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신앙 생활은 은혜로

Author
kgmcc
Date
2023-05-21 03:29
Views
56
본문 : 고린도전서 15장 10절

날짜 : 2023년 5월 21일

 

<고린도전서 15장 10절>

10.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일본에서 마쓰시다 전기와 파나소닉의 창업자로 유명한 마쓰시다 고노스케가 있습니다. 이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경영의 신’이라고 하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둔 기업가입니다. 이 사람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5살이 되던 해에 부친이 하던 사업이 실패를 하면서 가세가 몰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이후에 너무나 기울어져버린 집안 경제 때문에 이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초등학교만 졸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많이 배우지 못해서 오랜 세월동안 밑바닥 생활을 했지만 마침내 큰 기업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이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왔겠습니까? 그런데 본인은 “내 자신의 노력 보다는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마쓰시다 고노스케가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뽑을 때 지원자에게 반드시 물어보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 질문은 바로 “당신의 인생은 지금까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까?” 이었습니다. 이 질문에 “그렇습니다” 와 “그렇지 않습니다” 라는 대답으로 나뉘어지게 되는데 주로 도쿄 대학 이나 와세다 대학을 나온 명문대 출신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라는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마스시타 고노스케는 그 지원자가 아무리 명문대학을 나왔다 할지라도 “나는 운이 아니라 내 실력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라고 대답을 하면 탈락시켰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면접 방식으로 채용이 된 직원들은 늘 겸손한 자세로 배울려고 했고 또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협력을 하면서 일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파나소닉 회사가 성장하는데 크게 기여를 했던 것입니다.

지금 제가 이 마쓰시다 고노스케의 이야기를 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인생의 성공은 자신의 재능이나 노력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어떤 분야에서든지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나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보다 내가 더 성공을 하게 되는 것은 운이라고 하는 또 다른 요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노력만 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운도 따라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운이 아니라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갈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바로 은혜로부터 시작되어지는 종교라 할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입니다. 그렇다면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는 헬라어로 카리스라고 말합니다. 이 카리스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값없이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은혜를 기초로 해서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신앙이 왜 은혜로 시작해야 하는 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


  1. 감격하는 인생을 살기 때문입니다.

본문 10절 전반부입니다. 10.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가 나 된 것은’ 여기서 앞에 나오는 “내가‘ 와 뒤에 나오는 ’나 된 것은’ 은 같은 ‘나‘ 가 아닙니다. 본문앞에 나오는 9절을 보시면 그 차이를 알수 있습니다. 고전 15장 9절입니다.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예전에 바울은 교회를 박해하고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감옥에 집어넣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부터 바울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도가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앞에 나와 있는 “나”는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잡으러 다녔던 “사울이었던 나” 이고, 뒤에 나와 있는 “나”는 “온갖 박해와 핍박을 받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도바울인 나”를 의미합니다. 다시말해서 앞에 나오는 ’나‘ 는 내자신이 주체가 되어 무엇이든지 내 중심으로 살아왔던 ”나“ 이고 뒤의 나오는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는 나입니다. 그리고 앞에 나오는 나는 나의 목적을 위해서 상대방을 멸망시키고 죽이는 ”나“ 이지만 뒤에 나오는 ”나“는 한 영혼이라도 살리고 구원하기 위해서 애쓰며 살아가는 나입니다. 그러니까 “과거의 내”가 “지금 현재의 나’ 로 변화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 핍박하고 죽이던 죄인 중의 괴수가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 자신이 스스로 노력을 해서 이렇게 복음 전도자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변화가 된 삶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신앙의 기초는 바로 은혜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한절에 은혜라는 단어가 세 번이나 나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그리고 이어서 보시면 “내게 주신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마지막 후반부에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얼마나 은혜에 감격했으면 바울은 이렇게 본문 한 절에 은혜라는 단어를 3번이나 반복하면서 고백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에게는 이런 놀라운 감격이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이성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계시는 영이신 하나님을 알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가 어떻게 내 자신이 죄인임을 알았겠습니가?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을 알았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좋아보이는 것만을 쫓아가는 죄악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죄와 사망의 법에 메여 살아가다가 마지막엔 영원한 불 못에 던져질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고,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자녀가 되었습니다.

로마서 4장 4절입니다. 4.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누구에게 보수로 여겨지는 것입니까? ‘일하는 자에게는‘ 일하는 자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회사를 위해 일했으니까 회사는 당연히 나에게 보수를 주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일을 한 댓가로 보수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내가 그만한 일을 했고 그래서 보수를 받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행위와 하나님의 은혜는 서로 대조가 되는 개념이라 할수 있습니다.

