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사를 불일듯 하기 위하여
<딤후 1장 6절>
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요즘은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전 세계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육신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일을 허용하셨던 뜻을 바라보면서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나가야 할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어려운 장애물을 만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그 장애물을 극복하느나 그 장애물을 극복하지 못하고 포기하느냐 하는 두종류의 인간으로 나뉘어질 뿐입니다.
누가복음 5장을 보시면 네명의 친구들이 중풍병자를 예수님앞에 데려오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님 주변에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서 도저히 예수님 주변에 다가갈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친구들은 포기하지 않고 중풍병자를 침상 채 매고 지붕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는 기왓장을 뜯어내고 침상채 매달아 그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어떤 장애물과 어려운 환경앞에 있다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길을 찾으면 그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가진 그마음을 믿음으로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죄사함과 그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장애물과 힘든 환경을 만났을 때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해결의 길을 찾는 사람들을 통해 일을 행하십니다. 요한계시록을 보게 되면 주님이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책망의 내용이 무엇인가하면 네가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3장 16절입니다.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라오디게아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은 것은 어떤 특별한 죄를 지어서가 아닙니다. 미지근하다는 것입니다. 좋은일이 있어도 미지근하고 나쁜일이 생겨도 미지근해서 하나님이 사용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교회들이 교회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간동안에 두 가지 종류의 성도들로 나뉘어지게 될 것입니다. 바로 열정적인 신앙인과 미지근한 신앙인으로 나뉘어질것입니다. 열정적인 신앙인은 교회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된 상황 속에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참다운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기회를 가질것입니다. 반대로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처럼 미지근 한 사람들은 이번 기회에 참 편하게 신앙생활을 할것입니다. 교회에 나오지 않고 집에서 예배를 보게 되었으니 얼마나 편하고 좋은 기회라고 여기겠습니까? 평상시에는 교회 가지 않으면 눈치를 봐야 하는데 지금은 그러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어떠한 환경을 만나도 신앙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열정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을 통해서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바 되어 쓰임을 받는 사람 가운데 미지근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열정적인 사람을 찾고 사용하십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그 문제는 바로 우리 인간이 가진 그 열정이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타오르는 거룩한 불꽃이 끝까지 지속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열정적으로 시작을 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열정이 식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처음 가졌던 그 열정을 가지고 마지막까지 열정적으로 사역을 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강철도 녹여버릴 것 같은데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이 몇 년이 지나면 마음이 식어지고 그리고는 나중에는 억지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온라인 예배를 드리게 되는 성도들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한주, 두주는 괜찮은데 이것이 한달 두달 넘어가고 그 기간이 점점 더 길어지게 되면 처음에 가졌던 그 마음이 식어지고 미지근한 신앙인의 상태가 될 확률이 많아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저와 여러분의 문제만이 아니라 성경을 보게 되면 하나님의 사람도 그랬던 것을 볼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그들을 부르셨을 때 그들은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이러한 모습은 보통 열정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에 그들은 예수님곁을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옛날 직업으로 되돌아갔던일이 있습니다. 구약의 엘리야 선지자를 보십시오. 갈멜산 산위에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선지자 850명과 영적인 전쟁을 치루었습니다. 엘이야가 기도를 하니까 하늘에서 불이 내렸습니다. 또 기도하니까 삼년 6개월 동안 오지 않았던 비가 내렸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하나님이 하나님이 되심을 드러내었습니다. 얼마나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신앙인의 모습입니까? 그랬더 엘리야가 여인 이세벨의 말 한마디에 그 모든 헌신과 열정이 다 식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도망을 하다가 로뎀나무 밑에 쓰러져 자기 신세를 한탄하고 죽기를 구했습니다. 그래요. 사람은 누구나가 다 연약하기 때문에 우리안에 있는 열정과 헌신이 식어질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죄성이 있고 또 끊임없는 사탄의 공격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안에 거룩한 불꽃이 시들어져 버릴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누군가가 우리안에 차갑고 식어진 가슴에 불을 지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누군가가 다시 불길이 타오를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교회가 필요한 것입니다. 교회안에서 열정을 다시 회복하지 못하면 어디에서 믿음에 대한 열정을 회복할수 있겠습니까? 직장에서 열정을 회복할수 있겠습니까? 