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예수께서 오사
<요한복음 20장 19-23절>
19.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미국 제 8대 대통령이었던 마틴 밴 부렌이 이런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예수 부활 이전에는 그리스도인이 없었다." 이말이 주는 의미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존재는 바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라고 뜻이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나도 부활하게 될 것이다 라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 이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최고의 선물이 무엇이겠습니까? 값비싼 보석이나 멋진 차 그리고 화려한 집아 좋은 선물이 될수는 있겠지만 가장 최고의 선물은 아닐 것입니다. 지금 내곁에서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이 바로 최고의 선물일수 있습니다. 만일에 내 남편이나 아내가 죽었다고 해보십시오. 남편이 죽은 미망인에게는 다시 살아난 남편이 가장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고 아내가 죽은 남편에게는 다시 살아난 아내가 가장 최고의 선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인하여 하루 아침에 고아가 되어버린 아이들에게는 부모님이 살아서 곁에 계시는 것이 가장 최고의 선물인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 원리로 제자들에게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 함께 하는 것이 최고의 선물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제자들에게 가장 최고의 선물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부활 자체가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는 가장 큰 선물임을 믿어야 합니다.
유럽에서는 이 부활절 전후로 학교마다 약 3 주일간 방학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부활절 전후에 많은 사람들이 휴가를 가기도 하고 부활절을 기념하는 선물이나 카드를 사서 주고 받기도 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부활절 휴가를 보내고 부활절 선물을 주고 받고 또 부활절 음악회를 관람하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활의 신앙은 사람들에게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부활의 신앙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없는 것입니다. 고전 15장 17절입니다. 17.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여기에서 ‘헛되고’ 라고 할 때 헬라어는 ‘마타이아’라고 하는 단어가 사용되어졌습니다. 이 마타이아 라는 단어는 ‘열매가 없다’는 뜻입니다. 열매나 결과가 없는 빈 쭉정이를 볼 때 ‘마타이아’ 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모두 열매가 없다는 것입니다. 빈 쭉정이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믿음의 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구원을 얻어 천국에서 들어가기 위해서 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9절입니다. ”39. 우리는 ...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 그러니가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이 영혼을 구원하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믿음의 생활을 해도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아무런 열매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주일마다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고 찬양생활을 하고 헌금생활을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이렇게 수고한 결과가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결과인 구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부활의 신앙을 가지지 않고 신앙 생활한다면 우리는 이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가 됩니다. 고전 15장 19절입니다.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이 없다면 우리의 인생은 이세상이 모두 입니다. 그렇다면 불신자들이 볼 때 우리 믿는 성도들은 가장 불쌍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이죠. 이 미국땅에서 힘들게 이민생활을 해오시면서 하고 싶은 것 하지 못하고 가고 싶은곳 가지 못하면서 우리는 살아왔습니다. 주일이 되면 교회에 모여서 시간을 드리고 몸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는 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러니까 만일에 이세상의 삶이 전부라고 한다면 우리는 가장 어리석고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이 없었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이 있기에 우리는 가장 지혜로운 사람으로 그리고 가장 축복을 받은 사람임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된 요한복음 20장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나옵니다. 세종류의 사람들이 나오는데 첫번째는 막달라 마리아와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여인들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열명의 제자들이고 마지만 세 번째는 도마라는 제자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중에서 오늘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도마를 제외한 열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생각헤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하신 말씀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면서 신앙생활을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첫째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본문 19절 후반부입니다. 19.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때가 어떠한 때입니까? 19절 전반부입니다. 19.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문들을 닫았더니‘ 왜 문들을 닫았습니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집안에 들어오는 문들을 닫았지만 사실은 마음의 문을 닫았다고도 할수 있습니다. 이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 인간들이 마음의 문들을 닫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두려움에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가장 먼저 평강을 주시길 원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주시는 이 평강은 이세상이 주는 평강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입니다.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라는 이 말씀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세상이 주는 평안도 있다는 것이죠. 이 세상이 주는 평안은 대부분 내가 처해 있는 환경과 많은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평안은 영구적이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좋은 직장에서 높은 연봉을 받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더 평안한 환경에서 살아갈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 직장을 그만둘수가 있을수 있고 그때부터는 직장과 높은 연봉에서 주는 평안은 그사람에게서 사라지게 됩니다. 이러한 경우는 사업이나 자녀들간의 관계에서 마찬가지로 일어납니다. 잘나가던 사업이 무너지거나, 부모에게 큰 기쁨이 되었던 자녀들에게 문제가 생기게 되면 여기에서 부터 오는 평안도 동시에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평안은 일시적인 것이지 영구적이지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주시는 평강은 영원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믿는 자에게 주시는 구원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5장 9절입니다. 9.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누구에게 영원한 구원이 됩니까? 자기에게(예수님) 순종하는 모든 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는 세상이 주는 일시적인 평강이 아니라 영원한 평강인 것입니다. 사실 평강뿐만아니라 위로와 소망도 영원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2장 16절입니다. 16.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집도 영원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절입니다. 1.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줄 아느니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이렇게 이세상에서는 줄수 없는 것들이 주님으로부터 주어집니다. 그래서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른 평강이기 때문에 내가 처한 환경이 변한다 할지라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고 그리고 사업이 망한다 할지라도 상관이 없는 평강입니다. 우리의 자녀에게 문제가 생기고 내 건강에 문제가 생겨도 사라지지 않는 평강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주는 평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평강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야만 세상을 이기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주님이 주시는 평강을 지니고 이세상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둘째는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입니다.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본문 21절 후반부입니다. 21.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예수님은 스스로 이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셔서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종종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 42절 후반부입니다. 42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그리고 요한복음 6장 57절 입니다. 57.