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머물러 서서

Author
kgmcc
Date
2023-01-22 04:25
Views
7
본문 : 마가복음 10장 46-52절

날짜 : 2023년 1월 22일

 

<마가복음 1046-52>

46.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47.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9.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오늘 본문은 바로 육신적으로 보지 못하던 맹인이었던 바디매오라는 사람이 보게 된 사건이 나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입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베푸신 기적이 바로 눈을 보지 못하는 맹인 바디매오를 고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가 되는 것으로 오늘 본문은 끝이 납니다. 이것은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받는 구원은 곧 영적인 시력을 회복하는 사건 의미한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눈먼 맹인이 보게 되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으로 끝이납니다만 요한복음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9장 39절입니다. 39.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주변에 있던 바리새인들은 그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요한복음 9장 40절입니다. 40.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우리도 맹인인가‘ 그러자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다음에 나오는 41절입니다. 41.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의미는 자신이 죄가 없는 의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진리를 보지 못하게 되지만, 반대로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진리를 보게 된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리가 무엇입니까? 진리는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알고 있는 요한복음 14장 6절입니다. 6.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이요 생명이니‘ 예수님은 진리입니다. 그러니까 진리인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진리를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기 때문에 영적인 맹인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보지 못하는 맹인이기 때문에 영생으로 가는 길을 찾아갈수 없고 따라서 구원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당시 바리새인들은 죄를 짓고 살아가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의롭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은 의롭기 때문에 물론 구원을 받고 영생을 누리며 천국에서 살아갈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진리가 되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맹인들 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행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누리고 구원을 얻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마치 방 창문 커텐을 열어서 빛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고 할수 있습니다. 빛이 하늘에서 부터 비추고 있지만 커텐으로 막고 있다면 그 방안은 어두운 상태가 될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믿음으로 나 자신의 마음의 커텐을 열 때 하나님의 빛이 우리 마음의 방을 비추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열려진 커텐 사이로 들어오는 그 빛으로 인해 내 자신의 마음의 방 구석 구석을 볼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내 자신의 방이 더러운 먼지들로 가득차 있는 상태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커튼을 열면 밝은 빛으로 인하여 내 자신이 허물과 죄가 많은 존재임을 깨닫게 되지만 커튼을 닫아버리면 먼지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나 자신이 어떠한 상태인지 알지 못하는 영적인 맹인이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을 보시면 한평생동안 구원자, 메시야를 기다려왔던 시므온이 성령의 감동을 받고 마리아 품에 안긴 아기 예수님을 보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누가복음 2장 32절입니다. 32.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예수님은 이방인인 저와 여러분의 심령을 비추시는 빛이 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창문 커텐을 열면 빛되신 예수님이 내 마음에 들어오십니다. 그리고 그 빛으로 인해 우리는 죄를 짓고 살아가는 죄인이고 이러한 죄인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죄값을 치루어 주셨다는 사실이 알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실에 대해 감사하며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보게 된 것은 믿음으로 자신의 마음의 커텐을 열었기 때문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빛되신 예수님으로 인해 육신적으로는 보게 되었고 영적으로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본문 마지막 52절입니다. 52.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그가 곧 보게 되어 (육신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영적으로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된 것입니다.

저, 이것은 너무 너무 좋은 결과입니다. 맹인 거지 바디매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좋은 결과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지나가시던 예수님이 멈추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49절입니다. ‘49.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이 맹인이 어떻게 하였기에 길을 가시던 예수님이 멈추어 서신 것입니까? 그리고 보지 못하던 바디매오를 보게 하시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까?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예수님이 멈추어 서신 이유를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이 맹인이 얻은 축복을 누리며 신앙생활을 해 나갈수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멈추게 하시기 위해서