로마서 11장 6절입니다. 6.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 인간의 선행과 구제하는 행위가 내 신앙의 출발점이 되고 기준점이 된다면 은혜가 은혜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기초는 은혜로 세워져야 합니다. 베드로 전서 5장 12절 후반부입니다. 12.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이 은혜에 굳게 서라’ 만일 우리의 신앙의 기초가 은혜가 아니라 나의 행위가 기초가 되고 기준이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나의 구원에 대해서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어느정도 구제를 하고 또 얼마만큼 선하게 살아가야 내가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지 알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한 행위를 기초로 하면 우리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갈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카톨릭 신자들은 대부분 구원의 대한 확신이 없이 신앙생활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카톨릭에서 일반 성도들에게 가르치는 교재가 제게 있어서 오래전에 그 교재를 읽어본적이 있습니다. 그 교재에는 비성경적인 내용이 많이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는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게 되면, 죄를 짓게 되면 착하고 선한 일을 해서 그 죄들을 하나씩 죄가 사라지게 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양쪽에 무게를 달아보는 저울을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죄를 많이 지어서 저울 추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그 사람은 다른쪽에 선한 일을 많이해서 그 추를 바로 잡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울어진 죄악의 무게만큼 다른 한쪽에 그만큼 선한 행위를 한 그 무게를 놓음으로서 그 사람은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이 잡힌 신앙생활을 해나갈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리를 가르치다가 보니 카톨릭 신자들중에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들은 매우 적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기초를 구제와 선한 행위에 두다가 보니까 그일을 내가 어느정도까지 해야 할지 정확히 알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구원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선물이라고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입니다. 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자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신앙의 기초가 되어 있다면 어떻게 됩니까? 지금 나의 감정이나 나의 상태에 따라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나의 감정이나 나의 상태에 따라 내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은혜로 인해 내가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자유함이 있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인생 가운데 실패가 있고 그리고 종종 넘어짐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면 우리 마음에 자유함이 있고 구원의 확신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행위가 필요 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반드시 선한 행위와 구제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의 시작은 은혜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은혜가 우리를 감격하게 합니다. 은혜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오늘 우리 안에 이라힌 은혜의 감격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하는 감격이 있습니까?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은혜에 대한 감격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들도 사도바울처럼 은혜로 시작하고 은혜로 달려가고 은혜로 인생을 마칠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


  1.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본문 중간부입니다. 10.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여기서 ‘헛되다‘ 라고 할 때 헬라 원어는 ’마타이아‘ 라고 하는 단어가 사용되어졌습니다. 이 단어는 “열매가 없다. 공허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열매나 결과가 없는 빈 쭉정이를 볼 때 “마타이아” 라고 부릅니다. 은혜로 신앙생활을 해나가지 않으면 아무 열매나 결과가 없는 빈 쭉정이와 같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되어 있는 구절은 고린도 전서 15장입니다. 이 고린도 전서 15장은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부활의 장이라고도 불립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부활에 관하여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이 지은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생명을 바치시고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이 바로 우리가 믿는 믿음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7절입니다.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된 것입니다. 아무런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믿음의 생활을 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구원에 있습니다. 믿음의 결과는 구원입니다. 우리가 믿어 천국에서 들어가는 것에 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39절 입니다. ”39. 우리는 ...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이 영혼을 구원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믿음의 생활을 해도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아무런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매번 정기적으로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고 찬양생활을 하고 헌금생활을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이렇게 수고한 결과가 없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결과인 구원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생명으로 우리가 지은 죄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리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사실을 믿습니다. 예수님처럼 믿음을 가진 우리도 예수님처럼 죄와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원히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은혜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어떻게 받을 수 있습니까?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는 손’ 이라 할수 있습니다. 누가 나에게 무엇을 주면 손을 내밀어 받아야 내 것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이 준비해놓으신 은혜를 내가 믿음으로 반응할 때 그 은혜가 비로소 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은혜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해내가야 합니다. 그리고 은혜로 신앙생활을 해나가되 남보다도 더많은 수고를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본문을 보시면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많이 수고하였으나’ 우리가 은혜로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은 바로 은혜로 신앙생활을 해나갈 때 헛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보다 쉬운 이해를 위해 이런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사람들마다 자신이 거래하는 은행에 체킹 어카운터가 있고 세이빙 어카운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체킹 어카운터에는 아무리 돈을 많이 입금을 하고 그리고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이자가 붙지 않습니다. 하지만 세이빙 어카운터에는 이자가 붙습니다. 그렇다면 내돈을 어디에다 입금해야 합니까? 이번 한달 사용을 할 금액 이외에는 모두 세이빙 어카운터에 돈을 입금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자가 붙는 더 좋은 결과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은혜로 더많이 수고를 하는 것은 은혜로 신앙생활을 할 때 헛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열매를 맺을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에게 가진 것이 없다는 이유로 무기력하게 좌절하고 절망하지 마십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것은 헛된 것이 아닙니다. 열매가 있는 지혜로운 길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변함이 없지만 우리는 감정을 가진 존재라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사라지고 고갈 된 것처럼 느낄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은혜가 계속해서 내게 풍성히 머물러 있을 수 있도록 더 많은 수고를 해야 합니다. 이 말은 은혜를 받기 위해 우리가 더 많이 수고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값없이 받고 누리는 것입니다. 은혜는 주어진 것입니다. 더 많이 수고하는 것은 은혜를 갚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나를 위해서입니다. 만일에 세이빙 어카운터 보다 훨씬 더 많은 이자를 주는 안전한 곳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이전보다 더 열심히 내 돈을 그곳에다가 투자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더 많은 풍성한 열매가 있기 때문입니다. 더 유익하고 좋은 결과가 내게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혜로 더많이 수고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면서 그냥 적당하게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사람은 참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확실한 열매나 더 좋은 결과가 생기는 방법이 있다고 말씀을 듣고서도 그렇게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참 어리석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매가 있는 은혜로 신앙생활을 하십시다. 바라옵기는 은혜로 신앙생활을 하는데 남보다 더 많이 수고를 하며 신앙생활을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


