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합당한 생활
<빌립보서 1장 27-30절>
27.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8.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29.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0.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내용은 27절 전반부에 있습니다. 27절 전반부입니다. 27.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그러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내용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우선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알아야 하겠습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한자어로 풀이해보면 복 복자 소리 음입니다. 그러니까 복된 소리, 복된 소식이라는 의미가 복음이죠. 영어로는 good news 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복된 소식이고 good news 인 것입니까? 병든 사람에게는 병이 낫는 다고 하는 것이 좋은 소식, 복된 소식입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부자가 된다고 하는 것이 좋은 소식, 복음입니다. 감옥에 들어가 있는 죄수에게는 석방된다는 소식이 복음이죠. 그러니까 건강해지고 잘살게 되고 자유롭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 복음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의미에서의 복음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복음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복은 우리가 세상에 있을 때 에만 해당 되는 것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죽어서 이세상을 떠나게 되면 이러한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이땅에 없는데 이땅에 나의 돈이 수백만 수천만불이 있으면 무엇합니까? 건강한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땅에서 좀더 오래 살기 위해서 건강이 필요한 것이지 이 몸이 죽어서 땅속에 들어가 있는데 더 이상 건강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건강하고 잘먹고 잘살게 된다고 하는 복된 소식은 이세상에 있을때만 한정되어지는 복음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씀하는 복음은 이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저 하늘에까지 연결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해야 우리가 이러한 성경적인 복음을 누리고 살아갈수가 있습니까? 성경에서 말씀하는 복음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하심을 믿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지은 죄값을 갚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심을 내가 믿을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그냥 복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인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세상을 떠난 이후에 하늘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아간다고 하는 내용이 바로 성경적인 복음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메시지가 있는 복음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라 할수 있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오늘 본문은 말씀합니다. 사람이 입는 옷을 보면 그 사람과 어울리는 옷이 있고, 신발도 자기에게 맞는 신발이 있습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10대 청소년들이 입는 옷을 입고 다니면 전혀 어울리지가 않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말은 “천국의 시민권자 답게 살아라" 라는 의미로 생각해볼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20절 전반부입니다. 20.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믿는 성도인 저와 여러분은 하늘나라 시민권자의 신분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하늘나라 시민권자 답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어떻게 하면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갈수가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며 살아갈수가 있습니까?
- 한 마음 한 뜻으로 협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본문 27절입니다. 27.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맨 마지막 내용을 보시면 ‘협력하는 것과‘ 이 ’협력하는 것‘ 이라는 단어는 본래 두 개의 단어가 결합된 말입니다. “함께“ 라는 전치사와 ”경주한다“라는 동사가 결합된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함께 경주한다‘ 는 의미가 있는 스포츠 용어입니다. 팀이 이길려면 한 선수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팀에 속한 모든 선수들이 다같이 잘해야 합니다. 그런데 잘하기 위해서는 서로 협력을 해야 하죠. 야구 경기를 예로 들어보면 9명의 선수가 한팀이 되어 시합을 하는데 한 두 선수가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투수가 아무리 공을 잘 던져도 수비 선수가 공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에러를 범하면 점수를 내주게 됩니다. 투수도 잘해야 하고 수비 선수도 잘해야 합니다. 그리고 공격할때는 공도 잘 때려야 하죠. 자기 팀의 모든 선수들이 잘 협력해서 경기를 해야 합니다. 축구나 육상 릴레이 경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사람이 잘해보았자 소용이 없습니다. 스포츠 경기뿐만 아니라 교회 성가대 찬양도 마찬가지입니다. 솔로 리스트 혼자 노래를 잘한다고 해서 아름다운 찬양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가대의 모든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여 조화를 잘 이루어야 아름답고 멋진 화음이 나는 찬양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는 협력의 나라이고 상부 상조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아담을 만드시고는 혼자 지내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아서 화와를 만들어 짝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열 두명의 제자를 삼으시고 제자들이 서로 짝을 지어서 전도하러 보내셨습니다. 협력의 중요성에 대해서 좋은 예화가 있습니다. 