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행복은
<잠언 15장 15-17절>
15.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16.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17.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5월달에 가정에 관한 행사가 많이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행사 일정을 잠시 살펴보면 5월 5일은 '어린이날'이고, 5월 8일은 '어버이날', 그리고 5월 15일은 '스승의 날', 마지막으로 5월 21일은 '부부의 날' 이렇게 가족과 관련이 된 날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5월 5일 어린이날과 5월 8일 어버이 날이 되면 가족의 중요성을 더 느끼게 되는 날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버이날은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만 있고 대부분의 다른 나라에서는 어머니 날과 아버지의 날을 따로 정해서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을 한번에 빨리 빨리 해치워버리는 성향을 알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곳 미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5월 두 번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의 날로 그리고 6월 세 번째 주 일요일을 아버지의 날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습니다. 저희 가정은 미국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어버이 날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 날과 아버지 날 따로 구분해서 지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것은 제가 따로 아버지 날을 챙기겠다고 하는 마음보다는 이곳 미국에 살아가고 있는 자녀들이 이나라가 정해놓은 행사에 맞추어 적응해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서 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교회에서는 어버이 날로 지키지만 저희 가정은 어머니 날과 아버지 날 따로 지키고 있습니다.
나이가 많이 드신 어느 유명한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제가 동영상을 통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 자기 자신이 가정 세미나 강사로 인기가 있었는데 자녀가 생기고 자녀를 양육하면서부터는 가정 세미나를 열어 가르치는 강사 사역은 그만 두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직접 부딪쳐 보니까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랍니다. 자기가 제대로 실천 하지도 못하는 일을 그동안 가르쳐 왔다는 생각이 들어 가정 세미나 강사를 그만 두고 주일 설교와 성경공부에만 치중하며 목회 생활을 해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자기 아들이 결혼을 하고 손자를 얻게 되었는데 이 목사님은 자기 손자가 그렇게 사랑스러울수가 없더랍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은 옛날에 자기 자식에게 못다해준 사랑을 더해서 그 손자에게 베풀었습니다. 손자가 하고 싶어하는 것은 무조건 해주고 가지고 싶어하는 것은 모두 가지게 하면서 아낌없이 사랑을 퍼부어 주었답니다. 그랬더니 하루는 아들이 자기를 찾아와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한가지 고민거리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고민입니다.“ 그래서 ”무엇인데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내가 당연히 도와주어야지“ 라고 말하니까 아들이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아버지, 제 아들이 할아버지와 함께 있다가 집에 돌아오면 한동안 버릇장이 없는 행동을 합니다. 아버지께서 손자가 원하는대로 다 받아주시기 때문에 이녀석의 버릇이 점점 나빠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손자가 원한다 할지라도 조금은 절제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말을 듣고 이 목사님이 자기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야. 이녀석아 내가 할 일은 손자에게 사랑을 베푸는 일이고 네가 할 일은 네 아들 버릇을 고치는 일이야. 그런데 내가 왜 네 아들 버릇까지 고쳐야 하니? 나는 사랑만 베풀 것이니까 버릇이 나빠지는 것은 아비인 네가 고쳐라“ 제가 이 얘기를 전해드리는 이유는 부모가 자식에게 사랑을 가지고 키우는 것과 바르게 키워나가게 하는 일은 정말 힘들다고 하는 것을 말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우리나라 한자 성어에 가화만사성(happiness begins at home) 이 있습니다. 가화- 가정이 화목하면 만사- 만가지 일이 '성' 이룰 성 이죠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이 평화롭고 화목하면 오만가지 일에 성공하게 된다는 의미가 바로 가화만사성입니다. 먼저 가정이 행복하면 학생은 학교에서, 직장인은 직장에서, 사업가는 사업터전에서 하는 모든 일이 잘되어지고 성공적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전국 초등학생들 약 6946명을 대상으로 “행복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라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약 절반이 되는 학생들이 ‘화목한 가정‘이라고 대답을 했다는 기사를 제가 보았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소원하는 것은 초등 학생들 뿐만 아니라 부모님들도 마찬가지 일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은 가정의 행복을 소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가정의 행복을 소원을 하지만 “오늘 당신의 가정은 행복합니까?” 라고 물으면 “예 행복합니다” 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가정의 행복을 원하는 사람은 많지만 가정의 행복을 누리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는 것입니까? 그것은 가정의 행복을 소유에서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가정의 행복을 소유에서 찾고 있습니다. 