  1. 나와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후반부입니다. 10.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

성경은 우리에게 내가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 고난이 없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있지 않습니다. 부자가 되고 성공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도 어려움과 고난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실패할수도 있고 그래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할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해주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로 승천하시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하신 약속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28장 20절 후반부입니다. 20.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주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수천 수만명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큰 교회 이든지, 두세명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작은 교회이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왜 함께 하십니까? 은혜임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오래전에 영국의 어느 큰 회사가 신문에 이러한 광고를 내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 광고를 낸 이유는 아마도 자기 회사를 알릴려고하는 하나의 마케팅 홍보가 아니었을까 제 개인적으로 생각해봅니다. 어쨌튼 신문에 나온 그 광고 내용은 영국 수도인 런던에서 출발을 해서 스코틀랜드의 수도인 에딘버러 까지 왕복으로 가장 빨리 갔다 올 수 있는 방법을 묻는 내용이었습니다. 큰 상금을 내걸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응모를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비행기로 가는데 가장 빠른 시간으로 가는 구체적인 방법을 말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고속열차를 타고 가다가 어느 지점에서 택시로 바꾸어 타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승용차로 가는데 이러 이러한 지름길로 갔다 오면 가장 빨리 다녀올 수 있다고 그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일등상을 탄 사람은 바로 이런 대답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갔다 오면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아무리 먼 길이라도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왜 주님께서는 믿는 성도인 나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을 해주십니까? 우리가 기나긴 인생길을 가는 동안 만나게 되는 어떠한 힘든 일이나 어려움도 함께하면서 극복할수 있게 하기위해서 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면 그 먼 여행길도 가깝게 여겨지는데 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그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붙잡히시던 그날밤에 제자들은 다 도망을 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시간에 예수님과 함께 하십니다. 요한복음 16장 32절입니다. 32.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혼자가 된 순간에도 외롭지 않게, 그리고 두려움이 없이 그 십자가의 길을 갈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입니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가(하나님)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성령을 의미)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러니까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는 목적중의 하나는 영원토록 나와 함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에는 주님이 보내신 성령이 우리 믿는 성도들과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인생길을 가는동안 감당하기 힘든 환경을 만나게 될 때 나를 도우시기 위해서 늘 나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주어진 최고의 축복은 바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바로 은혜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장거리 달리기를 하는 마라톤 선수와도 같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달리다보면 너무나 지치고 힘이들어 앞이 캄캄해질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나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을 바라보십시다. 앞과 뒤가 막혀도 하늘은 열려있습니다. 그리고 열린 하늘을 통해서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심을 우리는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마라톤 선수가 되어 우승을 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이 나와 하심을 믿고 달리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 어떤 눈에 보이는 결과에도 소망을 가질수가 있습니다. 위로를 받고 살아갈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길이 하나님이 없이 우승을 한 것보다도 더 귀한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나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남은 생애동안 신앙생활을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