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자 그러니까 예수님은 보냄을 받으신 분이고 하나님은 보내신 분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전권대사(Embassador) 라 할수있습니다. 미국이 한국에 대사(Embassdor) 를 보내듯이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모든 권한을 주시고 이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곧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아버지의 일은 무엇입니까?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께서는 이땅에 오셔서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입니다 “4.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하나님의 가장 큰 소원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하나님이 지니신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영혼이 육신을 떠나가시면서 ‘다이루었다’ 라고 외치십니다. 아버지의 소원을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일을 내가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십니다. 그러므로 제자가 하는 일은 바로 예수님의 일이 됩니다. 예수님의 일이 생명을 살리는 것이니까 제자된 우리도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사명 가운데,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힘과 의지로서는 이러한 일을 하며 살아가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3.성령을 받으라
본문 22절입니다. 22.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성령을 받으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받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신 모습은 창세기 2장 7절에 기록된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창세기 2장 7절입니다. 7.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이 말씀은 사람만이 유일하게 하나님의 생기를 받은 존재로서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와 대화를 할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생기를 흙으로 만든 사람에게 불어넣으신 것처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숨을 내신 것은 제자들이 하나님의 생기를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바로 성령을 받는 상징적인 의미가 됩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헬라어로 ‘프뉴마’ 인데 이 단어는 “바람, 호흡, 숨‘ 이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내쉰 숨은 곧 성령을 상징하는 것임을 오늘 본문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 만나 두려워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평강과 능력을 주시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통하여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해 나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신약에 들어와서 역사하는 성령과 구약에서 역사했던 성령의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이 받은 성령은 늘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옛날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사역이 필요할때마다 성령이 그 사람에게 임재하셨다가 사역이 끝나면 그사람을 떠나갔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성령은 믿는 사람들의 심령에 늘 함께 하는 것이 다릅니다. 그래서 임마누엘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입니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가(하나님)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성령을 의미)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러니까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는 목적중의 하나는 영원토록 나와 함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이전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신 것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해서이죠. 마태복음 1장 23절입니다. 23.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그의 이름은(예수)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알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시며 성령을 받으라 말씀하시고 하늘나라에 승천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이 오늘날 믿는 성도들에게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감당하기 힘든 환경을 만나게 될 때 나를 도우시기 위해서 늘 나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7절입니다. 7.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내가 그를(보혜사 성령)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럼으로 믿는 제자인 우리가 이땅에 있는날 까지 주님이 보내신 임마누엘 되시는 보혜사 성령이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사건을 진실로 믿고 있다고 하면, 우리는 이미 성령을 받은 사람들 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을 믿는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성령의 역사로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 전반부입니다. 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은헤 즉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믿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을때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입니다. 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주님이 주신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어떠한 환경과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할지라도 평강의 마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신앙생활 해나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게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네 번째는 죄를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입니다. 23.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 질 것이요’ 이 말씀은 나 자신에게 죄를 사해주는 권세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께서만 죄를 사할 권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심판의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5장 22절입니다. 22.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심판을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죄사함의 권세는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에게만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만일 우리에게 용서하거나 심판할수 있는 권세가 주어진다면 어떤 일이 생기겠습니까? 죄를 용서하는 일보다는 용서하지 않는 일이 훨씬 더 많이 생겨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용서할수 있는 힘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용서할수 있는 힘은 없지만 용서하지 않는 힘은 가지고 있는 존재라 할수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부부 관계의 문제, 부모와 자녀간의 문제 그리고 직장에서 상사와 동료들간의 문제, 그리고 사업상에서 일어나는 이런 저런 문제들을 만나게 됩니다. 사소하고 작은 일도 용서하기가 쉽지 않은데 심각한 죄의 경우라면 용서하기가 정말 힘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도 내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서 상대방을 용서하기로 수십번 결심을 해도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은 우리를 도우십니다. 성령이 저와 여러분의 마음을 주장하면서 내게는 없는 능력을 가지고 그 문제를 극복할수 있게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시며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신 것 입니다. 성령을 받게 되면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도 용서할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성령을 받으라 라고 말씀하신후에 용서의 말씀을 하신 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용서할수 있게 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용서하기가 힘들고 어렵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내 자신이 아무리 생각을 많이 하고 내 감정을 다스린다 할지라도 용서가 안된다면 성령의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용서할수 있는 마음이 생길 때 까지 성령의 도우심을 계속 구하며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보내신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과 우리의 부족함을 잘 아십니다. 그래서 내가 감당하기 힘들고 어려운 환경을 만나게 될 때 탄식하시며 성령은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십니다. 로마서 8장 26절입니다. 26.이와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오직 성령이 말할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 믿는 성도인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죄사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이 보내주신 이 성령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힘과 능력으로 살아가는 존재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 남은 생애동안 부활하신 주님이 보내주신 성령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받아 담대하게 신앙생활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