나에게 돈이 있고 건강이 있고 명예가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남들보다 더 좋은 집을 가지고 더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면 행복하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라도 돈을 많이 버는 부자가 될려고 발버둥을 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내가 성공을 해서 돈을 많이 벌게 되면 그때 아이들과 같이 놀아주기도 하고 가족과 함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아이들은 이미 다 커서 제 갈길을 가고 있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그 시간은 이제 다시 되돌릴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월마트를 창업해서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되었던 샘 월튼은 자신이 죽기전에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인생을 헛살았다. 나는 늘 사업에 바빠서 가족들을 돌아보지 못했다. 나는 손자들의 이름도 외우지 못하는 인생에서 실패한 사람이었다” 이렇게 깊은 후회를 하면서 그는 죽어갔습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돈이 있으면 가족들이 생활하기에 유익함과 편리한 점은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어느정도 돈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돈이 가족의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돈이 가족의 행복을 보장해준다면 돈이 많고 유명한 사업가나 배우들이 왜 자살을 하겠습니까? 행복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복은 바른 관계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정의 행복도 바른 관계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사람들과의 바른 관계 그리고 물질과의 바른 관계에 달려 있습니다. 이 세가지 관계가 잘 되어 있으면 인간은 누구나 행복할 수 있고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지으시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대리통치자로서 모든 것을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지만 자신이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며 살도록 하기 위함에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우리 인간의 바른 관계를 가지게 하는 것이 바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은 선악과를 보면서 피조물인 자신을 깨달으면서 살아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빠져 먹지말라는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이날 이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깨어진 것입니다. 관계가 깨어짐으로 말미암아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하였고 그후에 아담의 후손인 우리 인간들은 죄와 죽음의 법 아래 놓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지으시고 홀로 사는 것이 보기에 좋지 않아서 돕는 배필로 하와를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며 서로 섬기는 관계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서로 사랑하며 섬기는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갈 때에는 모든 것이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아내인 하와에게 “이는 내 뼈중에 뼈요 살중의 살이로다”라며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사랑하며 섬김의 관계가 유지될 때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죄로 말미암아 아담과 하와의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아담은 죄를 짓고 난 이후 저 여자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창세기 3장 12절입니다. “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3:12)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문제가 생긴 모든 책임을 하와에게 돌렸습니다. 오늘날 깨어지는 가정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남편은 아내 때문이라고 말하고, 아내는 남편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자녀는 부모 때문이라고 말하고 부모는 자식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서로의 관계가 사랑과 섬김의 관계가 되지 못하고 문제가 생긴 책임을 서로에게 넘길 때 가정이 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섬김과 사랑의 관계가 깨어지면 존경도 사라집니다. 관계가 깨어지면 피차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날 깨어진 가정들을 보면 진정한 문제는 돈이 아닙니다. 관계의 문제입니다. 부부간의 관계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관계가 회복되면 모든 것이 회복되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가 올바로 되어지면 물질과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그러니까 행복은 내가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 하는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관계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정의 행복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 부부간의 관계 그리고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 물질에 대한 바른 관계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러한 관계의 관점을 가지고 가정의 행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어떤 가정이 행복한 가정인 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어떤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까?
