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이야기 함 같이
<출애굽기 33장 11절>
11.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요즘 우리나라 연예인들을 보면 어느날 갑자기 혜성같이 나타나 인기를 누리다가 하루아침에 보이지 않는 스타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노래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하게 되면 우승을 한 그 한해동안은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다음해가 되면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횟수가 점점 떨어지게 되다가 어느사이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오랫시간에 걸쳐서 스타로 만들어지게 되는 옛날과 다르게 오늘날에는 아주 짧은 시간에 반짝 스타가 되었다가 곧바로 사라집니다. 한편의 영화나 한편의 드라마로 그리고 한편의 노래로 인기 스타가 되어지는 요즈음입니다. 가창력이나 연기력 보다는 마케팅 홍보와 외모에 의해 스타가 되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보니까 생명력이 없어서 오래가지 못하고 대중의 시선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시간이 조금 지난 오래된 통계이지만 오늘날에도 비슷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라 할 수가 있어서 소개해드립니다. 1992년부터 2002년까지 10년 동안 우리나라 인기 있는 가요 탑 100위안에 든 가수들의 숫자가 무려 1154명이었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난뒤에는 이 탑 100위안에 들지 못하게 된 가수가 약 절반에 가까운 534명에 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느정도 알려진 가수들의 약 절반가량이 일년이 되지 못해서 대중의 시선에서 사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4년이 지났을때는 66명이 남았고 10년이 지났을때는 3명밖에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일천명 중에서 3명만이 10년동안 여전히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지속적으로 인기를 유지하는 길이 참으로 힘들고 어렵다는 것은 말하고 있습니다.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고 지속적인 자기 자신의 엄격한 관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작년에 돌아가셨지만 오랜 시간동안 전국 노래자랑 MC를 맡으셨던 송해 는 90세가 넘은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활동을하시면서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나이 90세가 되었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건강하시느냐는 질문에 자기 건강의 비결은 BMW에 있다는 대답을 했습니다. B는 버스이고 M은 메트로(지하철)랍니다. 그리고 W는 워킹인데 자신은 주로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출퇴근을 한답니다. 그래서 자가용 대신에 매일 BMW를 하면서 살아가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철처한 자기관리로 인해서 나이 90세가 넘어서까지 왕성하게 연예 활동을 하면서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살았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순간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귀하게 쓰임을 받았지만 더 이상 쓰임을 받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사람들이 우리들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도 보게 되면 반짝 스타가 나오는 것을 볼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로 사울왕을 들수 있습니다. 사울은 초창기에 정말 화려하게 등장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첫 번째 왕이 되었으니까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대속에 등장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 마지막은 너무나 추했고 불행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두 아들과 함께 전쟁터에서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유다 8대 왕이었던 요아스 왕도 처음에는 성전재건과 우상 타파에 힘쓴 신실하고 선한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년에는 우상을 섬기고 심지어는 스가랴 선지자까지 죽이는 추악한 일을 행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침상에서죽게되는 비참한 인생을 맞이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주변을 보게 되면 인생의 마지막이 아름답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성실하고 좋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추하고 불행해진 인생들을 주변에서 쉽게 볼수 있습니다. 그동안 가정을 잘 이끌어왔던 남편이 한순간에 잘못된 행동으로 추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우리는 종종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동안 힘들고 어려운 난관들을 잘 극복해 왔지만 결국 마지막 난관을 극복하지 못해서 자기 목숨을 스스로 마감하는 인생들도 있습니다. 반면에 시작은 미약했지만 인생의 말년이 아름다운 사람들도 있습니다. 기생 라합이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수 있습니다. 기생 라합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 왔지만 여리고의 두 정탐꾼을 숨겨주는 하나님의 귀한 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후 살몬이라는 이스라엘 족장과 결혼하여 보아스라는 훌륭한 인품을 지닌 아들을 낳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기생 라합은 다윗왕이 자신의 가문에서 태어났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도 오르는 그런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끝까지 쓰임을 받는 인생은 행복한 것입니다. 인생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여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마지막 강의’로 유명한 랜디 포시 교수가 있습니다. 이분은 카네기 맬론 대학교 컴퓨터 공학 교수이었는데 췌장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의 마지막 강의가 인터넷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 마지막 강의 의 제목은 ‘당신의 어릴적 꿈을 진짜로 이루기’ 이었습니다. 이 마지막 강의에서 이 교수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인생에서 좌절하지 않고 재미있게 인생을 지낼수 있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꿈을 이룰수 있도록 돕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웃으면서 강의를 시작했던 그의 강의는 오늘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가지고 내일을 향해 살아갈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강의를 보는 사람마다 잊어버렸던 어린 시절의 소중한 꿈을 다시 되찾게 해주었습니다. 이것을 보게 되면 랜디 포시 교수님은 인생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그런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것을 알게 됩니다. 인생의 마지막이 아름다우면 모든 것이 아름다울수가 있습니다. 가장 큰 축복중의 축복은 인생의 말년이 아름다운 인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인생의 마지막이 아름다웠던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사람은 모세입니다. 모세는 당시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칠십이고 팔십이었을 때 백이십년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눈은 흐리지 않았고 귀는 쇠하지 않았다고 성경은 말씀 합니다. 그러니까 백이십년동안 평생을 건강하게 살았던 모세입니다. 병에 걸려서 구질구질하게 오래 사는 것 보다는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얼마나 축복입니까? 모세는 지도자로서 마지막 40년동안 광야에서 정말 충성된 삶을 살았습니다. 젊은시절 모세는 자신의 혈기를 이기지 못해서 사람을 때려 죽었던 살인자가 되어 도망다녀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인생 마지막은 참 아름다웠고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이 모세는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모습으로 귀하게 쓰임을 받았던 것입니까? 그래서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어떻게 해서 모세가 마지막까지 아름답게 신앙생활을 할수 있었는가에 대해 생각을 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모세의 인생이 아름다웠던 이유는
첫째 모세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인정하고 순종함.