어떤 두 사람이 강을 건너야 하는 데 건너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사람은 눈이 보이지 않는 맹인이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한사람은 다리를 다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두사람은 강을 건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로 협력하면 강을 건널수 있습니다. 맹인이 다리 다친 사람을 업고 등에 업힌 다리 다친 사람은 앞에 있는 장애물을 보면서 맹인에게 알려주면 서로 안전하게 강물을 건널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이 협력을 하면 혼자보다 더 행복하고 복된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참 행복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할 때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덴마크 사람으로서 코펜하겐에 위치한 행복연구소(Happiness Research Institute)의 소장 인 마이크 비킹 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영국 「더 타임스」가 이 마이크 비킹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로 선정을 했습니다. 이 마이크 비킹이 행복에 대한 강의를 할때마다 이렇게 시작한다고 합니다. 모인 청중들에게 ‘눈을 감으라’ 라고 말한뒤에 ‘최근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려 보라’ 라고 합니다. 그리고 잠시 시간을 주고 난후에 몇몇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묻습니다. ‘행복했던 그 순간에 당신은 혼자이었습니까? 아니면 누군가와 함께 있었습니까?’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때 누군가 와 함께 있었다” 라는 대답을 한답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함께 하고 함께 나눌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슬픔도 함께하고 기쁨도 함께 할 때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런데 신앙의 공동체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 믿는 성도들은 모두 영적인 가족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어떤 상황속에서라도 먼저 협력을 하는 마음자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교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협력하는 것과“ 무슨의미입니까? 어떤 상황이라 할지라도 서로 협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하고 복된 삶을 살아갈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해나갈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어떠한 환경속에서라도 서로 협력하면서 신앙생활을 해나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며 살아갈수가 있습니까?
- 은혜로 인한 믿음의 생활을 해야 한다
29절 전반부입니다. 29.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를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게 된 것이죠. 그래서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입니다. 에베소서 2장 8, 9절입니다. 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러므로 은혜와 구원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는 심판과 저주를 받고 살아가야 할 존재인데도 불구하고 사랑과 자비를 받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은혜는 이세상의 가장 최악의 것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늘나라의 최고의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선한일을 했기 때문에 구원을 얻게 된다면 구원은 우리의 자랑꺼리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구원은 그냥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율법은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은혜는 “하나님이 너를 사랑했다.”(요 3:16) 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했기 때문(요일 4:19) 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인간의 죄를 드러내지만(롬 3:20), 은혜는 구원을 나타냅니다(딛 2:11-13).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죄를 보고 그냥 있을수 없으십니다. 죄는 반드시 처벌하시고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흘리시고 죽으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의로우신 분이시지만 자신의 죄가 아니라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신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5장 21절입니다. 21.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안에서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니까 우리가 이런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일 때 하나님께서는 믿는 사람을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시면 그 사람은 의롭기 때문에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계속 지니고 우리가 신앙생활 해나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에 힘써야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오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입니다. 17.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무엇을 듣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믿음이 성장되어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이단에 대한 분별력이 가지게 될 만큼 성장되어지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살펴보았지만 율법주의자와 영지주의자의 영향으로 인해 오늘날 이세상에 수많은 이단들이 생겨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조건이 아닌 구원의 결과로 우리는 감사와 자원해서 봉사와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믿음은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더욱 강해지고 성숙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나의 이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다라는 마음자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보는 일에 더욱 열심을 내어서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이 바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며 살아갈수가 있습니까?
- 고난을 감당해내는 생활을 해야 한다.
