손이 쓴 시라기 보다는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반역을 당하여 왕궁을 벗어나 피신생활을 할 때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소망하며 고백한 시를 고라 자손이 간직하고 있다가 훗날에 내어놓은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신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가 고라 자손이다 아니다 실제 저자는 다윗이다 라고 신학자 들사이에 이견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누구이든지 간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시편을 쓴 저자는 몹시 낙망하고 불안해 하고 마음이 상해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저자가 다윗이라면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해 어려움에 있는 상황이고 저자가 고라 자손이라면 바벨론 포로 신분이 되어 이방인 나라에서 어려움에 있는 상황인 것으로 생각할수 있습니다. 왜 이런 추정을 할수 있는가 하면 시편 42편 4절에 나오는 내용에 의해서입니다. 시편 42편 4절입니다. 4.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마음이 상하는도다‘ 여기서 이 일이 무엇입니까? 그 앞에 나오죠.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며 ...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그러니까 하나님의 성전에서 많은 무리들과 함께 기쁨과 감사의 예배를 드리던 일’입니다. 이전에는 거룩한 성일에 하나님의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지만, 지금은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고 싶어도 그럴수가 없는 상태에 있어서 내마음이 슬프고 아프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저자라고 한다면 아들 압살놈의 반란으로 인해서 피신한 상태일 것이고, 고라 자손이 저자라면 나라가 망해서 70년동안 이방나라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할때인 것입니다. 어쨌든 이 시편의 저자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믿음의 사람들을 향하여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라고 외칩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 새해 첫날에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 어떤 소망을 두며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올 한해 지내시는 동안 하나님께 이러한 소망을 두며 살아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어떠한 소망을 두며 살아야 합니까?

첫째는 그분이 나타나신다는 소망입니다.

5절 전반부입니다. ‘5.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그가 나타나‘ 우리 믿는 성도들마다 내가 처한 상황이나 문제가 다르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나타나신다 라고 하는 소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모양과 그 방법은 각각 다를수가 있겠지만 반드시 나타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로 가득차있습니다. 엘리야를 보십시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 과 아세라 선지자400명 도합 850명의 이방신을 섬기는 선지자들과 영적인 전투를 해서 승리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이후 이 엘리야는 이세벨 왕후에게 쫓겨서 광야로 도망을 가다가 마침내 로뎀나무 아래에 쓰려집니다. 그리고는 엘리야는 너무 지치고 힘이들어서 자기 자신을 죽여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 엘리야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는 먹이시고 마시게 하시면서 지쳐버린 엘리야의 기력을 다시 회복시키신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야곱은 배가 고픈 형 에서를 팥죽한 그릇으로 장자의 권리를 가로채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거짓말로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자신이 받게 되자 형 에서가 분노를 해서 자신을 죽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형에서를 피해 집을 떠나 400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하란에 있는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가게 됩니다. 그때 외롭고 고독한 여행길을 가던 야곱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십니다.

신약에서도 예수님을 통해 나타나시는 하나님이심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열두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항해하는 중에 거친 풍랑을 만나 밤새도록 고전분투를 하고 있을 때 가장 지치고 힘들었던 밤 사경에(새벽 3-6시 사이)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를 걸어서 그들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난이후 절망가운데 자신들의 고향인 엠마오 마을로 가던 두 제자들들에게 나타나신 주님이십니다. 그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은 나타나셔서 말씀으로 그 두 제자들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러자 그들은 고향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갑니다.

이렇게 성경은 믿음의 사람들이 지치고 힘들어 할 때 그들앞에 나타나시는 주님의 이야기로 가득차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소망하며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합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 내가 이런 저런 문제로 힘들고 지쳐있을 때, 절망과 낙심가운데 있을 때 반드시 나타나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소망하며 올 한해도 신앙생활을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어떠한 소망을 두며 살아야 합니까?

둘째는 그분이 도우신다는 소망입니다.

5절 다시한번 보시겠습니다. ‘5.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도우시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우리를 도울수가 없습니다. 도와주고 싶어도 도울 능력이 사람에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위로의 말이나 약간의 물질로 도울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도울수 있는 힘과 능력은 하나님에게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을 의지 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만이 내가 처한 현실을 도와줄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121편 1, 2절입니다. 1.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이 우주 만물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진정으로 나의 도움이 되십니다. 어떻게 도울수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기도를 해야합니다. 나를 도와달라고 기도로 간청해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 가르침을 주기 위하여 하루는 아들에게 이런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얘야, 마당에 큰 화분이 하나 있는데 그 화분을 들어서 거실로 좀 옮겨 놓으라”. 그런데 이 어린 아들이 마당에 가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 큰 화분을 들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아버지 제 힘으로는 안됩니다. 저 큰화분이 무거워 제가 들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말합니다. ”야 이넘아. 정신을 집중하고 긴 심호흡을해서 최선을 다해봐라“ 아버지의 말씀에 이 아들이 다시 가서 시도를 해보았지만 그 큰 화분을 들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가서 내가 최선을 다해서 젖먹던 힘까지 다했지만 화분을 도저히 옮길수가 없다 고 말합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아들에게 교훈이 되는 가르침을 줍니다. ”아들아 네가 최선을 다하는 것은 네 힘으로가 아니라 아빠인 나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 이란다“ ”아버지, 제힘으로는 안돼요. 그러니까 저를 도와주세요. 이렇게 아버지에게 요청을 하는 것이 바로 네가 최선을 다한 것이란다. 왜냐하면 나는 네가 저 큰 화분을 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야”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내 힘과 내 노력으로 일을 감당하지 못할때를 만나게 됩니다. 그럴때마다 우리는 내힘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힘과 지혜로 내가 만난 문제를 극복해나갈수 있도록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입니다. 13.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우리가 문제를 만났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주님께 도와달라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도와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이 도우십니까? ’이는‘ 도우시는 이유는 말이죠.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에게 영광이 되게 하기 위하여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문제 해결을 받게 될 때 누구에게 감사합니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고 고백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결국 하나님 아버지에게 영광이 되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주님이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 바라옵기는 올 한해 그리고 남은 생애동안 기도를 할 때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이심을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신앙생활을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어떠한 소망을 두며 살아야 합니까?