우리가 잘아시는 것처럼 모세는 가나안땅을 바라보기는 했지만 들어가지는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모세는 실패한 인생을 살았다 라고 생각할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가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모세가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었습니다. 모세에게 주어진 사명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나안땅에 들어가 가나안땅을 정복하는 일은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사명이었습니다. 신명기 34장을 보게 되면 모세가 느보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가나안땅을 바라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34장 4절 전반부입니다. 4.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모세야 저땅이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너희의 후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땅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때 그 가나안땅을 바라보는 모세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광야 생활을 40년동안 해오면서 하루도 잊어버리지 않고 그 가나안땅에 들어가는 날만을 사모하며 기다려왔던 모세이었습니다. 그렇게 사모했던 그 목적지인 땅이 바로 자기 눈앞에 있는 것입니다. 그땅을 바라보는 모세의 가슴은 뛰었고 감정은 벅차올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34장 4절 후반부입니다. ‘4.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그때 모세가 어떻게 반응을 합니까? ‘하나님 너무 억울합니다. 제가 반석을 지팡이로 한번 내려쳤다고 저를 이렇게 대하실수 있으십니까? 제 소원은 저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살다가 저 땅에 묻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의 이 소원을 들어주십시요. 그리고 하나님 아직 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저 가나안땅에 들어가기에는 나이가 너무 젊고 경험이 더 필요합니다. 저 여호수아를 보십시오. 지금 저렇게 염려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지 않습니까? 저에게는 저 여호수아에게 없는 담대함과 지도력과 그리고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땅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에게 대들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때까지 모세은 젊은 사람 못지않은 기력이 있었고 건강했습니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에게는 없는 경험과 지도력까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모세야 너의 사명은 여기까지이다 여기서 바라보기만 해라.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한다’ 그리고 모세는 이말씀에 순종을 합니다. 그러니까 모세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시체를 아무도 찾을수 없도록 은밀한 곳에 가서 조용하게 자신의 인생을 마칩니다. 모세의 이 마지막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렇게 모세의 마지막이 아름다운 것은 바로 하나님의 섭리를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은 아름다울 것입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실패한 인생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름다운 인생이 되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억울하고 손해가 있고 이해되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고 믿음의 생활을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모세의 인생 마지막이 아름다웠던 이유
두번째는 죽기전에 이스라엘 자손들을 축복했습니다.
