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첫째는 이것이니

Author
kgmcc
Date
2023-04-16 03:39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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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가복음 12장 28-34절

날짜 : 2023년 4월 16일

 

<마가복음 1228-34>

28.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29.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32.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33.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34.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마가복음 12장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마지막 주간 중 화요일에 일어난 사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마지막 주간 화요일에 예수님께서는 그당시 종교지도자들과 논쟁을 하시면서 이날 하루를 보내셨습니다. 마가복음 12장 1절 이하를 보시면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그들을 책망하십니다. “포도원은 주인이 농부들에게 맡긴 것이지 농부들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 농부들이 자기 소유로 만들려고 온갖 나쁜짓을 하다가 결국은 주인의 심판을 받게 된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은 그당시 종교 지도자들을 책망하십니다. 그이후에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리고는 로마 가이사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일이 옳은것인지 옳지 않은 것인지를 물어봅니다. 물론 이것은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서이죠.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그러나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나라 성경에는 ‘그러나’ 가 빠져 있습니다만 원래는 ‘그러나‘ 라는 접속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그러나‘ 라고 하는 접속사가 사용될때는 앞부분보다는 ’그러나‘ 다음에 나오는 내용이 훨씬 더 중요하고 더 강조 되어지죠. 예를 들어 ’당신은 착합니다 그러나 용기가 없습니다” 라고 말하면 착하다는 것 보다는 용기가 없다는 것을 더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 원리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그러나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에게 바치라“ 라고 할 때 하나님에게 바치라 라는 말이 훨씬 더 강조됩니다. 이 말씀속에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면 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로마 가이사 황제도 하나님께서 허용하셔서 가지게 된 권력이니까 너희들은 이 가이사에게도 세금을 내어야 한다. 그러나 가이사 황제를 왕이 아닌 신으로 섬기는 우상숭배는 안된다 라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도 예수님을 책잡는데 실패를 하고 물러갑니다. 그이후에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에게 옵니다. 그리고선 모세가 만든 수혼제도를 가지고 예수님과 논쟁을 벌리죠. 수혼 제도란 형이 결혼해서 자녀를 가지지 못하고 죽게 되면 동생이 형의 아내를 취해서 형의 가문을 이어주는 그당시에 있었던 특별한 제도입니다. 모세가 수혼제도를 만든 것은 집안의 가문과 과부가 된 여인을 보호할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두개인들은 모세가 부활을 믿었다면 나중에 부활해서 누구의 남편이 될지 혼란스러운 이러한 수혼제도를 만들었겠느냐고 주장한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부활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처음으로 모세에게 나타나셨을 때 ‘모세야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은 ‘산자의 하나님’ 이시라는 의미로 말씀하셨다고 해석해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지금도 살아서 하나님 나라에 있다는 것이죠. 그 사실을 모세가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은 없다고 믿었던 사두개인들도 결국엔 아무런 소득이 없이 예수님으로부터 물러갑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서기관이 예수님에게 와서 질문을 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시작입니다. 본문 28절입니다. 28.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서기관 중 한 사람이....나아와 묻되’ 이 서기관은 왜 예수님께 나아와 질문을 한 것입니까? 문장 중간을 보시면 알수 있습니다.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왔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좀전에 제가 쭉 설명해드린 것처럼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에게 와서 책잡기 위해 수많은 질문을 했지만 예수님은 지혜롭게 잘 대답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이 서기관이 예수께 나아와 질문을 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이 서기관은 예수님에게 그냥 질문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같은 장면이 나오는 마태복음 22장을 보시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라고 기록합니다. 마태복음 22장 35절과 36절입니다. 35.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시험하여 물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율법사와 서기관은 같은 사람입니다. 서기관이 하는 일은 주로 성경을 베끼는 일입니다. 헬라어나 히브리어는 점 하나만 잘못 찍어도 의미가 달라져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를 많이 한 학자나 똑똑한 사람들이 서기관을 했습니다. 성경을 베끼는 일을 하다보니 성경 내용을 잘알게 되었고 그래서 율법을 해석하는 일도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기록하는 면을 강조하게 되면 서기관이 되었고 율법을 해석하는 일을 강조하게 되면 율법사라고도 불렀던 것입니다. 또한 서기관이나 율법사는 대부분 바리새인 출신들입니다, 그러니까 서기관 율법사 바리새인들은 모두 같은 신앙계열의 사람들이라 할수 있습니다. 각각 일하는 분야를 강조하다보니까 부르는 명칭이 달라진 것이지 다 같은 종류의 사람들이라 생각하시면 될 것입니다.