교회에서 만나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을 통해 힘을 얻을수 있습니다. 현재 상황은 교회서 만나 같이 예배 드릴수 없는 특별한 경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화나 SNS를 통해 서로의 신앙을 격려할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경우에도 바울과 디모데가 만나서 대화를 통해 신앙의 격려를 주고받은 것이 아니라 서신을 통해서입니다. 서신을 통해서 신앙의 격려를 주고 받을수 있다면 당연히 오늘날 인터넷이나 여러 네트웍을 통해서 신앙의 격려를 주고 받을수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 후서는 바울이 옥중에서 자기 인생의 죽음의 날을 기다리면서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쓴 편지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디모데 후서를 읽다가 보면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간절한 마음이 어떤 것인지 깨달을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간절한 소원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6절입니다. “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바울 자신이 이 편지를 쓴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 하게 하기 위해서’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불일 듯 하게 하라는 표현은 꺼져가는 불씨를 살려서 타오르게 하라는 뜻인 것입니다. ‘다시 불타오르게 하라’, 다시 뜨겁게 하라 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이 표현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알수있나요?. ‘디모데의 열정이 많이 식어져 있구나’ 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디모데가 힘들어 하고 있구나’ 는 사실을 알수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를 쓸때에 디모데는 바울의 후임으로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자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젊은 나이에 에베소 교회의 목회자가 되고 보니까 사람들로부터 이런 저런 말을 듣고 지내야 했습니다. 바울을 담임목사로 모셨던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나이어린 디모데를 담임 목사로 섬길려고 하니 어떻게 갈등이 없겠습니까? 그리고 디모데는 성격이 굉장히 소심한 사람이라 사람들이 자기를 업신여기고 함부로 말을 할때 마음의 상처를 굉장히 많이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동안에 제대로 잠도 못자고 먹지를 못해서 소화가 잘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디모데 전서 5장 23절입니다. “23.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여러분 디모데의 몸 상태가 얼마나 악화되었기에 바울이 이런 표현을 했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디모데 자신에게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사도바울이 감옥에 갇혀서 죽을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까 디모데는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면 두려움이 생기는 것 입니다. 사역으로 인한 두려움이 막 엄습해 오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서 한평생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살았던 바울의 인생이 저렇게 끝이 난다면 앞으로 나의 인생은 어떻게 될 것인가? 바울의 인생 말로가 저렇다면 나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이렇게 자신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막 임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열정이 식어지면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이 바로 두려움입니다. 열정이 식어질때 우리안에 두려움이 막 다가 오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임하니까 고난을 피하고 싶습니다. 디모데가 목사 안수를 받고 가졌던 그 뜨거운 열정이 점점 더 식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이 분위기를 잘 알고 있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를 써서 이렇게 권면을 합니다.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 하게 하라.’ 식어져 가고 꺼져가고 있는 디모데의 마음에 거룩한 불꽃이 다시 타오를수 있도록 영적인 재 점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꺼져가는 심지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세상에서 가장 값진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누군가의 삶을 다시 점화시켜주는 것입니다. 이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멘토가 누구이겠습니까? 그것은 함께 있음으로 인하여 기도의 불꽃을 타오르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거룩한 성령의 불꽃으로 다시 타오르게 만드는 사람이 이세상의 가장 훌륭한 멘토인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나로 인하여 가슴이 뜨거워지고 기도의 불꽃이 타오를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바울은 디모데의 사역중에서 무엇이 불타오르기를 원했습니까? 6절 다시한번 보시겠습니다. “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 하게 하기 위하여...’ 바울은 디모데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가 다시 불타오르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은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죠. 그러니까 디모데는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사람인데 디모데가 언제 하나님의 은사를 받았나요?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여기서 보면 바울이 디모데를 안수할 때 은사를 받았다고 생각할수 있는데 사실 디모데는 장로의 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때 바울과 협력 동역자들이 디모데에게 안수를 했는던 것입니다. 디모데 전서 4장 14절입니다. “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그러니까 디모데는 장로의 회에서 안수를 받을때에 예언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이 디모데가 이때 예언을 통하여 하나님의 어떤 은사를 받았는가에 대해서는 우리는 알수 없습니다. 성경이 말씀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어떤 은사를 받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은사에 대한 중요한 원리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시간 잠시 은사에 대한 중요한 원리를 살펴보시겠습니다.