신명기 33장 1절입니다. 1.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함이 이러하니라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함이 이러하니라’ 모세는 죽기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축복했습니다. 신명기 33장을 보게 되면 모세가 내린 축복의 내용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인생 마지막에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되고 부담이 되는 인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짐이나 부담이 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축복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인생의 마지막에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나 부담스런 존재가 아니라 축복을 하는 존재는 아름답고 멋진 인생입니다. 그렇습니다. 평상시에 아무리 멋지고 화려한 인생을 살아왔다 할지라도 인생의 마지막이 좋지 않으면 추한 인생이 될수 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이 아름다운 사람,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에 쓰임을 받는 사람을 보게 되면 그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삶의 패턴이나 비결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마지막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까지 아름답게 쓰임을 받는 비결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친밀함을 유지하는 것에 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이 아름다운 사람, 마지막까지 쓰임을 받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공통 된 점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출애굽기 33장 11절 전반부입니다. “11.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하나님과 모세간의 사이가 얼마나 친밀했고 가까웠으면 친구에게 얘기하듯이 대면하여 대화를 했겠습니까? 그만큼 모세와 하나님은 친밀했던 것입니다. 출 33장 17절입니다. ‘17.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이름으로도 너를 안다는 것은 ”모세야 내가 네 이름을 안다 너의 이름은 모세지?“ 이런 의미가 아닙니다. 이름은 그사람의 전 인격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그사람이 지니고 있는 성품과 기질과 생각들을 다 알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네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다 알고 있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평상시에 모세가 그만큼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모세는 이렇게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지니며 지낼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성경을 보면 모세는 문제를 만날때마다 기도로 해결을 해온 것을 알수 있습니다. 홍해가 가로 막을때, 그리고 르비딤 광야에서 전쟁을 할 때 모세는 두손을 들어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불뱀에 물려 백성들이 죽어갈때도 모세는 기도를 했습니다. 모세는 일이 생길때마다 하나님에게 이야기를 하며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그래서 모세와 하나님은 친구와 이야기 하는 것처럼 친밀함을 유지하면서 생활을 해왔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의 마지막이 아름답게 될려면 평상시에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과 친밀함을 유지하며 살아갈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사람과 사람사이를 보면 친밀함의 정도가 다 다릅니다. 내가 갑돌이와 친하다고 하지만 을돌이보다는 덜 친할 수가 있습니다. 친한 친구도 있지만 덜 친한 친구도 있고 친하지 않는 친구도 있습니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할수 있는 친구가 있는가하면 마음 터 놓고 이야기 할수 없는 친구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성도들간의 친밀함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모세는 산위에 올라가 하나님과 교제를 했습니다. 그런데 70인 장로들은 산중턱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 아래에 있었습니다. 산 아래, 산 중턱, 산 꼭대기 이것을 하나님과 친밀함의 단계로 본다면 모세와 하나님의 친밀함은 산꼭대기에서의 친밀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친밀해진다는 의미는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반면에 산 아래는 하나님과 멀리 지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인생의 복은 무엇입니까? 시편 73편 28절입니다. ‘28.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최고의 복은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것’ 에 있습니다. 사업에 성공하고 출세를 한 것이 복이 아니라 하나님 곁에 머물러 지내는 생활을 하는 것이 복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비록 사업에 실패했다 할지라도 그 사업으로 인해 내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되었고 그래서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졌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성공입니다. 저주가 아니라 축복입니다. 그럼으로 내 자신의 관점을 가지고 성공과 실패를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부자가 되고 잘되면 성공이요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이 성공과 축복일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실패일수도 있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진정한 성공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운데 살아가는 것에 있습니다.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이 우주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과 친밀한 친구처럼 살아가는 것이 축복입니다.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창조물이신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며 살아가는 것보다 더한 축복이 이세상에 어디있겠습니까?
누가복음 2장을 보게 되면 평생동안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살아간 두 인물이 나오는데 그사람은 시므온과 안나입니다. 시므온이 어떤 사람입니까? 눅 2장 25절입니다. ‘25.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시므온은 언제나 성령님과 교제하며 살았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던 시므온에게 하나님이 하루는 어떤 복을 주십니까? 누가복음 2장 27-28절입니다. ‘27.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8.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성령의 감동으로 그날 성전에 들어갔던 시므온은 성전에서 아기 예수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기 예수를 안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사람 안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눅 2장 36-37절입니다. ’36.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37.과부 된지 팔십 사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인간의 눈으로 보기엔 안나의 인생은 불행했습니다. 결혼을 했는데 7년만에 남편이 죽었습니다. 그사이에 태어난 자녀도 없이 과부생활을 무려 84년 동안 해왔습니다. 그 긴긴 세월동안 얼마나 고독하고 외로웠겠습니까? 그래서 인생을 잘못 살아갈수도 있는데 이 안나는 성전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 가까이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죽기 전에 아기 예수를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인생의 마지막이 얼마나 축복이고 아름답습니까? 이렇게 인생의 마지막이 아름다운 사람, 인생의 마지막까지 쓰임을 받았던 사람은 한결같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살아온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오늘은 어머니 날입니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떨어져 지냈던 많은 자녀들이 오늘은 어머니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머니를 대하는것과 같은 이러한 친밀한 감정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하면서 살아간다면 우리의 인생은 성공적이 될 것이라 생각을 해봅니다.
2010년 11월 28일 중국 톈진 발해조보 신문사에 난 기사 내용을 소개하고 마치고자 합니다.