이 서기관 중 한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질문을 합니다. 그 질문 내용이 무엇입니까?

28절 후반부입니다. 28.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그당시에 무엇이 가장 큰 계명이냐 라는 논쟁은 바리새인들 사이에서 항상 있어왔던 문제였습니다.

어떤 바리새인들은 예배(제사)를 하라 고 명령한 그 계명이 가장 크고 으뜸이 되는 계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다른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몸에 달고 다니라 고 명령한 그 계명이 가장 큰 계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정결하게 하라고 명령한 계명이라고 주장했고 또 어떤 사람은 절기를 지키라 는 계명이 제일 크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무슨 계명이 가장 크다‘ 라고 대답을 하시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자기들이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한 바리새인들은 그냥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시험 한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은 계명의 내용이 아니라 계명을 잘 지킬수 있는 근본 원리가 되는 말씀으로 대답을 하십니다. 본문 30절입니다. 30.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 계명을 지켜나갈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나갈수가 없습니다. 하루 이틀 한달 두달 정도는 지킬수 있겠지만 일년 이년 십년 이십년 평생 동안은 지속적으로 지켜나갈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지게 된 이 사랑은 우리가 먼저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그 사랑을 먼저 깨닫게 된 이후에 하게 되는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중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로마서 5장 8절입니다. 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어떻게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확증해보이셨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나타내보이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바로 자신의 아들 예수님을 이세상에 보내주셨다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하나님을 사랑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만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살아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좋은 본보기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는 그날 저녁에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 9절입니다. 9.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아들 예수님은 자신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죽기까지 순종하심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고 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계명에 순종하며 살아가기 위해선 나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먼저 깨닫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이 주신 계명을 지켜 나갈수가 있습니다.

 

1.하나님을 사랑하라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은 크게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가지 계명을 지켜나갈수 있는 길은 바로 주님의 사랑을 아는 것에 있습니다. 사랑할 때 우리는 지켜나갈수가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계명을 주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생명의 길로 가라고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라고 모세를 통해서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깨닫지 못하면 그 계명은 우리 인간에게 짐이 되고 부담이 됩니다. 구약에서 십계명을 주신 이 하나님의 사랑이 신약에 와서는 어떻게 나타납니까?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입니다.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말씀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셔서 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던 그 말씀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장 1-3절입니다. 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러니까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이 말씀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죽음으로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말씀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럼으로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 성경 말씀을 읽고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구약은 말씀이신 예수님을 보여주는 그림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신약을 읽다가 이해가 되지 않으면 구약을 참조해서 읽으면서 서로 보충해나가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계신 예수님이셨기에 우리를 끝까지 사랑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입니다.

1.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한복음 13장은 제자들과 마지막 저녁식사를 하시면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성찬식을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자들은 그 발로 배반하고 도망을 갔지만 예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시면서도 그 발을 미리 씻어주신 것입니다. 이미 용서하신 예수님이십니다. 그 제자들 속에 가롯유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단지 그 사랑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못하느냐로 인하여 구원을 받거나 구원을 받지 못하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 인간을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이 사랑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만이 주님의 계명을 지켜나갈수가 있습니다.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랑에 감사해서 우리는 계명을 지켜나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2. 이웃을 사랑하라