1.마음의 즐거움이 있는 가정본문 15절입니다. 15.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본문을 보면 앞부분에 ‘고난 받는 자’가 나오고 후반부에 ‘마음이 즐거운 자’ 가 나옵니다. 전반부에 나오는 ‘고난 받는 자’ 는 어떤 사람입니까? 성경을 읽다가 의문이 생기면 그에 대한 답은 대부분 그 주변에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본문은 서로 대조된 비교 구문이니까 ‘고난 받는 자’ 는 ‘마음이 즐겁지 않는 자’ 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고난 받는 자는 마음속에 불안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 마음에 평안이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불안과 조바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언제나 일어나지 않는 일까지 미리 앞당겨 걱정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근심과 염려가 떠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한 것입니다. “그 날이 다 험악하다”는 말은 하루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마음에 평안이 없이 살아가니까 그날 그날이 다 고통스럽고 험악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항상 잔치한다는 말은 하루 하루의 삶이 잔치하는 것과 같이 즐겁고 기쁜 날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즐거운 자는 누구를 말합니까?
마음이 즐거운 자는 마음의 평안을 가진 자를 의미합니다. 사람은 내적인 평안을 소유할 때 마음이 즐거울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행복은 그 사람의 외적 조건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외적인 조건이 좋아도 마음이 평안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행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평안함이 없으면 아무리 대궐과 같은 큰 집에 살고 멋진 차를 타고 다녀도 그 인생은 비참하고 불행한 것입니다. 평안이 없는 행복은 행복이 아닙니다. 물론 돈이나 명예는 행복의 조건이 될 수는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남보다 유익하고 편리할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행복의 조건이 될수는 있지만 행복을 결정짓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돈으로 집은 살 수 있지만 가정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어도 행복한 잠자리는 살 수 없는 것입니다. 행복은 내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행복하려면 마음이 평안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내 마음을 지킬수 있는 평안은 누가 줄수가 있습니까? 예수님만이 이 평안을 주실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입니다. 27.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의 마음에 평안을 주시기 위해서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죽음까지도 이겨내는 평안이기 때문입니다. 이세상을 떠나게 되면 하나님의 나라에 살아갈수 있다는 평안은 이세상이 줄수가 없는 참된 평안인 것입니다.
어떤 가정이 행복합니까? 마음의 즐거움이 있는 가정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의 평안이 있는 가정입니다. 내 마음에 평안이 없다면 그 어떤 것도 축복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평안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의 평안을 가지고 살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이번 5월달 뿐만아리라 남은 생애동안 가정의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어떤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까?
2.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
본문 16절입니다. “16.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16절)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가산은 한마디로 돈으로 바꾸어 볼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에게 돈이 적다 할지라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돈이 많지만 염려하며 살아가는것도다 낫다’ 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영어 성경을 보면 ‘fear of the Lord' 로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죠. 하지만 경외하는 마음과 두려워하는 마음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경외는 단순한 두려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위대하기 때문에 벅찬 마음이 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유대인 랍비 인 헤롤드 쿠시너가 경외하는 마음과 두려워하는 마음의 차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적이 있습니다. “두려움은 부정적인 감정이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면 그곳으로부터 도망을 가고 싶어하거나 그곳을 파괴하고 싶어한다. 이 두려움은 우리가 낭떠러지 절벽 가장자리에 서있을 때 느끼는 감정과 같다. 그래서 우리는 속히 그곳에서 도망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경외하는 마음은 어떤 면에서는 두려움과 유사하지만 그곳에 머물고 싶어한다. 어떤 존재에 대해 압도를 당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계속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하는 감정이 경외하는 것이다. 이것은 절벽과 같은 낭떠러지 가장자리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높은 산 정상에 서서 산 주변을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과 같다. 무엇인가 압도는 당해 두려움을 느끼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하는 마음이 바로 경외하는 마음이다’ 이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두려움 속에서도 계속 하나님앞에 머물며 살아가는 모습이다 할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자기 앞에 모시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긴 세월동안 사울왕에게 쫓기면서 도망하는 삶을 살았지만 다윗은 늘 하나님을 모시며 살았습니다. 시 16편 8절입니다. 8.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앞에 모심이여’
하나님을 항상 자기앞에 모시고 살았더니 다윗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도다‘ 비록 사울왕에게 쫓겨서 도망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던 다윗이었습니다.