첫째로 이 맹인은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47절 전반부입니다 47.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자마자 이 맹인은 즉시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이 맹인이 그 순간을 놓쳤다면 더 이상 기회는 없었을 것입니다. 왜요? 지금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고 계시는 중 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길은 예수님의 마지막 길이었습니다. 만일 이 맹인이 그 순간을 놓쳤다면 눈을 뜰수 있는 기회가 더 이상 없었을 것입니다. 기회는 언제나 오지 않습니다. 기회가 왔을 때 우리는 이것이 마지막이다는 생각으로 그 기회를 붙잡아야 한다는 교훈을 우리는 이 맹인의 행동에서 얻을수 있습니다. 이 맹인은 자기에게 온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성공의 기회가 언제나 주어진다면 실패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기회는 한 순간에 지나가 버립니다. 그래서 누군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기회는 앞 머리는 숱이 많고 길지만 뒤에는 머리가 없는 대머리와 같다.’ 앞에 있을때는 쉽게 잡을수 있지만 지나가버리면 뒤에 머리숱이 없기 때문에 잡을수가 없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오래전 MBC가 방연을 했던 ‘사람이 좋다’ 라는 프로그램에 임지규 라는 배우가 출연해서 자기 가정사를 이야기를 한 것을 인터넷 동영상에서 잠시 본적이 있습니다. 하루는 자기 여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지금 통화를 할수 있겠느냐고 물어왔답니다. 그래서 자기는 지금 예배드릴려고 교회에 들어가기 직전이기 때문에 다음에 하자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답니다. 그리고 그날 예배를 마치고 난후 바쁜 스케쥴을 따라 정신없이 지내고 있던 중에  삼촌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이런 소식을 전해주었답니다. ‘지규야, 네 여동생이 조금전에 자살을 했단다’ 그이후로부터 이 임지규 배우는 나중보다는 지금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하는 인생관을 늘 마음에 깊이 새기고 살아간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6장 34절입니다. 34.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 우리는 내일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합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내일이 아닌 오늘 충성하고 오늘 섬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충성하지 못하는 사람은 내일도 충성하지 못합니다. 오늘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은 내일도 순종하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일이 아니라 오늘입니다. 다음이 아니라 현재 지금이 우리에게는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살아가는 동안 지금 현재가 가장 중요한 순간임을 명심하시면서 주어진 기회를 다음 기회로 미루지 마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멈추게 하시기 위해서

둘째로 이 맹인은 믿음의 고백을 했습니다.

본문 47절입니다. 47.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다윗의 자손 예수여’ 이 맹인은 어떤 말을 들었습니까?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듣고’ 나사렛 예수가 지나간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맹인은 ’나사렛 예수여‘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라고 말했습니다.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나사렛 예수 라고 말했지만 이 맹인은 다윗의 자손 예수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소리 질러 외쳤습니다. 여기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라고 하는 표현은 “메시야 구세주여” 라고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맹인은 지나가는 예수가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바로 그 메시야인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눈이 안보여서 구약 성경을 읽을수는 없었지만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귀로 들을수는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앞을 지나가던 랍비나 구약성경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이 맹인을 위로하고 소망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 한마디씩 성경에 있는 말을 해줄 때 이 맹인은 그 말씀을 듣고 믿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맹인 거지는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말대로 메시야가 오시면 ‘맹인의 눈이 밝아질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리게 될 것이고 앉은뱅이가 일어서게 될 것이다‘ 라고 하는 사실을 귀로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눈먼 맹인을 보게 하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죽은자도 살리시는 예수님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바로 그 메시야 구세주이심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라고 물으실 때 맹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51절입니다. 51.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이 맹인거지는 돈을 원하지도 않았고 음식을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보기를 원했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은 갑부라 할지라도 눈먼 맹인을 보게 해줄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권력을 가진 왕이나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보게 해줄수는 없습니다. 돈과 권력이 눈먼 맹인을 보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맹인이 ‘내가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한 것은 예수님을 전능하신 메시야 구세주로 믿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구약 성경을 보면 능력을 행하였던 자들이 많이 나옵니다.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사람도 살리는 능력의 종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맹인의 눈을 뜨게 해 준 경우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여 내가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는 고백은 대단히 큰 믿음이라 할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이 이러한 능력을 가지신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의 연약한 부분을 강하게 해주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분이심을 믿고 신앙생활을 해나가십시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께 간구할 때 주님은 나의 어떠한 영육간의 질병이라도 고치시고 회복시킬수 있으십니다. 다만 저와 여러분이 간구하고 난 이후에 의심하고 있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야고보서 1장 6절, 7절입니다. 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간구하고 의심하는 사람은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간구를 하고 난후에 의심을 해보십시오. 이것은 마치 어떤 종목에 주식 투자를 하고 난 이후에 의심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마음 상태가 될 것입니다. 주식을 투자하고 난이후에 성공에 대해 의심을 하고 있다면 그 마음이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그럴바에는 차라리 주식 투자하지 않는 것이 훨씬 마음편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절실하게 간구를 하고 난이후에 의심을 할 바에는 차라리 간구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속 편한 길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으로 구하고난 이후에는 주님의 뜻이 있다면 이루어주실것이라는 확신을 하며 신앙생활을 해나가십시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믿음으로 구하고 의심을 하지 않는 성숙한 신앙으로 살아가심으로 말미암아 구한 것 마다 응답을 받게 되는 올 한해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멈추게 하시기 위해서

세 번째로 이 맹인은 믿음으로 행동했습니다.