자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둘째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31절입니다. 31.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사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면 자연스럽게 감당하게 되는 계명입니다. 왜요?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을 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 사람이 어떻게 이웃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사람도 자연히 사랑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만을 사랑해 사람은 필요없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참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때에 아들을 보내주신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은 십자가의 죽음으로서 사랑을 확정시켜주셨습니다. 그사랑은 바로 나와 나의 이웃을 위한 것 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셨는데 그 계명은 바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과 35절입니다. 34.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입니다. “너희가 예배를 잘 드리면.“ 이 아닙니다. ”너희가 헌금생활을 잘 하면“ 도 아닙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주변에 있는 세상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게 될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나도 너희를 내 제자인 것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세상에는 교회가 많고 목사님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왜 세상 주변 사람들이 참다운 목사가 없다고 말합니까? 그리고 오늘날 교회에 가면 성도들은 많은데 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참다운 성도를 보기 힘들다고 말합니까? 그들이 예배를 드리지 않기 때문입니까? 그들이 헌금생활과 구제 활동을 잘하지 않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주일이 되면 빠지지 않고 교회에와서 예배를 드리고 헌금생활과 봉사 생활을 잘합니다. 그런데 자주 싸웁니다. 경쟁을 하듯이 봉사생활을 해나갑니다. 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마음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이 왜 저렇게 싸우면서 신앙생활을 해? 저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이 맞는 거야?“ 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의 제자로 인정하지 못합니다. 세상사람들도 인정하지 못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을 참제자로 인정하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몇시간후면 붙잡혀서 십자가의 길을 가게 될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했습니까? 요한복음 15장 11절입니다.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내 기쁨이 너희안에 있어“ 이제 곧 붙잡혀 죽게될 상황이었지만 예수님의 마음속에는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왜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죽으러 가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이러한 기쁨이 너희에게도 충만하길 원한다 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럼으로 예수님께서 베푸어 주신 그 사랑이 내 마음에 가득차있다면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라고 말씀하시고 또 ”네 몸을 사랑하는 것처럼 네 이웃을 사랑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을 한마디로 말하면 전인격을 다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최선을 다해 사랑하라 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몸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가장 큰 계명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듣었던 이 서기관은 크게 감명을 받고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32절과 33절입니다. 32.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33.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이 서기관이 한 말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약간 다릅니다. 서기관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서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를 ‘지혜를 다하고’ 로 바꾸어 말했습니다. 이것이 잘못되었다라고 설명하는 분도 계시는데 그것보다는 서기관이 지혜를 목숨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 서기관은 지혜를 목숨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기고 가치있게 여기면서 살아왔던 것입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보아야 할 내용은 이 서기관의 대답을 듣고 난이후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있습니다. 본문 34절입니다. 34.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멀지 않도다 라는 말씀은 아주 가깝다는 의미는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이 서기관들처럼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나라에서 멀리 떨어져서 살아가는 사람과 하나님 나라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똑같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수 없습니다. 그 결과는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거의 들어갈뻔 했다 라는 말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갑돌이가 한달전에 attony 변호사 시험을 쳤는데 거의 합격할뻔했다라고 한다면 합격했다는 의미입니까? 불합격했다는 의미입니까? 변호사 시험에 떨어졌다는 의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은 자나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리 떨어진 자이거나 모두가 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이 서기관은 형식적인 제사나 예배보다는 마음이 더 중요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외모나 형식을 보시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그 깨닫음으로 인해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십자가의 죽으심을 믿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 만일 우리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행하셨던 일을 믿지 않는다면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는 거리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과 이웃은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은 두 개의 계명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하나의 계명 인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너희들이 나를 사랑한다면 그것을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증명해 보이라고 말씀합니다. 요한 일서 4장 20절입니다. 20.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그럼으로 믿는 성도인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버지의 계명을 지켰다. 그래서 그 계명대로 너희를 사랑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힘을 다해 그분의 계명을 지켜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는 이웃 사랑을 행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의 내용을 가장 잘 요약해주는 성경구절을 말씀드리고 마치고자 합니다. 요한 일서 4장 10-11절입니다. 10.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서로 사랑하며 살아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에 늘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십시다. 그리고 이 사랑을 가지고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증거하면서 남은 생애를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