셋째는 찬송하는 삶을 살게 해주신다는 소망입니다.

본문 5절입니다. 5.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저와 여러분이 찬송하며 살아갈때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지으신 목적중의 하나는 찬양을 받기 위함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3장 21절입니다. 21.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이렇게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 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삶이 되는것입니까?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을 위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미국 휴스턴 레이크 우드 교회에서 사역을 하시는 조엘 오스틴 목사님을 잘 아실 것입니다. 이 조엘 오스틴 목사님이 주장하고 있는 번영의 신학은 성경적으로 문제가 많다고 제 개인적으로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든지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는 참으로 귀하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 조엘 목사님이 하루는 자기 아버지인 존 오스틴 목사님에 대한 간증을 한적이 있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어디를 가나 노래를 하거나 기도를 했습니다. 노래를 부를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할때는 휘파람이라도 부셨습니다. 쉬도 때도 없이 부르시는 노래와 휘파람소리에 저희 어머니가 이렇게 한마디 하시기도 했습니다. ”여보, 이제 그만 하세요. 우리 좀 조용하게 살아가십시다“ 그때마다 저희 아버지는 ”여보 너무 그러지 마세요. 나는 지금 기쁘고 행복해서 그래요.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는 것이요“ 이렇게 조엘 목사님은 늘 찬송과 휘파람을 하며 살았던 자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할머니도 노래가 없이는 못사시는 분이셨다는 간증을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할머님 집을 방문할때마다 할머니는 무엇인가를 하면서도 입술에는 늘 찬송 가락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 들었던 기억이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조엘 목사님은 자기 할머니가 이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즐거워한 인생을 살아가셨던 분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찬양은 하나님이 베푸어 주신 은혜에 대한 우리 인간의 반응이라 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 인간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이 하지 말래도 찬양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시편은 150편까지 있는데 시편 1편이 서문이라고 한다면 시편 150편은 결론이라 할수 있습니다.

서문인 시편 1편에서는 복 있는 의인과 멸망할 악인의 삶이 다르며 그 길이 다르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의인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아픔과 절망중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간구하는 내용들이 모든 시편에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시편 맨 마지막 150편에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고 찬양하라고 하는 내용이 결론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150편을 보시면 6절까지만 있는 짧은 내용이지만 ‘찬양‘ 이라는 단어가 11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경험한 사람들만이 하나님께 찬양을 할수 있습니다. 시편 150편 1절과 마지막 절인 6절을 보시겠습니다. 1.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 지어다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성전에서, 즉 교회에서 드리시는 찬양을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십니다. 그리고 6절입니다. 6.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 지어다 할렐루야. 1절에서 ’할렐루야‘ 로 시작을 해서 마지막 절에서 ’할렐루야‘ 로 끝납니다. 할렐루야가 무슨 뜻입니까? 영어성경을 보시면 그 의미를 더 분명하게 알수 있습니다. ’Praise the Lord' 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라는 뜻이죠. 그런데 우리나라 성경에서는 ‘할렐루야’ 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할렐루야 대신에 영어 성경처럼 ‘주님을 찬양하라’ 라고 표현하든지 아니면 ‘하나님을 찬양하라’ 라고 표현 했으면 더 많은 성도들이 이해를 하고 보다 쉽게 받아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제 개인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들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셔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게 하신 이유도 우리의 찬양을 위해서 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1장 12절입니다. 12.이는 우리가 (여기서 ‘이는‘ 은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이라는 의미)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니까 구원받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찬송이 된다는 것입니다. 거꾸로 뒤집어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찬송을 받으시기 위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날마다 찬송을 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다. 지금은 새들백 교회에서 은퇴하셨던 릭워렌 목사님은 교회 성도들에게 공통된 다섯가지 목적을 정했습니다. 내용이 많아서 이시간에는 목적 두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첫째,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한다.

둘째,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한 가족으로 창조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교제한다.

이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목적을 가지시고 이세상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기에 우리는 찬양을 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언젠가 창조주 하나님께서 계신 곳으로 가게 되고 거기서 영원한 삶을 살면서 찬양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찬양만이 있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도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때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게 됩니다. 찬양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되새길 수가 있습니다. 찬양을 드릴 때 우리의 심령이 회복됩니다. 찬양을 드릴 때 현실 너머에 있는 약속을 붙잡고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깁니다. 이것이 찬양이 주는 실제적인 힘과 능력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은혜 가운데서 살아가는 성도들은 마땅히 하나님께 찬송하며 살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아가는 존재‘ 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시편 57편 7절입니다. 7.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시 57:7)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 마음이 확정되었다‘ 는 고백을 두 번이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확정하고 확정했다는 말입니까?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기로 확정하고 확정했다는 것‘ 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인생이 노래하고 찬송하는 삶이 될 때 하나님은 크게 기뻐하시고 크게 영광을 받으신다는 사실을 명심하며 살아가십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올 한해동안 아니 남은 생애동안 저와 여러분을 은혜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늘 찬송하며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