이름이 원학군 이라는 사람이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 중국과학원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1980년초에 정정협이라는 여인을 만나서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외아들 원야를 낳게 되는데 이아들 원야가 자라서 2005년도에 중국 천진 대학에서 석사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시기에 아내인 정정협씨는 위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아내가 위암 절단 수술했지만 암세포가 이미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길어도 6개월 밖에 살수 없다는 진단을 받습니다. 그런데 설상 가상으로 그때 천진대학에서 석사 공부를 하고 있던 아들 원야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아버지 원학군 씨는 아들을 집으로 데려와서 병원에서 심리 치료를 받게 했지만 어느날 하루는 이 아들이 목을 매고 자살을 합니다. 자기 아들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알게 되면 이제 막 위암 절단 수술을 마친 아내의 생명이 위험해질까봐 아내에게는 비밀로 합니다. 대신에 아들 원야가 취직이 되어서 급히 떠나게 되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 원학군씨는 아들의 핸드폰을 사용해서 아내에게 문자로 메시지를 보내는 일을 시작합니다. 첫 번째로 보낸 문자 메시지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머니, 제가 너무 바빠서 연락을 못드리고 떠나서 죄송해요. 저는 지금 천진상업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제 걱정은 하지 마시고 치료를 잘하세요.” 난생처음으로 자기 아들로부터 온 문자 메시지를 받게 된 어머니인 정정협 여인은 너무나 기뻐하며 문자로 이렇게 답장을 합니다. “아들아 축하한다. 네가 자랑스럽구나 엄마 아빠가 곁에 없어도 네 건강을 잘 챙겨라” 그날로부터 아들과 어머니는 수많은 메시지를 주고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 문자 메시지는 이 여인이 이세상에서 살아가는 이유가 됩니다. 애당초 6개월을 못 넘긴다 라고 했던 이 여인은 2007년, 2008년을 넘기고, 2009년에 한번 더 수술을 받으면서 버티게 됩니다. 이 여인의 유일한 생명줄은 핸드폰이었고 이 여인의 소망은 하루에 몇번씩 아들에게서부터 오는 문자 메시지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0년 1월 초에 병세가 갑자기 악화 됩니다. 그때 이 여인이 아들로부터 받은 마지막 메시지는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엄마 이번 설날에 엄마한테 갈께. 그때까지 참고 버티고 있어줘. 나 엄마가 좋아하는 것 많이 사가지고 갈께. 내가 갈때까지 꼭 살고 있어야 해” 하지만 엄마는 2010년 1월 19일 밤 11시 40분에 눈을 감게 됩니다. 그리고 이 여인이 자기 남편 원학군씨에게 마지막 숨넘어가면서 한 말은 “내 핸드폰 내 핸드폰” 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이 원학군씨가 아내의 유물을 정리하면서 아내의 핸드폰을 열어봅니다. 그런데 핸드폰 안에는 남편인 자기에게 보낼려고 했던 아내의 마지막 메시지가 남겨있었습니다. 그 마지막 메시지는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여보, 저는 당신이 ‘아들’로 가장하여 저한테 메시지를 보냈다는것을 작년 말에 알게 되었어요. 제가 ‘아들’한테 메시지를 보냈을 때 당신 호주머니의 핸드폰이 울렸잖아요. 그때부터 전 이상하다라고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어요. 그래서 천진상업학교에 직접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제 아들이 없다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니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아들이 자살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리고 당신이 저를 위해 이 모든 일을 숨겨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답니다. 여보 그동안 나에게 해준 당신의 마음이 너무 고마워요”
그래요. 이 정정협 여인에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아들과 문자로 주고 받았던 것이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게 했습니다. 사실 이땅을 살아가면서 힘들지 않는 인생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 힘든 인생속에서도 살아갈 맛을 나게 하는 것은 이러한 사랑을 주고 받을 때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자녀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으로 인해 자녀들이 힘들고 고달픈 이세상을 극복하고 살아갈 이유가 됩니다, 그리고 반대로 그 자녀가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이세상에 있는 모든 어머니들은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수 있는 힘이 되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세상 모든 자녀들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게 하기 위해 어머니를 주신것입니다. 유태인의 탈무드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자녀들을 직접 돌볼 수가 없기에 어머니를 주셨다”. 이 내용을 거꾸로 해석을 하면 ‘모든 어머니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수 있다’ 라는 뜻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이세상의 모든 자녀들이 어머니와 사랑하며 지내고 있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과 친밀하게 지내는 것이 될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어머니를 이땅에 보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십시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돌보기 위해 어머니를 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믿는 성도인 저와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어머니를 주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남은 생애동안 오늘 본문에 나오는 모세처럼 그리고 시므온과 안나처럼 인생의 마지막이 아름답게 되는 축복을 누릴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