본문 48절입니다. “48.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 맹인을 보면서 잠잠하라고 야단 쳤지만 이 맹인은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여기서 “소리지르다” 로 번역이 된 헬라어는 본래 까마귀 떼가 떠드는 소리를 나타낼 때 사용되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헬라어는 이렇게 구체적으로 세심하게 나누어서 표현할수 있는 언어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내는 소리에도 남자의 소리와 여자의 소리가 다르게 표현 되고 있고 이런 까마귀 떼가 내는 소리도 표현할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헬라어는 이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나라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중에서 가장 세심한 표현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까마귀가 우는 소리가 얼마나 옥타브가 높습니까? 저는 까마귀 우는 소리를 듣게 되면 마치 엠블런스가 내는 소리처럼 높고 강한 액센트가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멀리 있어도 귀에 잘 들리는 것입니다. 안들을려고 해도 안들릴수가 없는 소리입니다. 이것은 바로 이 맹인 바디매오가 그만큼 절실했고 간절했다는 사실을 의미 하고 있습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야단을 치고 꾸짖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까마귀 같은 옥타브가 높고 액센트가 강한 소리로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기도는 이렇게 간절해야 합니다. 시편 50편 15절입니다.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시편50:15)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저와 여러분이 죽음과 삶이 나누어지게 되는 환난 중에 있다면 얼마나 간절하게 주님을 부르겠습니까?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간구하기를 주님은 원하십니다. 들어주시면 좋고 안들어 주셔도 할수 없다는 식으로 간구하는 마음자세를 주님은 원하지 않으십니다. 이 맹인은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큰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걸어가시던 발걸음을 멈추신 것입니다. 49절입니다. “49.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예수님께서 왜 가시던 길을 멈추어 섰을까요? 도저히 그냥 지나칠수가 없는 까마귀가 우는 목소리로 주님을 불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 사람을 데려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자, 이시간 저와 여러분 앞에 예수님은 지나가십니다. 이 지나가시는 예수님은 이제 다시는 내 앞을 지나가지 않으실수도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지금 나에게 필요한 내용의 메시지가 들리는 것이 마지막 일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시간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것은 확실합니다. 지금 지나가시는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이 가장 절실하고 가장 필요로 한 소원을 들어주시고 이루어주실수 있으신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던지고 있는 말과 행동 때문에 주저하고 그냥 포기할때가 많습니다. ‘믿어도 안돼. 기도해도 안되는 것은 안되는 거야. 기도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야’. 그렇습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은 맞는 말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말은 아닙니다. 주님은 믿음을 보시고 역사를 하시는 것이지 이치에 맞는 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시고 역사하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제가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해보니까 맞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참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말을 하며 신앙생활하는 사람들도 많이 만나보았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말을 하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맞는 말과 논리적인 말과 그리고 믿음의 말은 전혀 다른 것임을 우리는 분별할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이 맹인이 하는 행동은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차원이 아닙니다. 믿음의 차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믿음을 보시고 가시던 길을 멈추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맹인을 데려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이 맹인이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도 그냥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해라” 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 포기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는 평생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평생을 구걸하는 거지로 살았을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구원받지 못한 삶을 살다가 죽었을 것입니다. 그럼으로 누가 나를 말린다할지라도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이심을 확실히 믿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나의 앞을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멈출수 있게 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52절입니다. 52.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예수님은 ‘너의 간절한 소원이 너를 구원하였다‘ 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너의 시끄러운 소리가 너를 구원하였다” 라고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언제나 믿음의 통로를 따라 역사하십니다. 믿음은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만듭니다. 믿음은 될 수 없는 것을 될수 있게 만듭니다. 이 맹인은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행동을 했습니다. 믿음으로 인해 이 맹인이 눈을 뜨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을 따라가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누가 복음 18장 43절을 보시면 이 장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43.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맹인의 변화된 삶을 보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물론 일차적으로 우리를 영육간에 회복시켜 자유롭게 살아가게 함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유를 가지고 엉뚱한 짓을 하며 살아가라고 나의 간구를 들어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나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 그사람들도 하나님을 바라보보 소망하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함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주를 찬양하며 영광돌리기 위해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조금전에 살펴보았던 시편 50편 15절입니다.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주님이 나의 간구하심을 듣고 나를 건져주시는 궁극적인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맹인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이 맹인이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우리의 간구하심을 들어주시고 우리를 환난에서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우선 우리는 내 앞을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멈출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나가십시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올 한해동안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나가심으로 말미암아 간구하는 것 마다 응답을 받고 그래서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을 찬앙햐게 되는 축복을 누릴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