본문 29절입니다.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런데 이 고난을 받기전에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주신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가요? 은혜입니다.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이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믿음 이외에 고난도 있습니다.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고난도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그럴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가지고 고난을 대처해나가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믿음을 버리고 고난을 받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입니다. 무너지고 멸망하는데 무엇이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그리고 우리는 이 믿음으로 고난에 대처해나갈 때 우리는 고난을 이겨 낼수가 있는 것이고 그때 하나님의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많은 고통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우리를 십자가 앞으로 인도하기도 합니다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하고 우리를 돌아보게 하며 우리를 하나님의 품안에 인도해 주기도 합니다. 좀 전에 생각해보았지만 구원은 우리 인간의 선한 행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지금 교사가 되고 집사가 되고 믿는 성도가 되어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딤후 1장 11, 12절입니다. 11.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12.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12절을 보시면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여기서 ‘이로 말미암아’ 라는 바로 앞에 나오는 구절을 의미합니다. 즉 사도바울이 말씀을 선포하고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고 사역을 감당해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믿는 성도들이 직분을 받고 섬기고 봉사해나갈 때 고난이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이렇게 주일날 마다 교회에 와서 신앙생활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친교시간에 나눌 음식을 만들기 위해 그로서리 가게에 가서 돈과 시간을 낭비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고 살아가는 그 자체가 세상에서 고난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복음을 위해 고난받기를 피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왜 고난을 받아도 피하지도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그래요. 우리가 고난을 받고 어려움 중에 있어도 담대하게 신앙생활을 해나갈수가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믿음으로 고난을 감당해나갈수가 있고 이겨낼수가 있는 것입니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코리텐 붐 여사가 있습니다. 이 코리텐 붐 여사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의 나치군인에게 쫓기는 유대인들을 숨겨주는 일을 하다가 붙잡혀 나치 수용소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많은 고문을 당한 끝에 자기 여동생도 그 수용소에서 죽었습니다. 하지만 이 코리텐 붐 여사는 2차 세계 대전이 끝날때까지 살아남게 됩니다. 그 이후에 이 코리텐 붐 여사는 많은 간증 집회와 저술 활동을 통해 예수님을 전하는 생활을 해왔습니다 이 코리텐 붐 여사가 간증집회를 할때 종종 형형색색으로 아름다운 왕관이 수놓여져 있는 보자기 같은 헝겊을 들고 나와서 사람들에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위하여 이런 아름다운 왕관과 그 외에도 더많은 좋은 것들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좋은 것들을 준비해놓으신 선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다’ 그러면서 이 여사는 그 헝겊 보자기를 돌려서 뒷면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 뒷면에는 아름다운 왕관의 모습이 아니라 무질서하게 얽히고 섥혀져 있는 볼품없는 실 자국들만이 보였습니다. 그때 이 코리텐 붐 여사는 이렇게 말하고는 했습니다.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이렇게 형편없고 무질서 하게 얽혀있고 섞여져 있어 보입니다. 이것처럼 우리는 나는 고난과 아픔들이 뒤엉켜있는 힘들고 괴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할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때 하나님의 계획을 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름답고 영광스런 왕관을 만들어 주실 계획을 가지고 일을 행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러분에게 힘든 고통과 아픔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준비하시고 계시는 이 아름답고 멋진 면류관을 바라보면서 이겨내셔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이 코리텐 붐 여사는 자신이 괴롭고 고통스러운 나치 수용소에서 지내온 일들을 간증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바울과 같은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고난이 와도 그 고난을 피하지 않고 담대하게 극복하고 살았습니다. .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에게 얽히고 섞힌 고난들은 이스라엘 나라를 큰 나라로 세워나가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애굽으로 먼저 보내신 것입니다. 시편 105편 17절입니다. 17.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요셉은 종으로 팔렸습니다. 그때 요셉 나이 열일곱살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요셉은 고난이 시작 된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그가(하나님이죠)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하나님의 계획은 이 요셉 한사람을 먼저 애굽으로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큰 민족으로 이루게해서 가나안땅으로 되 돌아오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고통스럽고 괴로운 고난이요 아픔의 세월을 보낸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수를 놓으면 그 천 뒷면에 있는 실들처럼 얽히고 섞인 모습과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것은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왕관으로 이루어 가시는 과정입니다.
성경이나 기독교 역사에 나오는 신앙의 선배님들의 발자취를 보면 모두가 다 희생과 고난의 인생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고난과 아픔을 통해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위대한 신앙인이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주어진 고난과 희생을 기쁜 마음으로 이겨낼수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 8장 18절입니다. 18.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현재의 고난은” 사도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에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이 서신서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막연한 고난이 아니라 지금 매일매일 겪고 있는 실제적인 고난입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지금 내가 받고 있는 이 고난이 크고 힘들수록 내가 장차 받게 될 영광은 비교할수 없을 만큼 더 크고 찬란하다‘ 그러니까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요. 지금 현재, 우리가 받고 있는 어려움과 고통은 훗날에 하나님이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고난은 바로 영광을 누릴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럼으로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십시다. 피하지도 마십시다. 힘든 고난을 만나도 담대하게 그 순간 순간들을 이겨 내십시다. 지금 내 인생이 얽히고 섥혀 있어 보여도 볼품이 없이 보여도 하나님은 아름다운 면류관과 천국의 집들을 수놓고 계십니다.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사람은 고난을 만나도 믿음으로 능히 담대하게 극복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고난과 어려움중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극복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