이방인 이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았던 사람중에 백부장 고넬료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2절입니다. 2.그가(백부장 고넬로)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온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온 가족의 식구들이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갔습니다. 그러니까 그 가정이 얼마나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이었겠습니까?
가정의 행복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것에서 시작되어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다른 관계도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머물며 살아가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어떤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까?
3.서로 사랑하는 가정본문 17절입니다. 17.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요즘에는 돈이 있는 사람들이 채소를 많이 먹지만 옛날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채소를 먹고 부자들은 고기를 먹었습니다. 그러므로 채소를 먹는다는 것은 가난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부자로 살면서 서로를 미워하는 것보다 가난하게 살아도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 낫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랑이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 인간은 사랑을 받고 사랑을 베풀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낍니다. 그리고 사랑의 특징은 혼자서는 할수 없다는 것에 있습니다. 사랑은 대상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라’ 라는 새로운 계명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입니다. 34.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여러분 가정은 나혼자 사는 곳이 아닙니다. 넓게 보면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손자 손녀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좁게 본다 해도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 이렇게 사람들이 함께 어울러서 살아가는 곳이 가정입니다. 이러다보니 각자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를수가 있습니다. 일이 생기게 되면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갈등이 생길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가정은 행복해 질 수 없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할 때 가정은 행복한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힘으로 억압해서 상대방을 고치려고 할 때 그 가정은 파괴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은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새계명을 주신 예수님은 사랑의 기준을 이렇게 세우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이것이 사랑의 원칙이고 기준입니다. 예수님은 내 모습 이대로 사랑하셨습니다. 있는 모습대로 나를 사랑하셨지만 내가 변하고 성숙하게 살아가기를 예수님은 원하십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내 가족을 대하여야 합니다. 우리도 내 가족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십시다. 변하고 성숙하게 되기를 원하지만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내 가족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며 살아가십시다.
스캇 월프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에서 가장 이혼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31번을 이혼했습니다. 한번은 이 스캇 월프의 친구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자네의 인생에 후회스러운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그때 이 스캇 월프가 이런 대답을 했답니다. "내가 처음부터 다시 인생을 살 수 있다면, 나는 한 아내와 더불어 살고 싶네. 내 인생에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가정은 없었다네." 그래요. 이 스캇 월프가 자녀를 얼마나 두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가정생활이 제대로 되었겠습니까? 아주 엉망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요. 지금 살고 있는 남편과 아내에게 감사하십시다. 지금 내앞에 있는 부모님과 자녀에게도 감사하십니다. 우리 인간은 사랑을 먹고 삽니다. 내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다 할지라도 사랑받지 못하면 우리는 견딜 수 없는 고독과 절망감에서 살아가게 되는 존재입니다.
아무리 무식하여도 내 아버지이요 내 어머니입니다. 아무리 능력이 없어도 내 남편이고 아무리 부족해도 내 아내입니다. 아무리 공부를 못해도 내 아들 내 딸입니다. 내가 문제를 만나 어려움을 당하고 내가 어두움속에서 헤매게 되면 누가 나와 같이 있어줍니까? 이웃집 아저씨나 아줌마가 나와 함께 있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평상시에 내가 좋아하는 탈렌트나 배우들이 내곁에 있어 주는 것도 아닙니다. 나를 위해 마음아파하고 같이 울어줄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의 가족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십시다. 이세상에 먼지가 없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마찬가지로 이세상에 약점이 없는 완전한 가정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가정을 이룰려고 하는 것 보다는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살아가도록 하십시다. 부족한 점이 있다 할지라도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때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나갈수가 있습니다.
이제 간단히 정리합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나가기 위해서 첫째로 마음이 즐거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 때 이세상이 줄수 없는 평안을 누리며 살아갈수 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두려운 마음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머물면서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때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아갈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내게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 곁을 떠나지 않는 삶을 살아가심으로 말미암아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아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