은사에 대한 중요한 원리
1. 은사와 부르심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성경을 보게 되면 하나님의 부르심과 은사는 뗄레야 뗄수가 없는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1장 29절입니다. “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여기에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을 같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부르실때에 그 사람만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필요한 은사도 주십니다. 우리가 무슨 은사를 받았는지 깨닫지 못해서 그렇지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다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가 이미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은사라고 하면 방언하고 예언하는 이런 것만 생각을 하는데 가르치는 은사도 있고 또 남이 슬퍼하고 울때에 같이 울어주는 은사도 있습니다. 접대하는 은사, 도와주는 은사, 권면하는 은사, 찬양의 은사, 지식과 지혜의 은사 그리고 독신의 은사도 있습니다. 이렇게 은사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부르심에는 반드시 은사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은사의 중요한 원리
2. 다른 사람의 은사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지금 바울은 자신의 은사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디모데가 가지고 있는 은사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금 바울은 의기 소침해있고 침체되어있는 디모데가 그가 받은 하나님의 은사가 다시 불일 듯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사가 각 사람에게 주어져서 은사를 가지고 풍성하게 신앙생활을 해나가길 원했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가기를 원했던 이유중의 하나도 여기에 있습니다. 로마서 1장 11절을 보시겠습니다. “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이렇게 바울이 로마에 가기를 원했던 이유중의 하나는 바로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주기 위함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은사를 가지고 견고하게 신앙생활을 해나가게 하기 위함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요 우리는 내 자신만의 은사가 나타나기만을 구하는 것을 넘어서서 다른 사람에게도 은사가 나타나기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은사가 식어져 있다면 그 은사가 불타오르듯이 할수 있도록 위해서 기도 해야 할 것입니다. 저를 위해서도 이렇게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주여 임목사에게 하나님의 주신 은사가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은사가 식어지지 않게 하시고 만일 식어졌다면 다시 불타오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해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은사의 중요한 원리
3. 이미 주어진 은사를 사용하라.바울은 디모데에게 어떤 새로운 은사가 주어지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미 전에 받았던 그 은사가 다시 불일 듯 일어나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또다른 새로운 은사를 가지기를 원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좀 특별한 은사가 있다면 그 은사를 나에게도 달라고 위해서 기도합니다. 물론 그 기도도 잘못된 것이 아니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을 때 주셨던 그 은사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은사를 잘 개발하고 활용을 해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생각해보세요. 아무리 많은 은사가 있다할지라도 내가 활용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은사는 사용할 때 귀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주신 은사를 잘 활용하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어떻게 은사가 불일 듯 하게 할수 있었습니까? 6절 다시 보시겠습니다. “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과거에 장로 회에서 안수받을 때 받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생각하게 함으로 다시 불일 듯 일어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내 영혼이 침체되면 우리는 과거에 내 인생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기억하며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내가 어려웠을 때 그래서 죽고싶은 마음이 있었을 때, 내가 내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절망하고 있을때에 내게 찾아와 주셨던 그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신 그때의 감동을 그리고 그때의 도우심을 생각하면 다시한번 우리의 심령에 불꽃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힘들고 어려울 때 다시 일어설수 있었던 비밀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베풀어주셨던 그 은혜의 순간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해서 유다광야에서 피난생활을 할 때 다윗은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시편 23편 1절2절입니다. ‘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도망가야 하는 신세가 되었으니 얼마나 마음이 무겁고 지쳐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때 다윗은 그옛날 과거에 하나님이 베풀어주셨던 그 좋았던 일들을 생각하면서 그 힘든 순간을 이겨내었던 것입니다. 어린 시절 양을 치던 목자 생활을 할 때 그리고 골리앗과 결투를 할 때 함께하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한 것입니다. 내가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기 보다는 과거에 온갖 어두웠던 기억들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내게 준 상처들 남편과 자녀가 내게 준 상처들을 기억하고 아픈 과거들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가운데 베풀어주신 과거의 은혜를 생각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예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회상할때에 우리의 마음에 다시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인생이 힘들고 어려울 때 내 영혼이 침체되고 시들어질 때 그리고 열정이 식어질 때 아 그때를 생각하면 다시 가슴이 뭉클해지는 그때만 생각하면 다시 가슴이 뜨거워지는 그런 은혜의 순간들을 기억할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6절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시겠습니다. “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오늘 이시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중요한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다시‘ 입니다. ’다시 불일 듯 하게 하기 위하여‘ 성경을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즐겨 사용하시는 단어중의 하나는 ’다시‘ 입니다. 요한복음 5장을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 38년된 병자를 고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나서 얼마 시간이 지난후에 성전에서 이 병자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 병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5장 14절입니다. ‘14. ...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요한복음 8장을 보게 되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데려오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너희들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떠나게 되고 마지막엔 예수님과 이 여인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 복음 8장 11절입니다. ”11.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생각해보세요. 만일 우리 인생에 다시 주시는 기회가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모세를 보십시오. 모세가 모세가 된 것은 바로 모세의 인생의 ’다시’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모세의 인생에 ‘다시‘ 가 없었다면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평범하게 살다가 죽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미디안 광야에서 양떼를 치고 있는 모세를 다시 찾아가시고 다시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위대한 지도자가 될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잘아는 다윗의 인생에도 다시가 있었습니다. 간음죄와 살인죄가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 다윗에게 다시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 될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에게도 다시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옛날생활로 되돌아간 베드로를 예수님은 찾아가시고 다시한번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넘어지고 실패해도 언제나 변함없이 다시 시작하자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인생을 항한 하나님의 뜻은 다시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위축되어지고 넘어졌을 때 주님은 다시 시작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다시 불타오르게 하시길 원하십니다. 다시 예배의 자리에 나오시길 원하십니다. 다시 기도생활을 하고 봉사의 생활을 하시길 원하십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바라옵기는 다시 불타오르는 심정으로 신앙생활을 해나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